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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NDC 18] 0.99 달러짜리 독특한 게임 만들기, '프로젝트.99'

박선용, 유재원, 황주은 개발자가 전하는 '실험 게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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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돈(수기파) 2018-04-26 16:35:28

“얼마나 실험적인 게임이냐 보다, 실험하는 것 자체가 중요해요”

 

‘프로젝트.99’(Project.99)는 실험적인 게임을 제작해 0.99달러에 판매하는 인디게임 제작팀이다. 그들이 만드는 게임은 간단하지만 신선하다. IP 주소에 따라 밸런스가 변하는 플랫포머 <CAT/IP>부터, 직접 노트북을 닫아 시한폭탄을 해체하는 <타임 밤>(<Time bomb>)까지 장르와 플레이 방식도 다양하다.

 

이들은 왜 0.99달러의 독특한 게임을 만드는 걸까. 팀의 결성을 주도한 박선용 개발자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뒤로 몸은 괴롭지만, 마음은 항상 행복했다”고 말했다. 성과와 트렌드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나, 만들고 싶은 게임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6년 12월부터 총 26개의 실험 게임을 선보인 프로젝트.99의 이야기를 정리했다./디스이즈게임 김영돈 기자


  

프로젝트.99의 박선용, 황주은, 유재원 개발자

 

 

# 이유는 달랐지만, 함께 게임을 만들게 됐다

 

프로젝트99의 구성원은 한국과 로스앤젤레스의 초기 멤버 4명과, 지난 3월 참가한 두 명의 개발자까지 총 6명이다. 팀에 참여한 이유는 각자 달랐다.​ 이들의 모임을 처음 제안했다는 박선용 개발자는 상업성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은 ‘반짝거리는’ 게임이 만들고 싶었다며 “혼자는 힘드니까 같은 생각을 하던 주위 사람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투더헬>을 만든 유재원 개발자는 타워 디펜스 같은 대중적인 장르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는 스스로를 명예와 욕망에 솔직한 사람이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수많은 게임들이 쏟아지는 시장에서, ‘내 게임이 통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유재원 개발자는 ‘작지만 독특한 게임을 많이 선보이자’는 취지에 공감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황주은 사운드 디렉터는 <EZ2DJ>, <바람의나라>, <아스가르드>부터, 최근 <아이온>, <오버히트>까지 비교적 메이저 게임 음악을 다뤄왔지만,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작업이라면 규모를 신경 쓰지 않는다. 매달 참가하는 게임잼도 그 일환이다. 황 디렉터는 처음 프로젝트.99를 제안받을 때 부담이 될까 봐 거절했지만, 음악적으로 좋은 영감을 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니 마음을 바꾸게 됐다고 말했다.

 

게임 잼(Game Jam): 여러 분야의 개발자가 모여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게임을 만드는 행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진행하며 프로젝트.99의 구성원들 또한 참가자 혹은 심사위원으로 게임잼에 참가한 바 있다. 

 

 

# 0.99달러의 ‘독특한’ 게임들

 

박선용 개발자는 많은 유저들이 프로젝트.99의 게임을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상업적인 성공을 고려하지 않아, 홍보에 크게 힘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홈페이지에 소개된 스크린 샷과 영상만으로는 게임을 파악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며, 그동안 만든 게임들을 하나하나 소개했다.

 

<핑거크로스드>




<핑거크로스드>는 2016년 12월 출시한 노트북으로만 할 수 있는 2인용 게임이다. 스팀 그린라이트에 출시한 이후, "반드시 노트북으로만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올라와 사과한 기억도 난다. 
두 명의 플레이어가 하나의 키보드를 사용해 조작하는데, 필연적으로 손가락 동선이 겹치는 게 특징이다. 게임 릴리즈 1시간 전에 황주은 디렉터에게 사운드를 부탁했다. 이를 계기로 황 디렉터가 팀에 합류하게 됐다.

<블링크고스트>



<블링크고스트>는 웹캠과 얼굴 인식 기술을 이용한 게임으로, 유저가 눈을 감으면 화면 속 귀신이 점점 다가오는 간단한 게임이다. 단순하지만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는 게임이라 인상적이다.

<오디오비주얼토이>



<오디오비주얼토이>는 '실험적인 피아노'라는 주제로 만든 게임이다. 유저가 같은 음을 많이 입력하면 도전과제 형식으로 피드백을 준다. 게임과 유저가 커뮤니케이션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독특한 의미가 생긴다고 생각했다. 

<다이스던전>



<다이스던전>은 게임의 모든 과정이 무작위로 정해진다. 심지어 게임 시작과 종료도 주사위를 굴려야 한다. 난생 처음 겪은 TRPG가 제작 계기가 됐고 주사위로 게임의 흐름이 결정되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황주은 디렉터는 주사위의 6면체에서 영감을 받아 6개의 음만 사용해 사운드를 제작했다.

<스페이스로맨스>



<스페이스로맨스>는 처음으로 구성원 4명이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두 명의 플레이어가 서로를 바라보며 캐릭터를 조작해야 한다. 자신의 화면에서는 자신의 캐릭터를 볼 수 없기 때문에, 턴을 넘길 때 반드시 상대를 바라봐야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운드에디터>



<사운드에디터>는 사운드가 중심이 된 게임이다. 게임의 분기 곳곳에 적절한 사운드를 배치하면 상황이 해결된다. 예를 들면 문이 열려야 하는 시점에 문 열리는 소리, 열쇠가 필요한 곳에 열쇠 돌리는 소리를 배치하면 된다. 아이디어가 독특하고 마음에 들어서, 제작 기간이 충분했다면 지금보다 나은 게임이 나왔을 거라는 아쉬움이 있다.

<CAT/IP>



<CAT/IP>는 게임 이름처럼 IP 주소를 이용한 게임이다. IP 주소의 네 자리가 각각 스피드-점프-시간-파워 수치를 결정한다. 진행은 간단해보이지만, 자신에게 부여된 IP 숫자에 따라 게임 전략이 달라지는 게 특징이다. 주제와 기간을 각각 IP와 2일로 제한한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자유로운 환경보다 아이디어가 잘 나와서 인상적이었다.

<타임 밤>



<타임 밤>은 노트북에 시한폭탄이 설치됐다는 설정으로, 유저가 제한시간 내에 직접 노트북 덮개를 닫아야 하는 게임이다. 조작법에서 알 수 있지만, 노트북에서만 플레이할 수 있다. 마우스와 키보드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게임 플레이 경험에 의문을 제기해보고 싶었다.

<매스게임>(<MATH GAM3>)



<매스게임>은 화면 속 모든 숫자를 연산에 활용할 수 있는 퍼즐 게임이다. 퍼즐 게임은 왜 재해석할 수 없나 라는 발상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아트 차원에서도 전통적인 퍼즐 게임과 달리, 개성 있는 디자인을 추구했다. BIC 에서 좋은 호응을 얻었고, <모뉴먼트밸리>의 개발자가 극찬해줘서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타임리스>



<타임리스>는 프로젝트.99의 첫 내러티브 게임이다. 터치 방식으로 게임이 진행되며, 주인공이 정자 혹은 난자였던 시절부터 죽기 직전 시점까지의 욕망을 다룬다.

<더 라이터>



<더 라이터>는 글을 쓰는 행위를 게임 플레이로 옮긴 게임이다. 창작자라면 누구나 '대작'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하지만 욕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기준이 높아지고, 기획을 쓰고 지우는 일이 많아진다. 이 게임을 만들었을 당시 우리도 비슷했다. 전작인 <타임리스>에서 자극받아 시나리오를 쓰고 지우는 행위를 하다 아이디어를 얻었다. 새로운 글을 쓰는 행위가 아니라 '지우는' 행위가 게임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얻었던 게임이다.

<OverHeat>



<OverHeat>는 사운드 클리커 게임이다. 클리커는 최초엔 실험적인 장르였으나, 너도나도 만들다 보니 이젠 대중적인 장르가 됐다. 황주은 디렉터는 이 부분을 비틀어 생각했다. 단순한 조작이 아닌 전용 컨트롤러를 사용하는 게임이라서 특별해졌다. 조작을 거듭할수록 사운드가 겹치고 더해지며, 점점 음량이 커지다 폭발하는 느낌을 주는 게임이다.

<틱택톡>



<틱택톡>은 오목이다. 일반적인 오목과 달리 턴을 주고 받지않고, 실시간으로 여러 번 돌을 놓거나 남의 돌을 치울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기존 게임의 룰을 살짝 틀어 새로운 게임이 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오목이라는 게임을 격렬하게 할 수 있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타임애프터 타임>



<타임애프터 타임>은 아이폰 배터리 게이트가 시작된 시점에 만든 게임이다. 플랫포머 게임인데 특정 블록들이 배터리 잔량에 따라 높이가 달라지는 콘셉트였다. 하지만 개발 중에 게임 메이커 툴에 배터리 잔량을 받아오는 함수가 없어, 시스템 시간으로 바꿨다.

<MV2>



<MV2>는 플레이어를 신경 쓰지 않는 카메라 워크가 특징이다. 명작 게임은 카메라 워크의 정석을 따라간다는 게시물을 보고 반감(?)이 생겨서였다. 게임 화면은 카메라 구도가 역동적인 뮤직비디오의 문법을 참고했다.

<MV3>​



<MV3>은 음악에 따라 마우스 휠을 돌리는 게임이다. <MV2>와 함께 황주은 디렉터가 사운드를 만들어줬다. 게임이 나오고 사운드가 만들어지는 기존 게임 제작 순서와 달리, 사운드를 먼저 만들고 게임을 제작한 것이 특징이다.

<체인>



<체인>은 4개의 게임을 차례로 클리어하는 게임이다. 직전 게임의 플레이가 다음 게임에 영향을 주는 것이 특징이다. 맥락 없는 대화도 지속되면, 맥락이 생긴다는 부분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 1년 동안, 매달 꾸준히 게임을 내놓는 일

 

프로젝트.99는 "우리는 왜 실험하는가"라는 질문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어떤 것이 실험 게임이냐’ 같은 어려운 답을 찾는 대신, ‘왜’라는 의미를 얻을 수 있는 질문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선용 개발자는 언젠가 상용 게임을 만들게 돼도 프로젝트.99처럼 작은 게임 만드는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끊임없이 자신이 만들고 싶은 게임이 무엇인지 묻고, 답을 찾아가는 노력을 하는 과정이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는 즐거움을 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1년 넘게 프로젝트.99를 함께한 소회를 전하는 황주은 사운드 디렉터

 

황주은 디렉터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실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실험 게임은 모호하고 정의하기 힘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로젝트.99에 참여한 뒤에는 "궁금한 것을 해소하는 과정"이라는 분명한 정의를 갖게 됐다.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모르지만, 탐구 과정 자체가 주는 가치가 충분히 의미있다는 설명이었다.

 

유재원 개발자는 아직 프로젝트.99의 의미를 찾고 있다. 그는 “왜 계속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즐거워서”라고 전했다. 그는 게임의 실험은 과학의 실험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실험을 설계하고 결과를 살펴보는 면은 비슷하지만, 게임은 개발자가 직접 원칙을 정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얼마나', '어떻게'보다 중요한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