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온도 35도에 달하는 불볕 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잡히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곧 광복절 대체공휴일도 다가오는데 여름 휴가 계획은 어떻게 세우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디 나가기도 껄끄러운 요즘, 잘 나온 게임 도서 5가지를 골라 여러분께 추천합니다. 전설의 발자취부터 유쾌한 분석, 독창적인 시도까지 두루 만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틈틈이 서점을 들리는 편인데 <이와타씨에게 묻다>는 계속 경영 분아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지난 6월 출간된 이 책은 닌텐도의 사장이었던 이와타 사토루의 생전 발언을 엮은 책입니다. 200페이지 안쪽으로 어렵지 않게 읽기 좋습니다.
▲이와타 대표가 했던 이야기들 ▲이토이 시게사토와 나눈 대화 ▲'사장이 묻는다' 인터뷰 ▲미야모토 시게루 인터뷰 등이 실려있으며 족벌 경영을 하던 닌텐도가 전문경영인 체제로 체질을 개선한 이야기와 닌텐도가 구조조정을 이겨낸 방법 등이 솔직하게 실려있습니다. 게임 도서로도 손색이 없는데 경영 도서로도 아주 읽을 만합니다.
그는 회사의 위기에 솔선수범하여 자신의 임금을 깎은 경영인이자 게이머에게 신망이 두터운 프로그래머였습니다. 담관암 투병 중에도 대중과 소통을 놓지 않던 그가 문득 그리워지는 책입니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통찰력이 책 곳곳에 들어있죠.
"일이란, 혼자서는 할 수 없잖아요. 반드시 누군가와 연결됩니다. 회사란, 혼자서는 할 수 없을 만큼 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러 개성이 모여 힘을 합해나가는 구조로 이루어진 곳입니다"라는 이와타 사토루의 발언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관련 기사]
오늘날 닌텐도 이끈 이와타 사토루가 일했던 방법 (바로가기)
게임기로 세상을 바꾼 닌텐도 이와타 사토루, 그가 남기고 간 말 (바로가기)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들 합니다. 신간 <크래프톤 웨이>는 회사의 상장을 앞두고 출판된 실록입니다. <배틀그라운드>가 터지기까지 도전하고 실패한 기록이 다소 솔직하게 기록되어 흥미롭습니다. 이렇게나 시행착오를 많이 겪다가, 의심과 우려 속에서 개발된 <배틀그라운드>가 글로벌 히트를 치다니 세상 일이란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크래프톤이라는 기업의 포스트모템이지만, 역시나 '승자의 기록'이므로 장병규 의장의 서신이 챕터마다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이 크래프톤의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일이 이렇게 흘러갔구나"와 같은 흐름을 읽기엔 좋습니다. 회사의 재무 상태가 아주 나빴던 것까지 솔직하게 기록된 한편, 실록을 편찬한 이기문 기자는 집필 당시 크래프톤에 살아남은 이들의 관점을 바탕으로 서사를 구성합니다.
기자는 "노동자가 아닌 인재와 일한다", "성취의 결과물보다 도전의 과정을 돌아보라"와 같은 장병규 의장이 밝힌 회사 성장의 비밀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책이 솔직하게 말하는대로 <크래프톤 웨이>는 솔직한 운칠기삼의 실록에 가깝습니다.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직·간접적으로 서술한 지점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운명이란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 반만 주재할 뿐이며 나머지 반은 우리의 통제에 맡겨져 있다"고 씁니다.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비르투', 즉 탁월함이라고 합니다. 포르투나와 비르투가 맞물려 작용하며 오늘날의 크래프톤이 탄생했겠지요. 앞으로 크래프톤에게 주어진 운을 잘 쓰는 탁월함이 깃들기를 바라봅니다.
두 명의 심리학자가 함께 쓴 <모럴 컴뱃>은 "게임 탓" 하는 무리들에게 고하는 논리적이면서 유쾌한 책입니다. 한국에 갓 번역된 따끈따끈한 이 책은 이제는 "게임 탓"에 지쳐서 '그 분들'과는 대화도 섞기 싫은 우리 게임 생태계에 활력과 긴장을 줍니다.
설마 아직도 폭력적인 게임을 하면 폭력적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정말 소문대로 미국의 총기 난사범들은 폭력적인 슈팅 게임을 하면서 살상을 연습했을까요? <GTA>가 나오면 자동차 도난 사고가 판을 치게 될까요? "게임 탓"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게임을 잡지 못해서 오랜 세월 똘똘 뭉쳐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요? <모럴 컴뱃>은 명쾌한 해답을 냅니다.
<모럴 컴뱃>의 가장 큰 장점은 하나도 딱딱하지 않고 재밌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하는 것이야말로 글쓰는 사람이 갖춰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고 믿는데요. 이 책은 술술 잘 넘어갑니다. 주변의 게임 탓이 징그러운 분이라면 조심스레 이 책을 선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물론 읽어야 문제가 해결되겠지만요.)
<모럴 컴뱃>에는 "학교생활, 직장생활, 사회적 책임 등에 문제가 없다면 비디오게임 중독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p.167)라고 안심시키는 한편, 게임과몰입을 판단하는 근거와 자녀의 게임중독을 걱정하는 부모들을 위한 몇 가지 솔루션을 제안한합니다. 그중 가장 급진적이면서도 멋진 방안은 이것이다: "아이와 직접 함께 게임을 플레이 해보라"(p.241)는 것이죠. <모럴 컴뱃>을 읽는 것보다 부모와 아이가 게임 한 판 같이 하는 게 더 멋진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관련 기사]
게임 탓? 이제 그만! 적절한 시기에 나온 '모럴 컴뱃' (바로가기)
<게임 시나리오 기획자의 생각법>은 <블레이드 앤 소울>의 퀘스트 기획자 출신으로 컨설팅 회사 '놈게임스토리'를 운영 중인 이진희 컨설턴트가 쓴 책입니다. 업계 지망생을 독자로 설정한 책으로 스토리 창작의 기술과 게임 시나리오에 관한 오해와 진실, 실무 팁과 직업 전망 등이 두루 실려있습니다.
이 컨설턴트가 이 책을 쓴 이유가 꽤 재밌는데요. 네이버 등에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되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올라오면 상담을 유도해 학원 수강생으로 만드려는 답변이 많아서 직접 업계의 진짜 정보를 알려주기 위해 집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학원에 수강료를 지르기 전에 16,000원만 투자해서 게임 시나리오는 도대체 어떻게 쓰는지, 시나리오 기획자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게임 기획의 코어는 어떻게 구성되고 또, 좋은 시나리오를 위해서는 어떤 덕목이 필요한지 등을 알아봐도 괜찮을 듯합니다. 생각보다 시나리오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든 작법서가 그러하듯 이 책 또한 왕도는 아닐 것입니다. 그래도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런 책들을 읽어두고 하나라도 배워가면 분명 혜안을 얻을 거라 믿습니다.
[관련 기사]
당신이 쓴 게임 스토리가 '노잼'인 이유 (바로가기)
문보영 시인의 <배틀그라운드>는 단 한 명(혹은 팀)의 승리자를 위해 매일 죽는 연습을 하는 송경련과 왕밍잉을 주제로 한 연작시집입니다. "외딴 섬에 내린 백 명의 플레이어들이 점점 좁아지는 원 안으로 들어가며 최후의 1인이 되기 위해 서로를 죽이는 서바이벌 슈팅게임",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동명의 게임 세계를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기자는 문학은 잘 모릅니다만, 하나의 게임을 주제로 하나의 시집을 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 같습니다. '시작 몇 초 전'이라던지 자기장과 같은 같은 게임의 시스템을 시를 쓰는 데 집어넣은 한편, 직접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삽화도 들어있습니다. 에란겔, 비켄디, 미라마 등 <배틀그라운드> 속 맵을 큰 주제로 하고 있는데, 이런 미디어믹스도 있구나 싶어 흥미로웠습니다.
"우리의 현생은 우리의 전생보다 면적이 작네 그것이 우리 듀오르 공포로 몰아넣네"나 "날 죽인 사람의 시점으로 죽기 전의 나를 보는 건 유익하다"와 같은, 문학적이면서도 게임을 정확히 표현하는 문장들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곳곳에 흩어진 시들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 같다가, (취향 탓에) 관념적인 표현에 살짝 집중력을 잃기도 했던 그런 독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