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3월 25일, 대한민국에는 설레는 ‘선영 씨’가 많았다. 서울 시내 곳곳에 자신을 사랑한다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육교와 지하철 역 등에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버스와 지하철, 택시에도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전봇대에도 있었다.
출근길, 등굣길 사람들은 이 문장를 들여다 봤다. 하얀 여백에 까만 여섯 글자 말고는 없었다. 회사와 학교, 집과 가게에서 화제가 됐다. 선영 씨들은 설레었고, 선영이가 아닌 여자들은 부러워했다. 프로포즈다, 이벤트다, 스토킹이다, 광고다, 선영이가 사람이 아니다 같은 의견들이 쏟아졌다. 인터넷엔 선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카페까지 만들어졌다. 나는 우리과 후배 선영이를 생각했다.
선거관리위원회도 비상이 걸렸다. 4월 13일 총선을 앞둔 시기였다. 서울시 선관위는 “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를 홍보하기 위한 광고일 가능성이 크다”며 조사에 착수했다. ‘선영’이란 이름을 가진 후보는 “누군가 우리를 음해하기 위해 이같은 행동을 저지르고 있다”며 선관위에 수사를 요청했다.
이 범국가적인 소란은 10일 후 마감됐다. 4월 3일 오픈한 여성 포털사이트 마이클럽이 자신의 소행(?)임을 이실직고했다. 마이클럽 홈페이지는 트래픽 과다로 마비와 재개를 반복했다.
'선영아 사랑해' 벽보를 붙이는데는 500명 정도 동원됐고 50억 원 가량의 비용이 쓰였다. 800억 원이 넘는 광고효과를 봤다는 분석이 나왔다. ‘티저 광고’의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티저(teaser)는 '애태우다'라는 뜻을 가진 'tease'에서 비롯된 말이다. 중요한 내용을 감춰, 소비자의 궁금증을 유발하는 방법이다. 특히, 신제품 출시 때 소비자의 관심을 불러 모으기 위한 전략으로 자주 사용된다.
‘선영아 사랑해’ 이후 여러 기업이 이를 흉내낸 티저광고를 선보였다. ‘선영이’의 신선함을 따라갈 만한 것은 전혀 없었다. 2000년 이후 아직까지 이렇게 가슴을 설레게 하고, 궁금증을 유발했던 광고를 보지 못했다.
그 시절엔 스마트폰도 없었고, SNS도 없었다. 그럼에도, 선영이는 이야기되고 공유됐다. 그래서, 이야기되고 공유됐다. simon :)
- 2000년 3월 25일, ‘선영아 사랑해’ 티저광고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