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게임과 법 칼럼의 OOO입니다.
지난 연재에서 '상품으로서의 게임'과 '서비스로서의 게임'에 대해서 제 견해를 말씀 드렸습니다. 댓글 중 게임의 작품성, 즉 '예술로서의 게임'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는 분이 있었는데, 이는 헌법적 관점에서 다루어야 하는 이슈가 아닐까 합니다. 그 주제는 다음 번에 기존 헌법이론을 설명 드리면서 한 번 가볍게 다뤄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상품으로서의 게임과 관련해 일본의 분쟁 사례 한 건을 말씀 드려 보겠습니다. 2001년 일본 최고재판소(한국으로 치면 대법원에 해당합니다)의 <도키메키 메모리얼>(Tokimeki Memorial)이라는 게임에 대한 판례입니다. <도키메키 메모리얼>은 코나미가 플레이스테이션용으로 발매했던 것인데, 번역하면 <두근두근 추억> 정도 되겠네요. 쉽게 말해 약칭 ‘미연시’ 장르에 속하는 게임입니다. 원고는 코나미였고, 피고는 SPEC Computer라고 하는 메모리카드 수입 판매 회사였다고 합니다.
제가 직접 해 본 게임은 아니어서 그 내용을 정확히 말씀 드릴 수는 없습니다만(게이머로서 미연시 장르를 즐겨 하지 않는다는 걸 강조하려고 이렇게 말씀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아니고 말고요… ^^ 이 게임 시리즈는 한국에도 팬 층이 꽤 많다고 하네요), 아무튼 이 일본 판례에 따르면, 이용자는 이 게임의 남자 주인공이 되어 3년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여학생 캐릭터들 중 하나를 선택해 마음을 얻고 졸업하기 전까지 사랑고백을 받아야 하는 것이 이 게임의 주된 내용이라고 합니다.
역시 판결문에 따르면, 게임의 주인공 캐릭터에게 9가지의 공개된 능력치(체력, 문학, 과학, 예술, 외모 등… 이런 것들이었다고 합니다)가 있고, 여학생의 입장에서 3가지의 숨겨진 능력치(두근거림, 친밀도 등의 것들이라고 하네요. 판례에서 게임의 숨겨진 기획 요소에 대해 알 수 있다니 참 재밌네요)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게임이 시작될 때에는 이 능력치가 낮아서 여학생들을 만날 수 없지만, 게임을 하면서 능력치를 키우면 연애를 할 수 있도록 설정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의 피고는 게임 속 주인공의 능력치들이 최대로 설정되게 해 주는 <X-Terminator PS No.2 Tokimeki Memorial Special>이라는 메모리카드를 해외에서 수입해 판매했다고 합니다. 이 메모리카드를 사용하면 일정한 경우에는 게임의 시작과 동시에 공개된 능력치가 거의 최대치로 설정되어(단 스트레스 지수만 빼고) 처음부터 여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데, 정상적인 플레이로는 초기에는 볼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어떤 경우에는 게임 시작 직후 바로 졸업 전의 상태로 건너뛰어서 엔딩을 빨리 보는 것도 가능했다고 합니다.
게임 플레이를 지루하게 여기거나 플레이 시간을 절약하고 싶어한 일부 이용자들이 메모리카드를 구입했고, 피고는 수입한 메모리카드 중에서 522개를 판매했다는 것이 이 사건의 주요 사실관계입니다. 원고였던 코나미는 피고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게 되는데, 법적으로 사용한 근거가 일본 저작권법 제20조의 '동일성유지권'(일본에서는 용어가 달라서 ‘同一性保持権’라고 쓰고 [도-잇츠세-호지켄]이라고 읽는 듯 합니다) 규정이었습니다.
바로 동일성유지권을 주장했다는 것이 특이한 점인데, 동일성유지권 조항은 한국 저작권법에도 있지만, 저작권의 내용 중 재산적 성격을 갖는 권리가 아니라 인격적 성격을 갖는 권리입니다. 저작권의 내용은 한국이나 일본과 같이 대륙법계의 영향을 받은 국가에서는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으로 나누어지는데 이 중 저작물의 내용, 형식, 제호의 동일성을 유지할 권리인 동일성유지권은 저작인격권에 속하는 것이죠.
사실 이 문제는 이용자의 입장에서만 본다면 이용자가 게임을 하면서 게임 속 캐릭터의 일부 능력치를 최대로 해 놓고 게임을 즐기도록 조작을 가하였다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게임회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제3자가 판매한 메모리카드 때문에 게임의 내용이 전혀 다르게 이용자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겠지요.
이 사안에서 피고 회사는, ‘메모리카드를 구입하여 이용한 것은 이용자이고, 메모리카드를 구입하더라도 그걸 써서 게임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이용자의 선택에 달린 것이기 때문에 이를 수입하여 판매한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오사카 지방법원의 제1심을 거쳐 제2심인 오사카 고등법원에서 법원은 침해를 인정하였고 114만 6,000엔의 손해배상액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고, 피고측이 최고재판소에 상고하였음에도 최고재판소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상고를 기각하여 판결을 확정짓습니다.
“이상과 같이, 메모리카드를 이용하는 것은 이 사건 게임에 대한 동일성유지권의 침해를 구성하고 피고가 메모리카드를 수입하고 판매하여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메모리카드를 구입하였는데, 이 사건의 메모리카드는 오로지 게임의 내용을 변경하기 위한 목적으로만 제작되었고, 피고는 이용자들이 이 메모리카드를 실제로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걸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 이를 판매하였으며, 실제로 이 메모리카드를 구입한 이용자들은 이것을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메모리카드의 사용으로 인하여 동일성유지권이 침해되었고, 이상의 행위들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침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사용될 것을 의도하고 오로지 게임의 내용을 변경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메모리카드를 수입하고 판매하여 배포한 피고가 제3자가 메모리카드를 사용하게 함으로써 동일성유지권의 침해를 초래한 것이니,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함이 타당하다. “
이것은 일견 코나미의 입장에서 본다면 타당한 결론이고, 결론만 놓고 본다면 게임에 대한 권리를 방어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만, 이 판례의 견해는 이후 그 논리 때문에 비판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제3자가 메모리카드를 사용하게 하여 동일성유지권의 침해를 초래했다는 점’이나 ‘메모리카드의 사용으로 인하여 동일성유지권이 침해되었다’는 논리 때문인데, 이는 결국 동일성유지권의 직접적인 침해자는 메모리카드를 구입하여 사용한 이용자가 된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 논리대로라면 코나미가 만약 이용자에게도 소송을 했다면 직접행위자인 이용자들에 대해서도 동일성유지권의 침해를 인정해야 할 터인데, (어디까지나 가정에 의한 것입니다만) 이것이 과연 타당한 결론인지는 의문이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개인이 사적으로 게임을 즐기기 위해 프로그램을 통해 파라미터를 조작한 것은 저작권의 공정이용에 해당하고 권리침해가 아니라고 한 사례가 있습니다.
또한 피고는 메모리카드는 단지 이 게임에서의 능력치와 같은 파라미터를 변경하는 것일 뿐이라는 (그래서 게임의 표현요소를 변경한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주장도 하였습니다만, 법원은 능력치에 따라 게임의 전개가 달라지고 등장하는 캐릭터의 이미지가 변경될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메모리카드를 사용하면 제작사가 원래 의도한 방향과는 다르게 스토리가 전개되니 이는 동일성유지권의 침해에 해당한다는 판시를 하였습니다.
피고측의 항소심(제2심)에서의 주장을 살펴보면, 이에 대해 영화와 달리 즉흥적으로 스토리가 펼쳐질 수 있는 시뮬레이션게임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일견 설득력이 있는 논리입니다. 하긴 소송에서의 양측 주장을 모두 변호사들이 하였으니 얼마나 고민해서 공격과 방어를 위한 논리를 생각했겠습니까.
제가 이 판례를 상품으로서의 게임과 연관 지어 생각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코나미는 게임소프트웨어의 저작권에 대한 일종의 간접 침해 사건에서 동일성유지권을 주장하여 법원으로부터 침해를 인정 받았는데, 이것은 스토리라인을 갖춘 작품으로서의 게임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내려지기 어려운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의 위 사건과 동일한 사건 구조를 갖는 판례는 없지만, 온라인게임과 관련하여 오토나 핵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경우에 대해 그 분쟁의 시작이나 양상 자체가 다르게 흘러갑니다. 서비스로서 다수의 이용자가 함께 이용하는 게임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고, 게임의 내용 변화가 다른 이용자들과 서비스의 품질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죠.
이에 대해서는 다음 연재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 TIG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