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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낭만과 불만 사이, "XX라이크 게임도 흥행했으면"

'팰월드'의 폭발적 흥행, 그 안팎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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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준(음주도치) 2024-01-26 17:40:00

게임 체인저: 시장의 흐름을 통째로 바꾸거나 판도를 뒤집을 만한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 사건, 제품 등을 가리키는 용어. 군사적으로는 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무기 체계를 일컫기도 한다.


기자의 일과는 매일 게임 관련 뉴스를 검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외신 및 전문지에서도 많은 정보를 얻지만, 조중동한경오 등 일간지에서 '게임'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가장 자주 보이는 단어가 바로 '게임 체인저'다.


2024년 1월, '게임 체인저'에 가장 가까운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팰월드>다. <포켓몬스터>, <젤다의 전설>, <아크 서바이벌> 등 유명 게임들의 장점을 버무려 만든 게임으로, 얼리 액세스 출시 6일 만에 무려 800만 장 이상 판매됐고, 스팀 동접도 200만 명을 넘은 이른바 '초인기 게임'이다.


기자가 <팰월드>를 '게임 체인저'라고 판단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32,000원이라는 합리적인 가격대에서, 솔로 플레이만으로도 내부적인 재미를 잡은 것과 동시에, 기존 게임들에게도 큰 파도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판단은 잠시 접어두고, <팰월드> 흥행 안팎의 이야기, 정확히는 '장르의 생존'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총켓몬', '폭행몬스터' 등으로 불리며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팰월드>
 

# 낭만과 불만 사이... 포덕은 울고, 젤다 팬은 웃었다?

<팰월드> 출시 이후 가장 많은 불만이 터져 나온 곳은 <포켓몬> 팬 진영이었다. <팰월드>를 개발한 포켓 페어를 향한 비난이 아니라, <포켓몬스터> 게임을 만드는 게임 프리크를 향한 목소리였지만 말이다. 본가 게임에서도 구현되지 않은 시스템도 <팰월드>에서는 맛볼 수 있었으니, 포덕(포켓몬 오타쿠)들의 낭만과 불만을 함께 자극한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팰월드>는 '팰'에게 총을 쥐어 주고, 노동을 시키는 등 <포켓몬>과는 완전히 다른 해석을 보여줬다. 오히려 포켓몬이 지켜왔던 (그리고 포켓몬 컴퍼니는 할 수 없는)공고한 세계를 파괴하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독창성으로 다가온다. 팰을 도축해 고기를 얻거나, 팰의 영혼을 바쳐 팰을 강화하는 등의 콘셉트는 <포켓몬> 시리즈가 만들어 온 세계관과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에 <팰월드>만의 경험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두 게임의 경험이 겹치는 영역에서는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포켓몬스터> 본가 게임에서는 도감 완성에 대한 보상이나 동기가 매우 약했다는 것도 그 예시 중 하나다. 기존 게임들에선 도감을 완성하면 상장을 주거나, 색이 다른 이로치 포켓몬을 잡을 확률을 높여주는 아이템을 줬다. 스토리 이후 엔드 콘텐츠에 해당하는 실전 배틀, 레이드 배틀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나면, 귀여워서 선호하는 포켓몬을 제외하면 배틀에서 강력한 포켓몬만 잡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곤 했다.


반면, <팰월드>는 '팰'의 쓰임새가 배틀에 국한되지 않아 건설, 파밍, 라이딩 등 게임 진행 정도에 따라 포획 동기부여가 명확했다. 또한 서바이벌 크래프팅 자체가 가진 콘텐츠 확장성이 커서 특정 엔드 콘텐츠로 귀결되지 않았다. 팰을 모아야 할 동기부여가 더 명확했고 레벨 디자인의 설득력이 높았던 것이다.


지금까지​ <포켓몬스터>가 유저에게 도감 완성을 '강요'하는 분위기를 피해왔던 것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레전드 아르세우스> 등에서 유사한 시도가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포켓몬> 팬들은 <팰월드>의 몇몇 장점들을 바라보며, 게임 프리크가 <포켓몬스터>만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충분히 최근의 <포켓몬> 게임들보다 더 나은 퀄리티를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팰월드>에서는 '팰'과 함께 총을 들고 싸우고

함께 생존한다. 그게 설령 가혹한 방식을 포함하고 있을지라도.


반면, <젤다> 팬들은 조금 달랐다. <팰월드>의 도입부부터 '시커스톤'을 획득하거나, 랜드마크를 표시해주는 시청각적 연출 등 <야생의 숨결>의 특징을 노골적으로 차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불편함 없이 즐기는 팬들이 많다. <야숨>과 <왕눈>의 완성도와 재미를 <팰월드>가 뛰어넘진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젤다의 전설> 시리즈의 최근 행보에 불만을 가질 요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크 서바이벌>의 경우는 어떨까? 가장 속이 타는 쪽은 <아크 서바이벌> 팬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한 팬은 "공룡이 팰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팰월드>가 <아크 서바이벌>의 완벽한 상위호환"이라 표현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많은 사람들이 <팰월드>를 언급할 때, '포켓몬라이크'라는 단어는 사용해도, '아크라이크'라는 단어는 좀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유사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면 해당 장르는 발전과 쇠락을 동시에 맛보는 경우가 많다.

'소울라이크'와 '뱀서류'가 대표적인 예시다. 다소 품이 적게 들어간 게임들도 해당 장르에 범람하기 시작하면서 진짜 할 만한 게임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지는 상황을 겪기도 하고, 반대로 웰메이드 게임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장르 전체의 발전을 이끄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팰월드>의 출현은 여러 장르의 선순환으로 이어질까?


원조 <뱀파이버 서바이버즈>. 요즘 좋은 뱀서류 게임 찾기가 쉽지 않다.

# 섬이 된 장르들...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

PC와 Xbox 시장을 <팰월드>가 휩쓸고 있을 때, 옆 동네인 모바일게임 판은 어땠을까? 중국 게임사인 조이 나이스 게임즈의 <버섯커 키우기>가 양대 마켓 1등을 휩쓸었다. 기존 <리니지> 3형제와 <오딘>, 2023년에 출시된 많은 리니지라이크 게임들을 방치형 게임이 이긴 것이다. <픽셀 히어로>와 <세븐나이츠 키우기>의 뒤를 이은 또 다른 방치형 1인자다. 그렇다, 이 구역의 '게임 체인저'는 <버섯커 키우기>였다.


모바일인덱스 1월 25일 모바일게임 국내 매출 순위


한편, 최근 출시된 컴투스홀딩스의 방치형 게임 <소울 스트라이크> 광고는, 현재 매출 1위인 <버섯커 키우기>를 노골적으로 저격​해 게임 커뮤니티와 블라인드 등에서 (좋지 않은 의미로) 화제가 됐다. "중국 게임 대신 국산 게임 즐깁시다"라는 단순 애국 마케팅으로 보기엔, 내용이 꽤 적나라하다. 우리 게임은 "양산형이 아니고, 전투도 조잡하지 않으며, 가짜 광고를 내세우고 있지도 않다"는 것.


<버섯커 키우기>를 선택했던 많은 유저들이 <소울 스트라이크>의 광고를 보고 웃는 얼굴을 유지할 수 있을까? 햄버거 시장에서 '맥도날드'와 '버거킹'이 보여준 저격 광고 사례들처럼, 기자 본인도 저격 광고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모두가 유쾌함을 납득할 수 있는 선이어야 한다. 


방치형 장르의 유저가 한정되어 있고, 파이를 나눠 가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 섰다 하더라도, <소울 스트라이크> 스스로에게 좋은 마케팅 전략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블라인드와 네이버 라운지 등에서도 해당 광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다.


<버섯커 키우기>를 조잡한 중국산 버섯으로 표현하며 때려잡는 <소울 스트라이크> 광고
특히 왼쪽 광고의 배경에 단풍잎이 떨어지는 것을 기억하자.

<세나 키우기>(세븐나이츠 키우기)를 노리고 만든 <소울 스트라이크> 광고 멘트
버거킹, 맥도날드의 사례처럼 유쾌한 저격 광고로 사람들이 봐 줄까?


참 신기한 점은 '단풍잎'이 흩날리는 숲 속에서 '버섯'을 때려잡는 <소울 스트라이크> 광고에 발끈한 사람들 중에 <메이플스토리> 유저들도 일부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단풍잎과 버섯이 <메이플>을 상징한다고 이해했다. 매출 1위를 기록했지만 <버섯커 키우기>의 인지도가 아직은 부족하다는 방증이기도 하고, <메이플>을 주로 하는 유저들에겐 방치형 모바일게임은 관심 밖의 영역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최근 동료 기자와 식사를 하며 "게임의 장르 구분이 마치 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여러 섬들이 모여 있는 군도(群島)를 우리는 '게임'이라는 커다란 범주로 흔히 묶어서 이야기하지만, 생각보다 다른 섬의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경우도 많다"는 대화를 한 적이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어떤 섬은 너무 과밀화되어 더 이상 파이를 늘리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니 서로 살육의 경쟁에 나섰을 것이다.  


'공명지조'(共命之鳥)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른다.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 즉 목숨을 함께 하는 새다. 두 개의 머리 중 한 쪽이 좋은 열매만 챙겨 먹자, 다른 쪽 머리가 몰래 독이 든 열매를 먹도록 계략을 짰다. 같은 몸을 공유하던 새는 결국 함께 죽는 공멸에 이른다. 안 그래도 방치형 장르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 않은 상황에서 좋은 이미지만 쌓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닐까?


<버섯커 키우기>(또는 <세나 키우기>)가 방치형이라는 섬의 왕좌를 내어줄까?

# 투발루에서 외쳐본다 "록맨라이크 게임도 흥행했으면"

개인적으로 기자의 게임플레이 스타일은 굉장히 잡식성이다. 장르가 하나의 섬이라면 이곳저곳을 매일 떠돌아다니는 배 위의 삶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처 없는 게임 생활에도 '고향'이라 불러도 좋을 곳이 있다. 바로 <록맨> 시리즈다. 클래식, X 시리즈, 제로, EXE, 대시 가리지 않고 모두 좋아했지만, 역시 최애는 X 시리즈다.


지난 달, 그러니까 2023년 12월은 <록맨 X>시리즈 30주년이었다. 캡콤은 이를 기념하며 티셔츠를 판매했고, 동시에 팬들의 입가에 씁쓸한 실소를 남겼다. 


<록맨 X> 시리즈 30주년 기념 티셔츠. 2005년 이후 맥이 끊긴 것을 볼 수 있다.
2023년, 캡콤은 <록맨 X 다이브>의 온라인, 추가 과금 요소를 제거한, 싱글 플레이 게임 <록맨 X 다이브 오프라인>을 출시했다.
기존 EXE 시리즈의 최신 기종 이식 합본 버전 <록맨 EXE 어드밴스드 콜렉션>도 발매됐다.
하지만 신작다운 신작은 없었다.

대형 신작은 없어도 <록맨>은 여전히 캡콤의 상징적인 캐릭터 중 하나다. 기자 또한​ 좋은 추억 때문에라도 록맨라이크 게임들이 나오면 항상 플레이해보는 편이다. 개중에는 <30XX>나 <루나럭스>처럼 꽤 괜찮은 게임도 있었다. 하지만 장르를 확장하고 개척하기에는 그 힘이 다소 부족했다. 록맨라이크 장르는 마치 지구온난화로 인해 가라앉고 있는 섬 '투발루' 같다고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팰월드>의 이례적 흥행에 울고 웃는 <포켓몬>, <젤다>, <아크 서바이벌> 팬들이 일견 부럽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기자 본인도 지우 개굴닌자가 최애인 포덕이고, 젤다는 초록 모자가 아니라 공주라고 발끈하는 <젤다> 팬이긴 하지만, 어째선지 마음의 고향인 <록맨>이라는 섬에도 <팰월드> 같은 '게임 체인저'가 등장하길 바라는 막연한 기대가 생겼다.

여러분은 어떤 섬에서 온 게이머들인가? 


특정 장르의 팬들은 <팰월드>와 같은 '게임 체인저'가 등장하길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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