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이즈게임은 ‘넥슨컴퓨터박물관’과 함께하는 새로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수많은 소장품의 사연이나 박물관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물론, 컴퓨터와 관련한 IT업계 인사들의 이야기가 담길 예정입니다. / 디스이즈게임 편집국
1970년대에 현대적 컴퓨팅이 시작되면서, 컴퓨터 사용자들 사이에서는 자유롭게 공유하고, 협업하는 문화가 생겼습니다. 홈브루 컴퓨터 클럽(Homebrew Computer Club)은 이런 문화를 바탕으로 생겨난 ‘취미생활가(hobbyist)’들의 모임입니다. 조금 더 익숙한 표현으로는 ‘애호가’, 요즘 말로 슬쩍 바꿔보면 ‘덕후’ 모임 정도가 될 듯합니다.
1975년 3월에서 대략 1977년까지 계속된 이 모임은 컴퓨터에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실력을 자랑하는 곳으로, 실리콘밸리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지식 공유를 통해 상호 간에 영감과 아이디어를 주고받은 것이 기술 혁신의 시발점이 된 것입니다.
홈브루 컴퓨터 클럽 회원들은 당시 가장 ‘핫’한 개인용 컴퓨터였던 알테어 8800(Altair 8800)의 회로도나 프로그래밍 팁을 교환하기 위해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아담 오스본(Adam Osborne), 리 펠젠스타인(Lee Felsenstein)을 포함하는 많은 마이크로컴퓨터 회사들의 창립자와 임원들, 후에 애플을 창립한 스티브 잡스(Steve Jobs)와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 등이 클럽 회원이었습니다.
1976년 스티브 워즈니악은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서 애플 1의 프로토타입을 공개했다.
친구의 차고에서 애플 1 컴퓨터를 개발 중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좌) 애플 1 프로토타입 (우)
사진 출처: Computer History Museum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소매점 중 하나이자 애플 컴퓨터 판매를 시작한 바이트샵(Byte Shop)의 창업자 폴 테렐(Paul Terrell), 최초로 카트리지 기반의 비디오 게임 시스템을 개발한 제리 로슨(Jerry Lawson), 천재 해커 ‘캡틴 크런치(Captin Crunch)’ 존 드레이퍼(John Draper)도 홈브루 컴퓨터 클럽에 함께했습니다.
이런 홈브루 컴퓨터 클럽의 뉴스레터는 실리콘밸리 문화에 굉장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홈브루 컴퓨터 클럽 뉴스레터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의 개념이 시작되었으며, 알테어 같은 오리지널 키트 컴퓨터(Original kit computer)들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뉴스레터와 관련해 지금까지도 회자하는 유명한 이벤트 중 하나는 빌 게이츠(Bill Gates)가 기고한 한 공개편지입니다.
(왼쪽) 폴 앨런(좌)와 빌게이츠(우). BASIC 프로그래밍 언어를 작성했다.
(오른쪽) 그들이 만든 알테어 BASIC 인터프리터 소스 테이프
빌 게이츠는 상업적인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수정하는 그 시대의 컴퓨터 '취미생활가'들을 비판하며 그러한 취미 문화 때문에 많은 금전적 손해를 보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래 편지 내용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전략)
우리가 베이직 프로그램을 사용한다고 하는 수백 명의 사람에게 받은 피드백은 모두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두 가지 놀라운 사항이 있다. 첫째, 대부분의 '유저'들은 베이직 프로그램을 산 적이 없다(알테어 사용자의 10% 미만만이 베이직 프로그램을 구매했다). 둘째, '취미생활가'들에게 베이직을 판매해 받은 로열티로 따지면, 우리가 알테어 베이직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대가로 받은 시급은 2불도 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대다수의 '취미생활가'들은 알고 있겠지만, 당신들이 소프트웨어를 훔쳐 쓰기 때문이다. 하드웨어는 돈을 내고 사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소프트웨어는 공유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사람들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것 따위에 누가 신경이나 쓰겠는가? ...
(중략)
더 대놓고 말해보자면, 당신들이 하는 짓은 도둑질이다. (More directly, the thing you do is theft.)
재미나게도, 이렇게 (스티브 잡스와 워즈니악이 속해있던) 홈브루 컴퓨터 클럽의 '취미생활가'들을 비판하던 빌 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는 1970년대 말 들어 애플 II 컴퓨터의 소프트웨어를 제작하는 것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1980년대 초에는 매킨토시를 개발하기 시작한 잡스의 요청으로 매킨토시를 위한 베이직 프로그램과 엑셀(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Excel 엑셀 맞습니다), 워드(네, 그 Word 프로그램입니다)의 개발을 ‘계약’하기도 합니다.
빌 게이츠(좌)와 스티브 잡스(우)
물론, 결과적으로 ‘매킨토시 엑셀’과 ‘매킨토시 워드’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이 과정도 꽤 흥미진진한데, 1999년 만들어진 영화 <실리콘밸리의 해적들>에서 홈브루 컴퓨터 클럽의 활동과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라는 두 컴퓨터 거장들의 끈질긴 인연(?)도 다루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2013년, 크라우드 소싱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Kickstarter)에 홈브루 컴퓨터 클럽 동창회(Reunion) 공고가 올라왔습니다. (링크: //www.kickstarter.com/projects/jpf/homebrew-computer-club-reunion) 이 펀딩에는 400명의 사람이 후원했고, 2만 8000달러가량을 모았습니다.
동문…모임..? 에서 공개된 첫 애플(좌, 출처: Financial Times), 모임에 참석한 리 펠젠스타인과 오스본 1 (우, 출처: Time)
2013년 11월, 홈브루 컴퓨터 클럽은 미국 컴퓨터 역사박물관(Computer History Museum)에서 다시 모였습니다.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 모임에서 첫 애플을 공개했고, 리 펠젠스타인은 직접 참석해 오스본 1을 들고 와 선보였고요. 개방성(Openness)에서 출발한 홈브루 컴퓨터 클럽의 정신은 여전히 실리콘밸리의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홈브루 컴퓨터 클럽의 원년 회원들은 여전히 만나고 있다고 합니다. 모토로라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이름을 딴 ‘68000클럽’으로요. 원래는 6800클럽이었는데, 68000 프로세서 출시 이후에 이름에 0이 하나 더 붙었습니다. 실리콘밸리 문화가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발전하는 데에는 취미와 열정을 기반으로 한 클럽들이 여전히 주요한 역할을 하는 듯합니다.
제주에서, 세상을 바꾼 아이디어 넥슨컴퓨터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