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윤석열 정부도 여전히 '메타버스'를 신개념 성장 동력처럼 여기고 있다.
예산을 보면 진심이 보이는 법. 지난해 윤석열 정부는 출범과 함께 막대한 메타버스 예산을 편성했다.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에 340억 원, 메타버스 개발자 및 창작자 양성을 위한 아카데미에 46억 원, 융합연구개발 인재 확보를 위한 메타버스 융합대학원 설립과 운영 지원에 10억 원, 메타버스 생태계 지방 확산에 20억 원, VR·AR 원천기술 개발에 259억 원이다. 이 사업을 주도하는 부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부)다.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도 메타버스가 '신성장 동력'이라는 데 큰 반론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문체부는 각종 메타버스 안에 들어가는 게임은 모두 심의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과기부와 갈등하고 있다. 지난 7월,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네이버제트에 공문을 보냈다. <제페토> 안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게임들에 등급분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메타버스 성장을 위해 수백억 원 규모의 예산이 편성된 가운데, 게임과 메타버스는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는 중요한 화두로 남아있다. 정부는 '게임물과 메타버스 구분 등을 위한 가이드라인'(가이드라인)을 만들려 하고 있지만, 입장은 좁혀지지 않고 있어 사실상 공회전 중인 것으로 판단된다. 정부는 가이드라인을 2022년에 발표하기로 했지만, 올해로 미루어졌다.
이전 기사에서 읽을 수 있듯이, 메타버스의 게임산업법 적용에 대한 의견 차이가 발생하자 국무조정실은 몇 차례 회의를 주관했다. 그러나 두 부처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문체부와 과기부는 지난 하반기 들어 '가이드라인'을 위한 관계부처 합동 TF(테스크포스)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합동 TF는 가이드라인의 제출 기한을 2022년으로 설정했다.
"규제기관의 합리적이고 일관된 규제를 위해 게임물과 메타버스 구분 등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연내 조속히 수립"하겠다는 것이 기본 방향이었다. ▲ 국내 메타버스 기업과 글로벌 빅테크의 동등한 경쟁기반 마련 ▲ 메타버스 신산업 생태계 성장·성숙 ▲ 규제 비용·편익을 고려하고, 자율규제의 정책을 도모하는 것이 3대 목표로 제시됐다.
두 부처는 지난해 10월 21일 위원 구성과 운영 방식 등을 논의했다. TF는 문체부와 과기부에서 과장급 인사가 공동단장의 명의로 배석하였으며, 각 관계기관의 실무 총괄자가 포함됐다. TF는 학계, 법조계에서 외부 전문가를 위촉하기로 했다.
문체부에서는 남태우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 이철우 영화진흥위원회 변호사, 김범수 게임물관리위원회 자율지원본부장을 추천했다. 과기부에서는 위정현 중앙대학교 다빈치가상대학장(현 한국게임학회장), 김지훈 법무법인 세종 전문위원, 김민석 정보통신산업진흥원 메타버스산업본부장을 추천했다.
11월 2일, 문체부, 과기부, 관계기관,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 첫 토론이 진행됐다. 자유 토론으로 서로의 의견을 교환됐으며, 합의 사항은 도출되지 않았다. 회의에서 두 부처는 지난 하반기 국무조정실 주관 회의에서 나온 주장과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문체부 측은 "메타버스 자체를 게임물로 볼 수는 없지만, 메타버스 내 게임물에 대해서는 게임산업법 적용이 필요하다"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들은 "메타버스 내 게임물에 대한 예외를 인정할 시, 기존 게임과의 형평성 문제와 더불어 청소년 이용자 보호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게 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확률형 아이템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자율규제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게임산업법 적용을 통해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사전조치 및 사후관리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과기부도 물러서지 않았다. 과기부 측은 "메타버스 사업이 갖는 경제적 가치와 특수성을 고려해 메타버스 내 일부 게임물이 포함된 경우, 게임산업법 적용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입장을 피력했다.
또 메타버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선정성·폭력성 문제는 "메타버스 윤리원칙에 기반한 엄격한 자율규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과기부는 "메타버스 성장세를 고려할 때, 규제로 인해 개인창작자들의 창작의지가 저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결국 두 부처는 2022년 8월과 9월의 회의에서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헤어졌다.
지스타 등 주요 일정으로 회의는 11월 2일 이후부터 12월 중순까지 열리지 못했다. 따라서 합동 TF는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2022년 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출하지 못했다. 12월 28일, 3차 회의에서 합동 TF는 2가지 합의 사항을 도출했다.
① 게임물로 대부분 구성된 메타버스에 대해서는 게임산업법을 적용한다.
② 게임물이 포함되지 않는 메타버스에 대해서는 게임산업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해가 넘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회의를 가졌지만, 두 부처는 끝까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지 못한 이유는 '메타버스 내 게임물이 일부 포함된 경우'에 게임산업법 적용 여부에 대한 부처 간 합의사항이 도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체부 측은 이 경우에도 게임산업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과기부 측은 여전히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②번 항에 이론이 없다고 했을 때, 앞으로의 쟁점은 '어디까지가 대부분이고, 어디까지가 일부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령 네이버제트의 <제페토>에는 스코어보드가 있어 플레이에 따라 순위가 정해지는 '게임'이 여럿 존재한다. 그러나 게임의 성격이 없거나 적은 아바타 채팅 콘텐츠도 있다. 두 부처의 합의에 따라서 이러한 메타버스 플랫폼이 ①에 해당하는지, 그렇지 않은 지 정책적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
참고로 우리 법은 '게임물'을 '컴퓨터프로그램 등 정보처리 기술이나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오락을 할 수 있게 하거나 이에 부수하여 여가선용, 학습 및 운동효과 등을 높일 수 있도록 제작된 영상물 또는 그 영상물의 이용을 주된 목적으로 제작된 기기 및 장치'로 정의하고 있다. '여가선용'을 위한 '프로그램'이 모두 게임이라고 해석한다면, 계산은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두 부처는 1월 중 4차 회의를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합의를 이루어 냈지만, 그것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크지 않기 때문에 '게임물과 메타버스 구분 등을 위한 가이드라인'은 아직 공회전 중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