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라운드 최단 시간 탈락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12월 8일, 대전e스포츠경기장에서 <이터널 리턴> 내셔널 리그 파일럿 시즌의 결승전이 열린 가운데, 경기도 연고 팀 '경기 이네이트'가 감동적인 우승 스토리를 써내 화제다. 경기 이네이트는 결승전 1라운드 불의의 사고로 인해 약 2분 5초만에 탈락하고 꼴찌로 첫 라운드를 마감했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집중한 선수들의 노력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려 관람객의 환호를 받았다.
2024년 7월 파일럿 시즌(시범 시즌)을 시작한 <이터널 리턴> 내셔널 리그는 각 지역을 연고로 한 8개 팀이 참가하는 '지역연고 e스포츠 대회'다. 2025년부터는 참가 팀을 늘려 총 12개 지역이 참가할 예정이며, 2026년에는 16개 지역이 참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이번 내셔널 리그 파일럿 시즌이 만들어낸 의미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경기 이네이트 (출처: 님블뉴런)
# 실업 리그지만 '프로 리그' 못지 않았던 선수의 열정
파일럿 시즌 초대 우승팀 '경기 이네이트'는 최근 e스포츠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보여 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터널 리그> 내셔널 리그는 전문적인 프로 선수가 아닌, 생업을 영위하는 선수가 '실업 리그' 방식으로 참가하는 대회지만 그 열정은 프로 대회에 못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경기 이네이트가 이번 대회에서 우승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경기 이네이트는 결승전 1라운드부터 적극적인 교전을 시도했으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경기 시작 후 단 2분 5초만에 탈락하며 최하위에서 결승을 시작했다.
배틀로얄 게임 <이터널 리턴>은 각 팀이 라운드마다 킬 및 순위 포인트를 누적해 55점의 '체크 포인트'에 도달한 후, 체크 포인트 상태에서 라운드 최종 생존을 달성한 팀이 우승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최종 우승이 결정되기 전에는 계속해서 라운드가 진행된다.
그러나 경기 이네이트는 1라운드 고작 5점을 얻는 데 그쳤고, 이어진 6라운드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였음에도 54점을 기록해 체크포인트에 1점 차이로 도달하지 못하며 우승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1점이 모자란 이유도 선수의 실수가 있었던 것이기에 멘탈적으로도 크게 흔들릴 수 있었다.
내셔널 리그 최종 점수표.
점수보다는 체크 포인트 도달 후 라운드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출처: 님블뉴런)
마지막 9라운드에서 경기 이네이트는 '광주 슬래셔' 팀과 금지 구역에서 아슬아슬한 교전을 펼쳐야 했으며, 임시 금지 구역 단계에서는 '대전 사이버즈'와 '미래엔세종' 팀과 연속해서 싸워야 하는 구도가 나왔다. 최종 금지 구역에서는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성남 락스'와 격돌했다.
그러나 경기 이네이트는 선수들의 환상적인 협동으로 교전을 승리하고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운이 지독하게 없다"고 느껴질 만한 힘든 상황이 많았음에도 모든 선수가 흔들리지 않았기에 최종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우승 후 인터뷰에서 최종 MVP를 차지한 '제로진' 윤영진 선수는 "제게 <이터널 리턴>은 항상 증명하고 싶은 무대였다. 이전에 (마스터즈 리그를) 우승했을 때도 '하이에나'로 승리했다고, 팀이 실력이 없다고 매번 무시를 당했는데 증명할 수 있어 너무 기쁘다"고 했다.
경기 이네이트 팀
(왼쪽부터) '영르진' 윤영진, '잉구' 전인국', '다수' 최경렬, '진호' 정진호 (출처: 님블뉴런)
이에 관람객들은 실업 리그임에도 프로에 못지않은 모습을 보여 준 '경기 이네이트'과 여러 참가팀에게 박수를 보냈다.
내셔널 리그는 약 6개월 간의 일정으로 진행됐는데, 많은 선수들이 본업이 있음에도 불구 자발적으로 계속해서 '스크림'(연습 매치)를 진행하고, 리그가 진행될수록 경기력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줘 훈훈하다는 평가다. 몇몇 선수는 게임과의 경험을 통해 인격적으로도 성숙해질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 보이기도 했다.
최근 e스포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늘어나면서, 지원을 통해 단순한 오락적 가치를 넘어 페어플레이 및 협동, 진로 결정 등 다양한 가치를 함양한 스포츠를 가르칠 수 있는 문화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번 <이터널 리턴> 내셔널 리그는 e스포츠의 사회적 가치를 보여줄 수 있었던 대회라고 말할 수 있다.
대회 중 각 지역 팀 팬들이 깃발을 흔들며 응원하는 모습 (출처: 이터널 리턴)
한편, 내셔널 리그 전날 진행된 <이터널 리턴>의 또 다른 대회 '마스터즈'에서도 비슷한 모습이 나와 관람객들의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우승팀 '카르텔'의 핵심 멤버이자 결승 MVP에 선정된 'NCMB' 김준상 선수는 이전에 게임에서 보여준 가벼운 언행으로 지적을 받았던 바 있다.
그러나 대회에 출전해 팀원들과 함께 공개 석상에서 사과하고 바뀐 모습을 보여줬으며, 대학교 소속으로 출전한 <LoL> 아마추어 대회에서 우승한 직후 '포모스'와의 인터뷰에서 "<이터널 리턴> 선수에 더욱 관심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게임에 대한 열정을 보였다.
관객들은 선수의 변화한 모습과 열정에 호평을 보냈고, 결승전은 잡음 없이 성황리 마무리됐다. '카르텔' 팀은 2025년 내셔널 리그 신규 진입이 유력한 팀이기도 하다.
'마스터즈 시즌 5' 대회에서 우승한 카르텔 (출처: 이터널 리턴)
# <이터널 리턴> 내셔널 리그의 미래는?
그렇다면 2025년 이후 <이터널 리턴>의 내셔널 리그는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이번 대회가 보여줬던 점에서 긍정적인 면과 고민해 봐야 할 포인트를 몇 가지 정리해 봤다.
1. 성과 - 늘어나는 지자체의 관심과 지속 가능성
<이터널 리턴> 내셔널 리그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것이 아니다. 2025년 정부 예산에 지역연고e스포츠 리그와 관련한 8억 원이 책정되어 있긴 하지만, 어떻게 사용될지는 아직 결정된 내용이 없다. 담당자에 따르면 내셔널 리그는 <이터널 리턴>이 여러 지자체 행사에 참여하며 교류가 많았다는 점에서 자체적으로 아이디어가 출발해 운영 중에 있다.
그리고 최근 e스포츠에서 대두되는 '사업적 가치' 문제를 고려해 프로 리그 대신 실업 리그를 구성했다. 참가 팀은 선수 라인업 유지를 위해 지나친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고, 선수는 리그에서 중도 이탈하더라도 생업 문제가 적다. 유일 프로팀인 '미래엔세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팀이 합숙을 하지 않는다.
덕분인지 내셔널 리그에 관한 지자체의 관심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1월에는 경상남도시가 '500NP' 팀과의 업무협약을 통해 '경남 스파클 e스포츠'를 창단했다.
경남 스파클 e스포츠
여담으로 한 선수는 전업 유튜버로, 구독자 83만 명을 보유하고 있다. (출처: 경상남도)
2. 성과 - e스포츠 수익 모델
순수한 열정만으로 리그가 유지되기는 어렵다. 이에 <이터널 리턴>은 팬들이 자발적으로 원하는 팀을 후원할 수 있는 수익 모델을 마련했다.
<이터널 리턴>은 내셔널 리그 시범 운영과 동시에 e스포츠를 위한 아이템 판매 패키지를 출시했다. 패키지는 두 가지로 나뉜다. e스포츠 서포트 패키지는 대회 상금에 적립되고, 팀 서포트 패키지는 스팀 수수료를 제외한 판매 수익을 각 팀에 지급하는 구조다. 팀 패키지에는 각 팀의 구성원이 직접 디자인한 여러 치장 아이템이 포함되어 있다.
이번 내셔널 리그의 시범 시즌에서 팀 패키지는 팬들의 높은 참여로 예상을 초과하는 수익을 거뒀다. 몇몇 팀은 팬을 만족시킬 수 있는 아이템을 출시하기 위해 유명 일러스트레이터를 섭외하기도 했으며, 디자인 자유도가 부여된다는 점을 고려해 팬이 아니라도 구매를 고려할 만한 독특한 디자인의 아이템을 선보인 팀이 있다.
관계자는 "모든 패키지를 종합하면 시즌 4가 총 1만 8천 개 정도 판매됐고, 시즌 5는 더욱 많았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이터널 리턴> e스포츠 패키지. 각 팀마다 9,900의 가격이다. (출처: 님블뉴런)
3. 성과 - 지역e스포츠 경기장 및 지역 축제와의 연계 강화 가능성
<이터널 리턴>은 지금까지 대회를 진행해 오며 여러 지역 축제와의 연계를 꾀하기도 했다. '마스터즈 시즌 4 파이널' 대회는 대전의 '0시축제'와 연계해 '루미아 소제'라는 이름으로 지역 맛집을 이용하면 소정의 굿즈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내셔널 리그의 전반기 마지막 경기는 '2024 인천 게임 페스티벌 SUMMER'와 연계해 인천 송도에서 대회가 진행됐다.
그 외에도 <이터널 리턴>은 '마스터즈 시즌 3 파이널' 경기를 경기도의 게임 행사 '플레이엑스포'와 연계해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지금까지 지역 행사와 연계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경우가 많았기에 내셔널 리그를 통한 앞으로의 협업이 더욱 기대되는 상황이다. 특히, 지역e스포츠경기장은 2025년 말 완공될 '충남e스포츠상설경기장'을 시작으로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있기에 '대회 유치'를 바라고 있는 여러 경기장과의 협업이 기대된다.
한편, 2024년 연말에는 부산시가 개최하는 e스포츠 대회 'The Esports Night'(TEN)과 연계한 글로벌 대회가 진행될 예정이다. 글로벌 대회는 해외 <이터널 리턴>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둔 팀과 내셔널 리그 참가 팀이 모여 경쟁하는 방식으로 부산e스포츠경기장에서 진행될 계획이다.
<이터널 리턴> 내셔널 리그의 출발점부터가 대전시와의 좋은 협업 경험이다. (출처: 님블뉴런)
4. 고민거리 - 경기장 운영에 관한 문제
짚고 넘어갈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터널 리턴>이 주로 사용하는 '대전e스포츠경기장'의 경우 500석 규모다. 항상 관람객이 몰려 수용 인원을 초과하는 경우가 잦았다. 그러나 큰 경기장을 활용하기엔 수요 예측 실패 및 비용 부담에 관한 문제가 있다. 님블뉴런 측은 이번 대회에서 플리마켓 장소 구분, 차단봉 도입 및 선수 대기실 동선 분리 등의 조치를 진행했으며, 입장권 추첨 방식 도입 등을 고려하는 중이다.
이 부분은 향후 추가적인 개선 여지가 존재한다. 이번 대회에서 대전시와 하나은행은 카카오게임즈 및 님블뉴런과 'K-e스포츠 활성화 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식을 통해 님블뉴런과 대전시는 대회를 주관하고, 카카오게임즈와 하나은행이 후원사로 참여해 e스포츠 활성화를 위한 여러 논의를 진행해 나갈 예정이다.
5. 고민거리 - 선수 처우 및 경기 장기화에 대한 문제
선수가 생업과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연습에 대한 우려도 있다. 몇몇 선수는 퇴근 후 피로한 상태에서도 잠을 줄여 가며 연습 매치를 진행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 줘 팬들에게 안타까움과 선수 의식에 대한 칭찬을 받은 바 있다. 지금까지는 개별 선수의 자발적 노력 덕분에 문제가 적었지만, 향후 대회가 장기 운영되면 피로도로 인한 경기력 하락 등의 문제 등이 생길 수도 있어 보인다.
'체크포인트' 룰이 경기를 장기화시킨다는 문제도 있다. 내셔널 리그의 결승전은 일요일 오후부터 저녁까지 약 6시간이 넘게 진행됐다. 경기 후 월요일 직장으로 출근해야 하는 선수라면 분명 부담이 생길 수 있는 일정이다.
다만, 체크포인트 룰은 이전의 대회 경험으로 도입됐다. 정해진 라운드 동안 점수가 가장 높은 팀이 우승하는 방식은 보는 재미를 해치고 하위권 팀의 의욕 저하 문제가 생기는 등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식 출시 이전 대회의 점수제 방식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 시청자들의 공통된 의견이기에 완전히 제외되기는 어렵다.
이 부분은 향후 참가 팀이 확대되면 개선될 여지가 존재한다. 기존의 8개 팀에서 12개 팀으로 참가 팀이 늘어나면 리그 일정이 조금은 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병행 개최되는 대회 '마스터즈'도 경기 수가 소폭 줄어들 예정이며, 체크포인트 룰에 대한 보완책이 논의 중에 있다.
내셔널 리그 12팀 참가 경기 포맷 초안 (출처: 님블뉴런)
6. 고민거리 - 게임의 흥행이 큰 영향을 미치는 e스포츠의 특수성에 관한 문제
어쩔 수 없는 문제지만, e스포츠의 지속성은 '게임'의 흥행이 큰 영향을 미친다는 문제가 있다. 가령 <카트라이더> 리그는 현재 <카트라이더 드리프트>의 흥행 문제로 인해 사실상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이터널 리턴> 또한 흥행에 있어 어려움을 겪었던 상황이 있던 만큼 무시할 만한 문제는 아니다.
다행히 <이터널 리턴>은 최근 마무리된 정규 시즌 5의 성과가 좋았으며, 정식 출시 전부터 여러 소규모 대회를 통해 효율적으로 리그를 운영하는 법에 대한 노하우를 가진 상태다. 위에서 설명된 e스포츠 서포트 패키지 또한 이런 경험에서 아이디어가 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