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라이엇게임즈가 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함께 해외를 떠돌던 조선 왕실 유물 2점을 찾아왔다는 소식을 공개했다. 석가삼존도, 효명세자빈 책봉 죽책, 척암선생문집 책판을 환수한 데 이어서 이번이 5점째.
라이엇게임즈의 '문화재 지킴이' 캠페인은 올해로 8년 차를 맞이한다. 그동안 라이엇은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를 찾기 위해 지원금을 쾌척했으며 서울문묘 정밀 측량 (2013),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복원 (2016), 이상의 집 재개관 (2018)에도 힘을 보탰다. 게이머들을 대상으로 한 역사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문화재 보호 및 환수와 관련해 이렇게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기업은 드물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라이엇게임즈의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으며 그 대주주는 중국의 텐센트다. 외국계 게임사가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 데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라이엇게임즈의 문화재 지킴이 캠페인은 2005년 문화재청이 제안한 '한 문화재 한 지킴이 운동'의 연장선에 있다. 이는 개인이나 기업이 우리의 문화유산을 맡아 잘 지키고 가꾸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운동이다. 운동 초기 삼성화재는 경복궁, 한글과컴퓨터는 세종대왕릉과 금속활자장을 담당 문화재로 맡았다. 여담이지만 당시 이 운동을 이끈 문화재청장은 유홍준 교수였다.
라이엇게임즈는 2012년 문화재청과 한 문화재 한 지킴이 협약을 맺은 것을 계기로 지금까지 관련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 문화재 한 지킴이 참가사 중 청소년 캠프나 교육 프로그램, 문화재 환경 미화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은 많지만 해외 반출 문화재를 국내로 들여오기 위해 지원금을 지불하는 회사는 라이엇이 유일하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환수할 문화재는 17만 점이 넘는데 국외 문화재 긴급매입비 예산은 약 50억 원에 불과하다. 국제 유물 경매 시장의 낙찰 금액 규모를 감안한다면 이는 넉넉지 않은 금액이다. 이마저도 문화예술계의 지속적인 요구에 의한 것으로 이전에는 10억 원대 예산으로 국외 문화재를 찾아와야만 했다.
문화재청 산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2012년에 설립돼 지금까지 활동 중이지만 수년간 예산 및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해진다. 그런 재단에 오랜 기간 실질적인 환수 성과를 안겨주도록 도운 민간 기업은 라이엇이 유일하다. 라이엇은 문화재 보호 운동에 50억 원이 넘는 돈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비교를 하자면, 국가의 문화재 긴급매입비에 달하는 돈을 외국계 민간 기업이 문화재 보호에 보탠 것이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이 19일 언론공개회에서 "라이엇 만세"를 외치고 싶다고 말한 것이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게임지에서 일하는 기자야 이렇게 라이엇의 사회 공헌 활동에 용비어천가를 부르지만, 기성 언론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이번 '백자이동궁명사각호'와 '중화궁인' 환수 건만 살펴봐도 그 기류를 읽을 수 있다. 대부분의 매체가 관행대로 통신사 자료를 참고해 단순 보도했고 구체적인 내용 전달은 없었다. 연합뉴스와 뉴시스가 19일 오후 언론공개회 종합 기사를 통해 라이엇게임즈의 사회 공헌 이력을 쓰고 박준규 대표의 발언도 인용했지만 이를 재인용한 매체는 많지 않았다.
일부 매체는 라이엇게임즈의 존재를 아예 언급하지 않고 문화재 환수 내용만 보도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문화재지킴이 협약을 맺은 온라인 게임사의 기부금 지원"이라며 회사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동아일보, 세계일보도 같은 소식을 전했지만 라이엇게임즈의 이름을 쓰지 않았다. JTBC 뉴스룸 '뉴스 브리핑'에는 이 뉴스가 단신으로 실렸으나 마찬가지로 라이엇게임즈 이름은 빠졌다.
지상파 3사는 해당 뉴스를 방영하지 않았다. 3사 중 두 곳이 현장을 찾은 것으로 확인되지만 뉴스화는 하지 않은 것이다. 이와 별개로 SBS와 KBS가 연합뉴스의 보도를 인용, 온라인 기사를 올린 것에 그쳤다. MBC는 아직 어느 곳에도 이번 일을 전하지 않았다. 주요 방송국 중엔 MBN만 박준규 대표의 인터뷰를 실으며 라이엇게임즈를 조명했다.
이들이 편향 보도나 왜곡 보도를 했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2012년부터 지금까지 해외 반출 문화재 환수를 위해 라이엇게임즈가 기울인 노력이 제대로 보도되지 않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남긴다.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을 비롯한 국내 대형 게임사들도 이룩하지 못한 일이다.
라이엇의 사례를 통해 게임은 그 자체만으로 문화적 가치를 가질 뿐 아니라 그 영역 밖에서도 사회 공헌으로 유의미한 문화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누군가에겐 자랑스러운, 누군가에겐 부끄러운, 다른 누군가는 알려고 하지 않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