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량, 도티, 잠뜰 등 유수의 크리에이터가 소속된 국내 최대 MCN 기업, 샌드박스 네트워크가 e스포츠 클럽 운영에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얼마 전 <리그오브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 2019 스프링 시즌 승격에 성공한 ‘팀 배틀코믹스’가 ‘샌드박스 게이밍’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팬들을 만나게 됩니다.
샌드박스 네트워크가 e스포츠 클럽 운영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소속 크리에이터들과의 협업? 기업 브랜딩? 회사를 처음 만들었을 때부터 e스포츠 안 하냐는 얘길 들었다는 이필성 대표는 왜 이 시점에 e스포츠 사업에 뛰어드는 걸까요. 디스이즈게임이 샌드박스 네트워크 이필성 대표를 만나 e스포츠 시장의 비전, 샌드박스 게이밍의 전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디스이즈게임 반세이 기자
디스이즈게임> 요즘은 어떤 일들에 집중하고 계신가요.
이필성 샌드박스 네트워크 대표: 게임단 론칭 때문에 좀 바빴어요. 직원이 많이 늘었지만 크리에이터 매니지먼트나 영입, 콘텐츠 전략은 여전히 제가 다 맡고 있어서 실무도 많이 하고요. 강연도 자주 나가는데, 우리가 변화 시켜야 한다고 판단되는 곳에는 간다는 것이 원칙이에요. 브랜드 마케터나 게임 개발자, 게임 마케터,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분들, 미디어/엔터 산업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모여있는 이런 곳들은 가는 편이죠.
게임 개발자들과는 어떤 얘길 나누고 계신가요?
이필성: 그분들이 보는 콘텐츠로써의 게임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해요. 유튜브나 트위치에 스트리밍 되고 콘텐츠로 만들어지는 게임들이 생명력을 길게 가져가는 경향이 있거든요. 특히 유저를 많이 확보해야 하는 게임일수록 그게 중요해요. 아케이드나 PVP, 액션 게임들은 보는 콘텐츠로 바이럴을 만들지 않으면 알려지기 힘든 시대가 됐어요.
‘보는 콘텐츠’라는게 게임 흥행에 얼마나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세요?
이필성: 이젠 엄청 큰 영향을 끼치죠. 게임도 여러 종류가 있잖아요. 소수의 유저로부터 일정한 매출만 발생시켜도 유지할 수 있는 게임이 있지만, 유저 수가 많아서 매칭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는 게임도 있고요. 게임사들은 보통 ‘보는 게임’이라는 걸 e스포츠로 많이들 접근해요. 그렇지만 e스포츠로 게임을 흥행시키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니까. 스트리머들이 재밌게 방송할 만 한 콘텐츠만 있어도 큰 임팩트를 줄 수 있죠.
작년에 <클래시로얄> 유튜브 콘텐츠가 굉장히 잘 됐어요. 구글플레이에서는 일정한 주기를 갖고 유행하는 아케이드 게임들이 있고요. 작년엔 <라이더>, 올해는 <의지의 히어로> 같은 게임들요. 들어 보셨어요? MAU(월 이용자 수)가 몇 백만씩 되는 게임들이에요. 유튜브에서 콘텐츠 어마어마하게 쏟아지고요.
보는 콘텐츠로 잘 될 만한 게임의 요소들이 몇 가지 있어요. 예를 들어 경쟁 콘텐츠가 있으면 그 상황을 스트리머가 재밌게 풀어갈 수 있겠죠. 게임을 스트리머가 원하는대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여러가지 조작 트리거가 있다면 재미있는 실험이나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을 거예요.
게임을 영상을 만든다면 보통 게임사에선 두 가지 생각을 해요. 공략이랑 e스포츠요. 하지만 게임에는 예능으로 풀어낼 수 있는 요소가 많아요. 개발자 분들께는 그런 것들을 벤치마크하시라. 2차 창작이 용이한 콘텐츠를 포함시키면 좋다, 이런 얘기 많이들 드리고 있어요.
샌드박스가 e스포츠 클럽을 운영한다는 건 사실 놀라운 소식은 아니었어요. MCN과 e스포츠는 시너지를 잘 낼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에서야 e스포츠에 발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필성: 처음 MCN 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너흰 e스포츠 안 하냐’라고 말했었어요. 지금은 게임 전문 MCN이 아니라 종합 MCN이지만, 초기엔 빠른 성장을 위해 게임 전문 MCN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땐 몇 가지 이유로 제가 e스포츠를 멀리(?)했어요.
저는 그때 e스포츠 씬에 대한 확신이 없었어요. 결국 회사니까 e스포츠로 돈을 벌고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데, 어느 한 IP에 의존하게 되는 상황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거죠. 게임이 흥할때야 e스포츠도 잘 되겠지만 게임의 인기가 떨어진다면 e스포츠도 인기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도 화려한 시절이 있었지만, 이후 점점 쇠락해 간 것처럼요.
두 번째는 e스포츠란 콘텐츠가 굉장히 니치(niche)한 영역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게임을 하는 사람들만 몰입해서 보는, 타깃이 협소한 영역요. 한때 <스타크래프트>가 범대중적 인기를 끌었지만 그 뒤로는 e스포츠 시장이 점점 니치한 방향으로 변해왔다고 생각했죠.
세 번째는 e스포츠나 스트리밍이나 보는 콘텐츠란 측면에선 같지만 본질은 완전히 다른 비즈니스라는 생각에서였어요. MCN은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워요. 크리에이터들이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있도록 관리하고, 행정 절차를 처리하고, 콘텐츠에 대한 인사이트를 주고, 광고 사업을 하는 그런 일이죠.
반면 e스포츠는 선수들이 게임을 잘 하게 하는 것이 본질이에요. 회사가 e스포츠 클럽이 유명해지도록 마케팅을 한다거나, 광고를 판다거나 이런 건 다 본질에서 벗어난 일이죠. 잘하는 팀이 되면 모든 것이 해결돼요. 페이커가 유명한 건 그가 게임을 잘 해서지 마케팅의 힘이 아니죠. 그런 부분에서 e스포츠 씬에는 베테랑이 많아요. 그분들은 평생 그 일을 해 왔고, 선수였고, 해설자였죠. 저같은 뉴비가 진입해서 잘 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3년 전에 했던 생각이에요.
생각을 바꾼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필성: 첫 번째, 종목의 한계는 생각한 것보다 덜 우려해도 될 것 같았어요. 축구가 만들어 진 지 수백 년이 됐고, 야구도 마찬가지죠. 세상엔 야구를 단 한 번도 해 보지 않고 야구 경기를 보는 사람이 많아요.
<스타크래프트>의 경우 글로벌보단 한국에 집중된 어떤 ‘현상’이었죠. <리그오브레전드>가 글로벌로 판을 키우며 수명과 가능성이 증가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서 스타 리그가 쇠락하며 점점 니치한 영역이 되었다면, <리그오브레전드> e스포츠는 글로벌화 되면서 훨씬 대중적인 콘텐츠가 됐죠. <스타크래프트>의 가장 큰 리그는 한국이었지만 <리그오브레전드> 리그는 미국이나 중국이 훨씬 커요. 시청자 수와 타깃 인구가 훨씬 많고요. <오버워치> 리그도 순식간에 글로벌 리그로 성장했죠.
e스포츠로 리그가 성공한 게임은 아예 ‘다른 게임’이 돼 버린 것 같아요. 과거 e스포츠가 좁은 판에서 고생고생하며 조금씩 판을 키워왔다면 이제는 MLB, NBA팀들이 판돈을 부어가며 e스포츠에 뛰어들고 있죠.
전통적인 스포츠와 같은 양상을 띄어간다는 뜻인가요?
이필성: 비슷한 양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레거시 스포츠의 스테이크홀더(이해당사자)들이 진입하며 기존과 전혀 다른 규모의 판이 벌어지고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가능성이 아주 커졌다고 판단했습니다. 올해 초에 이런 생각을 했는데,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는 있었죠. 우리가 이걸 잘 할 수 있는가. 왜 우리가 이걸 해야 하는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요.
그래서 올해 초에 시작한 게 <클래시로얄> 클럽 팀을 창단하고 운영한 거였어요. <클래시로얄> e스포츠는 신생 종목이라 같은 스타팅 포인트에서 겨뤄볼 수 있을 것 같았죠. 저흰 e스포츠판에서 완전 뉴비니까요. 또 <클래시로얄> e스포츠는 팀전을 하긴 하지만 어쨌든 1:1 전투니까 좀 더 개인의 역량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리그오브레전드>는 한 명이 아무리 잘 해 봤자 팀플레이 경기니까 운영과 전략이 중요하잖아요. <클래시로얄>은 그게 좀 덜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일단 <클래시로얄>로 시작은 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확신은 없었어요. ‘그래, e스포츠가 가능성 있는 건 맞아. 클럽 운영도 해볼 만 해. 근데 이걸 우리가 왜 하지?’ 가능성과 해볼 만 하다는 걸로는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었어요. 회사는 영리를 추구해야 하니까요.
이걸로 어떤 비즈니스가 가능한지, 설사 당장 돈은 못 벌더라도 미래에 무엇을 도모해 볼 수 있는지가 명확해야 투자를 할 수 있잖아요. 물론 부가적인 효과는 있겠죠. 브랜드 마케팅 측면에서 샌드박스 네트워크가 많이 알려질거고, 우리 크리에이터들과 콘텐츠를 만들 수도 있을거고. 그렇게 1년간 많이 고민했어요.
올 한 해 고민한 뒤 내린 결론은 무엇인가요?
이필성: 판이 커졌으니 일단 사랑받는 e스포츠 클럽을 만들어 보자는 거였어요. 과거엔 사랑을 받아도 사랑을 받는 것에서 더 나아갈 수 없었지만, 판이 커졌으니 팬들에게 사랑받는 클럽을 만들면 비즈니스적인 측면이든 브랜딩 측면이든 잠재력이 어마어마한 일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죠. 클럽을 이렇게 운영해서 어떤 결과물을 내고, 이런 구체적인 로드맵을 세운 것은 아니에요. e스포츠 씬 자체의 가능성을 높게 본 거죠.
그렇게 되면 사실 너무 좋은게, 사실 식품이나 금융 회사에서 e스포츠 클럽을 운영한다 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이 많진 않아요. 브랜드 마케팅이나 연계 상품 판매 등인데, 저희는 e스포츠와 교집합, 합집합을 이루는 오디언스를 많이 보유하고 있으니 사랑받는 e스포츠 구단을 만들면 할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지는 거죠.
하지만 그런 부가적인 효과를 기대하며 이 사업을 시작하는 건 아니에요. 그건 정말 잘 되고 난 뒤고, 우리가 샌드박스 게이밍을 발표하고 <리그오브레전드> 1부 클럽을 인수한다는 건 정말 본격적으로 이걸 해 보겠다는 뜻이거든요. e스포츠 클럽 비즈니스에 대한 가능성을 크게 보고 있다는 거고요.
그냥 브랜드마케팅 되고, 우리 크리에이터들이랑 협동 콘텐츠도 좀 만들고. 이런 나이브한 생각으로 뛰어든 건 아니에요. 그러다 성적 안 나오고 클럽 운영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면 금세 ‘그 돈으로 CF나 옥외광고 하는 게 낫지 않냐’는 얘기 나오거든요. 브랜딩을 기대하고 e스포츠 클럽 운영에 뛰어드는 많은 기업들이 그렇게 사업을 접고요.
왜 하필 <리그오브레전드>냐는 질문을 누군가는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클럽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e스포츠 종목 중에서도 좀 더 클래식하고 메이저한 종목을 운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어요. <클래시로얄>은 신규 종목이니까 지속적으로 투자를 하고, <리그오브레전드> 리그에선 체계와 시스템을 배워가며 체력을 기르려 해요. <리그오브레전드>를 중심으로 신규 종목들에 점차 진출해야죠.
사랑받는 클럽을 만들겠다는 건 지금 샌드박스가 하고 있는 일과도 일맥상통 하는 것 같은데요. 팬들에게 사랑받는 크리에이터를 육성하고, 콘텐츠를 만들고 있으니까요.
이필성: 맞아요. 우리회사의 큰 철학과 브랜드 메시지가 바로 ‘사랑’이에요. ‘샌드박스 네트워크’라는 이름에서 샌드박스(모래상자)는 크리에이티비티를 의미하고, 네트워크는 좀 딱딱해 보일 수 있는데 커뮤니티를 뜻해요. 스탭들이 크리에이터를 사랑하고, 팬들은 크리에이터를 사랑하고, 크리에이터도 팬들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자는 뜻이죠. 그래서 한때 사훈을 ‘사랑’으로 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냈어요. (웃음)
크리에이티비티는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지만 사랑은 노력하면 줄 수 있는거라고 생각해요. 크리에이터들이 ‘세상 모두가 날 등져도 이 회사는 날 믿어줄거야’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그건 샌드박스 게이밍 운영 철학과도 같아요. 저희도 클럽을 믿어줄 거고, 팬들에게도 믿음을 받는 클럽을 만들고 싶어요. 성적이 좀 안 좋을 수도 있죠. 최선을 다하고 질 수도 있을거예요. 그렇다 해도 팬들에게 사랑받는 클럽을 만들고 싶어요. 그게 하루 아침에 되는 건 아니니까 길게 보고 오래 하려고요.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거랑 비슷하다는 생각도 드네요.
이필성: 아이돌 그룹도 노래 잘 하고 춤 잘 춰야 인기를 얻잖아요. e스포츠 클럽이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은 이기는 것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여러 부가적인 방법이 추가될 수 있겠지만 본질은 이기는거죠. BTS를 예로 들면, 전 그들이 한국 아이돌 중 가장 실력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잘 된 거죠.
사랑받는 클럽이라는 걸 자꾸 강조하는 이유는 그냥 이기고 상금 따고, 선수 매각하고 이런 게 저희 목적이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서에요. 선수들이 이기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저희 클럽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것이 프라이드가 되고. 저흰 팬 분들에게 그런 감정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샌드박스라면 사랑받는 클럽을 만들기 위한 다른 노하우도 있을 것 같아요.
이필성: 여러가지가 있겠죠. 콘텐츠도 만들 수 있고 소통을 더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프로 스포츠와 유튜브의 가장 큰 차이가 있어요. 유튜버는 스스로 명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다만 프로 스포츠에는 명성을 만들어 줄 준비가 돼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미디어나 여러 매체들도 있고요. 게임을 잘하기만 하면 일단 기본적인 명성은 만들어져요. 일단 그분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게임에 집중하려 합니다.
저희가 e스포츠 클럽 운영 한다고 했을 때 아마 기대하는 게 있을 거예요. 샌드박스는 스트리밍이 강하니까 콘텐츠 만들고 합방도 하고 재밌는 것들 많이 하겠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기대보단 빡겜(?)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본질은 그거고, 우리가 가진 기법은 그 다음이에요. 제가 사업을 하는 방식이 항상 그랬어요.
MCN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음, 많이 보게 만드는 것?) 그건 결과 같고요. 본질은 크리에이터 매니지먼트를 잘 하는 거예요. MCN 회사가 많아요. 크리에이터들이 계약을 하고 나면 그 회사의 매니지먼트 서비스가 얼마나 질이 좋은가를 우선으로 판단해요. 그럼 그걸 어떻게 측정하느냐. 그건 나를 담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인사이트풀하고 나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가 거든요. 막 시스템이 촘촘하고 유튜브 데이터 분석을 끝내주게 해 주고... 이런 건 다 부가적인 거예요.
클럽 운영은 크리에이터 관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를 것 같은데요.
이필성: 선수 훈련이나 클럽 운영은 감독과 코치에게 전적으로 위임하고 있어요. 생활과 연습을 별도의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숙소가 일산에 있는데 거기서 모두 함께 합숙하고 있고요. 유의준 감독이 이번에 팀을 승격시키기도 했고 행적적인 처리 능력도 뛰어나세요. 회사에서 해 줄 수 있는 건 현재로썬 필요한 자원을 최적의 타이밍과 조건으로 제공하는 것이겠죠. 지금은 저희도 초기 단계라 앞으로 많이 고민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많은 팀들 중 팀 배틀코믹스(현 샌드박스 게이밍)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필성: 우리도 <리그오브레전드> 리그에 처음 진입하는 회사니까 같이 진입하는 새로운 팀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모든 일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유의준 감독의 문제 해결 방식이 저와 결이 맞았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팀이 아니라 리더를 보고 선택한 거죠. 물론 선수도 중요하지만, 선수 구성은 항상 달라지는 게 클럽의 생리잖아요. 기존에 어떤 곤조가 있는 팀보다는 신생 팀, 저희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팀을 골랐어요.
유의준 감독이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하네요.
유의준 샌드박스 게이밍 감독: 저는 배틀코믹스 마케팅팀에 입사한 직원이었어요. e스포츠 클럽과는 무관한 조직이었죠. 그때 막 회사가 클럽을 운영하기 시작하며 사무국 지원이 필요해졌어요. 제가 LCK와 트위치에서 리그 운영 업무를 해 본 경험이 있어서 사무국 업무를 돕기 시작했죠.
근데 리그 도중에 감독님이 급작스럽게 사퇴하신 거예요. 회사는 제게 부랴부랴 한달 간의 선수 케어 업무를 요청했고 한달 정도라면 괜찮다고 생각해 수락했어요. 그때 후반기 성적이 나쁘지 않게 나왔거든요. 전반기에 1승 6패 했는데 후반기는 4승 3패로 마무리했으니까요. 후반기 끝나고 나니 대표님이 감독 자리를 제안하시더라고요.
사실 전 e스포츠 판을 떠날 생각으로 배틀코믹스에 들어왔어요. 하지만 제안을 들으니 다시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어요. 제가 언제 또 코칭스태프를 해 보겠어요. 코칭스태프가 되려는 사람은 많은데 자리는 한정돼 있다보니 그 자리에 들어가기가 굉장히 힘들거든요.
약 4년간 LCK 리그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S급 선수와 코칭스태프를 봐 왔어요. S급 선수들은 저래서 S급이구나, 저 유명한 코치는 저렇게 티칭을 하는구나. 단점은 제가 선수 출신이 아니라 게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는 거였죠. 제가 처음 우리 팀을 봤을 때의 문제점은 수비력이었어요. 공격력은 나쁘지 않았지만 수비력이 공격력의 배 이상 나빴죠. 선택을 해야 했어요. 더 강하게 공격할 것인가, 수비를 보완할 것인가.
수비를 가르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어요. 주먹질을 더 세게 하기로 결정했죠. 실수를 해도 좋으니까 더 강하게 몰아붙이자. 경기에서 전략이 통해 좋은 결과가 나왔어요. 지금도 여전히 그런 플레이스타일을 추구하고 있고, 팬분들도 그런 플레이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최근 있었던 2018 롤드컵에서 한국 팀들이 결선 진출에 모두 실패했어요. 반면 중국의 경우 e스포츠에 국가적인 투자가, 미국은 대형 스포츠 클럽과 명문 대학을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데요. 앞으로 한국 e스포츠 씬의 미래는 어떻게 보세요?
유의준: 기우라고 생각해요. 메타에 따른 유불리함은 항상 고점과 저점을 오가는데 그 중 저점에 한국 팀이 물렸을 뿐이에요. 라이엇게임즈는 항상 메타에 변화를 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한국 팀들이 조금 보수적으로 전략을 운용한 측면은 있어요.
다만 중국이나 미국 시장에 비해 내수가 부족한 것은 아쉬워요. 당장 동남아만 하더라도 작은 PC방 대회에까지 스틸시리즈, 레이저 스폰서가 붙거든요. 동남아도 인구가 많잖아요.
이필성: 내수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라리가(스페인 축구 리그)같은 케이스를 보면 LCK의 미래가 충분히 밝다고 생각해요. 물론 라이엇 코리아와 많이 고민해야겠죠. 사랑 받는 클럽이 된다는 건 국경을 초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e스포츠는 메가 트렌드고, 글로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영역이에요.
또 국내 시장이 클럽 운영이 안 될 정도로 내수가 형편없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한국 프로야구팀이 흑자를 내기 시작한 지 꽤 됐고, 이 정도 인구에 각종 프로 스포츠 리그가 이만큼 다양하게 돌아가는 나라도 드물거든요.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 시장은 작지 않습니다. e스포츠 내수 시장이 작다는 회의적 시각이 있지만 지금의 국내 e스포츠는 과거 <스타크래프트> 열풍과 대비돼 다소 작아보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때가 이상(?)했던 거죠. 세계적으로 ‘e스포츠가 뭐야?’ 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걸 이미 즐기고 있었으니까.
디지털 플랫폼의 메이저 타깃인 Z세대가 사회의 주역이 되는 5년 뒤, 10년 뒤엔 어떻게 될까요. 지금 유튜브와 트위치가 세상을 뒤집어 놓을 것 같지만, 전체 방송 규모에서 보면 비중이 보잘 것 없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5년 뒤, 10년 뒤엔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e스포츠 내수 시장 규모가 그때도 지금과 같을까요? 지금 어린이, 청소년이 10년 뒤 볼 스포츠 경기는 프로야구일까요, e스포츠일까요?
5년 정도의 타임 프레임을 보며 사업을 합니다. 세대가 한 번씩 바뀌고, 한 계단을 뛰어 넘는 기간이 5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3년 전 MCN 사업을 처음 시작하면서 유튜브 생태계가 이 정도로 커질 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도티가 100만 구독자를 달성했을 때 우리 직원들조차도 “여기서 끝이 아닐까요?”, “이제 유튜브도 레드오션 같아요.”라고 했었죠.
그때 전 2백 만, 3백 만 구독자 시대가 올 거고, 그런 유튜버가 지금보다 10배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고 다음 세대 역시 우리에게 올 것이라고요. 5년은 걸릴 거라 생각했는데 3년 만에 됐어요. e스포츠는 가능성 있는 사업이에요.
샌드박스 게이밍의 1차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필성: e스포츠 팬들이 이제 저희를 만나게 될텐데, 다소 식상한 얘기일 수 있지만 우리 팀이 의미있는 플레이, 창의적인 플레이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최선을 다해야죠. 이제 곧 <클래시로얄> 아시아 리그가 시작되는데 그쪽에도 많은 공을 들일 예정이고요.
유의준: 대표님 생각에 동의하지만 전 좀 더 큰 욕심이 있어요. 우승까진 아니더라도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2019 리프트라이벌즈에 나가고 싶어요. 현실과 동떨어진 꿈을 꾸진 않지만 우리가 알을 한 번 깨면 이룰 수 있는 높이에 있는 꿈이라고 생각해요. 6등, 3등, 2등까지 차근차근 올라왔습니다. 순서를 밟아가며 목표를 이루고 싶어요. 갑작스러운 성공은 거품처럼 꺼진다고 생각해요.
이필성: 저의 유 감독은 역할이 다르죠. 이기는 전략을 세우는 건 감독님이고, 저는 감독님이 이기는 팀을 만드는 것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 지 깊이있는 연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내년엔 차근차근 공부를 할 생각이에요. 좋은 분들도 많이 모셔오고요. 내후년쯤엔 좀 더 전문적으로 팀을 운영할 수 있도록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