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은 뜨거웠다. 이전부터 리그를 준비 중이던 예비 프로게이머들은 물론이고, 일반 유저들도 참가 의향을 밝혔다. 리그의 진행 방식과 규정에 대해 묻는 사람도 늘어났다.
반면, 한국e스포츠협회와 프로게임단이 참가하지 않은 채 시작되는 <스타크래프트 2> 리그가 얼마나 갈 수 있겠냐며 의문을 던지거나, 그래텍에서 <스타크래프트 2> e스포츠를 독점하기 위해 무리한 승부수를 던졌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래텍 e스포츠 사업본부의 오주양 본부장은 ‘문호개방’이라는 한마디로 우려를 일축했다. 게임단 단위의 리그 참가를 모든 유저 대상으로 바꾸고, 중계 역시 케이블방송 등 최대한 ‘다양한 경로’로 보여줌으로써 특정 게이머와 채널만을 위한 리그가 아닌, ‘모두를 위한 <스타크래프트 2> 축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그래텍 e스포츠 사업본부 오주양 본부장.
■ <스타크래프트 2>는 ‘열린’ 프로게이머로 간다
오주양 본부장이 생각하는 프로게이머의 기준은 ‘경기에 출전해서 상금을 타는 모든 사람’이다.
기존의 <스타크래프트> 리그는 철저하게 게임단 위주였다. 실력이 있든 없든 리그에서 뛰려면 게임단에 소속돼야 했다. 상대적으로 실력과 지명도가 떨어지는 2군 선수들이나 배틀넷의 재야 고수들은 출전 기회를 얻기 어려웠다.
반면, GSL에는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이 없다. 배틀넷 계정을 가진 만 12세 이상의 유저는 누구나 참가할 수 있고, 올해 3번에 걸쳐 진행되는 오픈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당장 2011년부터 정식 리그에서 활동하게 된다.
출전도 ‘개인 신청’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일체의 시드도, 게임단 소속 여부도, 인기에 따른 특혜도 없다. 현직 <스타크래프트>의 프로게이머가 참여하는 것은 자유지만, 이 경우에도 개인 신청을 통해 오프라인 예선부터 치르고 올라와야 한다.
오직 실력 위주의 선발, 그것이 오주양 본부장이 말하는 ‘문호개방’이다. 실력만 있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커다란 등용문’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GSL에서 필요한 것은 오직 실력이다.
정식 리그가 열린 이후에도 실력 검증은 계속된다.
GSL은 오픈 대회의 결과에 따라 1위부터 32위가 8개의 조로 나뉘어 승부를 펼치는 코드S와 33위부터 96위가 64강 토너먼트를 진행하는 코드A 리그로 나눠진다.
한 리그가 끝나면 코드S의 8개 조별 최하위 8명과 코드A의 최상위 8명이 모여 ‘승급결정전’을 치른다. 이긴 선수는 코드S로 올라가고, 진 선수는 코드A로 떨어지는 냉혹한 승부다.
코드A의 최하위 32명 역시 오프라인 예선에 의무적으로 참가, 배틀넷 상위 유저 32명과 다음 시즌 코드A 진출권을 놓고 결전을 벌여야 한다. 리그에 남아 있기 위해서도 계속 승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반대로 프로게이머를 원하는 유저들은 배틀넷 성적을 올려 코드A에 참가할 수 있다. 배틀넷 순위가 일종의 ‘리그 진입 대기표’가 되는 셈이다. 생각만 있다면 배틀넷을 이용하는 모든 유저가 ‘잠재적인 프로게이머’라는 게 오주양 본부장의 생각이다.
■ “단체를 만들거나, 선수를 관리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프로게이머의 관리는 어디서 맡게 될까? 오주양 본부장은 “단체를 만들거나 프로게이머를 관리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한국e스포츠협회 역시 마찬가지다. <스타크래프트 2>의 프로게이머는 한국e스포츠협회에도 소속되지 않는다.
프로게이머가 협회에 가입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프로게이머로 등록해야 게임단에 가입해 선수로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대회 상금을 ‘근로소득’으로 인정 받아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련된 세금 규정이 달라졌다. 기존에는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일반인이 대회에서 입상할 경우 상금의 22%가 세금으로 부과됐다. 반면, 프로게이머로 등록된 사람은 상금을 ‘근로소득’으로 인정 받아 3.3%만 세금으로 내면 됐다.
이 규정이 얼마 전부터 ‘여럿이 모여서 실력으로 승부를 내는 대회’에 한해 상금의 80%를 대회 경비로 처리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 그래서 이제는 대회에서 일반인이 입상했을 때 내는 세금이 4.4%로 대폭 줄어들었다. 프로게이머가 내는 세금과 비교해도 1.1%의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프로게이머 소양교육도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소양교육은 필요하지 않는냐?’는 질문에 오 본부장은 “실제로 프로게이머 소양교육 시간을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으로 답을 대신했다. 주입식 소양교육으로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나마도 성실하게 수업을 받아들이는 프로게이머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축구선수의 예를 들었다. “실력이 있는 축구선수는 품행에 문제가 있어도 어느 정도는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팬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는 순간 프로리그에서 방출된다” 팬과 주최측의 자정작용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의미다.
다만, 주최측에서 선수의 소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어 최소한의 방어책을 마련했다. 앞으로 실력이 있는 선수나 지원이 필요한 팀, 복리후생 차원에서의 교육 등 ‘꼭 필요한 항목들’을 챙길 수는 있겠지만, 당장 관리부터 시작하지는 않겠다는 게 오 본부장의 이야기다.
참고로, <스타크래프트> 리그에서 승부를 조작한 선수들은 GSL 주최측의 판단에 따라 앞으로 <스타크래프트 2> 리그에서 제외된다. 법적 처벌은 크지 않을지 몰라도 스포츠의 핵심인 승부를 조작했다는 건 아예 경우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 방송보다 <스타크래프트 2> 자체의 흥행이 목표
“우리는 <스타크래프트 2>의 독점 사업자일 뿐, 독식 사업자가 아닙니다.”
오 본부장이 밝힌 그래텍 배인식 대표의 입버릇이란다. 그는 그래텍이 자사의 이익을 위해 방송을 독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텍의 목표는 서브 라이선스를 판매하고 <스타크래프트 2>와 대회를 널리 알리는 것이지 <스타크래프트 2>를 독식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래텍은 현재 케이블 방송사와 GSL 중계를 논의하는 중이고, 그래텍의 주무대(?)인 인터넷에서도 파트너를 물색하고 있다.
곰TV는 HD 방송을 위한 장비도 갖추고 있다.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실제 서비스는 720p로 제한했지만, 실제로는 1920 X 1080의 해상도로 영상을 만든다. HD 방송도 언제든 문제 없다는 뜻이다. 오 본부장 역시 “케이블 방송은 한 곳이라도 꼭 같이 하고 싶다”며 의욕을 내비쳤다.
그래텍은 지난 5일 <스타2게더> 방송부터 HD를 도입했다.
현실적인 진행에 무리는 없을까? GSL의 2010년 상금은 약 6억 원, 2011년부터 매년 12억 가량의 상금을 걸 생각이다. 밖에서 볼 때는 무모해 보일 수도 있는 수준이다.
오주양 본부장은 반발했다. “스폰서와 접촉하고 있으며, 그래텍과 블리자드에서 일정 부분을 투자하는 등 이미 다양한 방법을 고려해 뒀다”는 것이다. 실제로 스폰서 후보 중에는 그래텍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먼저 접촉을 시도해 온 곳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만한 운영을 위해 내부에 ‘대회 운영팀’도 신설했다. 채정원 해설이 팀장을 맡고 있으며, 해설자와 캐스터도 현재 모집 중이다. 당분간 심판도 대회 운영팀에서 맡는다.
팀 리그는 아직 예정에 없지만 출전의사를 밝히는 팀이 늘어나면 팀 단위 리그가 생길 수도 있다. 융통성 있는 사고와 가능한 많은 대회를 열어 폭넓은 기회와 상금을 주고 싶다는 게 오주양 본부장의 이야기다.
“블리자드 스케일의,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대회를 열어야죠.” GSL에서 오주양 본부장이 세운 첫 번째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