마그나카르타의 그녀? 엄지영을 만나다

러프 2005-09-08 03:17:49

3년만의 외출이었다. 한때 게임가수 1호라는 별칭과 함께 이곳 저곳 얼굴 꽤나 비췄던 그녀. 하지만 엄지영이라는 이름 세 글자를 사람들의 머리 속에 새겨 넣기엔 공백이 너무 길었던 탓이었을까. “대체 누구세요?” 얼굴을 갸우뚱거리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설명해봐도 낯선 모양이다.

그러나 듣는 순간 가슴 한 켠을 저리게 만드는 특유의 음색만큼은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그녀를 이야기한다. 마그나카르타의 엔딩곡 ‘타임 패시스 바이(Time Passes By)’로 게이머들의 심금을 울렸던 그 목소리, <진홍의 성흔>에서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 ‘레인(Rain)’의 아련한 음색, <영웅온라인>에서 “혹시나 그녀?”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매혹적인 소리의 주인공이 첫 앨범과 함께 세상 밖으로 조심스런 발걸음을 뗐다.

[사진=연하일휘]

“에이~ 자꾸 엄지원이라고 부르실 거예요?” 살짝 서운할 법도 하지만 최근 영화가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그 엄 씨(?)와의 엄~한 비교가 썩 싫지만은 않은 모양인가보다. 새는 발음으로 듣고 “엄지원이 노래도 불렀냐”라던 주위 사람들의 반응을 이야기하자 “아마 본가가 같을 테니 먼 친척 뻘이지 않을까요 -_-;”라며 되받아 치는 엄지영. 잔잔한 분위기 일색의 앨범이라지만 본인은 막 학교를 끝내고 돌아온 여고생마냥 시종일관 들뜨고 신난다. 그렇게 좋아요?

“좋죠. 첫 앨범이 나왔으니까. 이렇게 말하면 무슨 원로가수처럼 느껴질진 몰라도 음악 쪽에 발을 담근게 6년이나 된 셈이고 보니 그만큼 마음도 설레이는거 있죠~!”

이 엄씨가 아니래두요 -_-+

“어~ 마그나카르타에서… 그 목소리?”로 통하는 그녀라지만 99년 원태연 음악시집으로 음악계에 첫 발을 내딛은 엄지영은 영화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와 <바람의 전설>, <클레멘타인>을 비롯해 CF 마루, 나뚜루 보컬참여 등 게임외적인 활동으로도 활발하다. 조만간 ‘칵테일사랑’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마로니에의 컴백앨범에 참여해 객원가수로의 활약도 예고된 상태라고. 헌데 어쩌다 제 1호 게임가수라는 별칭까지 얻게 된 것일까.

“영석 오빠(유영석, 전 푸른하늘 및 화이트멤버)랑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음악을 하게 됐거든요. 이런저런 일을 돕고 있는 와중에 마그나카르타의 엔딩송을 맡을 보컬오디션에 나가보라고 권유하더라고요”

창세기전과 같은 여러 국내 롤플레잉게임에서도 오프닝과 엔딩을 장식한 여러 가수들이 있었지만 그녀가 유독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냥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라며 수줍어하지만 게임음악의 첫 데뷔작인 ‘타임 패시스 바이(Time Passes By)’는 단순한 게임 엔딩곡 이상의 묘한 매력으로 게이머들을 끌어당겼던 것이 사실. 감미로움 이상의 목소리, 게임의 분위기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그 음색은 엔딩의 여운을 오래도록 가져가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궁금한 건 화려한 출발이 무색할 만큼 오래도록 이어진 그녀의 공백기다. 이유가 뭘까? 혹 게임가수으로 굳어질 이미지가 싫어서?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릴! 큰일날 얘기하지 마세요. 아마 저만큼 게임가수라는 별칭에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도 없을껄요. 게임은 대중음악에선 꿈꿔보지 못할 새로운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이에요. 신비스럽고 오리엔탈적인 분위기랄까. 실은 제가 가장 좋아라 하는 장르걸랑요 헤헤”

그녀의 공백엔 이유가 있었다. 마그나카르타 발표 이후 이곳 저곳의 음반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던 엄지영은 계약을 맺은 한 음반사의 사정으로 공중에 뜬 상황에 처하고 만 것.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산다’는 철학을 꿋꿋이 지키려던 그녀는 대박 터진 <겨울연가> O.S.T. 음반에 참여할 수도 있었던 기회마저 저버렸지만 후회는 전혀 하지 않는단다. “전 게임이 좋다구요~ 아니, 게임음악이 ^^”

사실 게임가수 1호기(?)로 불리는 엄지영이건만 게임경력은 ‘스타랑 카트 좀 해봤다더라’는 대한민국 표준여성수준. “스타는 얼마나?” “프로토스 쫌 했죠” “왜 프로토스를?” “밥집(-_-;)이 예쁘잖아요 히히”

시간이 남을 땐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음악 듣고 영화 보는 일상이지만 좀 더 독특한 취미가 귀를 쫑긋세운다. ‘뭐든 움직이는 것이 좋다’는 엄지영의 철학은 수영강사자격증과 인명구조자격증 획득으로 이어졌고 스쿠버다이빙과 승마까지 취미 한번 다채롭기 이를 데 없다.

“옛날 취미는 노래방이었죠. 요즘은 잘 안 가지만. 친구들 데리고 매일처럼 들리던 기억이 새록새록해요”

“다들 싫어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던데요?”

“지영씨가 부르고 난 다음엔 다들 뻘쭘했을 듯 싶은데”

“그래서 일부러 제일 마지막에 불렀어요. 착하죠? 호호호”

러프&일하일휘: …

이유 있는 공백기간을 보낸 엄지영은 <마그나카르타>의 후속작 <진홍의 성흔>의 오프닝곡인 ‘레인(Rain)’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의리가 인연을 만든다는 그녀의 철학이 주효했던 덕분인지 이후 여러 게임업체와 일할 기회가 생겼고 그 인연은 첫 앨범이라는 결실을 맺게 만들었다.

그리고 앨범 발표 후 첫 라이브무대가 된 게임애니메이션 가요제인 소리추 페스티벌(9월 4일 개최)에서 주옥 같은 목소리로 다시금 부활을 알린 그녀. 자신을 잊지 않고 찾아와준 팬클럽카페 회원들을 보며 마냥 기뻐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었다. 하루 200여통이 넘는 팬레터가 오던 시절에도 일일이 자필로 답장을 썼다던 열성은 무대에까지 이어졌고, 그녀를 모르던 사람들에게까지 그 열기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무대에 서있던 엄지영의 모습은 영락없는 <마그나카르타>의 여주인공 ‘에스텔’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