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재미를 디자인하는 사람 ‘게임기획자’. 그 화려함 덕분에 많은 이들이 꿈꾸는 기획자지만, 막상 기획자가 평소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과연 온라인게임에서의 기획자는 평소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성장할까?
게임 개발 문외한에서 시작해 이제 2년 차 게임기획자가 된 넥슨 마영전 전략유닛의 이라 기획자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게임을 만들어본 사람만 기획자가 될 수 있나요?”
이라 기획자는 본래 게임 개발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가 처음 게임개발에 뛰어든 것은 2년 전, 넥슨에 입사하면서부터였다. 그가 대학에서 전공한 것은 국제사무학과. 개발에 대한 경험은 전무했다.
이런 배경에도 그가 기획자로 뽑힐 수 있었던 것은 그 경험 덕분이었다. 이라 기획자는 비록 게임개발 경험은 없었지만,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덕분에 많은 협업 경험을 가지고 있었고, ‘도스’ 시절부터 <대항해시대>나 <마비노기> 등을 밤새서 했을 만큼 게임에 대한 열정도 풍부했다. 개발 경험만 없었을 뿐, 기획자가 필요로 하는 요소들은 충실히 가지고 있었던 셈이었다.
물론 모든 것이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이라 기획자는 자신의 대학생활을 되돌아보며 가장 아쉬움을 표했던 것은 게임 개발과 관련된 어떤 활동도 하지 않은 것이었다. 프로그래밍에 대해 배운 바가 없어 항상 프로그래머와의 대화에서 아쉬움을 느꼈고,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만 즐겨 했었기 때문에 매번 다른 취향의 재미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게임은 물론, 기획서나 이야기 같은 것을 창작해 본 적이 없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이라 기획자는 이런 자신의 아쉬움을 이야기하며 기획자를 꿈꾸는 이라면 많은 경험, 많은 창작을 하라고 조언했다. “꼭 게임을 만들어 본 사람만 기획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처럼 게임을 좋아하기만 한 사람도 기획자가 될 수 있죠. 하지만 경험이 많으면 기획자가 할 수 있는 일의 폭이 훨씬 넓어져요. 프로그래밍을 배우면 조금 더 프로그래머와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구성해 봤다면 게임 기획을 더 짜임새 있게 할 수 있죠.”
요람에서 실무까지, 넥슨의 신입 기획자 교육
이라 기획자가 넥슨에 입사해서 가장 먼저 맡은 업무는 3개월 간의 신입 기획자 교육이다. 게임 기획자는 이라 기획자처럼 개발 경험이 없는 이도 적지 않게 들어오는 분야다. 그런 만큼 기초적인 게임기획 이론부터 실제 툴을 이용한 콘텐츠 개발에 9주에 걸친 교육과, 남은 기간엔 선배 기획자들의 실무를 도우며 신입 기획자의 특기를 찾아간다.
9주간의 교육은 게임 기획에 대한 기본적인 교육과, <마비노기 영웅전>에 필요한 각종 기획 작업을 실습해보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1주 동안 게임기획에 대해 배운 이들은 2주차에 보드게임을 개발하며 게임기획과 프로토타이핑에 대해 배운다. 3주차에는 경쟁 게임을 분석하며 실제 서비스되는 게임의 구조에 대해 공부한다. 3주에 걸쳐 게임 기획에 대해 배우는 셈이다.
그다음부터는 <마비노기 영웅전>의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을 배운다. 4주차에는 <마비노기 영웅전>의 한 축인 ‘이야기’를 구상하고 작성하는 것을 배우며, 5주차에서는 기존에 제작된 <마비노기 영웅전>의 몬스터 데이터를 이용해 몬스터를 기획해 본다. 6주차는 2주간 만들었던 것을 조립해 전투와 퀘스트를 직접 만들어 보는 식이다.
마지막 3주는 게임을 지속하기 위한 라이브 서비스에 대한 교육이 이어진다. 7주에는 유저들의 데이터 분석과 이를 이용한 이벤트 기획을 배운다. 8주에는 게임의 수익모델 중 하나인 ‘애완동물’을 팀 단위로 기획해본다.
9주차에는 <마비노기 영웅전>의 해외 패치 과정을 배우며, 각국의 유저 성향과 해외 라이브 서비스를 배움으로써 기본적은 교육을 끝마친다. 이렇게 9주간의 수습 교육이 끝난 이후엔 선배 기획자와 멘토를 맺어 신입 개발자의 특기 분야를 찾아가게 된다.
“기획자는 평소 어떻게 일 하나요?”
이렇게 수습이 끝나고 실무에 투입되게 되면 본격적인 기획자의 업무가 시작된다. 몬스터나 아이템, 이벤트 등 어떤 기획 분야에 종사하게 되더라도 기본적인 틀은 동일하다. 피쳐(몬스터나 이벤트 등 기획자가 만든 콘텐츠를 지칭하는 단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획과 검토, 공유, 구현, QA의 단계를 밟게 된다.
피쳐 제작의 가장 첫 단계는 기획자 머릿속의 상상을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다. 기획자는 자신이 어떤 의도, 어떤 목적으로 콘텐츠를 구현했는지를 구체화하고, 이를 디렉터와 공유해 기획의 구체적인 방향성을 잡는다. 이라 기획자 <마비노기 영웅전>의 보스 ‘라바스트’ 기획 시, 벽에 뿔이 박힌다는 보스 패턴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몸으로 직접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렇게 구현된 아이디어는 기획서와 개발자 회의 등을 거쳐 관계자들에게 전달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획을 최대한 자세히 관계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기획자는 해당 콘텐츠를 직접 기획했기 때문에, 상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아는 것을 빠트리기 쉽다.
이것을 꼼꼼히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다른 개발자들에게 콘텐츠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콘텐츠 방향이 바뀌거나 강조하고 싶은 것이 빠지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설계도 보고 건물을 반 이상 올렸는데, 새로운 설계를 보고 다시 건물을 올려야 하는 셈이다.
콘텐츠 기획안이 잘 공유되고, 프로그래머와 아티스트가 관련 리소스를 구현하면 이를 조립하며 실제 콘텐츠를 구현하게 된다. 개발 초기에는 기존 데이터나 임시 데이터를 이용해 프로토타이핑과 콘텐츠의 틀을 잡게 된다. 이렇게 콘텐츠를 시험하다가 개발실에서 리소스를 완성하면 임시 리소스를 실제 리소스로 바꿔 콘텐츠를 완성하는 식이다.
이렇게 피쳐가 완성되면 마지막으로 개발자 시연과 QA 등을 통해 콘텐츠를 최종 조율하고 라이브 서버에 업데이트하게 된다. 물론, 기획자의 생각과 유저들의 생각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에, 패치 후에도 지속적으로 유저들의 동향을 파악하며 밸런스 조절이나 버그 파악 등 콘텐츠에 대한 사후 관리도 중요하다.
기획자의 덕목? ‘재미 검증’과 ‘의사 소통’
이라 기획자가 이렇게 <마비노기 영웅전> 기획자로 2년간 일하며 느낀 것은 ‘첫 단추’의 중요성이다. 기획자는 게임의 콘텐츠를 가장 먼저 기획하고, 이를 이끌어가는 사람이다. 그런 만큼 기획자의 실수는 기획자 자신은 물론, 다른 개발조직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그가 예비 기획자들에게 가장 강조한 것은 재미에 대한 꾸준한 검증이다. 콘텐츠의 뼈대를 만들어 재미를 검증하는 ‘프로토타이핑’, 자기의 생각을 꾸준히 남에게 공유하고 검증받는 ‘회의’, 콘텐츠 개발 전후로 유저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등. 이런 식으로 자신의 콘텐츠를 꾸준히 검증해야만 기획자 자신은 물론, 다른 팀원들까지 잘 콘텐츠를 개발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기획자의 ‘의사소통 능력’이다. 기획자가 디자인한 콘텐츠를 온전히 공유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이득을 가져온다. 먼저 개발하고자 하는 콘텐츠를 온전히 전달함으로써 실수나 누락 등 불필요한 소모를 막고, 때로는 기획자의 꿈꾸는 게임의 미래상을 효과적으로 공유함으로써 작업의 시너지를 높일 수도 있다.
마지막은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확장성 확보’이다. 기획자가 기획한 콘텐츠는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없다. 던전이나 전투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이벤트라고 하더라도 향후 이를 이용한 또 다른 이벤트가 나올 수도 있다. <마비노기 영웅전>같이 해외에 서비스되는 게임이라면 이벤트나 콘텐츠 내용이 바뀌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그런 만큼 콘텐츠를 기획할 때는 항상 확장성과 지속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라 기획자가 꿈꾸는 기획자 모델은 만능 초인에 가깝다. 게임은 당연히 좋아하고, 똑똑하고 말도 잘하고 컴퓨터도 잘하고 상상력과 창의력도 풍부하다. 업무 특성에 걸맞게 꼼꼼하기도 해야 한다. 어떤 면에서는 ‘전설의 존재’(?)인 ‘완벽한 여자친구’와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라 기획자가 이런 기획자를 꿈꾸는 것은 실제 이런 기획자를 봤고, 이것이 기획자 업무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며 예비 기획자들에게도 이런 기획자를 꿈꾸고 노력할 것을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