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티비전 블리자드를 고소하여 오랜 성추행·성차별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냈던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정부 기관 공정고용주택국(DFEH)이 때아닌 ‘역풍’을 맞았다. 액티비전 블리자드 고소 건 전체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중대한 과실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고소한 또 다른 기관 ‘평등고용기회위원회’(EEOC)와 DFEH 사이에 발생한 ‘법적 갈등’ 속에서 새롭게 드러난 사실이다.
미국 연방 노동부 산하 기관인 EEOC는 DFEH와 유사하게 수년에 걸쳐 블리자드의 성차별 문제를 조사한 끝에 지난 6월 27일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고소했다. 그 결과 액티비전 블리자드는 1,800만 달러(약 213억 원) 규모의 성희롱·성차별 관련 기금을 출연하는 내용으로 EEOC 와 합의했다.
이번 논란은 DFEH가 EEOC의 해당 합의안에 대해 법원에 정식으로 이의신청을 하면서 시작됐다. DFEH는 EEOC의 합의안에서 양측이 ‘봉인’하기로 동의한 일부 자료가 자신들의 고소 건에 중요한 증거이기 때문에 소송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DFEH는 “EEOC 합의안에는 DFEH 측 고소 건에 있어 중요한 인사자료 및 성희롱·보복·차별 사례들을 언급한 기타 문건 등 증거들을 '사실상 인멸'(봉인)할 수 있게 허락하는 조항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DFEH의 이의신청에 EEOC가 공식으로 반박하는 과정에서 DFEH의 고소 및 이의신청에 법적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드러났다. 문제가 된 것은 DFEH에서 액티비전 블리자드 소송 건을 진두지휘한 법조인 2인의 이력이다. 둘은 다름 아닌 EEOC에서 액티비전 블리자드 조사에 참여했던 인물들로 알려졌다.
이는 캘리포니아주 변호사업 관련법상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 방지 위반에 해당한다. 해당 법에서는 공무원으로 일했던 사람의 경우 재직 당시에 개인적, 실무적으로 관여했던 사건에 관련된 고객을 변호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만약 이번 사건에서 해당 인물들이 적법하게 변호를 맡고자 했다면 EEOC 측에 사전 동의를 구했어야 한다.
*이해충돌이란 공직자의 직무 수행과 사적 이익이 서로 충돌해 청렴한 공직 업무가 저해되는 일을 말한다. 국내에서는 8년 전 부정청탁금지법과 함께 이해충돌 방지 법안이 제출됐으나 8년간 국회에서 표류하다가 2021년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사건이 불거지면서 비로소 4월 29일 통과된 바 있다.
EEOC에 따르면 DFEH는 이해충돌 방지법 위반 가능성을 인지한 뒤 즉시 EEOC 출신 변호사 2인을 대신할 외부 변호사들을 물색, 리더 자리에 앉혔다. 그런데 이로부터 고작 수 시간 뒤에 법원에 중재안 이의신청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변호사 2인이 이의신청 관련 작업을 모두 끝내 놓은 상태에서, 변호인 명단만 바꾼 것으로 추정할 만한 정황이다. 원칙대로라면 기존 변호사들은 해당 업무와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 이들이 작업한 내용은 후임자들에 승계될 수 없는 것은 물론, 관련된 조언을 건네는 것조차 금지된다.
즉 EEOC의 주장이 사실일 경우 DFEH가 외부 변호사들의 이름을 이용해 제기한 이의 신청은 원칙상 법적 효력이 없다. 이 뿐만 아니라 DFEH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고소 건 전체가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두 변호사는 DFEH 법무팀 전체를 대표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이번 의혹은 DFEH가 그간 진행해온 관련 업무 중 상당부분의 정당성에 의혹을 제기할 단초가 된다. 현지 법조계 일각에서는 액티비전 블리자드가 이번 논란을 DFEH와의 법정 공방에서 방어 수단으로 이용할 가능성까지 내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