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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롤판에 타오른 마지막 불꽃, '스멥' 송경호의 은퇴를 바라보며

인간 송경호의 삶에서도 불꽃이 타오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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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주(사랑해요4) 2020-12-25 10:43:53

한국 <리그 오브 레전드>를 대표했던 탑 라이너, '스멥' 송경호가 17일​ 은퇴를 선언했다. 이에 따라, 한때 LCK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락스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멤버는 '피넛' 한왕호를 제외하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전성기 스멥은 세계 최고의 탑솔러로 불렸다. LG-IM에서 데뷔, 쿠 타이거즈로 이적하며 재능을 꽃피운 스멥은 LCK 최초의 탑 라이너 펜타킬과 롤드컵 3회 진출 및 2015 롤드컵 준우승 등 화려한 커리어를 쌓으며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단단한 탱커부터 리스크를 동반한 공격적인 챔피언까지 잘 다뤘던 그의 플레이는 연일 <리그 오브 레전드> 커뮤니티를 달궜다. 그때 스멥은 말 그대로 '슈퍼스타'였다.

 

쉽지 않았던 LG-IM 시절부터 마지막 불꽃을 태운 KT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탑 라이너로써 시대를 호령한 스멥이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 김승주(사랑해요4) 필자, 편집=디스이즈게임 이형철 기자

  

본 콘텐츠는 디스이즈게임과 오피지지의 협업으로 제작됐습니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 스멥에게도 '처음'은 어려웠다

 

누구나 처음은 쉽지 않다. 스멥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LG-IM 2팀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스멥은 피지컬과 잠재력은 뛰어나지만, 완성도가 떨어졌다. 여느 유망주와 다를 것 없는 평가였다. 당시 스멥의 소속팀이 약체였다는 점도 그에겐 마이너스 요소였다. LG-IM은 늘 롤챔스 16강 문턱에서 탈락했을 만큼, 리그를 대표하는 약팀이었다.

 

보여준 것 없는 유망주, 그리고 약한 전력의 소속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멥은 자신의 빛을 잃지 않았다. 그는 2014 롤챔스 서머, 당대 최강의 팀으로 꼽히는 SKT T1 K와의 경기에서 '임팩트' 정언영의 레넥톤을 솔로 킬하고 세트 승을 이끄는 대이변을 연출하며 자신의 잠재력을 증명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SKT T1 K의 패배에 집중했을 뿐, 스멥의 활약에는 큰 관심을 주지 않았다. 결국 스멥은 정든 고향 팀을 탈퇴하며 또 한 명의 '유망주'로 잊혀지는 듯했다.

  

LG-IM 시절 스멥은 말 그대로 '유망주'에 불과했다

 

# 타이거즈와 함께 마침내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 무렵, 스멥의 운명을 바꾼 팀이 등장했다. LG-IM 시절 친분이 있었던 '쿠로' 이서행의 소개로 입단한 쿠 타이거즈다. 

 

'타이거즈'. LCK가 세계를 호령한 시절을 지켜본 팬들에겐 이름만 들어도 가슴 떨리는 팀이다. 

 

본래 타이거즈는 그리 큰 기대를 받지 못했다. 아니,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고 보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당시 타이거즈는 스멥, '호진' 이호진, '쿠로' 이서행, '프레이' 김종인, '고릴라' 강범현 등 프로씬에서 실패하거나 은퇴 위기에 몰린 선수들로 로스터를 구성했다. 그저 그런 팀, 실패한 선수들이 모인 어정쩡한 팀이라는 평가가 빗발쳤다. 

 

타이거즈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폭발적인 경기력을 뿜어냈다 (출처: YY.COM)

 

어쩌면 당시 타이거즈를 향한 평가는 스멥을 바라보는 시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LG-IM에서 보여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스멥이라는 이름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타이거즈에 합류하기 전 참여한 아마추어 대회에서도 스멥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을 정도니까. 하지만 스멥과 타이거즈는 데뷔 시즌이었던 2015 롤챔스 스프링에서 파란을 일으키며 정규 시즌 1위를 달성했다.

 

스멥은 자신의 뛰어난 피지컬을 마음껏 과시하며 전면에서 팀을 이끌었다. 주위의 낮은 기대치에도 묵묵히 솔로랭크를 플레이한 스멥의 노력이 타이거즈 특유의 밝은 분위기와 시너지를 일으켰고, 감춰져 있던 스멥의 재능도 마침내 폭발하기 시작했다. 

 

LG-IM 시절에도 종종 번뜩였던 화려한 피지컬은 어느덧 타이거즈의 스멥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어있었다. 그는 공격적인 챔피언 리븐을 픽해 LCK 최초의 탑 라이너 펜타킬을 달성하면서도 다양한 챔피언을 플레이하며 캐리형 탑 라이너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게 스멥은 어둠을 벗어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섰다.

 

LCK 최초의 탑 라이너 펜타킬은 스멥의 몫이었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 소년만화의 주인공 꿈꿨지만, SKT T1에 가로막히다

2015년 내내 좋은 성적을 올린 타이거즈는 꿈에 그리던 롤드컵에 진출했지만, 한 가지 악재를 마주했다. 당시 스폰서였던 KOO TV가 서비스를 종료함에 따라 지원을 철회한 것이다. 전 세계 프로게이머가 꿈꾸는 롤드컵을 눈앞에 뒀지만, 타이거즈는 이렇다 할 숙소도 연습 환경도 없이 PC방에 모여 컨디션을 끌어올려야했다. 이처럼 타이거즈를 둘러싼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시작도 불안했다. 많은 팬이 기대한 압도적인 경기력과 달리, 타이거즈는 조별 리그에서부터 휘청이며 대만의 FW에게 2패를 기록한 뒤 2위로 8강에 올랐다. 불안한 경기가 이어지자 몇몇 팬들은 타이거즈가 8강에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절체절명의 위기, 타이거즈에는 스멥이 있었다. 스멥은 8강에서 피오라를 선택, 상대를 솔로킬하고 적극적인 푸시로 판을 흔들며 팀의 4강행을 이끌었다. 분위기를 바꾼 타이거즈는 4강에서 유럽의 강호 프나틱을 3:0으로 잡고 상승세를 이어갔다. 스멥 역시 8강에서 선보인 피오라를 재차 활용, 멋진 스킬 활용을 선보이며 팀의 결승 진출을 도왔다.

 

스폰서의 지원 철회, PC방 연습, 조별 리그의 부진을 딛고 올라온 타이거즈는 내심 '소년만화 주인공'과 같은 결말을 꿈꿨으리라. 온갖 역경을 딛고 세계 최강의 자리에 오르는 만화 주인공처럼, 타이거즈 역시 롤드컵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소년만화를 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해피엔딩은 없었다. 

 

결승에 오른 타이거즈는 '페이커' 이상혁을 필두로한 SKT T1을 만나 패배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관중들은 분전한 타이거즈에 박수와 환호를 보냈고, 선수들은 미소로 화답했지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결승에서 만난 상대가 하필 롤드컵 역사상 최강팀으로 꼽히는 SKT T1이었다는 점도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일대 다 상황에서 오히려 킬을 얻어내는 스멥 (출처: OGN)
  

 

이후 스멥은 2016년까지 타이거즈에서 활약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스멥은 2016 정규시즌 MVP를 수상한 데 이어, 그해 서머 결승전에서는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바론을 갱플랭크의 궁극기로 스틸해 역전승을 발판을 마련하며 꿈에 그리던 롤챔스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상승세는 롤드컵까지 이어졌다. 스멥은 2016 롤드컵 선수 파워 랭킹 1위에 선정되는 한편, 조별예선 G2와의 경기에서는 케넨의 '날카로운 소용돌이'를 통해 상대를 쓸어 담는 괴력을 뽐내며 전 세계에 자신이 '세계 최고의 탑 라이너'임을 증명했다. 

 

이후 4강에 진출한 타이거즈는 또 한 번 'SKT T1'이라는 거함을 마주 해야 했다. 

 

미스포츈 서포터 등 필살 전략을 준비한 타이거즈는 롤드컵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꼽히는 멋진 경기를 선보였지만, 끝내 결과까지 가져오진 못했다. 가장 매력적인 팀은, 가장 강한 팀 앞에 2년 연속으로 무릎을 꿇었고 타이거즈 1기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

  

2016 롤드컵에서 라이엇이 선정한 파워 랭킹 1위로 선정된 스멥 (출처: 라이엇 게임즈)

 

# '슈퍼팀' KT와 함께

  

타이거즈를 떠난 스멥은 중국에서 활약한 '폰' 허원석, '데프트' 김혁규, '마타' 조세형과 함께 KT로 이적하며 슈퍼팀을 결성했다. 목표는 단 하나. '타도 T1'이었다. 스멥 역시 인터뷰를 통해 여러 차례 'T1을 박살 내기 위해 뭉쳤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KT와 스멥이 받아들인 결과는 참혹했다. 2017 LCK 스프링 결승전에서 고대하던 라이벌을 만났지만 3-0으로 참패한 데 이어 그해 서머 플레이오프 최종 라운드에서는 2-3으로 역전패했기 때문. 이후 KT는 롤드컵 선발전에서도 삼성에게 3-0으로 완패하며 참패에 가까운 2017년을 보내게 된다.

 

관련 기사: 희미해진 T1과 KT의 '통신사 더비'에 대하여

 

 

최악의 한 해를 보낸 스멥은 절치부심했다.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스멥은 경기력을 끌어올렸고 KT에 2018 서머 우승컵을 안기며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렸다. 

 

그렇게 시작된 2018 롤드컵, 스멥은 또다시 휘청거렸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특히 중국의 IG와 맞붙은 8강 3세트에서는 빠른 판단으로 백도어를 시도해 상대 넥서스를 파괴하며 대역전극을 거뒀고, 이어진 세트에서 이렐리아로 멋진 모습을 선보이며 5세트까지 경기를 끌고 갔다. 비록 접전 끝에 패배하며 8강 탈락이라는 아쉬운 성적을 받아들여야했지만, 당시 '더샤이' 강승록, '루키' 송의진을 필두로 한 IG를 상대로 분전한 유일한 팀이었다는 점은 그나마 위안거리였다.

  

스멥의 백도어 판단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던 IG와의 3세트 (출처 : 라이엇 게임즈)


# 마지막까지 타오른 '스멥'의 불꽃, 인간 송경호의 삶에서도 계속되길

 

이듬해, 스멥은 극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KT는 강등권까지 추락했고, 스멥 역시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결국 스멥은 KT를 떠나 휴식을 선언했다. 몇몇 이는 스멥이 이대로 은퇴할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스멥은 한 시즌 휴식을 취한 뒤 보란 듯이 KT로 돌아왔다. 비록 전성기 시절 날카로움은 아니었지만, 든든히 버티는 플레이를 통해 KT를 지탱했다. 특히 2020 서머 DRX와의 경기에서는 장염으로 경기에 결장한 '투신' 박종익을 대신해 서포터로 출전, DRX를 잡는 대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스멥의 마지막 불꽃은 KT가 끝까지 포스트시즌 진출에 대한 희망을 놓치 않을 수 있었던 버팀목이었다.

  

스멥의 불꽃은 마지막까지 타올랐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누군가는 스멥을 두고 '역대급 재능을 가진 선수'라고 평한다. 

 

하지만, 스멥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그 또한 쉽지 않은 환경을 뚫고 올라왔음을 알 수 있다. 그는 LG-IM 시절 제대로 이름을 알리지도 못한 채 팀을 떠나야 했고, 타이거즈에서는 롤드컵을 앞두고도 PC방에서 연습을 이어가야 했다. KT 시절 역시 순탄치 않았다. 슈퍼팀을 결성했음에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못한 2017년과 강등권을 맴돈 2019년, 스멥은 세간의 비난을 묵묵히 견뎌야 했다.

 

하지만 스멥은 항상 결과를 통해 자신의 노력을 증명했다. 타이거즈 시절은 그 노력의 결과물이 폭발한 시기였으며, KT에서는 끝끝내 롤챔스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마지막 시즌에는 노익장을 과시하며 팀에 희망의 불꽃을 틔웠다. 그렇게 스멥은 한 시대를 풍미한 탑 라이너가 됐고, 수많은 탑 라이너가 꼽는 롤 모델로 자리매김했다.

 

은퇴를 알린 개인 SNS에서 밝혔듯, 이제 프로게이머 송경호의 인생은 끝났다. 하지만 이제 '인간' 송경호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다. 프로생활 마지막까지 불꽃을 태웠던 스멥이 인간 송경호의 삶에서도 그 불꽃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