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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뉴스

[김두일의 정글만리] 4장 - 샹신즈지

모험왕 2015-05-29 15:31:38

한류를 동원한 학습은 학생들에게 괜찮은 접근방법이었다. 나에게도 편한 방법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친구들에게는 <미르의전설>, <오디션>, <카트라이더>를 PC방에 가서 해 보고 참조한 팬아트 형태의 과제를 내줬다. 기획을 하는 친구들에게는 한국게임과 중국게임의 시스템적 차이를 분석하라고 시켰다. 조금 이해도가 높은 친구들에게는 한국게임의 시스템을 중국게임에 가상으로 적용시키는 것 등을 시켰더니 애들이 아주 열의있게 했다. 

 

가끔 학생들과 <워크래프트3>(중국은 <워크래프트3>의 인기가 대단했다. 그 인기가 나중에 <LOL>로 고스란히 이어졌다)를 하기도 하고 <카트라이더>를 하기도 하면서 친해졌다. 학생들이 확실을 잘했다.

 

중국에서 개최했던 <워크래프트 3> 대회 관중들의 모습.


밖에서 입장하지 못한 관객들의 수도 이만큼 있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한국에서 새파랗게 어린 개발자 출신의 교수가 왔다는 소문이 쓰촨 청두의 지역사회에 퍼졌다. 어디나 그렇지만 도시보다는 시골이 보수적이고 그 중 가장 보수적인 곳은 교육계라 할 수 있다. 중국도 그런 점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였다.

 

쓰촨문화매체대학에서 공식 환영만찬을 열어주었다. 왕 총장 휘하 그 학교 소속의 교수, 교직원 전원이 참석하는 대규모 만찬이었다. 매운 쓰촨 요리가 줄줄이 나오고 그 지역 특산주이자 중국 10대 명주에 하나인 52도짜리 검남춘이 환영주로 나왔다. 

 

싸구려 이과두주만 마시다가 비싼 술을 마시니 너무 맛있어서 몇 잔 마시다 보니 그 독주를 훌쩍훌쩍 넘겼다. 그렇게 잘 마시는 것이 그들 눈에는 신기했나 보다. 헬스 트레이너처럼 생긴 덩치(알고보니 체육과 교수였다)가 호기롭게 다가오더니 맥주 글라스에 검남춘을 가득 따라주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훌쩍 마시고 잔을 건네 주었다.

 

 

 

 

한국에서는 ‘받은 잔은 돌려준다’는 말이 있다고 하면서, 나도 한잔 가득 따라주었더니 그게 일종의 도발로 받아들여졌나 보다. 그때부터 서로 독한 검남춘을 글라스에 한잔씩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마셨고 그 덩치는 얼마 못가 침몰했다. 이후 나에 대한 소문은 ‘천티엔차오와 친한 한국인 개발자’에서 ‘천티엔차오와 말술을 마셔도 끄덕없는 한국인’으로 격상되었다. 그리고 그 소문이 그 지역 사회에 퍼져나가면서 술 꽤나 마신다는 주당들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나는 매우 바빠졌다. 주로 누군가의 초대를 받아 저녁 술자리에 불려 가느라 바빠진 것이다. 이른바 술 대결이 주요한 이슈였다. 점잖게 수인사 나누다가 초대한 사람과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누군가 못 마실 상태가 되어야 자리가 끝나는데 항상 먼저 취하는 사람은 초대한 사람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좋은 술과 음식이 즐거워서 초대에 응했는데 나중에 노골적으로 그 지역 유지들과의 술대결 구도로 끌고가자 오기가 생겼다. “내가 술이든 게임 만드는 것이든 너희들에게 질까보냐?”는 다소 유치한 생각에서 비롯된 건데 이것을 매주 몇번씩 하다보니 나도 죽을 지경이었다. 이게 또 거절하는 게 어려웠다. 왕 교수의 초대는 허락했는데 장 교수의 초대를 거절하면 장 교수의 체면을 심하게 손상시키는 것인지라 초대를 받으면 그냥 가야 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였다.

 

모대학 부총장인 나이 든 교수가 산 좋고 물 좋은 근사한 야외에 술과 음식을 깔고 초대를 했다. 딱 보기에도 그냥 할아버지라 ‘오늘은 좀 쉽게 가겠군’이라 안심을 했는데 그게 내 오판이었다. 의례적인 인사말에 이어 건배를 제의했고 ‘이제 시작되는가 보다’ 했는데 갑자기 이 할배 왈 “나는 이미 늙어서 소문난 주당인 김 교수를 초대해 놓고 주인된 도리를 다할 수가 없으니 대신해서 술을 마실 사람을 데리고 왔소” 하면서 음흉하게 웃는 것이었다. 역시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라 끄덕끄덕 했는데 이때부터 노교수 뒤에 서있던 어떤 무표정하고 단단하게 30대 남자가 술을 받아 마시기 시작했다. 

 

이상한 분위기였다. 초대한 주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건배를 한다. 잔을 들고 있으면 뒤에 서 있던 술상무가 쪼르르 와서 원샷을 하고 뒤로 물러선다. 서로 술을 또 따른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건배를 하고 같은 일이 반복된다. 게다가 이 할배가 나이답지 않게 장난기가 있어서 매우 빠른 속도로 건배를 제의하는 것이다. 자기가 마시지 않으니 아주 신나 하면서 말이다. 나는 비로소 잘못된 룰의 함정에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수 없었다. 그냥 늘 그렇듯이 정공법으로 받아 마시는 수밖에…

 

자존심 외에는 의미 없는 술 대결이 시작 되었고...

 

52도짜리 독주가 둘이서 서너병이 넘어가자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너무 빨리 마셔 안주를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것도 위기를 부채질했다. 어질어질해졌다. 보통 이 단계에서 어지간한 중국인들도 포기하던가 쓰러졌는데 저 단단한 남자는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술을 받아 먹고 있었다. 

 

아, 정말 강적을 만났구나. 그 순간 그 남자의 꼿꼿한 자세 속에서도 불안한 눈빛이 눈에 들어왔다. 뭐랄까? 초조함, 위기감, 취기, 힘들다 등등의 복잡한 감정이 신기하게도 나에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 순간 난 대오각성의 깨달음을 얻었다. ‘난 재미와 자존심으로 이 술자리를 즐기고 있는데 저 남자는 밥줄(직업)을 걸고 이 싸움에 임하고 있구나...’ 

 

그렇다. 저 남자가 만약 나보다 먼저 취한다면 그래서 이 술내기에 진다면 아마 직업을 잃고 실업자가 될 것이다. 그러면 저 가장의 불쌍한 가족들은 당장 생계에 위협을 느끼겠지. 저 심술궂은 할배는 그러고도 남아 보였다. 이렇게 묘하게 스스로를 합리화 시키면서 이 자리를 파하고 싶었다. (사실은 취해서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젠장. 이후 한병 정도를 더 예의상 마셔주고 난 GG를 선언했다. 

 

애써 근엄함을 유지하면서 하지만 참을 수 없어 비꼬듯 한마디 해 주었다. “노교수님의 주량은 태어나서 처음 볼 정도로 대단합니다. <수호지>의 무송을 방불케 하는군요. 저는 오늘 패배를 인정합니다.” 그 화끈거리는 칭찬에도 이 할배가 어찌나 기분 좋아하면서 잘난 척하던지 난 ‘이봐, 영감, 방금 한 말 무효이니 다시 해 봅시다’라고 할 뻔했다. 

 

어째든 덕분에 그 술자리는 그렇게 끝났다. 그리고 할배는 기분이 좋았던지 선뜻 자기 차(벤츠)를 타고 가라고 내주는 선심까지 썼다. 나야 고마워서 사양도 못하고 그 차를 탔는데 완벽한 반전은 바로 이어졌다. 나랑 술대결을 펼쳤던 단단한 남자가 ‘니하오’를 외치며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술이 확 깼고 내 생애 최초로 탄 고급승용차 속에서 불안에 떨면서 집에 가야만 했다. 알고보니 운전기사였던 술상무를 직장을 잃건 말건 확실하게 술로 보내 버렸어야 하는데 후회를 하면서 말이다. 이후 쓰촨 충조우 지역사회에서는 ‘김두일 교수도 술내기에 처음으로 지다’ 라는 속보가 돌았고 난 패배를 핑계로 이후 다른 사람들의 술초대를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을 얻을 수 있어 비로소 술내기에서 해방되었다. 단지 몇 개월 동안의 술내기였는데 몇 년치 술을 다 마신 보기 드문 경험이었다.

 



한편 학생들과의 사이는 좋아졌고 그들이 조금씩 배워나가는 모습에 나도 보람을 느꼈다. 그 중에는 제법 똘똘한 친구들도 있어 가끔 나의 차기 프로젝트 준비에 쓰고 싶은 애들도 보일 정도였다. 수업이라는 것이 100% 만족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대체로 20% 정도의 우등생, 60% 정도의 보통학생, 20% 정도의 관심이 없는 학생들로 구분될 수 밖에 없는데 내 입장에서는 상위 20%를 기준으로 진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중국에 온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측과 내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논의를 하고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일종의 자본투자에 대한 협상이었다. 아울러 투자완료 후에 진행할 프로젝트에 기획서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물론 무협 내용이었다. 

 

쓰촨은 9대 문파 중에서 아미파(아미산), 청성파(청성산), 점창파(운남이긴 하지만 통상적으로 무협세계관에서는 쓰촨으로 넣어준다)가 있고 8대 세가의 하나인 독과 암기로 유명한 당가가 있었다. 가까운 섬서성에 화산파와 종남파 등이 있으니 그야말로 무협에 나왔던 곳들을 직접 답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실제 다 직접 다니면서 보았다. 상상하던 세계를 직접 보는 것은 실망과 환호가 교차하지만 내 경우에는 후자였다. 그러다보니 내 기획서 작업도 몰입이 더 잘 된다는 생각과 더불어 머나먼 이곳으로 온 것이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 처음으로 들었다.

 

도교 화산파의 배경이 되는 바로 그 화산.

 

 

내 스스로도 이때부터 중국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얼싼 정도 수준으로 쓰촨에 간 거니 참 겁없이 간 셈인데 현지 적응이 되어가니 언어적으로도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사방이 중국인들이라 학습에 도움이 되었고 처음에는 주로 학생들이 내 중국어 학습에 도움이 되어 주었다.

 

가령 내가 학생들에게 조언해 줄 말을 하나쯤 외워 놓고 있다가 수업을 끝나갈 무렵​ 학생들에게 해 주는 것이다. ‘진인사대천명’, ‘스스로 노력하는 자에게 행운이 따른다’ 머 이런 표현들을 중국어로 준비하고 있다가 수업 마지막 멘트로 날리는 건데 이게 꽤 호응이 좋았다. 

 

당연한 일이다. 요즘이야 한국어를 잘하는 외국인들이 많지만 외국인이 별로 없던 내 어린시절 지니가던 외국인이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만 해줘도 신나던 때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지역에서는 내가 유일한 외국인이고 더욱이 인기열풍 한류의 본류인 한국에서 온 사람이니 그런 멘트 하나가 학생들에게는 환호성의 대상이었다.

 

어느 화창 가을 날의 수업… 나의 마지막 멘트는 ‘샹신즈지(相信自己)‘였다. 내용은 ‘너희들이 이곳 쓰촨에서 태어나서 이 밖에 세계가 얼마나 넓인지, 배울 것이 많은지, 할 것이 많은지 모를거다. 하지만 너희 자신을 믿는다면 언젠가 그 기회를 얻을 것이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믿어라(샹신즈지, 相信自己)‘ 였다. 

 

 

 

 

 앞에는 통역을 통해 마지막은 내가 직접 했다. 근사한 말이었다. 내가 진짜 교육자가 된 기분이었다. 다른 때 보다 좀 더 멋진 말에 임팩트가 컸던지 호응도 좋았는데 수업이 끝나고 상위 20% 그룹 중에서도 특히 열심히 따라오던 여학생 몇명이 다가와서 샹신즈지를 한국어로 어떻게 말하는지를 물었다. 아마 그 친구들도 나에게 자극받아서 한국어 학습을 하려나보다 생각해서 기분좋게 알려 줬다. ‘자기 자신을 믿으세요’

 

다음날은 금요일이었고 오후에 특별한 일정이 없던지라 점심을 함께 먹으러 아내가 학교에 놀러왔다. 우리는 학교 구내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학교를 이곳저곳을 구경 다니면서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저 멀리 나의 클래스의 여학생들이 우리 부부를 보더니 우르르 몰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를 에워싸고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난 마시고 있던 음료수를 뿜고 말았다. 

 

“교수님, 자.기. 자.지.를. 믿.으.세.요~”     

 

가을 햇살만큼이나 싱그러운 웃음을 띄면서 큰 목소리의 한국어로 외치는 여학생들의 외침은 듣기 좋고, 보기 아름다웠으나 그 내용은 심히 당황스러웠고 외설적인지라 졸지에 ‘자기 남편’이 ‘변태’가 아닌가를 심각하게 의심할 수밖에 없는 아내에게 해명하는 데는 그로부터 상당 시간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아, 빌어먹을 샹신즈지(相信自己)…

 

TIG 독자 여러분! 여러분들도 샹신즈지(相信自己) 하시길… ^^*

 


[대놓고 광고] 제가 현재 몸담고 있는 모바일게임 개발 회사에서 <태양의원정대>라는 모바일게임의 사전모집을 시작했습니다. 장르는 판타지 전쟁게임이고 전략 PVP 중심입니다. 특히 실시간 5:5 팀배틀이 핵심인데, 유저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네요. 고생해서 만들긴 했습니다. 정글만리 재밌게 구독하신다면 게임도 받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재미없으면 태클도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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