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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해설] 크래프톤, 왜 비교 회사를 디즈니로 했을까?

"하반기 최대어" 크래프톤 상장이 늦어진 이유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재석(우티) 2021-06-30 11:24:14
크래프톤이 상장 일정을 미루었습니다. 금융감독원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하반기 최대어로 불린 '<배틀그라운드> 신화' 크래프톤, 기업공개(IPO)에 왜 차질이 빚어진 걸까요? 어떤 내용이 '불충분'했다고 여겨지는지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기자는 이번 상장이 비교적 '속도전' 형태를 띠고 있어서 짚어볼 부분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는 최근 경제 상황(정확히는 주식시장의 호황), 크래프톤의 올해 초 움직임 등을 따져봤을 때 지금 시기의 상장이 크래프톤에 가장 유리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 "하반기 최대어" 크래프톤 상장이 늦어진 이유

크래프톤이 상장 일정을 늦춘 이유는 금융감독원이 증권신고서 정정 요청을 했기 때문입니다. 6월 25일, 금감원은 이런 공시를 냈습니다.

 

"증권신고서(지분증권)에 대한 심사결과 증권신고서의 형식을 제대로 갖추지 아니한 경우 또는 그 증권신고서 중 중요사항에 관하여 거짓의 기재 또는 표시가 있거나 중요사항이 기재 또는 표시되지 아니한 경우와 중요사항의 기재나 표시내용이 불분명하여 투자자의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저해하거나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경우에 해당돼 정정신고서 제출 요구를 했다"

문장이 무지 길죠? 요약하자면, 서류가 미비해 투자자들이 오해를 할 수 있으니 근거를 제대로 붙여서 다시 신고서를 내라는 것입니다. 당초 크래프톤은 주당 공모 희망가를 458,000원에서 557,000원으로 잡았습니다.

여기서 생길 법한 오해를 풀고 넘어가야겠습니다. 금융감독원은 공모주의 가격이 높은지 낮은지를 심사하는 기관이 아니라, 증권신고서 서류 자체를 심사합니다. 쉽게 말해 크래프톤이 주당 458,000~557,000원으로 공모를 받고 싶으면 그 근거가 분명해야 할 것인데, 신고서에 기재된 내용은 그 부분이 명확하지 않기에 "투자자에게 중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금감원이 공모가 자체에 직접적으로 손을 댈 방법은 없습니다. 크래프톤도 충분히 근거를 찾아낸다면 원하는 공모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증권가에 따르면, 금감원이 증권신고서에 대한 정정을 요청하면, 기업은 일반적으로 공모가를 낮추는 수순을 거친다고 합니다. 최근 아모센스, SD바이오센서 등이 금감원의 정정 요구에 공모가를 낮춰서 신고서를 제출했습니다.​

크래프톤도 지난 15일 당국에 증권신고서를 낼 때 최선의 노력을 들여 기업의 가치를 설명했을 텐데, 수정하라고 하니 고치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근데 공모가 액수가 커지면 이에 맞는 이유와 기업가치를 설명해야 합니다. 기업가치에는 보통 매출이나 예상되는 미래가치 등이 반영되죠.

일단 금감원은 크래프톤이 자체 평가한 기업가치에 대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냈습니다. 이제 크래프톤은 그 가치에 맞는 금감원도, 투자자들도 납득할 만한 설명을 추가해야 합니다.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고 보입니다. 게다가 현행 자본시장법은 금감원의 요구에 따른 정정신고서를 3개월 안에 제출해야 합니다. 촉박하죠. 참고로 크래프톤의 상장 업무를 도맡은 대표 주관사는 미래에셋증권입니다.

크래프톤은 디스이즈게임과의 통화에서 "현재로서는 별도로 밝힐 입장이 없다. 성실하게 준비해 알릴 것"이라고 짧게 답했습니다. 참고로 크래프톤은 오는 7월 8일 IPO 관련 기자간담회를 진행할 예정이었습니다. 이 간담회 전에 정정신고서를 제출하고 진행할지 아니면 미루게 될지, 나온 사항은 없습니다.

 

크래프톤이 제출한 증권신고서

 

 

# "중요 사항의 기재 불충분" 무엇이 무엇이 문제일까?

 

그럼 왜 주식시장에서는 크래프톤의 공모 희망가가 고평가됐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걸까요? 쉽게 설명하지면 크래프톤이 발행할 주식 1주의 단가가 너무 비싸다는 이야기입니다. '중요사항의 기재나 표시내용이 불분명'하다는 말이지요. 이 '주장'에 대한 근거를 알기 위해서는 크래프톤이 당초 제출했던 신고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크래프톤은 신고서에 피어그룹으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집어넣었습니다. 비교기업으로도 부르는 피어그룹은, 기업의 가치를 산정할 때 참고할 수 있도록 같은 산업 내 다른 기업의 규모를 같은 줄에 놓고 살펴보기 위해 선정합니다. 

크래프톤이 선별한 피어그룹은 월트디즈니 컴퍼니, 넷이즈, 액티비전 블리자드, EA, 넥슨, 테이크-투, 워너뮤직, 엔씨소프트, 넷마블입니다(기재 순). 게임업체도 있지만 종합 미디어 그룹도 있습니다. 

 

크래프톤은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이하 배그)를 필두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거듭나겠다고 천명했습니다만, 아직 가시적으로 드러난 성과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쯤 갈 것'이라며 월트디즈니와 워너뮤직을 예로 보였습니다. 때문에 PER(P/E, 주가수익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무리수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주관사 미래에셋증권이 글로벌 콘텐츠 기업 평균 PER인 45.2를 크래프톤에 적용해 기업가치를 35조 735억 원으로 책정했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크래프톤이 월트디즈니 컴퍼니, 워너뮤직과 같은 반열에 오른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신고서에는 "시가총액이 5조 원 이상인 콘텐츠 회사"가 피어그룹의 기준으로 나와있는데, 합리적인 산출 근거인지에 대한 판단은 금감원이 앞서 한 듯합니다. 많은 투자자들이 크래프톤이 월트 디즈니 컴퍼니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냐는 물음을 품고 있습니다.​​​

물론 신고서에도 비교기업 선정의 부적합 가능성이 언급됩니다. "매출 구성 측면에서 비교 가능성이 일정 수준 존재해도, 상대가치 평가 방법의 특성상 적합한 비교기업 선정 과정과 결과에 대한 완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며 투자 시 유의해야 한다고 되어있습니다.

신고서에 올해 1분기 실적을 연 단위로 환산해 희망 공모가를 잡은 것도 문제입니다. 아시다시피 콘텐츠 산업은 흥행 산업이기 때문에 매출 그래프 역시 오락가락합니다. 크래프톤의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은 1940억 원,QoQ(지난 분기 2,838억 원 대비) 31%, YoY(전년 2,940억 원 대비) 34% 감소했습니다. 그런데 크래프톤은 가을에도 겨울에도 1분기만큼 벌어줄 것이라고 확신하고 연매출을 잡았습니다.

 

 

# 왠지 모르게 석연치 않은 상장 속도전

 

이번에 크래프톤은 상장하면서 10,060,230주를 공모했습니다. 비유를 조금 섞어서 보자면, 공모가 산정은 최대주주가 이 주식을 얼마에 시장에다 팔 것인지를 놓고 펼쳐지는 게임입니다. 신고된 가격은 458,000원~557,000원이고, 이게 너무 높은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인데요. 몇몇 매체에서는 이를 '고평가 논란'이라고 표현 중입니다.

사견을 전제로, 기자는 현재 크래프톤이 코스피가 3,300까지 오른 이때를 놓치면 안 된다는 판단에 속도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하반기 금리 인상이 가시화되면 조정 국면이 올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니 '장이 좋을 때 빨리 IPO를 하는 게 아닐까'라는 것이죠. 더구나 현재 지수를 끌어올린 주역은 IT 기업 섹터입니다.

물론 기업이 법을 준수하면, 속도전을 벌인다고 해서 나쁘게 볼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장의 평가를 받으면 되니까요.

크래프톤은 속도를 내다가 당국의 제동이 걸렸습니다. 제동이 걸린 김에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점들이 함께 떠오릅니다. 가장 먼저 원만한 합의의 진실이 있습니다. <화평정영> 출시와 관련된 이야기인데, 크래프톤은 예전부터 <화평정영>과 <배그> 사이의 직접적 관계를 부정해왔죠. 크래프톤은 로열티를 받고 있는 게 아니냐는 물음에도 회피해왔는데요.

크래프톤은 이번에 신고서를 제출하며 "<화평정영>​에 대해 Technology Service(기술 서비스)를 제공하고 수익배분 구조에 따라 수수료를 받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미 전부터 크래프톤의 공시 매출액을 설명하려면 '<화평정영>의 로열티가 포함되지 않을 수 없다'는 분석을 해온 터라 특별히 놀라울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참​고로 크래프톤의 최대주주는 장병규 의장으로 지분 16.43%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2대 주주는 텐센트의 투자 자회사 이미지프레임인베스트먼트로 지분 15.52%를 가지고 있죠.


<화평정영>

일각에서는 크래프톤의 문어발 투자에 대한 우려도 나옵니다.

크래프톤은 인도 e스포츠 기업 노드윈게이밍과 스트리밍 기업 로코에 투자했고, 챗봇 개발사 띵스플로우를 인수했으며, <로닌: 더 라스트 사무라이>를 만든 개발사 드림모션도 합류시켰습니다. 비트윈이라는 커플 메신저도 크래프톤이 가지고 있는데요. 크래프톤은 이루다를 만든 스캐터랩 지분도 가지고 있죠.

이 모든 인수와 투자가 2021년, 다시 말해 최근 6개월 사이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공격적 투자 전략 역시 무작정 비난할 거리는 못 됩니다. 또 김창한 대표의 바람대로 딥러닝과 인터랙티브를 하나로 아우르는 큰 그림이 그려질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일련의 투자가 워낙 빨리 진행되고 있어 IPO 과정 중 '<배그> 원툴'의 오명을 벗고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기 위해 갑자기 세를 불리는 것은 아닌가 걱정도 듭니다. 투자에는 리스크도 있는 법이니까요.


<엘리온>과 <테라> IP의 실적이 기대 이하인 것은 이미 업계에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지금의 크래프톤은 IP 확보, 확장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크래프톤은 한때 빈축을 사기도 했던 <눈물을 마시는 새> 사업의 재가동 소식을 밝혔고, <배그: 뉴 스테이트>의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최근엔 <배그>로 영화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보여줬죠. 마동석 주연의 단편영화 <그라운드제로>입니다. <배그> 세계관의 프리퀄쯤 되는 작품으로 9분 내내 마동석의 액션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렇게 크래프톤은 <배그> 이외에 여러 IP와 신작이 있으며, <배그>로 게임 이외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계속 신호를 보내는 중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최근에는 한 대형 출판사에서 크래프톤의 성장기를 그린 책이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마동석 주연의 <그라운드제로>

 

# 밖으로는 마동석 주연 영화, 안에서는 전화부스?

 

환경, 사회, 기업 지배구조를 뜻하는 ESG(Environment, Social & Governance Issues)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지 측정하는 비재무적 지표로 최근 기업 비즈니스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쉽게 풀이하면 환경보호를 하는 기업인가? 사회공헌에 이바지하고 있는가? 윤리적인 경영을 하고 있는가를 따진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ESG에 소홀한 기업에 투자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것은 유명하죠.

 

얼마 전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쿠팡'이 상장 전에 리스크로 지적된 것이 바로 ESG 관련입니다. 그중에서도 쿠팡의 물류/택배 노동환경은 매번 지적되던 문제입니다. 특히 개정 노조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중대산업재해처벌법이 언급되고, 주 52시간 상한제 전면 시행 등이 이슈가 되고 있죠.

 

바로 이런 상황에서 크래프톤에서 불거지고 있는 노동 환경 이슈도 리스크로 지적됩니다. 직원 사이의 단순 갈등일지, 조직문화의 문제일지는 단언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런 문제가 계속 나오고 있다는 건 확실히 좋은 모습이 아닙니다.

 

크래프톤 사옥 내부 (출처: 크래프톤)

마동석 영화가 홍보되던 바로 그 시점, 크래프톤 몇몇 직원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했습니다. 한 유닛장이 소속 직원에게 휴가 사용을 강요하고, "앞으로 업무가 늘어날 것이니 더 쥐어짜야 한다" 요구하는 한편,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하겠다며 한 직원에게 1평짜리 전화부스로 업무와 식사를 해결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 신고된 내용입니다. 


취재에 따르면 "이들은 업무 스트레스로 정신 건강전문의 상담을 받고 우울증 약을 먹는 등 고통을 호소했다"고 합니다.

이에 크래프톤은 디스이즈게임에 "구성원 보호를 위해 최대한의 조처를 취하고 있다"라고 밝히며 발생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이어서 "공정성 및 공평성 확보를 위해 외부 노무사를 고용해 조사 진행 중이고, 양측의 입장을 모두 확인하고 있는 단계로, 조사가 완료되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유닛장과 직원의 갈등에 관한 문제는 이제 막 접수된 건이므로 구체적인 전말을 알기 위해서는 시간이 다소 소요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고용노동청은 2년 전에도 여러 차례 크래프톤에 근로기준법 위반 시정지시를 내렸던 사실이 있습니다. 사내 이런 문제가 처음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최대주주인 장병규 의장의 경영철학은 다소 확고합니다. 4차산업혁명위원장이던 시절 나눈 인터뷰에서 52시간제에 재고가 필요하다며 "중국은 200~300명이 야전침대 놓고 주 2교대, 24시간 개발해 모바일게임을 만들어낸다", "나는 20대 때 2년 동안 주 100시간씩 일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는 게임업계, IT업계의 관행이고 또 성장 과정에 필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ESG가 화두로 떠오른 지금, 이러한 경영철학이 "존경받는 제작 리더십과 품격 있는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할에서 최고가 되기 위한 노력"하는 글로벌 게임 기업에 걸맞은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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