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개월 전이다.
내가 코스프레에 다시 복귀한 지 얼마 안 돼서
<큐라레> 1.5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을 때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길에, 집을 뛰쳐나와
함께 코스프레하기로 한 소녀의 작업실로 가야 했다.
그 작업실에 코스프레 소품을 만드는 아름다운 소녀가 있었다.
이참에 그녀의 소품용 램프를 만들까 싶어 깎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이것저것 세세한 디테일을 꽤 다 따지는것 같았다.
“좀 눈에만 보이는 부분만 대강 해 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소품 만드는데 완전치 못하게 하겠소?
귀찮으면 다른 코스플레이어를 알아보우”
대단히 무뚝뚝한 코스플레이어였다.
더 재촉하지는 못하고 잘 깎아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녀는 잠자코 아이소핑크를 깎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빨리 깎는 것 같더니,
이리 돌려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이내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자꾸만 해골을 깎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그 정도면 촬영에 지장 없을 법한데, 자꾸만 확인하고 있다.
시간이 바쁘니 빨리 도색해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촬영 날짜가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다.
“한쪽만 해골을 채워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내며,
“어느 방향이나 다 제대로 보여야 소품이 되지, 재촉한다고 소품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바라보는 코스플레이어가 좋다는데 무얼 더 깎는단 말이오?
외고집이시구먼, 마감이 다가온다니까요”
소녀는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우. 난 안 깎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린 것이 아깝기도 하고, 촬영일까지는 맞춰줄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중략)...
유...유카 미안.
소품 만들기 장인 유카…
램프를 만드는 유카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진정한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었더랬다.
이 에피소드는
잠시 후에 확인하는 것으로 하고.
어두운 공동묘지를 배경으로,
사신과 같이 죽음을 등지고 등불을 들고 서 있는
어딘가 어둡고 묘한 분위기의 검은 롱드레스의 아름다운 여인.
차가운, 다크한 매력의 냉미녀 캐릭터인 블랙 달리아를
빙유카양이 코스프레 했다.
[BingYucca, Black Dhalia, Photography by Marc]
여기서 캐릭터의 배경 설명을 하자면,
블랙 달리아는,
마냥 꽃 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서관에는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정말 다양한 장르별 책들이, 이야기들이 있듯이
<큐라레>에서도 사회적인 이슈나 사건이 모티브가 된
책이나 영화에서 차용한 캐릭터들이 많다.
블랙 달리아 또한 유명한 미스터리 소설 및 영화.
유명한 미제 사건, 일명 콜드 케이스로 남은
블랙 달리아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은 작품.
(현재까지 범인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모티브.
1947년에 일어난 이 미제 사건이
블랙 달리아라는 이름을 얻게 된 배경을 보자면,
당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블루 달리아>라는 스릴러 영화가 유행하고 있었는데
(<큐라레>에는 블루 달리아 카드도 있다)
희생자였던 무명 배우가 아름다운 얼굴에
검은색 옷을 즐겨 입었다는 것에서 모티브를 얻어
기자가 <블랙 달리아>라며 이름을 붙인 것이 그 시작이라고 한다.
이 사진은 배우입니다.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었으나,
아름다운 무명의 배우가 희생자였던 터라.
자극적인 언론의 보도로 더더욱 확대되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된 사례.
<큐라레> 캐릭터에 모티브가 된 사건과 동명의 영화는 2006년에 개봉되었으며
마릴린 맨슨이 이 사건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도 했으며,
심지어 게임에서도 소재로 쓰였을 만큼 다양하게 확대되었다.
(L.A. Noire와 GTA5에서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파트가 등장한다.)
이렇듯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 소설과 영화가 모티브인 만큼.
<큐라레>의 블랙달리아도
어둡고 미스테리한 존재로 그려진다.
다른 캐릭터들이 인물의 초상화나 인물의 역사를 주로 배경으로 하였다면
이 <큐라레>의 블랙 달리아 캐릭터는 실제 사건 자체라가 아니라,
사건을 기반으로 한 소설 전체의 음울함, 차가움, 어둠, 미스테리한 분위기,
그것을 참고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생각한다.
[BingYucca, Black Dhalia, Photography by Fazz]
[BingYucca, Black Dhalia, Photography by Marc]
그도 그럴 것이, 앞서 말했듯 실제 게임이나 마릴린 맨슨이 그린 그림에도 표현되는 등
다양한 콘셉트 사진이나 그림에도 자주 쓰이는 소재인 데다.
심지어 외국의 할로윈 코스튬에도 자주 사용되는 것이 이 블랙 달리아.
하지만 그렇게 사용된 예는 실제 사건 자체에 포커싱되는 반면.
<큐라레>에서 표현된 이 캐릭터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캐릭터 접근법이 꽤 독특하게 느껴졌다.
[BingYucca, Black Dhalia, Photography by Marc]
: 빰빠빠~빰빠빠 빰~빠빠~ 유카의 블랙 달리아를 보게 돼서 정말 기쁘기 그지없다.
: 아……하게 됬네 결국.(웃음)
: 급히 결정한 <큐라레> 1.5 프로젝트 자체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 이전에 미리 골라두기도 했지만, 이번에 시간의 압박이 가장 컸잖아?
부분부분 디테일에 신경만 잘 쓰면 가장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캐릭터라 단박에 골랐어.
: 모두들 이건 유카다! 하고 외쳤기도 했고. (웃음)
: 나, 블랙블랙한 캐릭터 정말 좋아해서.. 딱 맞아 떨어졌던 것 같아.
버젼 1.5에 알맞게.
이 캐릭터 또한 빙유카가 지난 프로젝트 때
서브 캐릭터로 고민했던 캐릭터.
언제 하려나, 이대로 묻히려나 했더니…
이번 프로젝트로 살릴 수 있었던 코스프레였다.
[BingYucca, Black Dhalia, Photography by J]
: 촬영 당일에도 내가 계속 감탄하기는 했지만, 램프가 정말 멋지더라구.
: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소품이기도 해. 일러스트에서 가장 돋보이더라구. 배경이랑 잘 어울려서.
: 응‥ 공동 묘지의 푸른 램프를 든 블랙 달리아…
: 푸르스름한 색깔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잘 살려야겠다 싶었거든.
어느 각도에서 보든 간에 일러스트에서 보이는 느낌 그대로 보일 수 있길 원했어.
: 히익, 그런 부분까지 신경써서 도색한거구나.
: 응, 일일히 하이라이트까지 도색해서 완성한거야.
[BingYucca, Black Dhalia, Photography by J]
이..이건!!! 저 리얼한 해골의 표정을 보라.
: 도색도 도색이지만 대체 어떻게 만든거야? 비슷한 걸 구하기도 힘들었을 것 같아.
: 불가능하지. 그래서 램프를 만드는 데 재료 수급은 가능할지,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걱정을
했던 것 같아.
: 소품이라는 게 진짜 만들다 보면 각종 미술 기법이란 미술 기법은 다 써보고,
생활 속의 소품들까지 다 사용하게 되잖아. 거의 예술 작품 창작 수준.
: 맞아 (웃음) 처음에는 둥근 부분을 와인 글래스로 하려고 했거든. 크기도 얼추 비슷했었고.
그런데 글래스 무게 자체로 인해서 분리되거나 깨질 소지가 있어서 반신반의했었지.
: 그러게.
: 그래서 그 것 때문에 고민하던 차에…반신반의 하면서 우리 모두의 다있어.를 갔는데.
: 다있어… ? …아. (격하게 웃음)
: 응, 그런데 정말 행복하게도!
: 행복하게도!!
: 필요한 모든 재료가!!!
: 설마!!!!!! 그럴 리가!!!!
: ...다 있는거야!!!
: 과연 우리 모두의 다있어!!!! 역시 다 있었어!!!!!!!!!!!
유카와 나는 한참이나 둥실둥실 얼싸안고
다있어엔 역시 다 있어!를 힘차게 외쳤다.
[BingYucca, Black Dhalia, Photography by Marc]
[BingYucca, Black Dhalia, Photography by Chori]
: 그렇게 재료 부분을 해결했구나!
: 응. 그리고 금속 해골을 달면 무게가 아무래도 상당해 질 것 같아서,
가벼운 아이소핑크로 해골을 조각했었지.
: 조각...유카 미술 전공 아니었지?
: 응 의상과였다니까.
: 진짜 코스프레를 하다보면 내 전공이 원래 미술쪽이었나 한참을 고민하게 됨…
: 그러게 (웃음)
: 해골이 한두개가 아니던데.
: 응. 개인적으로 증식시키는 것에는 소질이 없어서
처음에는 에라 모르겠다, 보이는 한쪽 면에만 채워넣으면 되겠지 싶었거든.
: 그런데 그러지 못했구나.
: 어느새 만들다보니 전부 채워넣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
: (오열) 방망이 깎는 노인…도 아니고‥ 해골 깎는 유카….
: ...원래는 간단히 가려했는데 한번 시작하니… (아련)
: 그 덕분에 진짜 멋진 램프가 나왔소.
[BingYucca, Black Dhalia, Photography by Fazz]
한땀한땀 유카 장인의 예술혼이 깃든 해골
이전 칼럼에서도 살짝 언급한 것 같은데
정말 코스프레 의상이나 소품을 만들다 보면,
일반 옷과는 달리 미술적인 기법을 알아야 하고,
또 상상력을 잘 발휘해야 하는 일이 잦다.
그도 그럴 것이 일상에서 입는 옷. 움직임을 고려하고 생활을 고려한 옷.이 아니라
그림으로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디자인된 옷이기 때문에
이게 실제로 입기 쉽게, 만들기 쉽게 디자인된 옷과는 아예 다르다.
즉.
입을 수 있게 만들어진
의상들이 많지 않다는 말씀.
그냥 캐릭터가 잘 드러나는,
하지만 입고 벗는 것은 고려되지 않은 이쁜 옷이야.
그래서 그걸 입고 벗기 위해. 패턴부터 자잘한 것까지 정말 많은 고심을 해야한다...
또 각종 미술 기법과 소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없던 것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진정한 창작의 고통을 느낄 수 있더라(...)
진짜 생각보다,
코스프레 의상과 소품 제작이란...
일반 의상보다 아이디어와 창작이 많이 필요한 일이다.
실제로 나 또한, 직접 의상과 소품을 만들 때,
컵라면 그릇이라든지, 인테리어 소품을 가지고
코스프레 의상에 달린 소품을 만든 적도 있었더랬지.
생활 속의 모든 용품이 코스프레 소품으로 보이던 그 때.
아이디어를 얻게 되면 밤을 새며 코스프레 의상과 소품을 제작하던 그 때여.
그래서 아이디어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으면
발바닥이 부르틀 정도로 화방과 동대문 시장을 돌아다니며,
각종 화구들과 부자재들을 보며
소품과 의상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고자 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BingYucca, Black Dhalia, Photography by J]
: 의상 제작은 어땠어?
: 사실 드레스가 올블랙에 심플한 디자인이어서 자칫 밋밋해 보일 수도 있는 코스프레였잖아?
: 차분하기도 하고 장식도 많이 없어서 충분히 그럴 수 있었지.
: 그래서 부분 부분 디테일들을 살리려고 했어.
그래서 원래 일러스트 보다 엉덩이 부분의 레이스도 덜어냈지.
: 몸에 맞춰 어레인지 했구나!! 나 그 드레스의 뒷부분 핏 상당히 마음에 들더라‥ 아름다웠소.
: 가슴 아래의 장식도 재현했어! 게다가 머리 장식도 깃털 장식으로만 하기 좀 밋밋하더라고
: 그래서 그 까마귀가...
: 응 그래서 까마귀도 한 마리 얹어줬지.
: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했어, 잘 어울리더라.
[BingYucca, Black Dhalia, Photography by Marc]
코스프레를 하다 보면
몸에 맞춰서, 그리고 코스프레를 하는 코스플레이어 체형에 맞춰서
혹은 의도하고자 하는 사진 방향에 따라서 살짝 어레인지를 하는 경우가 많다.
100% 재현하면 현실 구현이 되었을 때 막상 안 예쁠 경우도 많고
도저히 피팅이 제대로 안 될 수도 있어서.
그래서 소품을 추가하여 더 화려하게 만들 때도 있고
되려 사족이라고 생각되는 소품이나 의상의 한 부분을
제외하거나 대체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어레인지를 할 때는
체형에 맞춰 옷의 길이나 핏을 조정하는 것, 색상을 바꾸는 등
가능한 한 원래 캐릭터에 최대한 맞추고 유지하되,
각자의 개성과 체형에 맞춰서 조금씩 바꾸는 것이 좋다.
[BingYucca, Black Dhalia, Photography by Fazz]
: 처음에 스튜디오에서 유카가 사진 찍기 시작할 때말야.
등불을 들고 레트로한 스튜디오에 서 있는데…
: 서 있는데?
: 거대한 대 저택의 다크 카리스마가 넘치는 미녀 여주인인줄. (웃음) 분위기가 정말 잘 맞더라.
: 분위기가 좋더라구. (반짝)
: 응 고급스러운 느낌이 딱 맞아 떨어져서 상당히 좋았어.
: 사실 캐릭터가 정적인 캐릭터이다보니 배경도 중요하겠다 싶었어.
배경 분위기로 캐릭터 표현을 같이 하면 좋으니까. 마침 잘 맞아서 촬영할 때도 좋더라구.
: 딱 유카의 이미지에 맞았어. 상당히 고급스럽고 어딘가 미스테리한 느낌이어서 합이 딱 맞더라.
[BingYucca, Black Dhalia, Photography by Marc]
미스테리한 멘션에서 열리는 파티에
어딘가 어두운 아름다운 여주인의 초대를 받은 느낌.
: 정말 폭풍우가 지나가듯 몰아치듯 준비해서 끝냈다… 고생 많았어. (오열)
: 하루도 고생 많았어!
: 아쉽거나 힘든 일이 있었다면?
: 이번 캐릭터 자체에는 크게 아쉬운 점은 없었어.
다음에는 만들기 복잡하고 좀더 화려한 캐릭터를 해 볼까 해
: 오오옷 기대할께!!!
사실 유카 자신도 메이커를 겸하고 있고.
다양한 소품을 만들어보고 경험해 본 덕분에
웬만한 소품은 뚝딱뚝딱 잘 만들기도 하지만,
눈썰미와 아이디어와 깎는 기술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열정도 노력도 대단하다.
그 때문에 소품의 퀄리티 또한 멋지게 나오는 것 같고.
대강 비슷하게 만들어오거나 사오겠지 싶었던 램프였는데,
정말 놀랐었다.
[BingYucca, Black Dhalia, Photography by Marc]
마무리는 역시 방망이 깎는 노인의 패러디로 마무리해볼까.
촬영을 시작하고 소녀가 들고 있는 램프를 봤더니,
사진사들과 코스플레이어들은 예술이라고 야단이다.
전문 소품처럼 참 좋다는 것이다.
너무 해골이 없으면 어느 쪽이나 제대로 포즈를 잡기 힘들고
대강 도색이 되면 얼룩덜룩하고 예쁘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세세하게 잘 만든 소품은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소녀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문득 수개월 전 해골 깎던 소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BingYucca, Black Dhalia, Photography by Mar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