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온라인게임 업계의 ‘시장’ 역할을 톡톡히 해왔던 중국.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다릅니다. 몇 년 전부터 한국 온라인게임의 점유율은 뚝뚝 떨어졌고, 현지 개발사들의 자국 시장 점유율이 60%에 달합니다. 더 나아가 한국 게임업체들이 중국 시장 못지않게 중시하는 동남아, 남미, 유럽권 시장까지 넘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중국의 온라인게임은 어디까지 와있는 걸까요. 한국과 비교해 어떤 강점을 지니고 있고, 얼마만큼의 가능성을 갖고 있을까요. 차이나조이 2008을 통해 5일간 중국에 머무르면서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토대로 몇 가지 궁금증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 중국 시장에서 한국 게임은?
먼저 시장 규모로 따져보죠. 게임백서에 따르면 2007년 한국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는 약 2조1천억 원이었습니다. 반면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는 1조4천억 원(아이리서치 발표, 2007년 기준)으로 아직은 규모 면에서는 한국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7년 중국 온라인게임 유저가 2억 명으로 추산되는 것에 비하면 매출에서는 아직 모자라죠.
그러나 아이리서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규모는 올해 1분기(1월~3월)에 5천8백억 원으로 확대되어, 2008년의 전체 시장규모는 한국과 비슷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주목할 수치는 2007년 중국 게임업체들이 직접 개발한 온라인게임의 매출액이 9천억 원으로 전체 매출의 65.1%를 차지했다는 사실입니다. 나머지를 한국 게임들과 <WoW>로 대표되는 해외 게임들이 나누어 갖는 형태인데요, 중국 시장이 자국 게임 중심으로 완전히 재편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차이나조이 2008 행사에 참석한 중국 신문출판총서 우수린 부서장은 “중국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자국 온라인게임이 3년 연속으로 6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게임업체들의 점유율이 줄어든 만큼 반대로 중국 자체 온라인게임의 영향력은 커졌다는 얘기죠.
차이나조이 2008 행사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도 비슷했습니다. 대형 업체가 모여있는 1홀의 샨다, 거인, 텐센트, 나인유 등은 대부분 한국 게임과 자국 게임을 반씩 섞어서 출품했습니다. 아직까지 한국 온라인게임의 인기는 높다는 증거죠.
그러나 중소 게임사가 모인 2홀과 3홀의 부스들은 대부분 중국산 게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60%라는 점유율을 절묘하게 체감할 수 있는 배치였어요.
차이나조이 2008에 출품된 모든 게임 중 중국에서 자체 개발한 게임이 70%를 넘는다고 합니다. 중국 시장에서의 한국 게임 점유율은 분명히 축소됐고, 계속 축소되고 있었습니다.
■ 중국 당국이 한국 게임을 규제한다?
중국으로 출발하기 전, 많이 들었던 얘기입니다. 중국 당국이 한국 온라인게임에 대해 ‘판호(서비스 허가권)’를 내주지 않는다는 것이죠. 자국의 게임에는 1~2개월이면 판호를 내주지만, 한국 게임은 요즘 6개월 이상 걸리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모 국산 게임의 경우 1년 동안 판호를 받지 못해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중국 현지 업체들의 반응은 다릅니다. 한국 게임을 규제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외산 게임에 대해 강도 높은 심의 과정을 거친다는 것이죠. 또한 중국 현지에서 어떤 퍼블리셔(=서비스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얼마나 빨리 판호를 받을 수 있는지가 결정된다고 합니다.
<영웅 온라인>의 중국 퍼블리셔를 맡은 천진풍운의 곽홍걸 총괄 PM은 “물론 외산 게임이 판호를 받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외산 게임이 정상적으로 판호를 받으려면 3~6개월이 걸린다. 하지만 그건 해당 업체의 능력에 달려있다. <영웅>의 경우는 2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이후 자꾸 오해를 사지만, 중국은 분명 공산국가입니다. 정부가 모든 것을 관리하죠. 때문에 판호를 받는 일에도 해당 업체가 정부와 얼마나 긴밀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가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개발사의 ‘준비’도 중요합니다. 곽홍걸 총괄 PM에 따르면 “엠게임은 여러 번 판호를 받아봤기 때문에 특히 자료준비 면에서 탁월했다. 판호도 일종의 ‘심의’인 만큼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자료를 얼마나 상세하게 준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이런 경험은 많은 차이를 낳는다”고 말했습니다.
■ 중국 게임업체들의 개발력은?
“약 80%까지 따라온 것 같습니다.”
엠게임 권이형 대표의 말입니다. 중국의 게임 개발력이 한국에 비해 얼마나 차이 나는 것 같느냐는 질문에 권이형 대표는 ‘80%’까지 따라왔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픽이나 프로그래밍은 벌써 따라 잡았고, 그래도 아직 기획력에서는 차이가 난다. 유저가 어떤 것을 원하고 어떤 점에 가려워하는지를 파악해 발 빠르게 대응하는 면에서는 아직 서툰 것 같다.”
언뜻 의문이 생길 겁니다. 그것밖에 차이가 안 날까? 하는 생각도 들 겁니다. 사실 올해 차이나조이에 출품된 게임들은 (아직도) 무협 MMORPG가 많았고, 그나마 대부분은 2~3년 전의 한국 게임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래픽면에서는 아직도 2D와 도트를 고수하는 게임이 많았죠. 언리얼 엔진 3나 크라이엔진 2 등을 이용해 화려한 그래픽을 선보이는 한국 게임들과는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차이나조이를 둘러본 국내 게임업계 직원들도 ‘몇몇 게임 빼고는 아직 멀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엔씨소프트, NHN, 엠게임 등 대형 게임사는 중국에 ‘개발 스튜디오’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고, 중소 게임사들도 중국과 ‘합작 프로젝트’나 ‘외주’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역할은 대부분 ‘그래픽’이죠. 원화를 ‘창작’하는 면에서는 아직 부족하지만, 주어진 원화를 구현해내는 능력면에서는 한국 개발자에 비해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른 시각도 있습니다. 단순 비교는 말자는 겁니다. 개발력이라는 것이 ‘유저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는 능력’인데 왜 중국과 한국을 그대로 비교하냐는 논리입니다.
국내 시장이 좁아 수출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한국 개발자들과 풍부한 자국 시장을 보유한 중국 개발자들은 상황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중국 개발자들의 ‘개발력’이란 중국 유저들이 원하는 것을 얼마나 잘 만들어내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겠죠. 중국 온라인게임이 무협 RPG 일색인 것은 무협을 좋아하는 유저가 많기 때문이고, 그래픽이 뒤쳐지는 것은 저사양 유저를 위한 배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중국 개발팀과 합작 게임을 만들고 있는 한 국내 개발사의 대표는 “한국은 서버를 구성할 때 기껏해야 동접 20만 명을 최대치로 놓지만, 중국에서는 기본이 100만 명이다. 이런 환경에서 악전고투하며 배우다 보니 서버 기술면에서는 한국의 최고 개발자들과 동급으로 봐도 좋을 정도다”라고 말합니다.
권이형 대표의 80%라는 표현,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중국이 남은 20%를 따라잡는데 얼마나 걸릴까 궁금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중국이 일정 수준 이상의 경쟁력을 갖췄다는 사실입니다. 꼭 20%의 차이까지 줄어들어야 위협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 해외 시장에서의 양국 게임은?
사실 더 큰 문제는 중국 밖에서의 경쟁입니다. 국내 게임업체들도 오래 전부터 중국 시장 점유율 하락을 느끼고 동남아, 북미, 남미, 러시아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왔죠. 중국 게임업체들 역시 점점 심해지는 자국 시장의 경쟁을 벗어나 해외로 시선을 돌리고 있습니다.
해외 시장에서의 양국의 게임은 어떤 양상을 보일까요? 중국 아워게임에셋의 우궈량 대표는 전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직까지 해외 시장에 나가면 경쟁력이 떨어진다. 2007년 기준으로 중국의 게임 수출은 1억 달러(약 1천억 원)를 밑돈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수출에 매진해온 한국 온라인게임은 2006년 수출액이 6억7천만 달러(약 6천8백억 원), 2007년에는 7억9천만 달러(약 8천억 원)로 추산됩니다(게임백서 기준). 2007년을 기준으로 보면 해외 수출에서 한국은 중국에 비해 7배 정도 앞서 있습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남미, 러시아, 유럽 등 이른바 신흥 시장에서 중국 게임은 무서운 속도로 한국을 추격하고 있습니다.
중국 온라인게임의 수출 경쟁력은 ‘저렴한 가격’과 ‘적극적인 지원’, ‘중화권이라는 문화적 익숙함’ 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엔트리브소프트 해외사업팀 박향화 과장은 “중국 게임은 한국에 비해 금액적인 면에서 절반 수준으로 매우 유리하다. 그렇게 저렴하면서도 이른바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중국 게임업체들의 개발 서포트는 신흥 시장에서 큰 경쟁력으로 부각되고 있다. 신흥시장은 아니지만 대만 같은 화교권 국가에서는 같은 문화권이라는 장점으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중국 게임업체과의 경쟁을 “정말 무섭게 느껴질 정도”라고 표현합니다.
네오위즈게임즈 해외사업팀의 한 관계자는 “동남아 시장의 경우 네트워크 인프라가 열악해 한국 온라인게임들이 진출하는데 큰 장벽이 된다. 하지만 중국산 게임들은 이미 드넓은 중국 전역을 커버할 수 있는 네트워크 기술을 터득하고 있으며, 컴퓨터 사양도 비슷하게 낮은 편이라 현지에 쉽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가장 두려운 것은 EA-네오위즈의 제휴처럼, 온라인게임 하면 한국을 제일 먼저 찾았던 해외 메이저 업체들이 점점 중국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THQ-샨다가 공동개발하는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온라인> 뿐만 아니라 테이크투, 유비소프트 등 쟁쟁한 업체들이 중국 게임업체와 물밑 협상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중국 신문출판총서 우수린 부장은 “중국 게임업체들의 수출이 수직으로 증가하고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아직 부족한 면도 있지만 1~2년 후의 중국은 해외 시장에서도 한국 게임업체의 무서운 경쟁자가 될 것 같은 예감도 들었습니다.
■ 이미 당당한 경쟁자로 성장한 중국
5일 동안 중국 상해에 머물면서 받은 개인적인 느낌은 권이형 대표가 말한 내용과 일치합니다. 중국 온라인게임은 이미 한국의 80% 수준에 육박하는 느낌까지 성장해 있었습니다. 단순히 그래픽 수준이나 기획, 넘치는 모방작만 놓고 볼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중국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물론이고, 해외 시장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은 점점 확대되고 있었습니다.
야구에서 50개의 홈런을 치는 타자와 40개의 홈런을 치는 타자가 있다고 가정해 보죠. 상대 투수는 어떤 타자를 더 경계할까요? 홈런 타자를 상대해야 하는 투수에게 10개라는 차이가 얼마나 크게 느껴질까요?
한국이 온라인 종주국이라는 브랜드에 안주하는 동안, 중국은 이미 한국의 당당한 경쟁자로 떠올랐습니다. 새삼스럽게 ‘위기다’ ‘경계하자’는 말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중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져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