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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기획] 100일 넘긴 '세나 키우기', 방치형 생태계는 변했나?

기존 문법 위에서의 영리한 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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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준(음주도치) 2023-12-18 18:18:28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심리다. '자동 전투', '소탕'이 없는 모바일게임은 피로도 때문에 오래 하기 힘들다는 유저들이 적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다수의 MMORPG를 포함해 대작들이 쏟아져 나온 2023년, 방치형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세븐나이츠 키우기>(이하 세나 키우기)는 모바일게임 매출 상위권에 오래 머물렀다. 지난 9월에 출시되어 벌써 100일을 넘겼으니, 초반 스퍼트를 넘기고 이제 마라톤 구간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방치형 장르 안으로 국한해도 올해 다수의 게임들이 출시됐던 것을 감안하면, <세나 키우기>의 성적은 더욱 의미가 있다.


단순히 넷마블과 같은 대형 게임사가 '키우기' 장르에 뛰어들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방치형 장르가 가진 저력이 다시 한번 수면 위로 올라온 것 뿐일까? <세나 키우기>를 중심으로 올해 방치형 장르가 시도해온 변화를 들여다본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2023년 12월, <세나 키우기>는 구글플레이 스토어 매출 순위 5~20위, 애플 앱스토어 매출 순위 1~12위 사이를 지키고 있다.
<붕괴: 스타레일>, <원신> 등의 인기 게임보다 매출 순위가 높다.


# 실제 시간을 투자해 재화를 분배한다?

게임 업계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방치형 장르를 좋게 평가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 게임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조작을 통한 상호작용'을 상당수 덜어낸 장르가 방치형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 정해진 문법 안에서 만들 수 있는, 상대적으로 개발이 쉬운 장르라서 저평가받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기자 본인은 방치형 장르를 싫어하지 않는 편이다. 진입 장벽이 낮아 편한 마음으로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을 포함해, 비슷한 유형의 게임들 안에서도 나름의 차별화를 추구한 숨은 옥석 같은 게임들이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국내에서 서비스 중인 다수의 방치형 게임이 '플레이어의 실제 시간을 투자해 재화 분배를 하는 타이쿤 시뮬레이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실제 시간을 통해 얻은 인게임 재화를 필요한 영역에 투자하면, 게임의 진행도 및 높은 전투력을 얻는 방식이다. <중년기사 김봉식>과 같은 RPG, <갓물주 키우기>와 같은 경영 시뮬레이션, <어비스리움> 등의 힐링 게임이 전투 유무에 관계 없이 큰 틀에서 모두 같은 문법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실제 시간' 뿐만 아니라 '실제 재화'까지 게임에 영향을 주게 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은, 방치형 장르의 전반적인 특징에서 그리 동떨어진 발상이 아니다. 시간, 재화를 오래 투자한 플레이어들은 '매몰 비용' 때문에라도 해당 게임의 다음 이벤트를 기다리게 된다.


전투 유무를 떠나 방치형 장르 전반의 문법이 비슷해졌다. 사진은 <갓물주 키우기>


# <세나 키우기>는 조금 달랐다

방치형 게임을 많이 해봤던 입장에서, 현재 장르 1위를 달리고 있는 <세나 키우기>가 특출난 재미를 가진 게임이라기 보다는, 기존 문법을 비튼 게임에 가깝다고 느꼈다.


(호불호가 갈렸지만)​ "1777뽑기 증정"과 "손놔 재밌는 세키" 등의 문구를 강조한 마케팅​과 <세븐나이츠> IP에 대한 인지도​는 유저 초반 유입에 큰 역할을 했다. 방치형 장르니까 가볍게 한 번 즐겨볼까-라는 허들을 넘기엔 충분한 요소였다. 광고처럼 '뽑기'는 <세나 키우기>의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세나 키우기>의 초반 플레이는 퀘스트 수락, 뽑기, 재화 획득 및 분배 3개의 행동을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초반에 재화를 많이 제공해서 '성장 체감'을 하게 만드는 데 집중한 다른 게임들과 달리, <세나 키우기>는 상대적으로 완만한 성장 커브 안에서 캐릭터 및 펫 뽑기를 많이 반복하는 구조다. 다른 모바일게임에서 뽑기(가챠)를 경험해본 유저라면, 이렇게 많이 뽑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뽑기 횟수가 많다.


다만, 일정 횟수 이상 뽑기를 수행해 특정 '뽑기 레벨'에 도달해야 '레전드' 등급이 나오기 시작하며, 그 이후의 뽑기 확률은 '레전드' 등급 전체가 0.1%, 개별 레전드 캐릭터가 0.002%로 매우 낮다. 일명 '명함'과 '1성'의 능력치 차이가 크다는 것도 유저들 사이에서 많이 언급됐다. 획득하기 어렵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상위 등급 캐릭터 및 아이템의 인게임 가치가 높다는 뜻이고, 시간 투자 및 과금을 통해 얻는 보상의 크기가 작지 않다는 의미다.


<세나 키우기>의 뽑기는 확률이 낮은 대신 초반부 뽑기 시행 횟수를 늘렸다.
다른 모바일게임의 뽑기 문법에 익숙한 유저들이라면, 뽑기 확률이 낮은 것과는 별개로,
<세나 키우기>가 뽑기 기회를 많이 준다는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다.

캐릭터 슬롯이 10개나 된다는 것도 <세나 키우기>의 특징 중 하나다. 완만한 성장 커브와 맞물려, 10개 이상의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것이 부담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슬롯이 하나씩 해금되는 초반 플레이에 명확한 동기가 되어주는 동시에 성장을 체감하게 해준다.


또한 기존 <세븐나이츠> 캐릭터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픽업 캐릭터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를 유저 커뮤니티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키우기' 게임은 개발만큼 운영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IP의 힘이 <세나 키우기>의 중간 레이스를 받쳐주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런 방향성에 비해 게임의 전체적인 재미는 다소 심심하다. 뽑기 연출은 무난하고, 콘텐츠 도전 욕구에 대한 자극도 약한 편이며, 하루에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명 '숙제'의 양도 적은 편이다. 차별화를 위한 '더함'과 '덜어냄'의 과정에서 명확한 포지셔닝이 덜 된 영역 또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나 키우기> 정성훈 총괄 PD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강렬한 이펙트보다는 피로감이 덜한, 박자감 있는 연출", "콘텐츠보다는 플레이의 리듬감에 신경을 많이 썼다. 게임의 즐거움은 시청각적인 요소 또는 좋은 리듬에서 오는 단기적인 패턴에서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잡화 아이템을 사용해 재화를 얻는 과정은 그 효용에 비해 가이드 퀘스트에 너무 자주 등장해 불편했다.
앞서 분석한 것처럼 인게임 캐릭터 및 아이템에 대한 가치를 높여 과금에 대한 보상을 크게 한 상황에서
광고 제거 상품까지 월 정액으로 나와야만 했을까?
월 정액의 한 달이 30일이 아닌 28일이라는 점도 이미 유저들이 지적했던 사항이다.

# 방치형 생태계의 미래는?

올해는 <세나 키우기>라는 대기업 게임이 그 시장을 주도했다는 차이가 있지만​, 사실 방치형 장르의 인기가 2023년에만 두드러졌던 것은 아니다. 작년 12월에도 장르 내 유사성을 기반으로 신규 게임에 옮겨가 초기의 빠른 성장을 즐기는 일명 '방치형 유목민'을 조명한 기사를 작성했다. 


그런데 구글플레이 스토어 100만 다운로드를 넘긴 '방치형 게임'을 개발해 서비스 중인 A 대표는 해당 기사를 읽고 "2023년 현재 방치형 유목민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비슷한 게임들이 다수 출시되면서 신규 게임에 흥미를 가지는 유저보다, 특징이 두드러지는 게임, 운영을 잘 하는 게임에 정착하는 유저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참고로 A 대표가 방치형 유목민이 줄어들었다고 크게 체감한 것은 넷마블의 <세나 키우기> 출시 이후라고 한다. 실제로 이런 유저 경향성이 있다면, 출시 후 100일을 넘긴 <세나 키우기>의 건재한 매출이 일정 부분 설명된다. 


A 대표는 "방치형 게임 중에도 뭔가 다른 차별성을 가진 게임들이 분명 존재한다. ​다만, 동종 장르 안에서도 쇄신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한다"고 덧붙였다.


<세나 키우기>라는 단일 게임이 판을 바꿨다고 보긴 어렵지만, 
쏟아지는 비슷한 게임들에 유저들이 피로감을 느낀다는 의견은 귀 기울일 만하다.


그렇다면 방치형 장르는 앞으로 지금의 파이를 유지하거나, 더 많은 유저를 수용할 수 있을까? 너무 많은 게임 출시로 인해 이미 레드오션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2024년 출시할 신작으로 방치형 게임을 개발 중인 B 대표는 방치형 장르의 강점으로 "낮은 진입 장벽을 기반으로 한 대중성"을 꼽았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어려운 직장인들, 복잡한 조작이 어려운 비게이머층에게 RPG의 핵심 요소인 성장의 재미를 상대적으로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장르"라고 표현했다. 


이어 B 대표는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순수한 방치형 장르의 입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낮아질 것이라 예상하지만, 성장의 편의성과 같은 방치형 게임의 장점은 충분히 활용 가치가 있는 특징이므로, 다른 장르와의 조합을 통해 발전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지난 9월, <세나 키우기> 인터뷰 당시 넷마블 김형진 사업부장 또한 "최근 몇 년 사이 방치형 요소를 적용한 게임이 많이 나왔다. 장르적으로 볼 때 몇 안 되는, 성장하고 있는 시장 중 하나"라고 언급했다.


<세나 키우기>로 대표됐던 2023년의 방치형 게임 시장. 2024년에는 또 어떤 신작들이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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