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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게임만 만들고 싶어요” 어느 개발자의 하소연

이어지는 게임 관련 규제에 따른 개발 부담 급증

안정빈(한낮) 2012-07-03 11:39:01

개발자 A씨는 지난해 15세 이용가 온라인게임을 서비스 중인 한 게임회사에 들어갔다. 스무 명 남짓한 인원의 작은 게임 개발사였다. 하지만 A씨가 입사 후 처음 맡은 일은 게임 제작이 아닌 셧다운 시스템 개발이었다. 올해 초 셧다운 시스템 개발이 끝난 후에는 게임시간 선택제(선택적 셧다운제)를 위한 또 다른 솔루션 개발에 들어갔다.

 

최근 게임시간 선택제의 구축을 마치자 이번에는 8월부터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 않고 성인과 청소년을 구분하기 위한 시스템 개발을 시작하란다. A씨는 졸지에 아이핀을 비롯한 각종 본인인증방식을 공부하는 중이다.

 

취재 중에 만난 A씨는 한숨을 쉬었다. “솔루션을 만들려고 게임회사에 들어간 건 아닌데 말이죠.

 

넥슨에서 도입한 ‘자녀사랑 시간 지키미’ 서비스.

 

2012년 1월 여성가족부에 의해 강제 셧다운제가 시행됐다. 하반기가 되자 선택적 셧다운제에서 이름을 바꾼 게임시간 선택제가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에 의해 시행됐고, 8월 중에 방송통신위원회에 의해 인터넷기업의 주민등록번호 수집금지가 시작된다.

 

셧다운제를 시작으로 2012년에만 3개의 게임 관련 법안이 시행되거나 시행을 앞두고 있다. 게임업계에 있어서는규제의 해라고 이름을 붙여도 이상하지 않은 한 해다. 그리고 각종 규제들은 게임 개발사, 특히 중소 개발사에 직격탄으로 돌아오고 있다.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인원과 비용이 소모된다. 적게는 열 명 남짓한 중소 개발사에게는 규제를 따르기 위한 시스템 개발 인력과 비용이 무시 못할 부담이다.

 

문화부에서 밝힌 게임시간 선택제의 개발비용은 5~15억 원. 중소 개발사 대부분이 관련 시스템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만큼 시행착오로 들어가는 비용도 감안해야 한다. 문화부에서는 중소 개발사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매출 300억 원 이상의 14개 업체를 대상으로 게임시간 선택제를 시행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어디까지나퍼블리셔 기준’이다.

 

포털 사이트에 채널링 서비스가 걸려 있는 게임의 개발사도 게임시간 선택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포털 사이트에서 일차적으로 접근을 막더라도 게임 내에 관련 시스템을 붙여야 하는 만큼 부담은 크게 줄지 않는다. 문화부에서 공개한 게임시간 선택제 대상 게임 101개 중에는 언제 서비스를 시작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게임도 적지 않다.

 

게임시간 선택제에 해당하는 게임 중 일부. 중소 개발사의 게임도 있다.


여기에 강제 셧다운을 위한 비용이 추가로 소요되며 8월부터는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않는 인증시스템도 개발해야 한다. 주민등록번호의 대안으로 언급되는 아이핀 역시 무료가 아니다.

 

게다가 이 두 시스템은 중소 개발사도 일절 예외 없이 적용 대상이다. 개발비나 시간이나억’ 소리가 절로 나온다.

 

개발자의 부담도 만만찮다. 각각의 제도가 따로 도입되다 보니 시간 부담도 크고 알아야 할 정책도 많다. 앞에서 소개한 A씨의 경우처럼 당분간 게임 개발은 미뤄둔 채 정책을 공부하거나 솔루션 개발에만 매진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 한 명이 아쉬운 중소 개발사로서도, 밀린 개발 일정이 쌓여 있는 개발자로서도 이만저만한 부담이 아니다. 한 중소 개발사 대표는 “(각종 정책 때문에 만든) 솔루션을 팔아도 되겠다”는 이야기를 했을 정도다.

 

이미 PS3 스토어는 국내 서비스를 중지했다.

 

외국 게임을 서비스하는 업체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연이은 규제에 대해 최대한 본사의 이해를 구하고 시스템을 만들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이해를 구하더라도 개발일정에 맞추기는 더욱 어렵다. 결국 소니(SCE)는 PS3 스토어의 한국 서비스를 일시 중단했다.

 

일부 개발사는 이어지는 규제 정책에 적응하는 걸 포기한 채 아예 청소년이용불가로 새롭게 이용등급을 받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이미 셧다운제 적용 과정에서 일부 게임들이 등급을 청소년이용불가로 올렸고, 게임시간 선택제를 앞에 두고 등급을 올리려는 게임업체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핵심 유저층이 18세 이하인 게임들은 그조차도 어렵다.

 

“차라리 그냥 게임을 18세 이용가로 해줬으면 좋겠어요.” 강제 셧다운제에 대해 취재하던 당시에 한 개발사 대표가 했던 이야기다. 지금은 그때에 비해 두 개의 산이 더 생겼다. 첩첩산중이다.

 

규제의 옳고 그름이나 실효성을 따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게임 과몰입을 예방하고 막겠다는 취지도 잘 알겠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규제들은 국내 게임 개발사를 필요 이상으로 괴롭히고 정책에 대한 반감만 키울 뿐이다. ‘제도의 일원화혹은 중소 개발사에서도 큰 부담 없이 따를 수 있는 합리적인 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올해 들어 기존의 등급을 청소년이용불가로 올리거나 아예 청소년이용불가 등급을 원하는 게임들이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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