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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칼럼] 아타리쇼크와 온라인게임

고려무사 2007-05-28 11:09:56

최근에 예전부터 알고 지낸 게임 개발자와 밥을 먹을 기회가 생겼다. 오랜만에 만난 자리라서 가벼운 이야기나 주고받을 심산이었다. 그런데 그 개발자가 갑자기 ‘아타리 쇼크’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또 다른 형태의 ‘아타리 쇼크’가 발생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고 있다는 이야기를 필자에게 털어놨다.

 

정부기관과 언론에서는 ‘온라인게임 강국 한국’, ‘게임시장 규모 9조원 돌파’ 등 장밋빛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실제 게임업체들의 속내를 살펴보면 생존경쟁이 치열하다 못해 절박하기까지 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제대로 된 게임업계의 현실을 말하는 곳이 한곳도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필자는 ‘아타리 쇼크’를 80년대 초반에 미국 게임업계에서 일어난 일종의 ‘대공황’ 정도로 알고 있었다. 이게 전부였다. 국내 온라인게임 업체들이 고전하고 있는 시장인 것은 알겠지만 ‘대공황’에 빗댈 만큼 심각한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일단 개발자가 말하는 ‘아타리 쇼크’가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아타리 쇼크’는 넓은 의미에서 게임 소프트웨어의 과잉공급 때문에 소비자의 흥미가 급속히 떨어져 단번에 시장수요가 줄어드는 것을 말한다. 좁은 의미로는 1982년 미국에서 연말 판매경쟁으로 발생한 가정용게임기와 소프트웨어의 판매부진이다. 좀더 구체적으로는 아타리에서 만든 ‘ATARI 2600 VCS’의 몰락을 뜻한다.

 

당시 미국에서는 게임기 ‘ATARI 2600 VCS’가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기술을 공개하면서 수많은 개발사들이 게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 때 만들어진 대부분의 게임은 완성도가 낮았고 소비자들은 게임뿐 아니라 게임기까지도 외면하기 시작한다.

 

결국 이때 30억 달러에 달하던 미국 게임시장 규모는 한순간에 1억 달러 시장으로 바뀌고 만다. 소비자들이 게임이라는 것 자체를 외면하고 나선 것이다. 이때부터 미국 게임시장의 침체기가 시작된다.

 

 

이 개발자는 자신도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이지만 지금의 한국 게임시장은 너무 획일화된 방향으로 게임이 만들어지고 있고 이와 같은 추세는 점점 소비자를 온라인게임에 무덤덤하도록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갈 경우 어느 순간 소비자들이 온라인게임에 무관심해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물론 이 개발자의 말이 전부 맞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많은 게임이 나오고 있고 이중 흥행하는 게임이 극소수이지만 전체 유저 수는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온라인게임이 하나의 완성된 상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컨텐츠가 추가되고 있고, 유저 역시 지속적으로 돈을 써야만 하는 구조라는 점에서도 ‘아티리 쇼크’와 다르다.

 

예를 들어 <서든어택>을 하던 유저가 새로운 여러 FPS게임을 접했지만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을 ‘아타리 쇼크’와 연관지어 보면 이 유저는 FPS게임에 실증이 난 나머지 게임을 접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은 다시 <서든어택>으로 회귀한다는 것이 마케터들의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발자가 푸념하는 내용에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컨셉의 온라인게임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결과적으로 상당수 개발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새로운 게임이 나와도 예전처럼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도 맞는 것 같다.

 

많은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보다는 한 게임회사의 예를 들어보자. ‘아타리 쇼크’와 관련된 일화다.

 

‘아타리 쇼크’로 거대시장 미국이 한순간에 붕괴하는 것을 보면서 고민에 빠진 게임업체 중 하나는 일본의 닌텐도였다. 당시 닌텐도는 유저들이 너무나도 무섭다는 교훈을 얻었다. 아무리 수요가 차고 넘쳐도 재미없는 게임은 시장에서 발붙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닌텐도의 야마우치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유저들은 쉽게 질린다. 처음에는 매우 신기해서 몰려들지만 금방 싫증을 낸다. 게임에는 매력이 있어야 한다. 열 중 하나라도 재미있는 게임이 있으면 그곳에 수요가 집중된다. 그것이 곧 게임시장을 지탱한다.”

 

닌텐도는 결국 질 높은 게임을 만드는 것만이 게임시장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고 철저한 관리시스템 아래 ‘서드파티’ 제도를 도입해 닌텐도의 게임기인 ‘패미컴’에 적용한다. 닌텐도는 개발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기 전에 ▲게임내용에 대해 닌텐도의 사전심의를 받을 것 ▲게임 개수를 1년에 5개 이하로 할 것 ▲생산은 닌텐도에 위탁하고 게임개발에만 전념할 것 등을 요구했다. 당시로서는 무척 까다로운 조건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와 같은 닌텐도의 게임 ‘물 관리’는 패미컴을 대박 게임기로 만들었다. 물론 당시 서드파티에 참가한 회사들 역시 오늘날까지 이름을 날리는 유명 개발사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참가한 서드파티는 허드슨, 남코, 타이토, 코나미, 캡콤, 자레코 등 6개 개발사였다.

 

패미콤 보급에 큰 공을 세운 게임 <제비우스>. 서드파티였던 남코가 닌텐도의 철저한 관리 아래에서 만든 게임으로 당시 150만장이 팔렸다.

 

 

 

[사이드 스토리] ET가 미국 게임시장을 망쳤다.

 

‘아타리 쇼크’가 발생하던 해인 1982년 아타리는 워너 커뮤니케이션에 인수된 상황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워너는 영화에 관심이 많은 회사다. 그런데 1982년 6월에 기념비적인 영화 <ET>가 개봉된다. 잘 알려진 것처럼 <ET>는 엄청난 이슈를 불러일으켰고 워너는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엄청난 액수의 로열티를 제시하며 <ET>를 게임으로 만들고자 한다.

 

뭐 여기까지는 의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문제는 제작기간이었다. 6월에 영화가 개봉됐고 7월에 라이선스 계약이 맺어졌다. <ET>게임을 미국 전역에 뿌리기 위해서는 늦어도 9월까지는 게임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놓쳐서는 안됐기 때문이다.

 

결국 게임 제작기간은 단 5주에 불과했다. 하지만 워너는 <ET> 게임의 크리스마스 시즌 발매를 결정했고 게임이 날림으로 만들어졌다. 게임이 발매된 이후 처음에 성적은 꽤 좋았다. 무려 500만장이 소매상에 팔린 것이다.

 

하지만 곧이어 엄청난 반품요청이 들어왔다. 엉터리로 만든 게임이 소비자들에게 먹힐 리가 없었다. 결국 90% 이상의 게임이 반품으로 돌아왔고 이 게임들은 멕시코에 있는 한 사막에 묻혔다. 영화 <ET>가 ‘아타리 쇼크’의 원흉이 됐다는 이야기는 이렇게 해서 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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