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도 점점 블록버스터로 흐르면서 하나의 프로젝트에 수많은 개발자들이 참여한다. 그들은 각자 맡은 일을 하면 된다. 하지만 거대해진 개발팀을 꾸려 나가고 작업을 일정대로 이끌어 나가는 것은 말처림 쉽지만은 않다.
거기에 ‘효율적으로’라는 전제까지 붙으면 개발팀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그렇다면 실제 개발 현장에서 프로듀서들은 어떻게 팀을 이끌면서 게임을 만들고 있을까?
유비소프트 토론토의 알렉스 패리제아우 수석 프로듀서가 GDC 2011에서 ‘한 명의 프로듀서가 몬스터화된 개발팀을 길들였던 이야기’라는 강연을 진행했다. /샌프란시스코(미국)=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기자
■ 대규모 개발팀이 필요한 시대, 문제는 운용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하나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인원은 점점 늘고 있다. 영화 <트랜스포머>에는 1,000 명 이상, 애니메이션 <월 E>에는 400 명, ‘태양의 서커스’ 같은 쇼에도 200 명 이상의 인원이 참여하고 있다.
요즘 게임업계도 마찬가지. 그러나 대규모 복합 프로젝트를 경험한 프로듀서나 매니저의 수는 적은 편이다.
때문에 그들은 다양하고 또 막연한 방법으로 팀을 이끌어 나가는 경우가 많다. 규모가 작은 팀에서는 고민할 필요도 없었던 일이 대형 개발팀에서는 자주 발생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팀을 소규모로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사람이 많을수록 좋은 아이디어는 넘쳐난다. 그리고 블록버스터급 일수록 대규모 팀은 효과적이다. 다시 말해 대규모 팀이 아니면 대형 게임도 등장하기 힘들다.
그리고 분업화만 잘 이루어진다면 개발팀의 규모가 클수록 효율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다. 문제는 팀을 컨트롤하기 힘들다는 것. 분명히 클수록 좋지만 어떻게 꾸려 나갈지 모른다면 작으니만 못할 수도 있다.
알렉스 패리제아우 프로듀서는 대규모 개발팀을 오토바이인 듀카티 ‘몬스터’에 비교했다. 강하고 빠른 오토바이지만, 엄청난 크기로 인해 운전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 <스플린터 셀: 컨빅션> 개발팀의 실제 사례
대작으로 인정받은 <스플린터 셀: 컨빅션>은 235명이 2년 반 동안 개발을 진행한 결과물이다. 사실 2년 반은 팀이 재정비되고 난 이후의 시간이고, 실제로는 5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지난 2005년 개발을 시작한 <컨빅션>은 1년 동안 50여 명의 작은 팀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블록버스터 게임으로 개발되면서 첨차 인원이 늘어났다. 발매를 앞둔 2007년에는 개발팀 인원이 100명을 넘어섰다. 말 그대로 대형 개발팀이 된 것이다.
하지만 대규모 개발팀의 운영은 어려웠다. 팀원 사이의 소통 부재와 재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분업화 등으로 인해 프로젝트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한마디로 제대로 팀이 운영되지 못했고, 단순히 사람만 많이 채웠던 것이다.
재개발이 결정된 이후 개발팀의 인원이 대폭 줄어들었다. 이후 팀을 다시 정비하면서 지난 실패를 경험으로 삼아 효율적인 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게임이 완성돼 가면서 개발팀이 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성됐고, 인력이 더 늘어날 수 있게 됐다. 그들이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내린 최적의 결론은 ‘대규모 팀을 구성할 경우 작업을 구별해 팀을 나누라’는 것이다.
■ 팀 안의 팀을 만들어라
그는 큰 규모의 팀일수록 하나의 작업에 집중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래픽, 게임 플레이, 사운드 등 다양한 업무를 분산시키고 동시에 개발을 진행한다. 물론 체계적인 조직을 형성해야만 한다. 각 세부 개발팀에 권한을 집중시키고, 불필요한 작업은 줄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컨빅션> 개발팀은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팀이다. 하지만 개발 초기부터 SP 맵 프로덕션, 엔진 및 피처, 스토리, 협동모드의 4개 팀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각각의 팀 안에 다시 전문화된 개발팀을 꾸려서 ‘팀 안의 팀’을 구성했다.
예를 들어 엔진 및 피처 팀의 경우 엔진, 게임 플레이, 인공지능 등만 전담하는 별도의 팀을 다시 세팅했다. 서로 불필요한 작업은 줄여서 전문성을 키운 것이다. 중요한 것은 팀별로 다시 전문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이다.
팀 운영과 콘텐츠 방향성도 구분해야 한다. 팀 안에서는 프로듀서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구분하라는 것이다. 즉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개발자들은 각자 맡은 일을 하고, 프로덕션 매니저(PM)는 결과물을 관리하도록 한다.
레벨 프로덕션 팀의 조직 구성도.
<컨빅션> 개발팀은 PM과 콘텐츠 팀이 모여 하나의 팀을 이룬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팀을 복제하듯이 세분화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2개의 팀은 다시 한 명의 프로듀서가 관리한다.
어떻게 본다면 피라미드 판매조직과도 비슷하다. 한 명의 관리자가 여러 개발자를 이끌면, 다시 상위 조직에서 하부 조직을 이끌어 주는 식이다. 그리고 개발 단계에 맞춰 조직을 서서히 키워 나간다. 물론 기존의 개발단계를 혁신시킨 새로운 단계가 필요하다.
프로듀서는 팀을 관리하고, PM과 책임 개발자는 콘텐츠를 관리한다.
■ 개발 단계에 따른 팀의 확장
유비소프트 몬트리올은 개발 단계를 기획/제작준비/제작/공개/발매 이후로 나눴다. 각 단계에 따라서 개발팀 인원을 조금씩 늘려 갔다. <컨빅션>의 예를 살펴보자.
처음 기획 단계에서는 핵심 팀원 30 명에서 60여 명만 모여 아이디어를 모으고 게임의 뼈대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제작준비 단계에서는 50~100여 명이 모여 핵심 팀과 추가 팀을 구성했는데, 그중에서 80%가 프로그램 팀으로 채워졌다.
개발 초기인 기획 단계에서는 적은 인원으로 아이디어와 혁신에 집중한다.
중요한 제작단계에서는 가장 많은 인원인 250여 명이 모였다. 여기서 강조할 점은 ‘개발 방향이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절대로 팀을 키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제작 단계에서는 모든 작업 수준이 평행을 이뤄야 한다.
게임을 공개하는 시점에서는 개발팀 규모를 80~120 명 수준으로 줄였다. 대부분의 작업을 마친 상태에서 필요한 인원은 프로그래머와 디버깅을 지원할 인력, 그리고 마무리 작업을 하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발매 직후에는 15~40여 명 수준으로 팀을 구성했다.
콘솔 게임의 경우 발매 이후에 더 이상의 추가 개발은 없다. 남은 일은 패치를 지원할 엔지니어와 다운로드 콘텐츠 팀만 구성하면 되기 때문이다.
제작 단계에서는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 단, 비전이 뚜렷할 경우에만 팀을 키워라.
■ 몬스터화된 개발팀을 이끌기 위한 조건들
우스갯소리 같지만 거대한 규모의 개발팀을 이끌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공간이 필수적이다. 하나의 팀이지만 각각 팀으로 구분돼 있고, 하는 일도 다르다. 하지만 이들이 만든 결과물이 하나로 맞물려야 게임으로 만들어진다.
즉 서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개발자 개인과 개인의 의사소통도 필요하지만, 팀과 팀의 소통이 없이는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선순위를 두고 작업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항상 재검토해 보고, 우선순위 재설정을 규칙으로 만들어야 한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한 번에 도착하는 계획보다, 최적의 방법을 그때 그때 찾아가라는 이야기다.
알렉스 패리제아우 프로듀서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위대한 프로듀서는 <스타워즈>의 제다이 마스터인 ‘요다’이다. 그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수많은 대비책을 미리 만들고 설정했다. 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볼 수 없다.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대규모 개발팀을 이끄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처칠은 성공이란 실패가 거듭돼도 열정을 잃지 않는 능력을 말한다고 했다. 누구나 대규모 개발팀을 이끄는 데 한 번에 성공할 수는 없다. 오늘 내용이 향후 여러분의 활동에 조금의 도움이 됐으면 한다”며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