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 ID/PW 찾기

취재

[KGC] THQ 파산부터 눈보라 재현까지 “이젠 말할 수 있다”

‘COH 2를 회상하며’와 ‘2차 세계대전 중 한파의 재현’ 강연 종합

전승목(아퀼리페르) 2013-09-26 23:48:47


“우여곡절 끝에 얻은 결과물이었고, 값진 배움을 가져다 줬습니다.”

KGC 2013 강연에 나선 렐릭 엔터테인먼트 개발자들은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이하 COH 2)를 두고 위와 같은 자평을 내렸다. 기술적인 도전도 이겨내야 했지만, 모회사 THQ가 부도 절차를 밟아 출시가 위태로웠던 탓도 있다. <COH 2>의 개발기간은 예상보다 4개월 더 연장돼 29개월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렐릭은 <COH 2>를 개발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다. 어려움 끝에 의도한 만큼 2차 세계대전을 재현했다는 결과물도 값졌고, 플레이어에게 영향을 끼치는 기후와 환경을 만들어내 개발 노하우와 자신감을 쌓을 수 있었다. 조직이 시행착오를 거쳐 가며 단결력을 높인 끝에 게임을 완성했다는 성취감도 빼놓을 수 없다.

<COH 2>를 고생하며 출시한 만큼의 성과를 얻은 셈이다. 덕분에 렐릭은 지금껏 말할 수 없었던 고생담과 개발후기를 이야기할 수 있는 여유도 얻을 수 있었다.

26일 KGC 2013에서는 어렵사리 <COH 2>를 출시한 뒤 여유를 얻은 렐릭에게서 직접 개발 후기를 들을 수 있었다. <COH 2> 기획 단계부터 출시 후 상황을 담담하게 털어낸 스테판 윌리엄스 어소시에이트 프로듀서, 게임 속 눈보라를 만드느라 사투를 벌인 다니엘 바레로 시니어 프로그래머의 개발 이야기를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전승목 기자


■ 리드 디자이너의 교통사고와 THQ의 부도를 넘어 전진


<COH 2>를 회상하며’라는 주제로 강연한 렐릭의 스테판 윌리엄스 프로듀서.

개발 단계에서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렐릭이 하이엔드급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이하 RTS)을 계속 만들어왔는데다, <COH>는 1편이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다음 RTS게임으로 <COH 2>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에 이견이 있을 수가 없었다.

콘셉트도 쉽게 정해졌다. 소련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바실리 그로스만’이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며 쓴 <A writer at war>을 보고 전쟁의 잔혹함을 묘사하기로 명확히 정한 덕분이다. <COH 2>에서 사령부가 아군을 버리고 철교를 폭파하라고 명령하는 장면, 나치와 싸우는 레지스탕스를 이용하고 버리는 장면, 후퇴하는 아군을 장교가 쏴죽이는 장면 등 전쟁의 비정한 면이 나온 것은 <A writer at war>의 영향이라 볼 수 있다.


<COH 2> 캠페인 스토리의 영감을 준 서적 <A writer at war>.

개발 과정은 순탄하지 못했다.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박물관을 취재하고, 독일을 방문하고, 실제 무기들을 조사하는 것은 손이 많이 가긴 했으나 ‘충실하게 진행되는’ 일이었다. 문제는 렐릭에게 악재가 겹쳐 일어났다는 것이다.

스테판 윌리엄스는 많은 악재 중에서 특별히 뼈아팠던 기억을 털어놓았다. 첫째는 <COH>의 리드 디자이너 브라이언 우드가 2012년 9월 3일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건이다. 비록 리드 디자이너의 공석은 바로 채워졌으나, 원작의 성공을 이끈 브라이언 우드의 빈자리는 크게만 느껴졌다.


왼쪽이 브라이언 우드. 교통 사고가 일어날 때 임신한 아내를 지키기 위해 핸들을 꺾었고, 그 결과 자신의 목숨을 잃은 대신 아내와 태아를 지켜냈다.

예산도 부족했다. 이 때문에 제한된 예산으로 어느 수준까지 게임의 유닛, 환경, 시나리오를 구현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해야 했다. 가장 어려웠을 때는 몇몇 탱크의 부품을 복사해서 다른 탱크에 붙여 넣기를 할 정도였다.

안 그래도 부족한 예산은 모회사 THQ의 부도로 더 심각해졌다. 이 문제는 세가가 렐릭을 인수한 뒤에야 해결됐지만, THQ가 자회사와 IP를 경매로 매각하는 동안 게임 개발이 정체되는 문제가 생겼다. 이 때문에 출시는 4개월 뒤로 크게 밀렸다.


THQ의 부도로 출시 기간이 늦춰졌다. 당시 상황은 다음 기사에서 확인 가능하다. ☞ 원본기사

마지막 악재는 조직 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일어났다. <COH 2> 팀은 싱글플레이팀과 멀티플레이팀, 그리고 양쪽 팀을 지원해주는 ‘UI/아트/비디오 팀’, 별칭 ‘프랑켄슈타인 팀’으로 나뉘어 있었다.

문제는 싱글플레이팀과 멀티플레이팀이 요구하는 바가 달랐다는 것이다. 그 결과 중간에 끼여 있는 프랑켄슈타인팀은 비효율적으로 운용될 수밖에 없었다. 양쪽 팀의 요구를 수렴하다 보니 이미 만들어 둔 UI, 아트, 영상을 버려야 하는 상황이 일어났다.

비효율적으로 운영된 것은 프랑켄슈타인팀만이 아니었다. 모든 팀이 개별적으로 작업하는 경향을 보였고, 중복되거나 다른 팀의 반대를 받은 콘텐츠가 폐기되는 낭비가 거듭됐다.

스테판 윌리엄스는 “서로 다른 팀의 협업을 촉진하기 위해 대화하는 시간을 늘리려 애썼다. 비효율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고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며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THQ의 공중분해, 렐릭 안에서의 의사소통 부재로 출시일이 4개월 밀렸다.

현재 렐릭은 효율적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에는 회사 내에서 독립 팀을 만들고 자금을 지원해주는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직원들끼리 스스로 개발하고 싶은 게임을 만들도록 허용해 개방성을 높이고, 팀원끼리 활발히 소통하도록 유도해 스튜디오 전체의 팀워크를 개선하기 위해서다.

또한 선임 디렉터가 결정한대로 게임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팀별로 콘텐츠를 만들어 경쟁에서 이긴 아이디어를 게임에 적용하는 방식도 활용하고 있다. 비록 <COH 2>를 개발하면서 팀워크에 결함이 나타난 것은 사실이나, 오히려 렐릭에게 전화위복이 됐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아직 <COH 2>가 해피 엔딩을 이뤘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전쟁의 비극을 너무 강조한 결과 러시아 유저들이 피와 땀을 바쳐 나라를 지킨 군인들을 모독한 역사 왜곡이라는 반응을 보였고, 러시아에서 판매 금지 처분을 받는 상황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스테판 윌리엄스는 “세계 전체에 서비스하는 <COH 2>의 캠페인 콘텐츠를 모조리 바꿀 생각은 없다. 단, 구소련 지역에 서비스하는 <COH 2>에서는 문제가 되는 캠페인 미션을 삭제하고 이를 대신할 다운로드 콘텐츠를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추가로 대응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니 지켜봐 달라고 해명했다.


러시아 게임 배급사 1C-SoftKlab의 <COH 2> 판매 중단 공지.


■ 승리를 가져온 겨울을 재현하며 차세대 게임 개발 역량을 쌓다


<COH 2> 렌더링 기술: 제 2차 세계대전 중 한파의 재현’라는 주제로 강연한 렐릭의 다니엘 바레로 시니어 프로그래머.

<COH 2>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눈보라’와 러시아의 추위를 구현한 개발 뒷이야기는 렐릭의 시니어 프로그래머 다니엘 바레로가 맡았다.

사실 러시아의 얼어붙은 땅만 묘사할 생각이었다면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다. 건물과 지형을 흰색으로 칠하기만 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렐릭은 그러지 않았다. 소련군의 저항과 함께 독일군을 몰아낸 것이 바로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다. 승리의 주역을 흰색 페인팅과 눈가루 날리는 효과만으로 처리해서는 하이엔드급 RTS라 자부할 수가 없었다.

렐릭은 러시아의 추위와 겨울 풍경이 전쟁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감안해, 전술 요소로 활용하는 것은 물론 비주얼도 신경 써서 구현하기로 결정했다. 이 중에서 겨울 풍경을 제작하는 작업에 다니엘 바레로가 참여했다.


현실처럼 눈이 지붕에 쌓이는 풍경부터 재현하기로 했다.

다니엘 바레로는 먼저 지붕에 쌓인 눈부터 현실적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현실의 눈처럼 지붕 중앙에는 두껍게 쌓이고, 가장자리에는 얇게 쌓이거나 안 쌓이도록 구현했다. 이러한 눈의 특성을 묘사하기 위해 게임 속 세계를 위에서 보는 카메라 시점을 만들고, 상대적으로 높이가 높은 곳과 낮은 곳을 구분하고 낮은 곳에 눈을 쌓지 않도록 프로그래밍했다.

또한 건물이 파괴된 자리에 쌓인 눈은 허물어지고, 건물 바로 근처에 포탄이 떨어지면 후폭풍에 휘말려 눈이 날려간 것 같은 자국을 남기도록 설정했다.


지붕 중간은 두껍게, 가장자리는 얇게 쌓이도록 디자인했다.




무너진 지붕 위의 눈이 허물어지고, 포탄 폭발의 후폭풍에 흩날린 흔적도 표현.

얼음은 전체 맵을 격자로 나눠 타일을 깔듯 배치했다. 또한 각 타일의 얼음마다 체력을 달리 설정해, 공격을 받은 얼음만 깨지도록 만들었다. 얼음 위를 무리하게 건너려다 공격받은 부대가 강바닥에 잠기도록 하기 위해서다. 

눈이 쌓인 곳에 탱크 궤도 자국과 발자국을 남기는 방법도 이것저것 연구했다. 최종적으로 선택한 아이디어는 유닛이 지나간 곳의 눈 높이를 깎아내는 방법이었다.

다니엘 바레로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다. 단, 눈 높이를 구분하는 과정에서 텍셀의 밀도가 높아졌고, SLI나 크로스파이어를 사용하는 PC 환경에서는 효율이 떨어졌다”며 장단점을 밝혔다. 그래픽카드 2개를 이어서 쓰는 등 PC 성능을 극대화하려는 유저는 약간 아쉽게 들릴 일이다.


간단한 방법으로 구현했으나 권장사양을 높여 아쉬움을 남긴 눈 위의 트랙 자국 표현 기법.

눈 높이를 깎아 궤도 자국을 남기기 위해서는 탱크의 무한궤도를 높은 프레임으로 회전시킬 수밖에 없었고, 권장사양을 높이는 아쉬운 결과를 가져왔다.

결과적으로 렐릭은 현실에 가까운 겨울 환경을 만들었다는 자신감을 얻은 동시에, 과오를 통해 개선할 점도 배우게 됐다. 다니엘 바레로는 <COH 2>에서 한 반성을 차세대 게임을 개발하는 원동력으로 삼겠다고 밝히며 강연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