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 프로젝트 레드(CDPR)의 <사이버펑크 2077>(사펑 2077)는 현세대 최고의 기대작이었다. 하지만 게임은 지금 최고의 논란작이다. 게임의 낮은 완성도는 출시 첫날부터 문제가 됐다.
수준 미달의 만듦새에 투자자들의 집단 소송 움직임이 포착되고, 폴란드의 경쟁 및 소비자 보호 사무소(UOKiK)가 이 사태를 관리 감독하기로 했다. 문제가 불거지자 14일, 마르친 이빈스키(Marcin Iwinski) 대표가 직접 진화에 나섰다.
<사펑 2077> 공식 홈페이지에는 5분 분량의 영상과 FAQ가 게시됐다. 마르친 대표는 "버그와 최적화 문제를 해결하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FAQ를 통해 게임의 정상화 과정에서 의무적인 초과근무 없이 게임을 수정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16일, 경제지 블룸버그의 제이슨 슈라이어(Jason Schreier) 기자는 <사펑 2077>의 비참한 출시를 들여다보다(Inside Cyberpunk 2077's Disastrous Rollout)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시했다. 기사에는 <사펑 2077>이 기대와 다른 게임이 된 내부 사정이 정리됐다.
해당 기사와 CDPR의 반박을 요약, 소개한다.
경영진은 <위쳐 3>의 성공 케이스가 <사펑 2077>에도 적용될 것이라 믿었다. 그렇지만 이는 중대한 착오였던 것으로 보인다.
<위쳐 3>의 개발 인원은 약 240명이었지만, <사펑 2077>에는 내부 인원만 500명 가까이 투입됐다. <위쳐 3>의 2배에 달하는 인원이 하나의 프로젝트에 매달렸지만, 이는 CDPR에게 익숙한 방식이 아니었다. CDPR에게는 2배 넘는 인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노하우가 부족했다.
<위쳐 3>의 성공은 끊임없는 'A/S'로 이루어졌다. CDPR은 핫픽스와 무료 DLC를 출시하며 지속적인 사후 업데이트를 지원했고, 그 결과 <위쳐 3>는 2015년 최고의 게임 반열에 올랐다. 경영진은 <사펑 2077>도 이처럼 사후 지원으로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전방위적인 마케팅은 게임에 대한 기대감을 필요 이상으로 높여놓았다.
CDPR의 <사펑 2077> 마케팅 규모는 <위쳐 3>보다 컸다. 키아누 리브스는 E3 현장에 출연해 게임을 홍보했으며, 게임 출시 일정이 지연되는 와중에도 아디다스, 포르쉐 등 유명 브랜드 협업 상품을 비롯한 각종 <사펑 2077> 굿즈가 출시됐다. <위쳐 3>로 신뢰자본을 획득한 CDPR의 <사펑 2077> 홍보전은 게임의 체급을 계속 올렸다.
제이슨 슈라이어는 2배로 늘어난 인원도 AAA급 오픈월드 게임을 만들기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마케팅으로 인해 형성된 기대감은 락스타 게임즈의 <GTA 5>와 <레드 데드 리뎀션 2> 급이었지만, 락스타 게임즈는 전 세계 여러 사무실에 수천 명 규모의 개발자들이 일하고 있다.
다른 메이저 회사에서 CDPR로 이적한 개발자들은 CDPR의 개발 과정에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증언에 따르면, 누군가 쉐이더를 필요로 하면 개발 파이프라인에 별도의 아카이브 없이 그저 만들 뿐이었다. 그 전에 누가 쉐이더를 만들었는지 아닌지 알 길이 없었던 것이다. 또 제이슨 슈라이어는 사무실 내에서 폴란드어를 주로 사용하는 바람에 업무 소통에 지장이 있다고 보도했다.
2016년까지 <사펑 2077>은 3인칭으로 개발되고 있었다. 벽을 달리고, 하늘을 나는 차를 타는 <사펑 2077>의 특징들은 개발 도중에 잘려나갔다. 제이슨 슈라이어는 <사펑 2077>이 2016년까지 개발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8년 E3에서 공개된 영상은 가짜 데모 버전이었으며, 대부분의 직원들은 2020년에 론칭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게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CDPR은 'CDPR 매직'을 믿고 밀어붙였다. 데드라인(발매일)을 맞추고 개발자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면, 게임이 완성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CDPR은 <사펑 2077>의 '골드'행을 선언했다. 업계 은어인 골드는 출시 직전 단계를 말하는 표현으로, 모든 수정, 보완 작업이 마무리된 최종본 상태로 유통사 단계에서 대량 생산을 앞둔 상태를 말한다. 과거 CD-ROM 시절 마스터 CD가 금색이었다는 뜻에서 붙여진 말로, "제품을 다 만들었다"라는 상징적 표현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기사에 따르면, CDPR이 대외적으로 골드를 밝힌 와중에도 사내 프로그래머들은 규모가 큰 버그(major bugs)를 찾아서 고치고 있었다. 10월 CDPR이 약속한 발매일은 11월 19일이었지만, 다음 달 회사는 게임의 발매일을 12월 10일로 한 차례 더 미뤘다.
제이슨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2020년 CDPR 직원들은 지속적인 크런치에 시달렸다. 아드리안 자쿠비악(Adrian Jakubiak) 전 CDPR 오디오 프로그래머는 "일주일에 5일, 하루 최대 13시간씩 일했다"라고 증언했다. 작년 10월부터 블룸버그에는 "CDPR은 크런치 모드가 없다는 약속을 깨고, 몇 달째 스튜디오 전체가 크런치 모드 중"이라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한 개발자는 자신의 매니저에게 "초과근무를 하고 싶다"라고 말했지만, 매니저는 "당신이 초과근무를 하지 않으면 다른 누군가가 초과근무를 해야 한다'라고 답변했다. 마르빈 대표가 크런치 문화를 없애겠다고 약속했지만, 회사 안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 직원은 "몇 년 동안 쉬지 않고 초과 근무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꼈다"라고 토로했다.
제이슨 슈라이어에 따르면, CDPR의 QA 테스터들은 일주일에 50~60시간씩 일했다. 이들은 자주 버그를 발견해 보고했지만, 무시당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이들은 시급 12달러에서 15달러를 받았는데, 이마저도 운이 좋을 때의 일이며, 폴란드에서는 적은 임금 수준이라는 게 제이슨의 설명이다.
<사펑 2077>의 노동 환경을 취재하기 위해 제이슨 슈라이어는 CDPR 전현직 직원 20명 이상 인터뷰했다.
크런치를 감행하고 세상의 빛을 본 게임마저 버그투성이로 세간의 원성을 사게 된 것이다. <사펑 2077>은 CDPR 경영진의 바람대로 지속적인 사후 지원을 통해 제대로 된 게임을 만드는 수밖에 없게 됐다. <노맨즈스카이>와 <파이널판타지 14>의 사례처럼 지속적인 유지/보수를 통해 게임의 퀄리티를 올리고, 평가 반전을 이뤄내는 것이다. 작년 더게임어워즈에서 <노맨즈스카이>는 최우스 서비스 상을 수상했다.
이렇게 <사펑 2077>은 미완성으로 출시됐고, 경영진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마르친 대표는 이에 대해 사과했고, 시일 내 PSN 스토어에도 게임을 다시 업로드하겠다고 밝혔다. 게임 내 버그와 관련해 CDPR은 환불을 약속했고, 현재 소니 PSN 스토어에 <사펑 2077>은 내려간 상황이다.
마르친 대표의 성명 이후 30% 이상 떨어졌던 CDPR의 주가는 256.20 즈워티로 6% 상승했으나, 게임 출시 직전 443 즈워티까지 기록했던 것에 비교하면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CDPR의 아담 바도스키(Adam Badowski) 디렉터는 지난 주말 자신의 트위터에 제이슨의 보도에 반박하는 공개 서한을 작성했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 게임쇼 데모와 2년 뒤 출시된 실제 게임이 다를 수 있다. 원래 출시 전에 최종 버전을 보여주는 건 어렵다. 둘이 서로 다르다고 해서 거짓을 뜻하는 건 아니다. 비디오에 "작업 진행 중"이라는 워터마크가 있는 까닭이다. 폭발씬, 추격씬 등 우리의 파이널 버전은 지금까지의 데모보다 훨씬 더 멋지다.
- 게임 내 특징들(features)이 누락되는 것은 창조 과정의 일부분이다. 어떤 특징이 들어가고 빠지는지는 테스트 결과에 따라서 반영되는 것이다.
- 구세대 콘솔의 문제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잘 알고 있고, 버그를 제거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 현재 게임이 PC에서도 완벽한 버전은 아니지만, 우리는 게임과 예술적 시각 자료(artistic vision)로서의 <사펑 2077>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 당신(제이슨 슈라이어)는 20명의 전현직 직원들과 대화를 나눴다고 했지만, 이름을 공개한 직원은 1명에 불과하다. 나는 500명 넘는 '대부분'(most)의 직원들이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을 거라고 본다.
- 회사의 공개 회의, 이메일과 공지사항은 모두 영어로 진행한다. 우리는 이미 다문화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
제이슨 슈라이어는 "전에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답을 얻지 못해 해당 내용을 보도했다. 이 사안과 관련해 언제든 대화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