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게임중독 예방기금 제도화를 위해 게임업계에 돈을 요구하고 나섰다. 최대 4,000억 원에 달하는 기금의 재원을 충당하라는 소리다.
16일 한나라당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이정선 의원과 사단법인 민생경제정책연구소의 공동주최로 ‘인터넷중독 예방기금 마련을 위한 기업의 역할’이라는 토론회가 열렸다. 현장 분위기는 향후 추진될 여성가족부의 정책을 위해 게임업계가 기금을 마련하라는 성토대회처럼 흘러 갔다.
■ 게임 과몰입 부담금을 징수한다?
오늘 토론의 주요 내용은 게임업계가 자율적으로 조성한 기금을 법제화해 향후 제도적으로 준비하자는 것이었다. 현재 게임업계는 게임중독 예방을 위해 주요업체들이 기금을 출연하고, 게임문화재단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지금까지 모인 기금은 올해 85억 원 정도다.
그런데 게임업계에 강제적으로 기금을 출연시키자는 움직임이 갑자기 많아졌다.
지난 14일 미래희망연대 김을동 의원은 “셧다운 제도보다 치유센터 설립이 우선이다”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게임 과몰입 부담금 징수’를 내용으로 하는 게임법 일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어서 16일 이정선 의원도 토론회에서 “게임중독 예방과 치료를 위한 기관 설립에 들어가는 자금을 사업체에 일정 부분 부담시키는 내용의 법률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심야 강제 셧다운 제도의 실효성이 문제로 지적되며 법사위를 통과하지 못하자, ‘돈을 걷는 쪽’으로 노선을 바꾼 셈이다.
게임업체들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출연해 위탁·운영하는 게임문화재단.
■ 게임업계 매출의 일부를 원천 징수?
토론에 참가한 경민전문대학 김춘식 교수는 방송의 발전기금을 예로 들며 게임업계가 출연해야 할 금액을 암시했다. 각 방송사업자가 출연하는 방송발전기금은 매출액의 6% 정도. 게임업계의 전체 매출 규모가 약 6조 원임을 감안할 때 4,000억 원에 이르는 기금 조성을 요구한 셈이다.
놀이미디어교육센터 권장희 소장은 “게임업계가 이익의 10%를 게임중독 문제 해결을 위한 기금에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경우 기금의 규모는 약 2,000억 원에 이른다.
두 토론자는 사실상 여성가족부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여성가족부는 게임업계로부터 최소 2,000억 원, 최대 4,000억 원의 기금 조성을 요구하는 모양새가 됐다.
강제 셧다운 제도를 발의한 민주당 최영희 여성가족위원장은 “현재 게임업계가 자율적으로 조성한 기금 외에도 향후 예방을 위한 기금을 내야 하며, 셧다운 도입에도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00억 원의 기금을 마련해 면죄부를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여성가족부가 기금 운용, 문화부 “법제화 반대”
기금이란 ‘국가가 특정 목적을 위해 특정한 자금을 운용하려고 법률로 마련하는 재원’이다. 게임중독 예방기금이 법으로 정해질 경우, 해당 기금은 청소년보호 업무를 담당하는 여성가족부가 운용하게 된다.
결국 여성가족부의 기금 출연 제도화 움직임은 예산부족으로 인한 재원 공백을 게임업계로부터 충당하려는 노림수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게임은 방송과 달리 공공사업이 아니고, 카지노처럼 사행성 유발 산업이 아닌 만큼 기금 출연의 법제화 추진도 무리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토론회에 참석한 문화체육관광부 이기정 게임콘텐츠산업과장은 “게임중독의 예방과 치료를 위한 재원 마련의 필요성은 있다. 그러나 민간자율과 법적강제 방법이라는 선택은 중요한 문제다. 정부의 정책 기조는 준조세성 각종 기금을 통폐합하거나 폐지하는 것이다”며 법제화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