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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허접칼럼] 바다이야기의 아픈 기억과 확률형 아이템

디스이즈게임이 확률형 아이템 논란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는 이유

임상훈(시몬) 2015-04-07 18:24:29

■ <바다이야기> 이야기

 

“<바다이야기>가 뭐냐?“ 아버지가 물었다. 

“어, 우리랑 상관 없는 거예요.” 아들이 답했다.

 


8~9년 전의 일이다. 나는 전화로 나눈 이 대화를 아직도 기억한다.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니다. 게임에 관해 물어본 아버지의 유일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아들이 신문사를 그만두고 게임 매체를 하겠다고 했을 때 실망했다. 당신은 게임을 전혀 몰랐다. 그래도 주변에는 “우리 아들이 게임 매체 창업했다”고 자랑할 수 있었다.

 

전화를 걸어올 때 무렵 사정이 달라졌다. 게임은 무언가 어둡고 위험한 것이 돼있었다. 아버지 친구들이 내 안부를, 안위를 물어보기 시작했다. 당신은 더 이상 아들 이야기를 하기 힘들어졌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 논란

 

‘뽑기’, ‘가챠’, ‘랜덤박스’ 등으로 불리는 ‘확률형 아이템’을 둘러싼 최근의 상황이 희한하다.

 

게이머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관련 기사의 댓글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율 규제를 외치는 게임 회사는 양치기 소년 취급을 받는다. 여당 국회의원의 게임 규제 법안에 대해 게이머들이 찬성하고 있다. 유사 이래 이런 일은 처음이다.

 

게임 회사들도 바빠졌다. 한국인터넷디지털콘텐츠협회(협회장도 바뀌는 마당에, 부디 협회 이름에 ‘게임’이 들어가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소속사들은 셧다운제나 중독법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기 때문이다. 과거 그랬던 것처럼 업체 별 이해관계에 따라 대응 강도나 방법에 이견이 크다. 물밑으로 국회의원실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는 풍문도 들린다. 

 

법안 발의 이후 내가 전해 들은 업계의 공식 대응은 지금까지 딱 하나다. 개별적인 목소리를 내기보다 협회로 대응 창구를 일원화 했다는 것. 

 

 

어느 개발자의 우려

 

나는 이 사안만큼이나, 이 사안을 대하는 업계의 감각이 정말 우려스럽다. 협회장의 교체 시기라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 상황이다. 업계의 매출액에 영향을 미칠 수준의 비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게임 생태계가 완전히 가라앉을 수도 있다. 

 

지난주 산전수전 겪은 고참 개발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현 상황을 이렇게 우려했다.

 

“모바일게임에 수천만 원씩 쓰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 지갑이 무척 두꺼운 사람과 가슴에 화가 엄청 많은 사람. 지갑이 두꺼운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가슴에 화가 많은 사람이 걱정이다. 게임에 돈을 막 지르다가 밸런스 붕괴나 운영에 대한 불만, 혹은 경제적 곤란 때문에 한강에 점프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되겠냐?”

 


언론들이 몰려들 것이다. 작은 사례는 크게 부각되고, 상관 없는 이야기까지 묶일 것이다. 비판과 비난이 쏟아지고, 어느 업체도 공식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다. <바다이야기> 때처럼 선을 긋고 “우리는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도 없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또다시 아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 앞에 닥친 위기

 

미래의 불확실한 위기 말고도, 이미 우리 앞에 심각한 위기가 도래했다. 한국 모바일게임의 글로벌 경쟁력은 무척 걱정스럽다.

 

한동안 우리는 일본 게임시장을 ‘갈라파고스’라고 불렀다. 글로벌 시장과 동떨어져 발전을 못 했기 때문이었다. 모바일게임 시장에서도 일본은 특이하다. ‘가챠’ 류의 수익모델이 유별나게 두드러진다. 한국 게임은 이 갈라파고스의 수익모델을 복사했다. 라인 등의 SNS을 통해 선점한 일부 시장을 제외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크게 성공한 사례를 찾기가 힘들다.

 

 

온라인게임은 해외에서 돈이 마구마구 들어왔다. 개발 생태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었고, 갖가지 시도를 했다. 모바일게임 생태계는 전혀 다르다. 구글과 애플에 30%씩을 떼주고, 카카오톡에도 21%를 떼준다. 해외에서 걷어들인 수익은 <클래시오브클랜>이나 <캔디크러시사가> 등이 벌어가는 수익보다 작다. 모바일게임 생태계는 갈수록 축소될 수 밖에 없다. 검증된 장르와 수익모델에 기댈 확률이 높아진다.

 

지난해 6월 텐센트는 한국에서 모바일 로드쇼를 했다. 서울에서 열린 가장 큰 게임 행사 중 하나였다. 한국 모바일게임을 소싱하기 위해 본사 임원들이 출동했다. 올해 텐센트는 이런 행사를 계획하고 있지 않다.

 

 

자초한 비상상황

 

이번 위기는 정치인의 쓸데없는 오지랖 때문에 생긴 게 아니다. 게임 회사들이 자초했다.

 

예방할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일본의 수익모델을 벤치마크했다면, 일본의 위기 관리에 대해서도 알았을 것이다. TIG를 비롯한 국내 언론에서도 일본 정부의 규제 시도와 업계의 대응이 보도됐다. 지난해 11월 국내에서도 자율 규제안이 마련됐지만, 실효성은 없었다. 

 

직접 관련된 업체는 매출 하락 우려 때문에 기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관련이 적거나 없는 업체는 남의 일까지 끼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위기는 더욱 곪았다.

 

이제 정치인이 나섰고, 게이머가 이에 호응한다. 비상상황이다. 

 

 

업계가 끌려가지 않으려면 게이머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게이머는 적극적이고, 신속한 대책을 원한다. 현재의 협회 의사결정 구조는 이에 적합하지 않다. 비상상황에는 그에 맞는 비상대책 의사결정 과정이 필요하다. 신임 강신철 협회장에게 기대를 건다면, 그에게 힘을 실어 줘야 한다. 강 회장과 전면적인 위임권을 받은 대책기구는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대책을 세우고, 발표해야 한다.

 

 

 <바다이야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바다이야기>는 TIG에게 부끄러운 과거다. 당시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았다. TIG 첫 사무실(겸 숙소)의 옆 건물 1층에 그런 게임기를 가진 가게가 문을 열었다. 

 

<바다이야기>의 위험을 대충 눈치 챘다. 그러나 취재하지 않았다. 우리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건 우리 일이었다. 게임 생태계는 한동안 숨을 죽이고 있어야 했다.

 

나는 게임 기자다. 게임 업계가 발전하면 나도 좋다. 내 월급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기 때문이다. 게임 회사들이 돈을 많이 벌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우리 회사 매출이 늘어날 확률이 높다. 업계의 성장을 응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앞으로 오래오래 이 생태계를 누비며 살고 싶다. 생태계가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번에는 <바다이야기> 때의 실수를 다시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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