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이라는 게 그런 거지요. 한번 마음을 주면, 좀체 잊혀지지 않는 법이죠. 웬 생뚱맞은 첫사랑 타령이냐고요? 게임도 ‘첫 마음’을 잡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구요.
두달 전 제 동생이 PC에 MMORPG를 설치했어요. 캐주얼게임밖에 모르던 녀석인데 말이죠. 동생 PC에 처음 자리를 튼 MMORPG는 <열혈강호>더군요. 동생은 요즘도 퇴근 후에 <열혈강호>와 ‘열애’ 중이죠.
아는 한 여자 후배는 <WOW>에 푹 빠져있어요. 홈페이지 가보면 온통 <와우> 이야기뿐이더군요. 크리스마스 때부터 ‘메리 와우마스’를 외치질 않나, 주말이면 집구석에 처박혀 ‘와우질’뿐이다. 원래 MMORPG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였는데 말입니다.
문득 지난해 말 블리자드 코리아의 한정원 지사장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죠. “<리니지> 등 기존 MMORPG는 경쟁 대상이 아니다. <스타크래프트>와 경쟁한다”. 가끔 이 말은 잘못 전달돼 한국 온라인게임을 한수 낮춰 본 거 아니냐는 혐의로 오해받기도 했죠. 하지만 아니에요. 이 양반 이야기의 핵심은 ‘첫 마음’을 잡겠다는 거였죠. 그간 국산 MMORPG를 안 해왔던 초보 MMORPG 유저를 잡고 오래 가겠다는 말이었죠.
‘첫사랑’처럼 ‘첫 마음’은 쉽게 안 떠나요. 플레이보이처럼 ‘메뚜기족’은 이게임 저게임 왔다갔다 하잖아요. 여기저기 마음을 주죠. 하지만 한번 푹 빠진 ‘첫사랑’처럼 처음 마음(=시간)을 뺏긴 초보 유저는 그 게임에서 빠져나가는 게 굉장히 어려워요. 한 게임(사람) 플레이(사랑)하기도 바쁜데 다른 게임 쳐다볼 시간이 어딨겠어요.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는 아직도 꾸준한 인기입니다. 아마 이 둘이 ‘첫사랑’인 게이머들이 많이 때문일 거에요. 처음 시작해서 레벨을 30까지 올렸는데, 처음으로 온라인게임 하면서 사람을 사귀었는데, 좀 멋있어 보이는 게임 처음부터 맨땅에서 시작하는 건 쉽지 않죠.
게다가 ‘첫 마음’은 진도가 느린 편이죠. ‘첫사랑’이 그런 것처럼 조심스러우니까요. 능숙한 플레이보이처럼 하드코어 유저는 진도가 무척 빨라요. 이 경우는 공급(게임사의 업데이트)이 수요(플레이 스피드)를 따라갈 수 없지요. 그런 점에서 능숙하지 못한 ‘초보’ 유저는 게임사에겐 더욱 반가울 수밖에 없을 거에요. 느리니까, 더 오랫 동안 할 거 아니에요. 정액제라면 더 오랫 동안 돈을 내구요.
그런 점에 동시접속자 10만을 넘기고 있는 <와우>가 약간 우울할 거에요. 기대와는 달리, ‘플레이보이’가 너무 많거든요. 고렙 유저가 넘쳐나는 상황이 돼버렸잖아요. 비록 높은 퀄리티로 유저의 ‘충성도’는 확보했지만, 그 ‘충성도’가 느릿느릿한 ‘첫 마음’ 같은 종류가 아니잖아요. 진도가 엄청나게 빠른 ‘선수’들의 ‘충성도’잖아요.
반면 완성도에서는 <와우>에 뒤진다는 평가를 받는 <열혈강호>지만 유저층은 알짜처럼 보여요. 제 동생처럼 첫 MMORPG로 <열혈강호>를 선택한 유저가 상대적으로 많아 보이니까 말이죠.
지난해 게임산업이 다소 부진했다고 ‘위기론’이 대두됐어요. 대형 게임포털들의 실적이 투자에 비해 저조했기 때문이죠. 이렇게 분석하시는 분들은 ‘사랑’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메이플스토리>나 <카트라이더>, <열혈강호> 혹은 <프리스타일>이 잘 안 보였나 보죠.
아직도 수많은 ‘첫 마음’들은 설레일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