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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핵앤슬래시 RPG의 시초, 디아블로는 어떻게 태어났나?

GDC 2016 마지막 날, 데이비드 브레빅이 들려주는 '디아블로 포스트모텀'

정혁진(홀리스79) 2016-03-21 19:16:20

1997년 세상에 나와 3편까지 출시되며 수많은 ‘핵앤슬래시’ 게임들의 롤모델이 된 블리자드의 <디아블로>. 2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블리자드의 대표 게임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디아블로>의 첫 모습은 지금과 너무 달랐다. 장르와 콘셉트, 심지어 아트 스타일은 1994년 출시한 아케이드 격투게임 <프라이멀 레이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지금의 <디아블로> 모습으로 결정되고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우연한 만남과 결정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GDC 2016 마지막 날 열린 데이비드 브레빅은 강연을 통해 <디아블로>의 탄생 배경에 대해 얘기했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1993년부터 2003년까지 10년 동안 블리자드의 대표 및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며 개발 및 디자인 등에도 관여한 인물이다. 지금은 그레이비어드 게임즈에 있다. / 디스이즈게임 홍민, 정혁진 기자

 


※ 이 연재는 가마수트라와 디스이즈게임의 기사 제휴에 의해 제공되는 것입니다. /편집자 주

 

그레이비어드 게임즈​의 데이비드 브레빅

 

 

■ 캘리포니아 주 근처의 이름을 딴 ‘디아블로’, 초기 모습은 로그라이크 장르


데이비드 브레빅은 <디아블로>의 콘셉트를 최초 고등학교 때 생각했다. 천사와 악마의 분쟁과 그 속에서 싸우는 정도였다. 장르는 그가 평소에 좋아했던 <로그>나 <넷핵> 같은 ‘로그라이크’. 최초의 <디아블로> 모습은 전통적인 파티 기반의 RPG였다(※로그라이크: 텍스트 기반 또는 원시적 타일 기반 그래픽의 핵&슬래시 플레이를 가진 게임 장르).

 

콘셉트는 정해졌으나 게임의 제목이 고민됐다. 어떻게 보면 오래 걸릴 수도 있는 것이지만 그는 꽤 단순하게(?) 캘리포니아 주 근처에 있는 ‘디아블로’ 산의 이름을 땄다. 그렇게 <디아블로>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캘리포니아 주 근처에 있는 ‘디아블로’ 산의 이름을 게임명으로 결정했다.

 

본격적으로 <디아블로>에 대한 개발은 블리자드 노스의 전신인 ‘콘도르’에서 시작됐다. ‘콘도르’는 막스 셰퍼, 에릭 셰퍼 형제와 설립했으며 그가 대학졸업 후 일했던 디지털 클립 아트 업체에서 했던 비밀 프로젝트명이다. <디아블로>는 MS-DOS에서 턴제 기반의 싱글 플레이로 구동되며 TCG(트레이딩 카드 게임) <매직 더 게더링> 같은 부스터 개념의 확장팩도 생각했다. 캐릭터가 영구로 죽는 등 로그라이크 장르 특징들을 다수 반영했다.

 

게다가 <디아블로>의 외형은 찰흙 애니메이션, 즉 ‘클레이메이션’ 아트 스타일로 디자인됐었다. 아트 스타일의 영감을 받은 게임은 바로 공룡과 각종 괴수들이 등장해 겨루는 아케이드 격투 게임 <프라이멀 레이지>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프라이멀 레이지>를 매우 좋아했으며 <디아블로>의 모든 캐릭터에 게임의 스탑모션과 그래픽을 사용하기 원했으나, 비용과 많은 제작 시간에 다행히도(?) 포기했다.

 


<디아블로>는 클레이메이션 스타일로 제작될 '뻔' 했다.

 

 

■ 같은 게임을 개발은 두 회사의 우연한 만남, 콘도르 – 실리콘 & 시냅스


하지만, 콘도르가 <디아블로>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개발 자금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콘도르는 스포츠 장르나 세가 제네시스(국내명: 슈퍼 겜보이)의 <저스티스 리그 테스크 포스>와 같은 라이선스 게임 작업도 병행했다.

 

그러나 <저스티스 리그 테스크 포스>의 개발은 단순 라이선스 게임 작업이 아니었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CES에 이 게임을 선보였는데, 우연히 자신들과 똑같은 게임을 개발한 곳을 발견한 것. 바로 실리콘 & 시냅스, 블리자드의 전신이었다. 당시 퍼블리셔가 얘기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콘도르는 이 사실을 모른 채 CES에 참가했으며, 이 곳에서 실리콘 & 시냅스의 게임을 접하게 됐다.

 

콘도르가 개발했던 세가 제네시스용 <저스티스 리그 테스크 포스>​.

 

하지만 두 회사의 만남은 바로 성사되지 못했다. 당시 실리콘 & 시냅스는 자신만의 오리지널 타이틀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은 있었으나, 콘도르의 <디아블로>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 ‘RPG는 죽었기 때문에 RPG에 투자할 수 없다’고 답변을 받았기 때문. 이들의 동행은 실리콘 & 시냅스가 <워크래프트>를 만든 후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로 사명을 변경하고 콘도르와 다시 만나면서 진행됐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데이비드 브레빅은 <디아블로>를 턴제 기반으로 하는 RPG로 제작하겠다는 생각을 고수했다. 당시 인기를 끌었던 같은 장르의 게임 <X-COM>의 게임 환경을 <디아블로>에 옮기기 위해 고민했으며 <X-COM>의 스크린샷을 기반으로 <디아블로>의 외관, 기술 등을 개발하려 했다. 이러한 계획은 블리자드와 퍼블리싱 계약 후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여기서, 블리자드의 ‘신의 한 수’가 작용했다. 블리자드는 콘도르에 가서 <디아블로>가 실시간 RPG로 개발됐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당연히 데이비드 브레빅은 반대했다. 최초에 기획했던 것도, 자신이 좋아했던 턴제 기반의 던전 게임이 <디아블로>에 적합한 모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턴과 턴 사이에 오고 가는 긴장감과 고민을 선사하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만약, <디아블로>가 그의 고집에 따라 턴제 기반 RPG 장르로 개발됐다면...?

 

이후 회사에서는 <디아블로> 장르를 놓고 투표에 부쳤다. 턴제 기반의 RPG냐, 실시간 RPG냐였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당연히 턴제 기반 RPG에 투표했지만 다수의 직원이 실시간 RPG를 선택했고, 개발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됐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당시 엄청나게 좌절했고, 2주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고 장르의 선택이 잘못됐음을 좌절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옳은 판단이었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블리자드에게 실시간 RPG로 개발해보겠으나 시간과 자금이 필요하다고 했고 블리자드는 이에 수긍했다. 그리고 지금의 <디아블로> 모습을 위한 개발에 착수했다.

 

모든 코딩을 마치고 ‘실시간’ <디아블로>의 프로토타입이 제작됐다. 토요일 오후였다. 그는 게임이 이렇게 멋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고 밝혔다. 마우스를 클릭해 캐릭터가 이동하고, 해골을 클릭하자 칼을 휘둘러 공격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세상에! 정말 멋진데!’라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며,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은 행운이었다고 밝혔다.

 

처음으로 구동했던 <디아블로>의 알파 데모

 

■ 콘도르, 3DO의 2배가 넘는 인수 제안금액을 거절

 

콘도르는 <디아블로> 개발에 큰 매력을 느꼈고 열정을 다해 개발했다. 하지만 개발 자금이 부족했다. 당시 콘도르에는 15명의 개발자가 있었고 30만 달러(약 3억 6천만 원)는 월급과 사무실 비용 등을 생각해 봤을 때 적은 액수였기 때문이다.

 

이 때 콘도르는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 3DO가 제안한 100만 달러(약 12억 원) 상당의 콘솔용 풋볼 게임 개발을 고려하고 있었다. 만약 이를 수락했다면 블리자드와 콘도르는 퍼블리셔와 개발사 사이로만 끝났을 것.

 

하지만 블리자드는 <디아블로>와 콘도르 모두에 매력을 느꼈고 콘도르에 회사를 인수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3DO도 블리자드의 2배에 달하는 인수금액을 제안했지만, 데이비드 브레빅은 블리자드와 콘도르가 문화와 신념 등이 비슷했기에 이를 거절하고 블리자드를 택했다. 그리고 사명이 ‘블리자드 노스’로 변경됐다. 이번에는 데이비드 브레빅가 ‘신의 한 수’를 둔 셈이다.

 

개발에서 큰 성과를 거뒀는지 모르지만, 데이비드 브레빅은 사업적인 영역에서는 자신이 부족했다고 발표했다. 그 일화가 바로 지금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된 ‘핫메일’. 데이비드 브레빅은 어떤 남자(사비르 바티아, 핫메일 공동 창업자)가 찾아와 사무실 일부를 빌려주면 수익의 10%를 주겠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사비르 바티아가 구상한 사업 모델은 새로운 플랫폼의 e메일이었고 성공을 확신했다. 하지만 데이비드 브레빅은 이를 단번에 거절했다. 1년 후, 그 남자는 ‘핫메일’을 만들고 1년에 4억 달러를 벌어 들였다. 

 

블리자드는 콘도르를 인수한 후 사명을 '블리자드 노스'로 변경했다

 

 

■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디아블로>


<디아블로>는 게임 콘텐츠 외에도 네트워크 환경인 ‘배틀넷(Battle.net)’과 시너지를 이루는데 큰 작용을 했다. 배틀넷의 시작은 블리자드 노스였으나 개발은 블리자드에서 담당했다. 당시 블리자드는 전자 소프트웨어 유통망을 구상하고 있었으며 첫 도입 모델이 바로 <디아블로>였다. 블리자드가 개발을 맡은 이유는, 블리자드 노스에서 개발된 배틀넷 캐릭터 정보 저장이 로컬 컴퓨터 저장방식이었고 결국 각종 치트 프로그램이 난무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시작하기 전 신체 치수부터 각종 탄생배경 등 25가지의 과정을 설정하던 기존 게임들의 설정 방식을 없앴다. 최소의 시간으로 플레이 하기 위해 ID 소프트의 <둠> 메뉴 등을 주의 깊게 봤다고 밝혔다.

 

UI 중 맵은 <다크 포시스>의 미니멀리스틱 오토맵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됐다. 프로젝트 막바지 3개월은 핫 바(Hot bar)를 만들었다. 기존 좌측 하단에 포션을 놓는 슬롯을 체력과 마나 사이로 옮겼으며 스킬 사용 시 스킬 북을 열어 스킬을 클릭 후 공격하는 것을 단순화시켰다. 이 과정은 블리자드 본사의 지원팀(스트라이크 팀)의 도움이 유용하게 작용했다. 그밖에 MS-DOS 환경의 한계를 실감하고 윈도우로 환경을 옮겼다.

 

데이비드 브레빅은 <디아블로> 출시 막바지는 정말 힘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부인이 12월에 출산 예정이었지만 그는 막바지 팀원들이 집중하는 것이 흐려질까 봐 일부러 이를 말하지 않았다. 갖은 노력 끝에 게임은 12월 31일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 아이도 이듬 해 1월 3일에 무사히 태어났다. 그의 노력에 보답하듯, 수 많은 매체와 유저들은 <디아블로>에 환호했다. 게임은 2001년까지 총 250만 장을 판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