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임금제 폐지부터 평가 기준 공개, 고용 안정과 게임 개발 특수성 고려까지. 스마일게이트 5개 계열사의 노사가 단체협약안에 잠정 합의했다.
스마일게이트 노조 'SG 길드'의 차상준 지회장은 19일, 회사와 '포괄임금제 폐지를 비롯한 단체협약 83개항'에 대해 잠정 합의했다고 전달했다. 이번 합의는 독특하게도 하나의 법인이 아니라, 노조가 교섭권을 가진 스마일게이트 홀딩스, 스마일게이트 메가포트, 스마일게이트 스토브, 스마일게이트 알피지 5개 법인이 함께 진행됐다.
잠정합의안에는 크게 ▲ 포괄임금제 폐지 ▲ 프로젝트 폐기 등 외부 요인에 대한 '고용 안정' 방안 강화 ▲ 평가기준 공개로 대표되는 평가의 공정성·합리성 강화 ▲ 심리상담 지원과 리프레시 휴가 확대, 휴식권 보장 ▲ 모성보호권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 SG길드 "포괄임금제 폐지와 평가 공정성, 고용 안정 강화에 특히 신경썼다"
이 중 노조가 특히 신경쓴 부분은 포괄임금제 폐지, 고용 안정, 평가 공정성 3개 요소다.
'포괄임금제 폐지'는 근래 게임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안건 중 하나다. 노조는 단체협약을 진행하며 이 부분을 강하게 요구해, 오는 10월부터 포괄임금제를 폐지하기로 합의했다. 기존에 주어졌던 포괄 수당은 앞으로 '기본급'에 포함되며, 이후 야근 등의 이슈가 있을 때마다 초과근무 수당이 '추가로' 지급되는 방식이다.
참고로 포괄임금제는 스마일게이트 노조 출범시 자체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비조합원 포함) 응답자의 87.1%가 폐지를 원한 안건이다.
'고용 안정성'은 프로젝트의 시작과 폐기가 잦은 게임 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한 요구다. 대부분의 회사에선 외부적인 이슈로 인해 프로젝트가 폐기됐을 때, 여기에 속한 개발자들이 모두 '전환배치' 되는 사례가 많지 않았다. 이에 회사와 노조는 이번 단체협약에서 '프로젝트 조직 해제 등의 이슈가 생겼을 때 2개월 내 전환 배치를 완료'하도록 잠정 협의했다.
'평가 공정성'은 노동자를 평가하는 인사 기준이나, 프로젝트 성공으로 인한 인센티브 지급 기준을 공개해달라는 요구다. 기존에는 이런 기준이 노동자들에게 공개돼 있지 않아, 인사권자가 임의로 평가를 내리거나 인센티브를 분배해도 당사자들이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단체협약에서 노사가 '가능한 최대한 평가·인센티브 지급 기준을 공개한다'고 협의해 평가의 공정성도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SG길드 차상준 지회장에 따르면, 다른 산업에서는 대략적으로라도 직원에 대한 평가 기준이 공개돼 있다.
# 크런치 모드 전엔 구성원 동의 필요! 게임 업계 특수성 고려한 합의도 돋보여
크런치 모드나 심리적 스트레스 등 게임 업계의 특수성을 고려한 조항도 함께 채결됐다. 대표적인 것이 '휴식권 보장'. 이 조항이 합의됨에 따라, 조직장들은 앞으로 크런치 모드를 진행하기 위해 조직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또한 마일스톤이나 크런치 모드 등으로 인해 심리적 스트레스가 극심한 개발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원들에게 '심리상담을 지원'하는 합의 또한 함께 이뤄졌다. (정확히는 일부 법인만 지원되던 것을 5개 법인 전체로 확대) 참고로 오는 7월부턴 조직원들의 심리적인 상해 또한 산업재해에 포함되는 법이 시행된다. 회사와 조직원 모두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조항.
잠정협의안에는 이외에도 ▲ 유연 근무제 개선 ▲ 리프레시 휴가 확대·개선 ▲ 출산휴가 제도 개선 ▲ 노조 가입 제한 없음 등이 포함돼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스마일게이트의 버추얼 유튜버 '세아'도 16일 야근 등을 주제로 한 콘텐츠를 올렸다.
# "5개 법인 공동 잠정합의, 사측도 결심해 준 덕에 가능했다"
이번 잠정합의가 5개 법인 공동으로 진행된 것은 교섭 막바지에 회사 측이 노조의 제안을 수용하기로 결심한 덕에 가능했다.
본래 회사와 산별 노조의 단체 협약은 '법인' 별로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법인 별 교섭이 법으로 명시된 최소 단위이기도 하고, (회사가 부정적으로 마음먹는다면) 교섭을 자주, 많이 해 노조의 기세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마일게이트 노조는 단체협약을 진행할 때 회사에게 자신들이 교섭권을 가진 5개 법인을 한꺼번에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회사 측에선 처음에 이 제안을 거절했지만, 교섭 막바지에 이르러 입장을 바꿨다. 덕분에 SG길드는 게임업계 노조는 물론 다른 산업계를 통틀어서도 흔치 않은 '복수 법인 단체협약 잠정협의'를 이룰 수 있었다.
SG길드 차상준 지회장은 디스이즈게임과의 통화에서 "처음엔 어려움도 많았지만, 사측의 결심 덕에 원만한 결과를 이끌어 내 다행이다. 포괄임금제 폐지에 동의해 준 회사에게 신뢰를 표한다. 이번 단체협약이 정식으로 적용되는데로, 남은 법인도 회사와 좋은 협약을 맻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SG길드가 속한 화섬식품노조는 “노사가 원만한 대화로 다소 복잡할 수도 있는 포괄임금제 폐지와 단체협약 전반을 비교적 짧은 기간에 합의하게 된 점은 이후 IT업계 노사관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계기점이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한편, 이번 잠정합의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는 3월 28~29일 이틀 간 진행된다. 만약 여기에서 조합원들이 찬성할 경우, 노사는 4월 3일 조인식을 열고 정식으로 단체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SG노조는 5개 법인의 단체협약 정식 체결 후, 남은 소수 법인의 단체협약과 노조의 조직 체계 정비에 힘 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