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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오늘] 3월 27일 - 마이클 잭슨을 추모하며, 세계 위스키의 날

임상훈(시몬) 2014-03-27 10:06:34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1,000명 중 999명은 이 이름에서 팝의 레전드를 떠올릴 것이다. 엉뚱한 한 명 정도는 딴 사람을 먼저 생각할 거고. 나도 그런 비주류(非主流)의 한 명이다.

 

팝음악의 역사에 가수 마이클 잭슨의 비중은 대단하다. 하지만, 영국의 작가 마이클 잭슨(1942년 3월 27일~2007년 8월 30일)이 맥주와 위스키의 세계에서 점하는 위치에는 못 미친다. 주류(酒類)의 마이클 잭슨은 현대 맥주의 스타일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인물이자, 세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위스키 평론가였다.

 


특히 위스키의 대중화와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그의 사망은 위스키 애호가들에게는 큰 슬픔이었다. 네덜란드에 사는 한스 오프링가와 벡키 오프링가 부부(아래 사진)는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의 사망 이듬해 마이클 잭슨의 생일을 ‘세계 위스키의 날’(IWD)로 제안했다. 2008년 3월 27일, ‘세계 위스키의 날’이 시작됐다.

 


내가 본격적으로 위스키를 접한 건 신문사 초창기였다. 신림동 고시촌에 ‘비쥬’라는 바가 있었다.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자주 갔다. 고시 준비 중이던 석호와 재롱디푸에게, 직장인이 된 나는 맥주 대신 양주를 샀다. 

 

까만 병이 근사했던 J&B Jet를 마시며 쓸데없는 농을 많이 주고 받았다. 대개의 경우, 반 병쯤을 남기고 술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주 다시 만날 구실이었다. 두 친구가 방송국과 금감위에 들어간 뒤부터는 줄곧 내가 얻어 마셨다. J&B Jet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블렌디드 위스키기 됐다.


몰트 위스키를 처음 경험한 곳은 종로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보니 바호핑(Bar Hopping)을 했다. 글렌피딕의 홍보 에이전트였던 구 모 씨와 근처 호텔 3~4군데를 돌며 서로 다른 위스키를 한 잔씩 마셨던 기억이 난다. 무슨 맛인지도 몰랐다. 기억도 안 난다. 호텔 바에 앉아 한 잔 시키고, 마시고, 일어서고, 옮겨 다니는 게 마냥 신기했다.


해외 출장을 다니며 면세점에서 몰트 위스키를 한 두 병씩 사 모았다. 호텔 바에서 가끔 잔술을 마시기도 했다. 내 입맛을 잘 몰랐다. 내 입맛을 찾게 된 곳은 논현동의 ‘오프’(Off)였다. 아지트 같은 작고 아늑하고 편안한 바. 일상의 번민을 턴 오프하고, 참 많은 몰트 위스키를 만났다. 내 취향을 찾았다. 아일라 지방의 스모키함에 중독됐다. 장상채 아저씨, 이주한 아저씨, 장영수 형 등 여러 사람이 몰트의 세계로 들어오게 됐다.


그곳에 가면 나는 라가불린 16년을 주로 마신다. 마이클 잭슨은 위스키에게 0~100점 사이의 점수를 줬다. 라가불린 16년은 95점을 받았다. 역대 최고 점수다. 채점자가 몰했으니, 영원히 최고점이다. 꽃향기가 나는 스페이사이드 지역의 몰트를 선호했던 마이클 잭슨이 스모키한 피트향이 센 아일라 지역 몰트에게 최고점을 준 게 놀랍다. 멋진 사람이다.  


재작년에 위스키를 다룬 영화 <엔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The Angels’ Share)가 개봉했다. 켄 로치 감독의 소품 같은 영화였다. 루저들의 인생역전 좌충우돌이 참 재밌었다. 김유정 누나도 그랬단다. 그 영화에서도 라가불린 16년이 등장했다. ‘싱글몰트 위스키의 제왕’이라고 소개됐다.

 



나에게 라가불린 16년은 제왕보다는 여왕이다. 스모키함이 부드럽게 감싸고 있는 풍부한 달콤함이 참 좋다. 한 모금 살짝 입술에 적시면 ‘고혹’이라는 단어와 벨벳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왕 마고>의 이자벨 아자니가 떠오른다.


라가불린 16년은 면세점에서 구할 수 없다. 2003년에는 술이 부족해서 품귀현상도 있었다. 얼마 전 다녀온 샌프란시스코에서 라가불린 16년을 득템할 수 있어서 기뻤다. 세계 위스키의 날인 오늘, 어디선가 라가불린 16년을 한 잔 해야겠다.


이 글의 마무리는 싱글몰트 위스키 마니아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맡긴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아일라 섬을 여행하며 <위스키 성지여행>이라는 책도 썼다. 개인적으로 책은 비추다. simon :)

 

하루키가 아일레이 섬 주민에게 블렌디드 위스키는 안 마시느냐고 물었다. 상대방은 어이없어하며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려는 순간에 텔레비전 재방송 프로그램을 틀겠소"라고 반문했다.

- 2008년 3월 27일, 세계 위스키의 날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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