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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게임 프로그래머의 길] 해외 취업의 길? 어느 날 날아온 ‘우연한 기회’

게임 프로그래머 문기영의 ‘게임 프로그래머 이야기’ 14화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문기영(ProgC) 2018-02-14 11:24:43

디스이즈게임은 2015년까지 연재되었던 ‘게임 프로그래머의 길’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게임 프로그래머의 길은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2년 간 연재된 글로, 한 개발자가 어떻게 게임 개발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개발자가 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느냐 등을 알려주는 연재였습니다.

 

이번에 다시 시작되는 연재물은 근래에 개발자들 사이에서 많이 이슈되고 있는 ‘해외 취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오랜만에 돌아온 글인 만큼 가벼운 이야기부터 감상하시죠. /디스이즈게임 미디어실


☞ 지난 연재 바로가기: 게임 프로그래머의 길 연재 코너 


 

최근에는 외국에서 일하는 한국 게임 개발자들이 많지만, 필자가 외국에 나갈 때만 해도 많지 않았다. 필자는 운 좋게도 EA 캐나다로 취직하게 되면서 외국에서 일 할 수 있었는데, 취직한 경로나 경험을 공유하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것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때는 2007년, 한국에서 게임 개발자로 열심히 일하고 있던 나에게 의문의 메일이 날아왔다. 자신을 EA의 리쿠르터라고 소개했고 EA에 관심이 있거나 취직 할 생각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 노트 : 리쿠르터(Recruiter)는 한국에선 주로 헤드헌터라고도 불린다.​

 

“응? 뭐라고?!”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다른 회사도 아니고,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나에게 취직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본다는 상황 자체가 어이도 없고 현실성이 무척 떨어졌기 때문이다.

 

“사기 아닌가?”

 

당연히 사기 아니면 누군가 나를 골탕 먹이려고 장난친다고 생각했다. 리쿠르터가 내 메일을 어떻게 알았는지도 모르겠고, 동경하던 해외 개발사에서 갑자기  취직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온 것도 뜬금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일을 보낸 사람의 이름도 독특했다.

 

“분명 누군가 장난친 거겠지….”

 

그런데 장난을 칠 정도라면 나를 아는 한국 사람일 것인데…, 한국 사람이 쓴 영어 치고는 너무 길었다!! 그래서 속는 셈치고 답변 메일을 보냈다.

 

“네. 관심 있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후 답장이 오기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 장난? 진짜?

 

며칠이 지나고 기다리던 답장이 왔다. 인터뷰를 위해 한국 방문을 하겠다고 했다.

 

“장난이… 지나친데?”

 

그러니까 날 인터뷰하기 위해서 한국에 방문하겠다고? 이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싶었다. 물론 한국에 있을 때 게임개발자로서, 한 명의 프로그래머로서 열심히 살긴 했지만 중요한 사실은 당시에 리쿠르터가 이 같은 내용을 알 리 없었다.

 

리쿠르터는 한국에 방문하겠다는 이야기와 한국에 도착하는 날짜, 이력서를 하나 들고 오라고 했을 뿐, 그 외에 어디에서 만날 것인지 전혀 이야기 해주지 않았다.

 

“장난 치고는 매우 훌륭했어! 속았는데?”

 

그래도 한국에 방문하겠다는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고 일단 “최대한 열심히 준비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포트폴리오라고 해봐야 당시에 혼자서 만든 프로그램, 게임, 책이 전부였다. 포트폴리오의 수준이 낮고 높음을 떠나서 정말 열심히 준비했다. 당시에 영어를 못했기 때문에 리쿠르터가 질문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질문들에 대해서 영어로 답변을 나름대로 준비했었다.

 

 ※ 노트 : 중요한 것은 영어를 못했다는 점이고, 준비한 영어마저도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틀린 영어였다.​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리쿠르터와 인터뷰가 있는 날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리쿠르터가 인터뷰가 있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어디에서 몇 시에 만날 것인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급한 마음에 당시에 EA Korea로 전화를 해 오늘 면접을 볼 사람이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EA Korea도 좀 황당했을 것 같다. 왜냐면 EA Korea는 사실 EA Canada와 이런 쪽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EA Korea로 전화를 했고 결국 대표님과 통화까지 했다. (지금 그 분은 날 기억할지 모르겠다.)

 

EA Korea 대표님도 조금 황당해 했고 그냥 기다려 보시면 연락이 올 것이라는 이야기만 듣고 전화를 끊었다. 초조해 하고 있었는데 결국 전화가 왔다.

 

커피숍에서 리쿠르터를 만났는데 천만다행(?)으로 거짓이 아니었다. 정말로 EA Canada의 리쿠르터였다! (설마 명함까지 거짓은 아니겠지?!)

 

 

리쿠르터는 자리에 앉아서 간단한 인사를 하고 나에 대해 자세하게 하나하나 질문을 했었다. 특이한 것은 노트북을 보면서 나에게 질문을 하나씩 하고 그것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가, 아닌가에 대해서 체크를 하는 리스트가 있었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물리 프로그래밍을 해보셨습니까?”

“렌더링 프로그래밍은 해보셨습니까?”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셨습니까?”

 

당시에 영어를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를 어필 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했고, 무엇보다도 프로그래머는 만들어 본 프로그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장난감 프로젝트를 준비해서 노트북에 담아갔었다.

 

“물리 프로그래밍을 해보셨습니까?”

 

나는 물리학을 전공 하진 않았지만, 강체 시뮬레이션(Rigidbody simulation)에 관심이 있어서 데모 프로그램을 만들어본 적이 있었다. (물리 시뮬레이션을 위해서는 ODE라는 Open Dynamic Engine을 사용했었다.) 그 데모를 리쿠르터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리쿠르터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자신의 리스트에 적었다.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강체 시뮬레이션 데모를 작성해본 경험 있음”

 

“렌더링 프로그래밍은 해보셨습니까?”라는 질문에는 내가 작성했었던 렌더링 관련된 데모 프로그램들을 보여주었다.

 

 

가령 당시에 노말 맵핑을 사용하는 것이 신기술로 여겨졌었는데 노말 맵핑 프로그래밍을 가능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노말 맵핑 데모를 보여주었고 캐릭터 표현 시 LOD(Level of detail) 적용을 실시간으로 보여줄 수 있는 VIPM(View-independent progressive mesh)와 같은 데모를 보여주었었다.

 

 ※ 노트 : LOD가 어떤 것인지는 TIG에 연재했던 6화 (☞ 바로가기) 를 참고하도록 하자.​

 

실제로 돌아가는 프로그램들을 보여주고 나면 리쿠르터는 

 

“렌더링 프로그래밍 가능함”이라고 리스트에 작성했고 질문하는 거의 모든 내용에 대해서 영어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준비해두었던 데모 프로그램들을 모두 보여주었다.

 

내가 가진 경력 중 특이사항이라면 특이사항인데 어린 나이에 게임 프로그래밍 서적을 출판한 적이 있었다. (당시 고3이었다.) 당시에 비주얼 베이직으로 게임을 만드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리쿠르터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었다.

 

비주얼 베이직 6 게임 만들기

 

 ※ 노트 : 본인도 잃어버린 책인데 알라딘(중고서점)에서 구할 수 있었다!​

 

책을 쓴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당시에 내가 그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워낙 나이가 어렸고 겁이 없었기 때문에 내용의 일부분이 틀리건 아니건 상관하지 않고 책을 썼었다. 그리고 “책을 썼다”라는 것으로 인해서-

 

“자신이 가진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

 

-으로 리쿠르터가 생각해주었다.

 

 ※ 노트 : 그 이후에도 대학교 1학년 때 게임 개발 테크닉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때는 필자가 모든 내용을 다 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1년이 넘게 걸렸다. 그 이후로 책을 쓸 때는 보통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혹시나 틀린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고 검증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리쿠르터의 질문이 모두 끝나고 받고 싶은 연봉에 대해서 물었는데 캐나다의 물가 이런 것은 사실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현재 받고 있는 연봉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그러자 리쿠르터가 매우 놀라워하며 어떻게 그거 밖에 안 받고 있느냐고 말했었다. 캐나다에서 받고 있던 물가를 고려해 어느 정도 적정선을 말해주었고 이 정도면 만족 하겠냐고 하길래 놀라지 않은 척...

 

“뭐... 그 정도면... 오케이”

 

그렇게 연봉 이야기까지 마친 후에 본인이 캐나다로 돌아가면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리쿠르터가 나에게 인터뷰를 마치면서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넌 반드시 EA Canada에 취직 하게 될 거야”

 

  • 게임 개발에 사용되는 도구들 ②

  • 게임 개발에 사용되는 도구들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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