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룰까 말까 고민했습니다. 루머니까요. 두 달 이상 미뤘습니다. 이야기가 좀더 들렸습니다. 다루기로 했습니다. 워낙 거대한 이슈이고, 정황상 그럴 듯했습니다. 주변인들의 증언, 일부 당사자들의 답변, 인도네시아 내의 정황 등에 비추어 루머를 파봤습니다. 그래도, 루머는 루머입니다. 판단은 독자 여러분께 맡깁니다. /디스이즈게임 시몬(임상훈 기자)
<포인트블랭크>와 인도네시아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포인트 블랭크> 덕분에 온라인게임을 알게 됐다. 대부분의 게임업계 사람들은 <포인트 블랭크> 덕분에 인도네시아 시장을 알게 됐다. <포인트 블랭크>는 그런 게임이다.
<포인트 블랭크>의 대박 이후 숱한 게임이 뒤를 이으려 했다. 실패했다. <포인트 블랭크>를 서비스하며 네트워크와 노하우를 키운 크레온도 실패했다. <포인트 블랭크>는 그런 게임이다.
<포인트 블랭크>는 2009년 서비스 시작 이래, 인도네시아 1등 게임을 뺏긴 적이 없다. 최고 동시접속자 26만 명까지 찍은 것으로 전해졌다. 인도네시아의 <스타크래프트>+<포트리스 2>+<카트라이더>다. 시장을 '지배하는' '압도적인' '국민 게임'의 지위를 5년 이상 유지해 왔다.
인도네시아 PC방의 모습. 기사보다 더 많은 관심을 모았던 PC방 소녀.
덕분에 크레온은 인도네시아 최고의 퍼블리셔에 올랐다. 이후 <로스트사가> 등을 성공시키며 그 지위를 확고히 했다. PC방(와르넷)도 대부분 장악했다.
인도네시아 시장과 <포인트블랭크>에 관한, '읽어서 손해나지 않을' 참고 기사
[이머징 마켓 공략 ①] 인도네시아, 포인트블랭크(2010년 3월 18일)
[허접칼럼] 시몬, 인도네시아를 가다(2010년 12월 23일)
동남아시아를 흔드는 어마어마한 루머
그런데, <포인트 블랭크>의 인도네시아 퍼블리셔가 바뀐다?
대부분의 국내 업계 관계자들은 말이 되느냐고 묻는다. 잘 되고 있는데, 굳이 변수를 만들 이유가 뭐 있냐는 거다. 전례도 드문 일이다.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업계에서는 그렇게 믿고 있다. 몇 달 전부터 루머가 파다했다. 정황도 보인다.
루머의 주인공은 '가레나'다. 대만과 동남아에서 <리그오브레전드>를 서비스하며 단숨에 동남아에서 가장 잘 나가는 퍼블리셔가 됐다. 2012년 식욕 좋은 텐센트가 최대 지분을 인수했다.
가레나는 태국과 필리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서 <포인트 블랭크>를 서비스하고 있다. 이 회사가 <포인트블랭크>의 인도네시아 라이선스까지 얻기 위해 나섰다는 것이다.
재계약 관한 루머는 사이즈가 역대급이다. <리그오브레전드>까지 등장한다. 소문은 몇 가닥의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져 있다.
1. 라이엇게임즈가 동남아에서 <리그오브레전드>를 직접 서비스하기로 했다. 와!
2. 가레나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포인트 블랭크>를 대체재로 삼기로 했다. 헐!
3. 가레나가 엄청난 계약금을 개발사인 제페토에 제시했다. 음.
4. 제페토는 이 조건 때문에 <포인트 블랭크> 인도네시아 라이선스를 가레나에 주기로 했다. 흠.
5. 현재 가레나는 <포인트블랭크> 인도네시아 서비스 준비를 하고 있다. 허.
이 소문을 두 개로 쪼개면, <리그오브레전드> 동남아 라이선스와 <포인트 블랭크> 인도네시아 라이선스 재계약 이슈다. 두 타이틀은 동남아시아에서 압도적으로 인기가 높다. 동남아 게임계 전체가 요동칠 만한 쓰나미급 이슈다.
라이엇게임즈의 답변 - "동남아 직접 서비스 계획은 없다."
만약 라이엇게임즈(이하 라이엇)가 직접 동남아 서비스를 하기로 했다면, 그 자체는 특별한 게 아니다. 해외 서비스는 처음엔 현지 파트너를 통해 하다가도, 어느 정도 안정화되면 직접 하는 경우가 많다. EA 코리아나 블리자드 코리아 모두 그런 식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엔씨도 대만에서 그렇게 했다. 라이엇은 해외 시장 직접 서비스 경험도 있다. 한국에서 그렇게 잘 하고 있다.
마침 "라이엇이 싱가포르에 지사를 세웠다"는 풍문도 들렸다. 싱가포르는 가레나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EA, 액티비전-블리자드, 테이크투 등 북미 메이저 게임회사의 아시아태평양 지사도 모두 이 곳에 있다.
2월 초 라이엇에 직접 확인해 봤다. 라이엇은 동남아시아 직접 진출에 대한 소문을 강력히 부인했다. 싱가포르에 작은 팀을 세우고 있긴 한데, 이는 퍼블리싱을 위한 조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싱가포르 팀은 게임을 위한 게 아니다. 상품 개발(Merchandising)을 위한 조직이다. 우리는 올해 상품 개발 사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한 여러 지역에 사무실을 내고 있다. 직원은 최대로 많아봐야 3~4명 정도일 것이다."
최근 라이엇의 머칭다이징 사이트(링크)가 생겼다.
가레나와 크레온, 제페토의 답변 - "......"
가레나와 크레온에도 문의했다. 가레나는 답변을 주지 않았다. 크레온은 밝힐 내용이 없다고 답변했다.
제페토에도 물었다. "진행 상황을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아무도 부인하지 않았다. <포인트 블랭크> 인도네시아 라이선스에 관해 소문과 관련된 무언가 진행 중인 것은 확실하다.
인도네시아에서 <포인트 블랭크>가 서비스를 시작한 것은 2009년 6월 18일이다. 그해 7월 초 포인트몰을 오픈했다. 일반적인 게임의 해외 라이선스 계약 기간은 3년이다. 계약 발효 시점은 상용화다. 따라서, <포인트블랭크>는 2012년 7월 초 재계약을 했고, 2015년 7월 또다시 재계약 시점을 맞는다.
크레온 대신 가레나가 퍼블리싱을 한다면 7월 초부터다. "인도네시아 현지에서는 가레나가 100~125대의 서버를 설치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현지 지인은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에서 이 규모의 서버가 필요한 게임은 <포인트 블랭크> 밖에 없다.
크레온의 포털사이트 '겜스쿨'(www.gemscool.com)에서 최근 <포인트블랭크>의 비중이 많이 줄었다. 현지 관계자에 따르면 "과거에 비해 <포인트 블랭크> 비중이 50% 이상 축소됐다"고 한다. 크레온이 <포인트 블랭크>에서 발을 조금씩 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하다.
크레온의 입장과 계약 진행과정의 의문점
일반적인 해외 라이선스 계약에는 기존 퍼블리셔를 위한 '안전장치'가 있다. 기존 퍼블리셔가 우선협상권을 갖는 경우도 많다. 우선협상권이 없더라도 최종 선택권을 갖는 경우도 있다. 다른 퍼블리셔가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기존 퍼블리셔가 그 조건을 받아들이면 말짱 꽝이 된다. 계약서에 명기되거나, 관례적으로 그렇게 한다.
크레온에게 <포인트 블랭크>는 5년 이상 키워온 핵심 타이틀이다. 5년간 다져놓은 PC방 네트워크도 <포인트 블랭크>의 지배적인 영향력에 덕을 봤다. 재계약이 안 될 경우 PC방 네트워크의 주도권을 상당 부분 잃을 가능성이 있다. 크레온은 계약조건이 다소 악화되더라도 이런 타이틀은 지키려 했을 것이다.
크레온이 단일 게임에 의존하는 퍼블리셔는 아니다. 현재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가장 잘 나가는 온라인게임 5개 중 4개를 쥐고 있다. <포인트 블랭크> 외에도 <로스트사가> <드래곤네스트> <아틀란티카 온라인>이 있다. <로스트사가>는 <포인트 블랭크>에 이어 10만 동접을 넘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포인트 블랭크>의 상실은 크리티컬하다. 평소 크레온 임원들은 "10년 이상 함께 할 게임이다. 계속 키워나갈 것"이라고 꾸준히 이야기해왔다. 개발사인 제페토와도 5년 이상 동고동락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재계약 무산에 의문점이 든다.
크레온이 우선협상권을 가졌다면, 이런 소문이 날 가능성은 없다. 최종 선택권을 가졌다면, 아직 협상할 시간은 많이 남아있다. 그럼에도 가레나가 서버 준비까지 마쳤다는 것은 크레온의 의사와 무관하게 가레나-제페토 사이에 이미 이야기가 끝났다는 설에 무게를 실어준다.
가레나가 제시한 계약조건이 궁금하다. 도대체 어느 수준이기에 이런 진행이 가능할까?
제페토의 매우 이례적인 행보
제페토의 행보도 무척 이례적이다. 제페토는 <포인트 블랭크>는 인도네시아 성공을 기반으로 커온 회사다. 지난 5년 간 크레온과 제페토는 마찰 없이 <포인트 블랭크> 서비스를 키워왔다. 크레온은 다른 FPS의 론칭 제안도 거부해왔다. 제페토는 조강지처를 버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해외사업에 밝은 업계 관계자들은 모두 "인정과 별개로라도, 기존 사업자만큼 그 게임을 잘 이해하는 회사는 없다"고 말한다. 새로운 사업자와 라이선스 계약은 조건이 아무리 좋더라도 위험부담 역시 커진다. 과거에 없던 여러 변수가 생긴다.
제페토의 관점을 추정해본다. 가레나는 검증된 파트너다. FPS 후발주자로 시작한 태국과 필리핀에서 <포인트 블랭크>의 흥행을 이끌었다. 그 과정에서 게임에 대해 충분한 노하우를 쌓았다. 개발사와 긴밀한 협업을 해왔다. 제페토는 퍼블리셔를 교체하더라도, 인도네시아에서 위험부담이 매우 낮을 것으로 판단했을 수 있다.
개발사 입장에서는 해외 파트너가 하나로 통일되면 커뮤니케이션이나 업데이트 등에서 유리한 측면도 있다. 동남아시아 통합 리그 등의 시너지 효과에 대해서도 기대를 걸 만하다.
가레나 - 인도네시아 시장에서 실패해온 퍼블리셔
가장 덜 의문스러운 회사는 가레나다. <리그오브레전드> 재계약과 별개로, <포인트 블랭크>는 가레나에게 날개를 달아줄 가능성이 높다. 가레나는 <리그오브레전드>를 통해 대만과 베트남 등에서 가장 막강한 퍼블리셔로 입지를 다졌다. 태국에서도 <HON>과 <포인트 블랭크>로 1등이 됐다. 'Garena+'를 통해 동남아시아와 대만, 홍콩 등의 게이머를 모두 모으고 있다.
유망한 동남아 시장 중 가레나가 못 잡은 곳은 인도네시아 뿐이다. 가레나는 2년 전부터 <리그오브레전드>와 <피파 온라인 3>로 인도네시아를 공략했다. 명백히 실패했다. <리그오브레전드> 동접은 2,000~3,000 수준이다. <피파 온라인 3>의 동접도 1만을 넘지 못하고 있다. 크레온과 <포인트 블랭크>의 벽이 너무 높았다.
인도네시아는 동남아에서 가장 잠재력이 큰 곳이다. 꼭 잡고 싶었을 것이다. 가레나의 고민을 한 방에 극복할 수 있는 카드로 <포인트 블랭크>만한 게 없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 서비스했고, 성공한 경험도 있다. 제페토와 손발도 맞춰봤다. 직접 서비스하는 다른 나라를 통합한 리그 등을 통해 시너지를 강화할 수도 있다. 큰 베팅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레나는 <포인트 블랭크>를 통해 인도네시아 내의 입지를 다진 후, <리그오브레전드> <피파 온라인 3>을 그 위에 얹을 것이다. 당장의 성공이건, 그 다음의 더 큰 성공이건 <포인트 블랭크>는 핵심 카드다.
마치며 - 텐센트의 거대한 그림자
루머는 루머다. 아직 정식으로 확인된 것은 없다. 재계약 시점 상 (이미 이야기는 끝났을지언정) 지금 도장을 찍을 일도 없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게임판에서 워낙 거대한 이슈임은 분명하다. 몇년 전 나돌았던 넥슨의 아시아소프트 인수설(실제 논의는 진행됐다)보다 체감하는 사이즈가 훨씬 크다.
어쩔 수 없이, 텐센트의 거대한 그림자도 보인다.
넥슨은 2014년 초까지 대만 메이저 퍼블리셔 감마니아의 최대주주였다. (가레나가 두각을 보이기 전) 동남아 최대 퍼블리셔였던 태국의 아시아소프트를 인수하려 했다. 동남아 시장을 아우르는 주도적인 퍼블리셔의 입지를 꿈꿨다. 감마니아의 지분은 지난해 다 팔았다. 아시아소프트 인수는 무산됐다.
텐센트는 2012년 가레나의 최대 주주가 됐다. 베트남과 필리핀의 유력한 퍼블리셔 VNG(비나게임즈), 레벨업에도 투자했다. 가레나가 인도네시아의 <포인트 블랭크> 라이선스를 갖게 된다면, 텐센트의 동남아 장악 시나리오에 마침표가 찍힌다.
결과는 아무리 늦어도 6월이면 밝혀질 것이다.
가레나가 <포인트 블랭크>를 품을 경우, 인도네시아 PC방은 어떻게 될 것인가? <포인트 블랭크>를 빼앗긴 크레온은 어떤 대응을 할 것인가? 한국 게임 개발사와 퍼블리셔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루머의 당사자들은 지금도 열심히 이 질문의 해답을 찾고 있을 지도 모른다.
6월 이후 인도네시아에서는 꽤 스펙타클한 일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