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픽게임즈가 구글을 상대로 제기한 반독점 재판이 시작되었다.
결국 에픽게임즈는 애플과 구글이라는 양대 모바일 플랫폼 사업자를 상대로 법적 공방을 펼치게 됐다. 이런 공방의 이유는 에픽게임즈가 "애플과 구글이 부과하는 30%의 마켓 수수료는 과분하며, 이런 비율을 가진 수수료로 인앱 결제 시스템을 강제하는 것은 시장 지배적 지위를 남용하는 독점 행위다."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마켓 수수료를 둘러싼 힘겨루기는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진행되고 있다. 6일(현지 시각 기준) 시작된 에픽게임즈와 구글의 재판은 12월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과연 에픽게임즈는 거대 공룡 기업 구글의 30% 수수료 정책을 깨트릴 수 있을까? 관련 사항을 정리했다. /다스이즈게임 안규현 기자
2020년 8월, 애플 앱 스토어를 통해 배급되던 <포트나이트> 배포가 중단되며 신규 설치 및 업데이트 지원이 불가능해졌다. 에픽게임즈가 <포트나이트>에 자체 결제 시스템을 도입해 앱 스토어의 약관을 위반했다는 이유다.
이에 에픽게임즈는 캘리포니아주 지방 법원에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그동안 암묵적인 규칙처럼 여겨져 왔던 모바일 플랫폼 홀더의 '30%' 수수료율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포트나이트>가 애플 앱 스토어에서 퇴출당하자, 구글 또한 플레이 스토어에서 <포트나이트>를 배제하고 "열린 안드로이드 생태계에서는 개발자들이 여러 앱 스토어를 통해 앱을 배포할 수 있습니다. (중략) <포트나이트>는 정책을 위반했기 때문에 더 이상 플레이 스토어에서 제공할 수 없게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포트나이트를 플레이 스토어로 복구할 수 있도록 에픽과 협상할 뜻이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에픽게임즈와 애플 간 반독점 재판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2023년 4월 2심 재판에서 에픽게임즈는 10개의 항목 중 9개 항목에 패소했다. 캘리포니아주 지방법원은 2심 판결에서 iOS 버전 <포트나이트>에 대체 결제 수단을 도입한 후 거둔 1,200만 달러(당시 약 140억 원) 수익의 30%를 애플에 지급하도록 명령하는 한편, "애플은 더 이상 개발자에게 애플 구매 매커니즘을 강제할 수 없다"는 명령을 통해서 에픽게임즈의 취지를 일부 인정했다.
애플과 에픽게임즈는 모두 3심 재판을 준비 중이다.
"I am a Korean!" (출처: 팀 스위니 공식 X)
에픽게임즈와 애플의 법정 공방이 모바일 마켓 수수료에 대한 논의를 촉발한 이후, 관련 법안을 가장 먼저 입법한 곳은 한국이다. 2021년 대한민국 국회에서 특정결제 수단방식(인앱 결제)을 제한하거나 강제적용을 금지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일명 '구글갑질방지법'이 발의된 것이다.
해당 법령은 2022년 3월 시행됐다. 이에 팀 스위니(Tim Sweeney) 에픽게임즈 CEO는 존 F. 케네디의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 연설을 인용해 "나는 한국인!"이라는 글을 X(당시 트위터)에 게재하기도 했다.
한편 2022년 4월 구글은 인앱 결제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는 구글 플레이 스토어 내 앱에 대한 업데이트를 금지했다. 이후 수위를 높여, 2022년 6월부터는 해당 정책을 준수하지 않는 앱을 플레이 스토어에서 삭제하겠다는 '강수'까지 뒀다. 전기통신사업법 개정과 더불어 국내 서비스 '카카오톡'이 동일한 서비스를 더 저렴한 가격으로 결제할 수 있도록 아웃링크를 걸었던 게 구글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모티콘 플러스' 결제 방법으로 아웃링크를 도입한 카카오톡. 카카오톡은 이후 아웃링크 도입을 철회했다.
그간 국내외 앱 제공자들은 구글 생태계 외부에서 결제를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구글이 제공하는 인앱 결제를 이용할 경우 구독형 서비스는 15%, 그 외 거래는 30%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애플은 구독형 서비스 수익에 대해 첫해엔 30%, 이듬해부턴 15%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반독점 문제가 대두된 이후 양사 모두 100만 달러(약 13억 원) 이하 수익에 대해선 수수료율을 15%로 인하했다.)
참고로 애플은 구독형 서비스 수익에 대해 첫해엔 30%, 이듬해부턴 15%의 수수료를 부과한다. (반독점 문제가 대두된 이후 양사 모두 100만 달러(약 13억 원) 이하 수익에 대해선 수수료율을 15%로 인하했다.)
법률 개정 이후 구글은 자체 결제 모듈이 아닌 외부 결제 사업자를 통한 제3자 결제를 허용했고, 아웃링크는 허용하지 않았다. 제3자 결제 수수료율은 구독형 서비스 11%, 인앱 거래 26%로 기존과 비슷한 수준이다. 애플 또한 26%의 제3자 결제 수수료율을 책정했다. 사실상 규제를 무력화했다는 평이다.
이에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2023년 10월 자사 인앱 결제만 이용하도록 강제한 구글과 애플에 대해 68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기통신사업법은 금지 행위 위반 시 사업자가 부당하게 획득한 매출의 최대 3%를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총 680억 원 규모의 과징금을 산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간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규제를 피해 온 상황이지만, 이번 방통위 사례와 같은 플랫폼 수수료에 대한 규제가 활성화될 경우 산업에 미칠 영향이 지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 플레이 스토어와 애플 앱 스토어뿐 아니라, PS 스토어, Xbox 스토어, 닌텐도 스토어 등 콘솔 플랫폼 및 원스토어, 갤럭시스토어 등 국내 사업자가 제공하는 플랫폼 서비스 또한 그 영향을 받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방통위 제재는 미국, 유럽, 일본 등 규제기관에도 참고할 수 있는 사례가 되는 만큼 국내 이슈를 넘어 세계적인 후폭풍까지 예상된다.
구글의 반독점법 위반 혐의에 대한 소송은 에픽게임즈 외에도 두 건이 더 있었으나, 최근 모두 합의 종결됐다.
2021년 7월 36개 주 및 워싱턴 DC의 법무장관(Attorney General)이 연합해 구글이 부당하게 권한을 남용해 반독점법을 위반했다며 캘리포니아주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이들 주 정부들은 구글이 플레이 스토어를 이용하는 앱 개발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최대 30%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것에 대해 "과도한 수수료를 징수하고 유지하기 위해 구글이 안드로이드 앱 유통에서 경쟁을 축소하고 저해하는 반경쟁적 전술을 채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뉴욕주 법무장관 레티티아 제임스(Letitia James)는 "수년간 인터넷의 문지기 역할을 해왔던 구글이 디지털 기기의 문지기 역할도 하게 된 결과, 우리 모두는 매일 사용하는 소프트웨어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됐다."며 "우리는 구글의 불법 독점 권력을 종식시키고 수백만 명의 소비자와 기업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이번 소송을 제기하게 됐다."고 밝혔다. 소송을 발표한 성명에서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롭 본타(Rob Bonta)는 구글이 소비자 선택을 제한하고 앱 개발자에게 터무니없는 수수료를 징수함으로써 안드로이드 기기 고객의 신뢰를 침해했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2023년 9월, 소송의 당사자들은 연방 판사에게 11월 6일 진행될 재판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판 전에 합의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으나, 자세한 합의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집단 소송을 주도한 레티티아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
2022년 5월엔 데이트 애플리케이션 '틴더' 개발사인 매치그룹이 구글의 인앱 결제 의무화는 반독점법 위반이라며 이를 금지해달라는 소송을 미국 법원에 제기했다. 매치그룹의 캘리포니아주 북부 연방지방법원에 제출한 소장에서 구글이 앱 유통 독점력을 활용해 앱 개발사가 인앱 상품에 대해 소비자에게 비용을 청구하는 기능을 제한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매치그룹은 구글이 구글플레이 앱 스토어에 계속 남으려면 자사 인앱 결제를 사용하라고 강요했다고 밝혔다. 매치그룹의 일부 앱은 지난 10년간 구글의 인앱 결제가 아닌 별도의 결제 방식을 채택해 왔으나, 2022년 6월부터 인앱 결제 대상에 포함됐다.
하지만 2023년 11월, 약 1년 반의 소송 끝에 구글과 매치그룹은 모든 청구와 소송을 취하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구글은 이번 합의에 대해 "안드로이드 생태계의 안정성과 지속적인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사례"라면서 "구글 플레이 스토어 앱에서 사용자들이 기대하는 안전하고 원활하며 고품질의 경험을 계속해서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구글과 매치그룹의 합의 소식이 전해졌던 11월 1일, 팀 스위니 에픽게임즈 CEO는 X(옛 트위터)를 통해 "에픽은 구글을 상대로 홀로 재판에 갈 예정이다. 우리는 유저와 개발자 간의 거래를 통제, 감시 및 과세하는 구글의 소위 '사용자 선택 청구'(user choice billing)를 거부한다."며 법정 공방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로서 에픽게임즈는 거대 플랫폼 구글과 애플을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펼쳐나가야 하는 상황이다.
에픽게임즈 CEO 팀 스위니는 2017년 데브컴 컨퍼런스에서도 "앱 스토어들은 게임 배급의 대가로 수익의 30%를 가져간다.", "마스터카드나 비자 같은 다른 결제 회사들은 수익의 2%나 3%를 가져가는데, 이상한 일이다."라고 발언하는 등 앱 스토어 수수료가 과분하다는 의견을 밝혀왔다.
그렇다면 에픽게임즈가 운영하는 게임 유통 플랫폼은 어떨까?
2018년 에픽게임즈는 게임 유통 플랫폼 에픽게임즈 스토어를 출시했다. 에픽게임즈 스토어의 수수료율은 12%로, 모바일 앱 스토어 및 동일한 PC 플랫폼인 스팀과 비교하면 크게 낮은 비율이다. 에픽게임즈 스토어에 독점 출시하는 신규 PC 게임에 6개월간 수수료를 면제하는 '에픽 퍼스트런', 다른 플랫폼 또는 구독형 게임 서비스에 입점한 게임이 에픽게임즈 스토어에 입점할 경우 최초 6개월간 수수료를 면제하는 '나우 온 에픽' 정책 또한 시행하고 있다.
언리얼 엔진으로 제작된 게임은 에픽게임즈 스토어 결제 솔루션을 사용하면 언리얼 엔진 로열티가 면제되며, 서드 파티 결제 솔루션 또한 이용할 수 있다. 서드 파티 결제 솔루션을 이용할 경우 스토어 수수료는 0%다.
에픽게임즈는 자사 스토어의 수수료 정책에 대해 "개발자 친화적"이라고 표현한다. CEO 스위니의 주장과도 상통하는 맥락이다.
한편 애플과 구글은 자사의 수수료율이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기술 전문 외신 더 버지(The Verge)에 따르면, 6일(현지 시각 기준) 시작된 에픽게임즈와 구글의 재판에서 구글 측 변호사 글렌 포머런츠(Glenn Pomerantz)는 30% 수수료에 대해 "독점 수수료가 아닌 시장 수수료"라고 설명했다. 닌텐도 스토어, 엑스박스 스토어, 스팀 스토어에서 지불하는 수수료와 동일하다는 점 또한 덧붙였다.
포머런츠는 구글 플레이 및 안드로이드 생태계가 페이팔과 같은 결제 처리 서비스보다 더 많은 가치를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구글 플레이 프로텍트는 보안을 위해 매일 1,000억 개 이상의 앱을 검사하며, 30억 명이 넘는 190개 이상 국가의 안드로이드 유저에게 앱을 배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플레이 스토어에서 제공하는 대부분의 앱이 무료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앱 다운로드에 따른 요금을 부과할 경우 소규모 개발자의 부담이 확대되고 혁신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수료를 지불하는 것은 소수지만, 그 덕에 많은 무료 게임이 개발되고 서비스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애플 역시 마찬가지로 iOS 플랫폼이 제공하는 보안 성능을 내세웠다.
에픽게임즈는 현재 애플과의 2심 재판에서 사실상 패소한 상황. 애플에 비해 상대적으로 개방되어 있다고 평가되는 구글과의 재판은 승소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세계적으로 반독점 규제 기조가 확산됨에 따라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각국의 규제 정책이 변수다.
2022년 미국에선 인앱 결제 방식에 대한 제한을 금지하는 '앱 마켓 개방법'(Open App Markets Law)이 상원에서 발의되었으나 의회 통과에 실패해 입법에는 이르지 못했다. 같은 해 EU는 제3자결제 허용을 의무화하는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 Act)을 시행했다.
6일 시작된 에픽게임즈와 구글의 재판은 12월까지 계속되며, 순다르 피차이(Sundar Pichai) 구글 CEO와 히로시 록하이머(Hiroshi Lockheimer) 안드로이드 사장을 비롯해 애플 앱 스토어, 넷플릭스, 모토로라, AT&T 등 유수의 기업 대표들이 증인으로 재판에 참석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