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게임은 많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15년 역사의 게임 전문지 디스이즈게임에서 어떤 게임이 맛있는지, 맛없는지 대신 찍어먹어드립니다. 밥먹고 게임만 하는 TIG 기자들이 짧고 굵고 쉽게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 TIG 퍼스트룩!
이번에 살펴볼 게임은 공포게임 팬 사이에서 최근 큰 화제를 모은 신작, <파피 플레이타임>입니다. 10월 스팀으로 출시해 빠르게 인기 순위에 올라갔고, 국내외 스트리머들이 앞다투어 방송으로 다루면서 공포게임을 평소 즐기지 않는 팬들에게도 이름을 알렸습니다.
게임을 직접 하지 않고 ‘움짤’이나 ‘클립’으로만 본 사람도 무섭다는 반응입니다. 그만큼 <파피 플레이타임>의 호러 장면은 직관적인 공포를 줍니다. 이렇게 ‘보기만 해도’ 두려운 장면을 연출해내는 것은 공포물로서는 그 자체로 하나의 미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파피 플레이타임>의 진정한 무서움은 직접 플레이를 했을 때 비로소 온전히 다가옵니다. 짧은 볼륨이지만 몰입감과 불안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요소들을 착실하게 마련해두었기 때문에, 더 종합적이고 깊이 있는 공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떤 게임인지 빠르게 살펴보았습니다.
# 괴담의 시작
<파피 플레이타임>의 공포는 오프닝에서부터 ‘시동’을 겁니다. 가상의 장난감 기업 ‘플레이타임’의 TV 광고 영상이 나옵니다. 80~90년대 촬영물로 추정되는 영상은 플레이타임의 자랑거리인 첨단 장난감 ‘파피’와 생산공장을 홍보하는 내용입니다.
광고에 따르면 파피는 “진짜 소녀처럼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지능형 장난감”입니다. 파피는 귀엽지만 어딘지 섬뜩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영상이 끝나면 비디오테이프 카트리지와 편지 한 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직원들이 10년 전에 사라졌다고 사람들은 생각하지. 우린 아직 여기에 있어. ‘꽃’을 찾아”
“직원들이 10년 전에 사라졌다고 사람들은 생각하지. 우린 아직 여기에 있어. ‘꽃’을 찾아”
설정에 따르면 주인공 역시 한때 플레이타임의 직원이었습니다. 편지에서 말하는 ‘여기’는 플레이타임 공장을 말합니다. 주인공이 편지의 암시대로 공장을 다시 찾으면서 게임이 시작됩니다.
공포물에서 참사 현장을 무대로 삼는 것은 흔한 설정입니다. 그러나 주인공이 현장의 ‘관계자’였다는 사실은 이야기에 추가적인 깊이를 부여해줍니다. 주인공은 왜 달랑 편지 몇 줄에 위험을 감수하는지, 10년 전 ‘플레이타임’에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편지에서 말하는 ‘우리’와 ‘꽃’은 각각 무엇인지, 유저는 궁금증을 느끼며 이야기에 뛰어들게 됩니다.
말하는 인형 '파피'
#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퀄리티’
<파피 플레이타임>은 몰입감 조성을 위해 아트와 오디오의 퀄리티에 힘을 많이 줬습니다. 실사 영상, 성우 연기, 직접 그린 포스터 등 제작비를 상승시킬 요소를 과감히 사용했으며, 이것이 의도한 효과를 잘 발휘합니다. ‘불가사의한 사건으로 폐쇄된 장난감 회사’를 탐색하는 으스스한 공포감을 잘 심어줍니다.
재정적 어려움 때문에 프로덕션 퀄리티를 부분적으로 포기한 인디 공포 게임이 시중에 적지 않습니다. 부실해진 묘사를 유저들이 직접 ‘상상력’으로 채워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파피 플레이타임>의 완성도는 특히 돋보입니다.
이는 텍스트의 품질에서도 두드러집니다. 시설 곳곳의 홍보물, 안내문, 경고문 등은 정보와 현장감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세계관과 미스터리에 대한 힌트도 제공하면서 공포감 조성에도 한몫합니다. ‘직원들은 8시 이후에 남아있지 말 것’, ‘혁신 부서에는 허가 없이 절대 출입하지 말 것’ 따위의 문구들을 보며 유저들은 오싹함을 느끼게 됩니다.
근로자 규칙 안내
많은 공포게임에서 주인공에게 게임 끝까지 함께할 ‘도구’를 한 가지씩 쥐여 주고는 합니다. 최근 스위치로 재발매된 <제로 ~누레가라스의 무녀~> 속 주인공은 사진기로 귀신에 맞서고, <앨런 웨이크>에서는 손전등이 가장 중요한 무기입니다.
<파피 플레이타임>의 경우 ‘그랩 팩’이라는 이름의 도구를 줍니다. 등에 장착하는 산업 장비로, 와이어 달린 ‘손’을 발사해 멀리 있는 물건을 끌어오거나, 팔을 ‘전선’처럼 활용해 기계에 전원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그랩 팩은 퍼즐 풀이 및 길 찾기의 도구입니다. 퍼즐은 단순한 것으로 시작해 점진적으로 어려워지며, 유저는 이 과정을 통해 그랩 팩의 사용법에 점차 숙달하게 됩니다. 퍼즐 FPS <포탈>이 연상되는 지점입니다.
스포일러를 막기 위해 자세히 서술할 수는 없지만, 퍼즐 풀이 뿐만 아니라 스토리 구간에서도 그랩 팩이 유용하게 사용된다는 점 또한 <포탈>을 부분적으로 떠올리게 합니다. 후술하겠지만 이는 이야기 클라이맥스의 공포감 극대화를 위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그랩 팩
# ‘공포 잘알’들이 만든 게임
<파피 플레이타임>은 짧은 게임이지만, 본격적인 ‘공포 씬’은 그중에서도 일부분만을 차지합니다. 그런데도 공포 콘텐츠가 크게 부족하지 않은 느낌인데, 이는 충실한 ‘빌드 업’과 탁월한 연출 덕분에 잠깐 사이에도 충분히 격렬한 공포를 느낄 수 있어서입니다.
게임의 전반부는 ‘평화로운’ 퍼즐 풀이 구간으로 진행되지만, 이때도 유저는 끊임없이 긴장과 압박을 느끼게 됩니다. 앞서 설명했듯 시청각 요소가 총동원돼 불안과 공포를 쌓아나가기 때문입니다. 어둑어둑한 실내, 곳곳에 보이는 혈흔, 수상한 경고문, 어딘지 소름 끼치는 장식품들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듭니다. 공포 장면이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결국 공포 연출의 일환인 셈입니다.
더 무서운 것은 얼핏 조금씩 드러나는 회사의 어두운 이면입니다. 간헐적으로 나오는 폐쇄회로 녹화 테이프를 재생해보면 직원들의 목소리를 통해 회사의 실체를 짐작할 단서가 조금씩 드러납니다. 유저는 눈에 들어오는 모든 요소를 두려움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게 됩니다.
본격적 공포 씬에서는 ‘원초적 공포’에 대한 제작진의 깊이 있는 고찰(?)이 느껴집니다. 괴물의 기괴한 외모와 움직임이 가장 두려운 점이지만, 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인터랙션을 적소에 배치해 두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초조, 불안, 당황을 유발할 장치를 요소별로 등장시키고, 유저에게 ‘빠른 판단’을 강요합니다. 이로써 공포 경험의 밀도가 극대화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공포 장면 스크린샷은 일부러 넣지 않았습니다
# 마치며
<파피 플레이타임>은 약 40분가량의 짧은 분량 안에 공포의 기승전결을 성공적으로 녹여낸 점이 인상적인 단편입니다. 제작진에 따르면 이번 작품은 ‘챕터 1’에 해당합니다. 그 말처럼 이어질 이야기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미스터리를 제시하는 ‘도입부’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내고 있습니다.
다만 5,500원의 저렴한 가격을 고려하더라도 플레이 분량은 분명히 짧은 편입니다. 그래서 특히 공포심을 적게 느끼는 유저라면, 경험의 전반적 만족도가 가격에 비해 낮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후 이어질 ‘챕터’ DLC 들 또한 본편과 동일한 가격에 판매할 예정이라는 사실도 구매 전에 꼭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 추천 포인트
1. 공들인 아트와 음향
2. 잘 만든 퍼즐
3. 압도적 공포 연출
▶ 비추 포인트
1. 아무래도 아쉬운 분량
2. DLC 퀄리티는 과연?
▶ 정보
장르: 공포, 어드벤처, 퍼즐
개발: MOB Games
가격: 5,500
한국어 지원: X
플랫폼: PC
▶ 한 줄 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