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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약의 쾌감 안겨주는 ‘워헤이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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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언(톤톤) 2023-10-12 13:05:57
서부극에 흔히 나오는 ‘권총 결투’는 따지고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대결 방식이다. 총알을 ‘방어’할 수야 없는 노릇이니 승패는 오직 공격만으로 판가름 난다. 누구든 더 빨리 뽑아서 더 정확히 쏘면 이긴다. 그 이상은 없다.

그런데 생사가 달린 실제상황이라면 모를까, 게임으로서는 너무 지루한 승부다. 그래서인지 사격술만 따로 다루는 슈팅 게임은 실제로 거의 없다. 슈팅 장르는 사격술뿐만이 아닌 은·엄폐, 우회 기동과 같은 총격전의 전술 요소를 종합하는 형태로 진화해 왔다.

영화 속 권총 결투는 긴장감 넘치고 멋지지만, 게임으로 다루기엔 다소 평면적이다 (사진: '석양의 무법자' 스틸)

반대 맥락에서 백병전 테마의 게임이라면 무기 다루는 실력만 겨뤄도 말이 된다. 그 안에 공격, 방어, 심리전 등등 복잡다단한 무술 개념이 종합되어 있는 만큼 화각을 더 넓히지 않아도 서스펜스가 이미 보장된다. 그래서 백병전 PvP는 많은 경우 종합 전술보다는 개인의 무기술에 초점을 맞춘다.

그런데 무기술의 이러한 고도성은 매력 포인트인 동시에 그대로 진입장벽으로도 작용하는 문제가 있다. 대표적 ‘고인물 장르’로 불리는 격투게임과 마찬가지로, 백병전 PvP 게임들도 뉴비 유입에 늘 고심하는 배경이다.

최근 얼리엑세스를 시작한 넥슨의 <워헤이븐>은 백병전 PvP가 지닌 이러한 장르적 딜레마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아낸 듯한 게임이다. 거듭된 플레이테스트로 시스템을 뜯어고치며 찾아낸 답안은 비록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색다르고 매력적이다.



# 헛손질 끝에 복이 온다

무기를 휘두르는 방향을 따로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사실적이고 무거웠던 <워헤이븐>의 전투 시스템은, 얼리액세스로 향해 오면서 스킬 위주의 심리전 양상을 띠게 됐다. (여전히 공격이 가해지는 방향을 보며 가드해야 하고, 휘두른 무기가 지형에 가로막히는 등의 리얼리티 요소는 살아 있다)

현재 각 캐릭터에게는 기본적인 공격과 방어 동작 외에 ‘방어 해제’, ‘저지 불가’(피격 경직 무시) 등 속성을 지닌 스킬셋이 주어진다. 이러한 기술들은 ‘가위바위보’ 식 상성을 따른다. 예를 들어 적의 공격 스킬은 일반 공격을 맞춰서 중도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공격 스킬은 ‘저지 불가’ 특성을 지녀 피격 경직을 무시한다.

이에 방자 입장에선 다시 ‘가드’를 시도해 볼 수 있겠으나, 또 어떤 스킬들은 ‘방어 해제’ 기능을 지닌다. 이런 상성 체계를 통해, 전투는 장르 내 전통적인 4방향/8방향 검격 시스템 없이도 긴장감을 준다. 적의 스킬 보유 상황을 파악하고, 동작과 동선을 읽어 나의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전투 방식은 히어로 슈터와도 비슷한 재미다.

방어 무시, 방어 해제 등의 특성이 이루는 상성을 이해해야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다.

공방의 호흡도 이전보다 조금 더 가쁘다. 캐릭터 조작성이 향상되고, 공격 입력 시 ‘선 딜레이’, ‘후 딜레이’가 줄었으며 동작의 수행 속도 역시 빨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공격이 적에 적중한 순간, 혹은 적의 공격을 완벽한 타이밍에 방어한 순간 다음 동작을 연계하면 더 빨리 동작이 나가는 시스템도 도입됐다.

그 결과 현재의 <워헤이븐>에서 유저들은 이전보다 공격을 더 자주 시도할 수 있어 전투 능동성이 올라갔다. 무기를 휘두르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유효타에 성공하는 빈도도 함께 올라가고, 이전보다 더 자주 쾌감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이런 속도감 향상은 그저 무기 적중의 만족감을 안기는 데 그치지는 않으며 전반적 전투 접근성을 높인다. 난전 상황이 워낙 빈번한 게임인 만큼 초보자들도 상대를 처치하거나 그에 준하는 치명상을 입힐 기회가 많다. 제작진은 이러한 게임 특성을 ‘애먼 칼에 죽을 수 있는 게임’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동작 연계를 통해 더 빠른 전투 페이스를 즐길 수 있다.


# 죽음은 두렵지 않다

이는 중수 이상의 유저 입장에서는 불합리하거나 비합리적인 요소로 느껴질 법도 하다. 하지만 실제 경험해 본 <워헤이븐>의 전투는 전반적으로 불쾌보다는 유쾌 쪽으로 기운다. 죽음의 스트레스는 작지만, 살상의 즐거움은 크게 체감되는 게임 디자인적 변화를 채택한 덕분으로 보인다.

여기에 크게 기여하는 요소 중 하나는 병력의 높은 ‘회전율’이다. 현재 버전에서 병사의 부활 대기 시간은 수 초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소환 지점에서 거점까지의 거리도 단축되었고, 이동 경로 역시 일부 단순화됐다.

또한 맵 곳곳에 병사 리스폰이 가능한 ‘부활 거점’과 ‘부활 막사’ 개념(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점령/설치가 필요하다), 이동 속도를 높여 주는 ‘글라이더’, ‘인간 대포’ 및 지름길 요소까지 배치되면서  전반적으로 빠르고 빈번한 전장 재투입이 가능해졌다.

결과적으로 유저는 한 번 한 번의 죽음에 일일이 좌절하기보다는 빠르게 전투에 다시 참여하면서 ‘다음 할 일’을 찾는 능동적 플레이에 자연스레 임하게 된다. 죽음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고 활약할 것을 권장하는 이러한 디자인 의도는 인게임 리더보드에서도 확인된다. <워헤이븐>의 리더보드에는 죽음 횟수가 기록되지 않는다.

게다가 ‘데스매치’ 게임 모드를 제외한다면, 죽음이 직접적으로 경기의 승점에 가산(혹은 감산)되지도 않는다. 물론 잦은 죽음은 장기적으로는 팀에 악영향이겠으나, 당장 현격히 격차를 만들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유저들은 조금 더 마음 놓고(?) 죽을 수 있다.

리더보드에 죽은 횟수가 표시되지 않는다.


# 사람 줄었지만, 탄력은 그대로

한편, 현재 버전에서는 한 팀 인원을 16인에서 12인으로 축소하는 큰 변화가 있었는데, 그럼에도 전투의 탄력은 이전과 다를 바 없다. 이 또한 병력의 회전율과 관련이 깊다. 설령 다수의 병사가 사망하더라도 동일한 숫자의 병사들이 곧 전장에 다시 찾아오기 때문에 특별한 휴지기 없이 지속적 전투가 벌어지는 것.

여기에는 전투를 일점으로 압축한 전장 디자인도 도움을 준다. <워헤이븐>의 맵은 대부분 승패에 영향을 직접 주는 주요 거점, 그리고 전투에 직간접적 도움을 주는 보조 거점으로 구분된다.

폭격 유도로 적 병력을 줄인 뒤

‘주요 거점’은 점령시 직접적으로 승점이 쌓이는 거점들을 말한다. 이를테면 호송전에서는 화물이 주요 거점이 된다. 한편 ‘보조 거점’은 승점을 주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전략 요충지다. 일격에 격전지의 진영 밸런스를 뒤집을 만큼 강한 무기(대포, 폭격 신호기 등)가 설치되어 있거나, 부활 거점 역할을 하는 등 승패에 영향을 준다.

그런데 기존 버전에서는 보조 거점이 전투 탄력을 낮추는 요소가 되기도 했다. 병력의 비효율적 분산과 시간 낭비를 종종 야기했기 때문이다. 보조 거점에 너무 많은 아군이 몰릴 경우, 이들의 본대 복귀에 시간이 크게 지체되면서 메인 전투가 한쪽으로 쏠리거나 느슨해지는 부정적 경험이 증대했던 것이다.

반면 현재 버전에서는 보조 거점과 주요 거점 사이에 빠른 이동을 보조하는 수단(인간 대포, 경사로, 글라이더 등)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덕분에 보조 거점으로 향했던 분견대의 본대 합류 시간이 획기적으로 단축되었고, 주요 거점에서는 계속 십수 명이 맞붙는 난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곧장 해당 위치에 합류할 수 있다.


# 더 잘 보이는 ‘나의 영향력’

인원수 변화에도 불구하고 <워헤이븐>의 전투 호흡이 늘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다. 그렇다면 팀 규모 축소가 게임플레이에 가져다준 실질적 이점은 무엇일까?

제작진은 출시 전 진행한 공동 인터뷰에서 인원 변경을 통해 전투의 ‘과밀성’을 해소하려 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실제로 현 버전에서 유저는 과한 무리수를 두지 않는 이상, 5명 이상의 다수에 둘러싸이는 무력한 상황을 이전보다 덜 겪게 된다.

한 지점에 모이는 병사의 절대적 숫자가 이전과 비교해 25%가량 줄었을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했듯 병력의 전장 복귀도 빨라졌기 때문이다. 즉 상대가 너무 많으면 잠시 전투를 피하며 아군을 기다리는 것만으로 머릿수를 대강 맞출 수 있다. 약간의 침착성을 발휘하면 한 번에 상대하는 적 수를 합리적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침착하게 대응하면 일 대 다 상황에서도 효율을 낼 수 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긍정적 효과를 발휘한다. 첫째는 전투의 직관성 향상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워헤이븐>은 전통적 백병전 게임들에 비해 다소 캐주얼한 전투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상대의 수에 맞서 합을 주고받는 긴장감이 재미의 핵심이다. 심지어 일부 동작의 속도는 다른 게임보다 더 빠르고, 리치도 길다.

따라서 적 동선과 동작을 눈으로 잘 확인할 수 있는 전투 환경은 필수적이다. 그래야만 전투에서 능동성을 느낄 수 있고, 승리의 쾌감도 배가된다. 그런데 병력이 지나치게 집중될 경우, 그저 무작위로 칼을 휘둘러 승패가 갈려버리는 혼잡한 상황이 펼쳐지기 쉽다. 이것은 실제로 기존 버전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던 현상이다.

현재 버전의 전투 밀도는 한 화면에 들어오는 적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대응하기에 적합해졌다. 똑같이 ‘일 대 다’ 전투를 벌일 때의 무력감이 비교적 줄었다, 적어도 작은 발악은 주도적으로 시도해 볼 수 있다. 이것이 고맙게도 적의 발목을 잡거나 수효를 하나 줄이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승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해당 유저는 화면 안의 모든 적을 쓰러뜨리고 하이라이트를 차지했다.

전투 인원 감소의 두 번째 긍정적 효과는 유저가 느끼는 효능감의 향상이다.

전체 인원이 줄면서 개인의 활약이 전황에 미치는 영향력이 강해졌다는 의미다. 수치상 한 명 한 명의 살상이 지니는 의미가 기존보다 커질 수밖에 없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물론 적 병력은 계속 보충되지만, 그로 인해 한시적으로 승기를 잡는 쾌감이 덜한 것은 아니다.

좀 더 신속해진 전투 메카닉은 여기에 시너지를 더한다. 더 잦은 공격 시도가 가능해진 만큼 운 좋게 난전 상황에서 2~3명을 잡을 확률이 낮지 않다. 이렇게 다중 처치를 해낼 경우, 한 팀이 16명일 때에 비해 더 큰 기여를 한 셈이 된다.

심지어 반드시 적을 여러 명 잡을 필요도 없다. 요충지에 자리 잡은 적들에 몇 번의 공격을 적중시키기만 해도, 유지력에 타격을 주며 비슷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처럼 <워헤이븐>의 줄어든 인원수는 모두에게 국지적 영웅이 될 기회를 더 많이 배분하는 결과를 낳았다.

잘 안되면 언제나 측후방의 약한 적을 노리자


# 장교처럼, 혹은 병사처럼

종합했을 때, <워헤이븐>은 ‘나’ 라는 병사를 끊임없이 전장에 재투입하는 양상으로 전개되는 게임이다. 기존의 동일 장르 작품들에 비교해 개인의 싸움 실력이 지니는 중요성은 다소 줄어들었다. 대신 유기적으로 변하는 상황에 맞춰 스스로를 적소에 투입하는 판단력이 최종적 승패에 조금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나’의 전투력은 평균적 병사들에 비해 다소 모자랄 수도 있다. 그러나 팀 단위로 대형 전투가 빈번히 이뤄지는 게임 특성상, 적절한 진입 각을 찾아내는 것만으로 승리에 기여하는 전공을 세우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전략성의 강조는 서문에 이야기한 것처럼 백병전 게임보다는 슈팅 게임, 그중에서도 <배틀필드>와 같은 대규모 전장 게임에서 더 많이 보이던 게임플레이 특징이다. 그러나 요충지에서 휘두른 칼질 한 번이 때로 열 명의 활약에 값할 수도 있는 것이 시대를 불문한 전쟁의 본질 중 하나인 만큼 백병전 게임에도 어색하지 않은 방향성이다.

다만 이렇듯 개인의 활약이 충분한 파란을 일으키려면, 그 전에 양 팀이 팽팽한 힘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는 까다로운 전제가 깔린다.

거듭된 플레이테스트를 통해 그러한 밸런싱을 실제로 해낸 제작진의 감각을 높이 살 만하다. 게임 규칙과 전략 요소를 파인 튜닝한 결과 게임을 현재 플레이해 보면 많은 경우 ‘간발의 차’에 의해 승패가 결정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화물 위에서 농성하는 가디언은 자주 만나게 된다.

평형이 잘 맞춰져 있기에, 작은 행동도 전세를 ‘기울게’ 만들 수 있다. 특정 공간을 점유하고 버티거나 유력한 적을 성가시게 만드는 등의 다양한 전장 행동이 의미를 지닌다. 실제로 호송전에서는 화물에 올라 다수의 적을 상대로 농성하는 ‘가디언’ 병과를 자주 만날 수 있다. 기자의 경우 포격으로 아군을 학살하는 무패의 적 듀오를 상대로 졸렬한 숨바꼭질을 벌여 팀에 시간을 벌어주기도 했다.

바로 그렇기에 ‘일당백’의 희열-실제로는 일당오(一當五)도 어렵지만-은 오히려 더 진하고 강렬하다. 나로 인해 전체 전선이 출렁이는 모습은 진귀한 볼거리다. 만약 그러기에는 실력이 심히 모자란다면, 게임의 메인 피쳐 중 하나인 ‘임모탈’ 변신 시스템을 활용하면 좋다(그러라고 있는 시스템이다). 한 경기에 한 번, 강력한 영웅으로 변해 꼭 필요한 전과를 올리는 기쁨은 크다.

영웅 변신이 아니어도 그러한 즐거움을 더 자주 느끼고 싶다면, 3인 분대 단위로 뭉칠 경우 가능성이 대폭 올라간다. 그런 점에서 <워헤이븐>은 주변에 권하고 싶어지는 게임이다. 나와 함께 전선을 누비며 일대 파란을 일으켜 보지 않겠는가.

다만 게임을 자신 있게 권유하기 위해 꼭 해결되었으면 하는 문제들도 있다. 먼저 겉보기와 달리 동작을 크게 가로막는 몇몇 작은 지형지물들이 꼭 수정되길 바란다. 공격 모션과 피격 시점이 일부 일치하지 않는 문제, 기타 악용이 가능한 동작 버그들도 수정될 필요가 있다. 반대로, 핵 사용자 이슈가 불거지는 스팀의 글로벌 버전에 비해, 넥슨이 자체 서비스하는 국내 버전에서는 같은 문제가 잘 보이지 않는 점은 긍정적이다.

둘은 정말 강했고, 기자는 그저 귀찮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의미 있는 행동이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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