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크라우드 펀딩의 불모지에 가까웠다. 영화 <26년>이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해 제작비를 모금했지만 순탄치 않았고, 게임에서는 유의미한 성공사례를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그러던 중 한 스타트업 업체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텀블벅’을 통해 2주 만에 목표액의 200%를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턴 방식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아미 앤 스트레테지: 십자군>을 개발하고 있는 2인 개발사 파이드 파이퍼스 엔터테인먼트가 그 주인공이다.
과연 <아미 앤 스트레테지>가 어떤 게임이길래 크라우드 펀딩에 인색한 한국에서 이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기쁜 소식을 축하하고자, 그리고 소문의 게임을 직접 확인하고자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파이드 파이퍼스 엔터테인먼트에 직접 찾아가 봤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 크라우드 펀딩: 자금이 없는 예술가나 활동가가 대중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투자방 식. 소셜 펀딩이라고도 불린다.
■ 옛 추억을 살려 만든 턴 방식 시뮬레이션
TIG> 기쁜 소식을 축하한다. 먼저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팀 소개부터 부탁한다.
아이린(임현호): 턴 방식 전략 시뮬레이션 <아미 앤 스트레테지>를 개발하고 있는 파이드 파이퍼스 엔테테인먼트다. ‘피리 부는 사나이’(Pied Piper)처럼 사람들을 유혹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어 이런 이름을 지었다.
아노아(김주명): 프로그래밍을 담당하고 있는 ‘아노아’다. 팀 소개를 하느라 바쁜 ‘아이린’은 기획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 말고도 게임 개발을 도와주는 많은 객원 멤버와 테스터들이 있다. 이 자리를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TIG> 게임의 어떤 요소가 이런 성과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하는가?
아이린: 게임이 정말 뛰어나서 이런 성과를 거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게임보다는 고액을 후원해 준 지인들의 덕이 컸다. 이전부터 블로그를 통해 개발자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소문이 퍼져 있었는데 그것도 한몫한 듯하다.
공개 투자 2주 만에 목표액의 200%인 1,000만 원을 모금하는 데 성공했다.
TIG> 게임 자랑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냉정한 평가다. 그렇다면 <아미 앤 스트레테지>는 어떤 게임인가?
아이린: 기독교 문화권과 이슬람 문화권이 부딪힌 십자군 전쟁을 배경으로 한 턴 방식 전략 시뮬레이션이다. 온라인게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패키지게임에선 <문명>이나 <삼국지> 시리즈 등 많은 타이틀이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턴 방식 시뮬레이션이 하드코어한 장르로 오해받고 있는데, 접근성을 낮춰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전략·전술을 선사하는 것이 <아미 앤 스트레테지>의 목표다.
아노아: 개인적으로 <토탈워> 시리즈와 같은 분위기의 심플한 턴 방식 전략 시뮬레이션을 추구하고 있다. 턴 방식의 약점인 지루함을 최소화하기 위해 내정 같이 흥미도가 떨어지는 부분은 최대한 덜어냈고, 외교와 종교, 그리고 전쟁에 초점을 맞췄다. 게임의 소재가 다소 무겁긴 하지만 귀여운(?) 캐릭터 디자인으로 극복할 생각이다.
TIG> 그러고 보니 화풍이 독특하다. 캐릭터 생김새가 마치 트럼프카드를 연상시킨다.
아노아: 디자인은 굉장히 많은 변천이 있었다. 인디게임은 게임의 스크린샷이 다운로드를 좌우하는 경향이 크다. 때문에 다른 게임과는 다른 우리만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이 화풍을 완성하는 데 4~5개월은 걸린 것 같다. 이 자리를 빌어 디자인을 맡아주신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아미 앤 스트레테지> 홍보 영상
TIG> 사실 턴 방식 전략시뮬레이션은 국내에서는 이제 보기 드문 장르가 됐다. 이런 장르를 개발하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나?
아노아: 이제 한국에서 PC 패키지게임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우리가 어렸을 적 즐겼던 게임은 대부분 역사 속으로 사라졌거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되기 십상이다. 이를 시대의 변화라고도 할 순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옛날에 즐겼던 재미를 다시 느낄 수 없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과거 즐겼던 <삼국지>나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앤매직>과 같은 턴 방식 전략시뮬레이션을 어레인지해서 게임을 개발하게 되었다.
아이린: 사실 국내 시장은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 게임의 성향상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통할 타입이기도 했고, 국내 PC게임 시장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초 버전도 영문으로 개발했고, 최종목표도 스팀에 입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제 인디게임 공모전 ‘인디케이드’나 ‘IGF’(Independent Game Festival) 등에도 활발히 타이틀을 내고 있다. 다행히 얼마 전 ‘IGF 차이나 2012’에서 결선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 “국가 간 정세와 힘 싸움에 초점을 맞췄다”
TIG> 게임의 최종 목표는 역시 세계 제패인가?
아노아: <아미 앤 스트레테지>는 크게 정해진 주어진 시나리오를 따라가는 캠페인 모드와 AI(인공지능)와 순수하게 전략·전술을 겨루는 싱글 모드로 구성된다. 캠페인 모드의 경우 시나리오에 따라 그에 걸맞은 승리조건을 만족시켜야겠지만, 싱글 모드에서는 자신의 왕국으로 유럽과 중동을 제패하는 것이 목표다.
아이린: 사실 최초에는 싱글 모드만 기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같이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지나치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웠다. 또 솔직히 고증 문제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자료조사를 했는데 이를 반영하지 않기에는 아깝기도 했다.(웃음) 참고로 고증은 분위기는 살리되 재미는 해치지 않는 방향으로 했다. 다소 역사와 어긋난 부분이 있더라도 게임의 재미를 위한 장치로 생각해 주시기 바란다.
TIG> 턴 방식 전략시뮬레이션이면 전투는 <문명> 시리즈나 <삼국지> 시리즈처럼 ‘말판’에서 진행되나?
아이린: <아미 앤 스트레테지>의 전투를 묘사하자면 퍼즐게임이나 TCG 같은 요소가 포함된 자동전투라고 할 수 있다. 유저는 상대의 진형에 맞춰 병사를 배열하고, CPU는 이 결과값을 유저에게 전달한다. 각 유닛은 기병, 궁병, 창병의 3개 속성이 있어 서로 상성관계를 이룬다. 또한 장수가 성장할 때마다 특수한 능력을 가진 유닛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을 잘 조합해 상대의 ‘패’를 받아치는 것이 중요하다.
아노아: 아무래도 개발인력이 한정되다 보니 전투 구현에 다소 한계가 있었다. 때문에 전투보다는 거국적인 국가 간 정세나 힘 싸움에 주력했다.
TIG> 외교와 종교 시스템이 그런 고민의 결과인가? 사실 내정을 들어내고 외교와 종교에 집중한 것은 턴 방식 시뮬레이션에서는 이례적인 시도다.
아노아: 개인적으로 <삼국지> 등 턴 방식 전략시뮬레이션을 할 때 특정 시스템보다는 국가 간 정세에 더 큰 재미를 느꼈다. 사실 시뮬레이션게임을 할 때 복잡한 내정보다 내편·네편 갈라 싸우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은가. 이러한 면모를 강조하기 위해 내정을 삭제한 대신 종교와 외교 시스템을 강화했다.
아이린: 외교와 종교는 당시 시대상을 유저에게 각인시키는 시스템이면서 동시에 유저에게 선택지를 제시하는 장치다. 특히 종교는 십자군 전쟁이라는 배경을 묘사하는 동시에, 유저의 선택을 무겁게 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만약 종교는 다르지만 우호적인 두 왕국에게 서로를 공격하라는 ‘성전’이 선포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파문을 감수하면서 우호관계를 지키든, 신앙을 위해 우호를 깨든 모든 것은 유저의 선택에 달려있다. 상대를 공격한다면 군사적인 손실은 물론 외교적 신뢰도 잃을 것이고, 그렇지 않고 파문을 당하면 같은 종교를 믿던 국가들에게 공격을 받거나 같은 종교를 믿는 장수들이 이탈할 것이다.
TIG> 말하는 내용만 들으면 종교가 마치 페널티처럼 느껴진다.
아노아: 물론 종교 시스템의 이득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특정 종교와의 관계가 좋다면 성인이 나타나 장수의 성장을 빠르게 만들어 주는 등의 혜택을 부여한다. 물론 이러한 관계까지 오는 데는 무엇보다 유저의 재화가 큰 역할을 할 것이다.(웃음)
아이린: 외교적인 측면에선 페널티가 크다고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정세를 감안하자면 이상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실제로 당시에는 종교를 떠나 같이 동맹을 맺기도 했고, 같은 계열의 종교를 믿더라도 믿는 가치에 따라 종파가 갈리고 서로 싸우기도 했다.
십자군에게 공격받은 비잔틴 제국이 아마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게임도 이런 면을 강조하기 위해 같은 계열의 종교라도 각각 2개의 지파(가톨릭, 정교회, 시아파, 순니파)가 있기 때문에 동맹이라도 안심할 수는 없다.
■ “인디게임은 허가받지 않아도 되는 프로젝트”
TIG> 두 사람 모두 상용게임 개발 경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정적인 회사를 나와 스타트업이란 가시밭길을 걷게 된 계기를 알고 싶다.
아노아: 스타트업이라는 인식이 처음부터 있던 것은 아니었다.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들기 위해 팀을 꾸렸는데 어느새 여기까지 와 버렸다. 회사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회사에서는 만들 수 없는 게임을 개발하고 싶다는 욕구가 점점 커졌다. 이제는 시장정세도 완결성 있는 콘텐츠와는 거리가 멀어져 더 늦기 전에 일을 벌였다. 물론 그 때는 지금처럼 개발에만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릴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웃음)
아이린: 사실 처음에는 모바일게임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빠르게 개발해야 하는 모바일게임의 개발 사이클은 진득하게 ‘방망이를 깎는’ 우리 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더라.
TIG> 그렇다면 <아미 앤 스트레테지>의 모바일 버전은 고려하고 있지 않은 것인가?
아노아: PC 버전의 개발도 바쁜 상황이라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다. 사실 지금 버전도 모바일에서 구동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OS와 디바이스가 근본적으로 다른 만큼 모바일 버전은 그에 걸맞은 기획과 고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PC 버전을 모바일에서 돌아갈 수 있게 컨버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TIG> <아미 앤 스트레테지> 개발 말고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있는가? 솔직히 생계가 걱정된다.
아노아: 10여 년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을 줄 예상하고 있었기에 모아 놓은 돈이 있다. 이 돈을 아껴 가면서 게임도 개발하고, 생계도 유지하고 있다.
아이린: 모은 금액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쪽도 비슷하다. 그래도 일을 시작하며 처음 1년 반 정도는 수익이 없을 것이라고 가정했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버틸 만하다. 특히 나 같은 경우 다행히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이 자리를 빌어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에게 감사한다고 전하고 싶다.
TIG> 스타트업 2년차로서 감상을 말하자면?
아노아: 역시 ‘자유’가 가장 큰 메리트 같다. 다른 분의 말을 빌리자면 인디게임은 ‘허락받지 않아도 되는 프로젝트’다. 뭘 하려 해도 통제하는 마케팅 부서도 없고, 갑자기 일정지시서를 가져와 고지하는 팀장도 없다. 이런 자유 덕분에 회사 시절에는 죽기보다 싫었던 야근도 흥겹게 하는 것 같다. 대신 이런 분위기에 너무 취해 자기관리를 소홀하게 되면 지옥을 보게 되니 스타트업을 하려는 분들은 참고하기 바란다.
아이린: 물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규모의 개발자가 공부하고 개발하는 것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 있는 것이 능률도 좋고 배우는 것도 많다. 이런 면에서 소규모 스타트업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참, 그리고 무엇보다 생계가 가장 큰 문제다. 가족들 앞에서 작아지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생각보다 타격이 크다.(웃음) 그래도 얼마 전 ‘IGF 차이나 2012’ 결선에 오를 수 있어 한시름 덜었다.
TIG> 해외와 달리 국내는 크라우드 펀딩의 성공사례가 드물다. 이를 결심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아이린: 사실 국내 게임계에선 크라우드 펀딩의 유의미한 성공사례가 적기 때문에 펀딩 그 자체보단 게임을 알리는 데 중점을 뒀었다. 팀 블로그에 게임이야기만 하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공개된 장소가 났지 않겠는가.(웃음) 그래서 <아미 앤 스트레테지>의 초기 펀딩도 지인들을 위주로 진행됐는데 어느 순간 판이 커져서 놀랐다. 후원자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TIG> 펀딩을 진행하면서 2만 원 이상을 낸 후원자들에게 게임 타이틀을 보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다면 혹시 국내 유통도 기대할 수 있나?
아이린: 국내 사정상 패키지를 유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마 스팀과 같은 디지털 유통이 최선이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디지털 유통망이 스팀이나 오리진, 데수라(Desura, 일반적인 게임 외에도 인디게임이나 모드 유통에 강점을 보이는 사이트), gog.com 등 해외 사이트에 집중돼 있기 때문에 이를 노리고 있다. 최근 네이버도 이 분야에 뛰어들긴 했지만 입점 기준도 아직 알 수 없고 셧다운제 문제도 있어 크게 고려하지는 않고 있다.
아노아: 아마 패키지 유통은 텀블벅이 담당하지 않을까? 게임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후원을 통해 게임을 얻을 수 있다.(웃음) 개발자와 유저가 직접 소통한다는 느낌에서는 이런 방법도 좋은 창구가 되는 것 같다. 서로가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예약판매와 같은 개념이랄까?
TIG> 마지막으로 게이머, 혹은 후원자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아노아: 생각해 보면 게임과 함께한 인생이었다. 어려서부터 게임을 즐겨 왔고, 즐겼던 게임의 개발자와 함께 일하기도 했고,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도 게임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시간 동안 항상 잊지 않았던 것은 처음 게임을 접했을 때의 재미를 다른 분들께도 전해드리고 싶다는 마음이다. <아미 앤 스트레테지>도 그런 마음으로 개발하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 공개될 테니 많은 기대를 부탁 드린다.
아이린: 사실 처음 펀딩을 진행할 때 목표액 500만 원의 달성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2주 만에 목표액의 2배를 달성하고, 이제는 ‘스팀 그린라이트’ 투표까지 도전하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이렇게 많은 사랑과 관심을 가져주신 후원자 분들께 감사 드린다. 후원자 분들의 관심이 헛되지 않게 재미있는 게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마지막으로 게임 개발을 도와주고 있는 객원 멤버와 테스터, 그리고 항상 응원해 주는 아내와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두 개발자의 게임 <아미 앤 스트레테지: 십자군>은 현재 스팀 입점을 위해 투표(☞{more})가 진행 중이며, 2013년 2월 20일까지 텀블벅(☞{more})을 통해 후원금을 모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