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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키아누’도 못 살렸던 ‘사펑’…게임 속 셀럽 기용의 변천사

‘척 노리스’부터 ‘키아누 리브스’까지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방승언(톤톤) 2023-04-17 19:00:51

13일 개봉한 <존 윅 4>가 단숨에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흥행몰이 중입니다. 원래 필모그래피에 액션 영화가 적지 않던 리브스지만 <존 윅> 시리즈의 장기 흥행은 그의 액션 스타 입지를 더 강화해줬습니다. 그가 올해 58세의 노령이라는 점을 생각하면-브루스 윌리스와 톰 크루즈 등 비슷한 예가 있더라도-인상적인 일입니다.

 

<존 윅> 시리즈로 강화된 리브스의 스타 파워는 CDPR의 액션 RPG <사이버펑크 2077>의 마케팅에도 적극 활용됐습니다. 인게임에서 주연급 캐릭터 ‘조니 실버핸드’로 활약했을 뿐만아니라 홍보에도 큰 역할을 한 바 있습니다.

 

특히 2019년 <사이버펑크 2077> 발표를 위해 E3 무대에 오른 리브스가 팬의 환호에 “당신이야말로 숨 막히게 멋져요”(You’re breathtaking)라고 받아친 장면은 그의 겸손하고 선한 이미지에 잘 맞아떨어져 긍정적 바이럴을 일으켰습니다. 리브스를 향한 게이머들의 열광은 게임계 스타 마케팅의 좋은 사례로 남을 듯했습니다.

 

<사이버펑크 2077>에 출연한 키아누 리브스

 

 

# 키아누 리브스가 <사이버펑크 2077>에는 '재앙'이었다?

 

그런데 <사이버펑크 2077>이 실제 출시 후 대대적 실망을 안기면서, 리브스의 캐스팅이 과연 게임에 필수적이었는지를 두고도 회의론이 제기됐습니다. 리브스의 참여가 게임 제작 중간에 이르러서야 결정됐고, 이에 따라 프로젝트가 많은 부분 수정되면서 게임의 전반적 완성도 하락에 한몫하고 말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입니다.

 

물론 의혹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리브스의 참여가 중도에 결정됐다는 의심을 뒷받침할 근거가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일례로 ‘실버핸드’의 이탈리아어판 성우는 현지 매체 TGCOM 24 인터뷰에서 “리브스의 참여로 실버핸드의 대사가 약 두 배로 늘어났다”고 이야기한 적 있습니다. 사실이라면 대사 작성이 이미 끝난 캐릭터에 뒤늦은 변화가, 그것도 대대적으로 적용됐다는 의미가 됩니다.

 

설령 리브스 출연이 중간에 결정된 것은 아니라 해도, 그를 캐스팅함에 따라 CDPR의 자원이 어느 정도 분산됐으리라는 점은 예상할 수 있습니다. CDPR이 공개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유명인 기용에 막대한 비용이 든다는 것은 뻔한 사실이니까요.

 

실제로 키아누 리브스는 영화계 최고 몸값의 배우 중 하나입니다. 24년 전 작품인 <매트릭스> 1편의 출연 계약으로 1,000만 달러(131억)를 받았고,  2년 전 찍은 4편에서도 1,200~1,400만 달러(157억~183억 원)를 지급받았습니다. 이는 흥행에 따른 인센티브는 포함하지 않은 수치입니다. 그 결과 리브스는 할리우드에서 단일 영화 시리즈로 가장 많은 돈을 번 배우가 됐습니다.

 

<매트릭스> 출연 당시의 키아누 리브스

 

영화계와 게임계 출연료 차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자료는 현재로서 없지만, 짐작해 볼 만한 단서는 있습니다. 미국 배우 방송인 노동조합(SAG-AFTRA)의 2022년 발표에 따르면 SAG-AFTRA 소속 배우들의 게임 출연료는 하루 최소 902달러(118만 원) 수준으로, 극장 개봉 영화 최소 출연료인 1,082달러(141만 원)와 비교해 현격히 큰 격차가 나지는 않습니다.

 

물론 대형 배우들의 경우 계약금 규모에서 평균치와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이 자료만으로 그들의 영화/게임 출연료를 정확히 비교해 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트리플A 게임 출연은 영화 출연 못지않은 시간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비슷한 수준의 보수가 제시되지 않는다면 배우들이 계약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한편<사이버펑크 2077>의 리브스 캐스팅은 제작진에게 정량적 측면뿐 아니라 정성적 차원의 고민도 안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2023년 GDC 강연에 나선 CDPR 레벨 디자이너 파베우 사스코는, 리브스의 지나친(?) 매력을 고려해 실버핸드 캐릭터를 이른바 ‘재수 없는 놈’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스코에 따르면 유저가 특정 캐릭터에 지나친 호감을 품을 경우, 퀘스트 흐름에서 유저들에게 효과적인 ‘선택의 딜레마’를 안겨주기 어렵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해당 캐릭터 편을 들게 될 테니까요. 오직 리브스가 연기했다는 이유로 실버핸드를 좋아할 사람이 적지 않아 보였고, 그래서 호감을 ‘밸런싱’하기 위해 공들여 얄미운 캐릭터로 만들었다는 설명입니다.

 

GDC 강연에서 키아누에 관해 이야기한 CDPR 레벨 디자이너 파베우 사스코

 

 

# 마케팅 수단으로서의 스타 캐스팅

 

게임계가 몇몇 수고를 감수하고서라도 유명인 기용에 힘쓰는 이유는 뭘까요? 가장 일차적이고 고전적인 이유는 물론 탁월한 마케팅 효과입니다.

 

기술적 한계로 인해 실제 사람의 연기가 게임에 전혀 반영될 수 없었던 40여 년 전부터 이미 스타들이 게임에 등장하기 시작한 이유입니다. 업계가 게임에 유명인을 등장시키는 이유가 반드시 인게임 콘텐츠와 직접 결부된 것은 아니란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들입니다.

 

대표적 예시로 1983년 게임 <척 노리스 슈퍼킥>, 1984년의 <브루스 리> 등을 들어볼 수 있습니다. 각자 당대 최고 액션 스타였던 척 노리스와 이소룡이 ‘등장’하는 게임이지만, 당연하게도 이들의 목소리나 연기력은 물론 그 유명한 외형조차 게임에 제대로 구현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유명 인사들이 본업과 상관없는 배역을 맡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팝스타 마이클 잭슨이 횡스크롤 전투를 벌이거나(1990년 작 ‘문워커’), 전설적 농구선수 샤킬 오닐이 대전 격투에 나서는 (1994년 작 ‘샥푸’)등의 사례는 업계가 셀럽들의 이름값에 건 기대가 어느 정도로 자유분방(?)했는지 잘 알려줍니다.

(사족: 마이클 잭슨의 경우 일부 뮤직비디오에서 액션 연기를 보여주기는 했습니다)

 

<척 노리스 슈퍼킥스> 플레이 화면 (출처: 유튜브 Highretrogamelord 채널)

 

그러나 스타 마케팅의 전통적 효과를 생각할 때, 이런 사업 시도들을 완전히 무용한 것으로 치부하기도 어렵습니다. 스타 마케팅은 제품을 기존보다 폭넓은 소비자층에 소구하는 데 매우 유용하고, 게임을 향한 기본적 수준의 신뢰를 부여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실제로 앞서 언급된 <샥푸>의 경우 게임성 부족으로 혹평받았으나, <문워커>의 경우 엉뚱해 보이는 설정에도 재미를 인정받으며 상업적 성공을 거뒀습니다. 최근까지도 수많은 모바일 게임이 거액을 들여 게임과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유명 배우들을 통한 홍보에 나서는 것과 유사한 맥락입니다.

 

최근 업계에서 셀럽들은 상술한 것과 같은 유저 획득(UA) 차원뿐 아니라 기존 유저들의 참여(Engagement) 강화 전략에서도 폭넓게 활용되며, 이때도 인물의 ‘스타성’이 우선시 됩니다.

 

예를 들어 배틀로얄인 <포트나이트>에서 전투와 연관이 없는 르브론 제임스, 아리아나 그란데와 같은 스타들의 외형 스킨이 판매되고, <배틀그라운드>에도 유사하게 손흥민 선수나 가수 에일리 등의 스킨이 존재하는 것을 그러한 예시로 볼 수 있습니다.

 

<배틀그라운드>의 가수 에일리 스킨. 에일리는 <배틀그라운드> 팬으로 잘 알려져 있다.

 

 

# 진짜 ‘출연’하기 시작한 배우들

 

한편 게임 산업이 고도화되면서 유명 배우들이 게임에서 자신의 재능을 그대로 발휘하는 것 역시 가능해졌고, 이는 점차 게임의 코어 경험 강화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의 대표적 사례는 2004년 작 <GTA: 산 안드레이스>에서 악덕 경찰 ‘프랭크 텐페니’역으로 열연한 사무엘 L. 잭슨입니다. 누구나 알아챌 수 있는 독보적인 목소리와 트레이드마크인 욕설 연기로 텐페니의 캐릭터성, 더 나아가 게임 전반의 스토리에 깊이를 크게 더해준 긍정적 예시로 꼽힙니다.

 

그래픽 기술이 인물의 외형을 점차 비슷하게 표현할 수 있게 발전하면서 게임 속 스타들의 활약은 점점 더 다양해졌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2009년작 인디 게임 <브루탈 레전드>는 처음부터 배우 ‘잭 블랙’의 독특한 개성을 중심으로 디자인된 특기할 만한 사례입니다.

 

배우 잭 블랙은 락 음악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브루탈 레전드>는 어울리게도 주인공이 메탈 음악을 이용해 죽음의 군대를 이끄는 코믹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블랙이 직접 자신을 닮은 주인공의 목소리를 연기해 생동감을 부여했고, 전반적 게임플레이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오지 오스본, 롭 헬포드, 레미 킬미스터 등 전설적 메탈 보컬들도 목소리로 출연합니다)

 

배우 활용과 게임성 양면에서 좋은 평가를 들었던 <브루탈 레전드>

 

한편, 배우들의 동작과 표정을 포착해 3D로 모델로 구현하는 모션캡처 기술이 보편화하자, 게임 프로젝트는 배우의 커리어 확장 측면에서도 더 긍정적으로 비춰지기 시작합니다.

 

영화 전문 외신 ‘더 할리우드 리포터’는 “왜 더 많은 배우가 게임 산업에 참여하는가(비단 돈 때문은 아니다)”라는 제목의 2019년 기사에서 업계인 인터뷰를 통해 이런 경향을 진단하고 있습니다.

 

미국 연예기획사 CAA(Creative Artist Agency) 소속 마이클 블랭크는 해당 기사에서 “연기 캡처(performance-capture) 기술의 발전은 이제 단순히 배우들이 게임에서 목소리 녹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자신의 배역을 연기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배우의 실력 발휘 차원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매체는 “이렇듯 게임 속에서 복잡하고 풍성한 캐릭터를 연기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배우들에게 비교적 새로운 일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최근 10년여간 유명 배우들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게임에 출연한 사례를 더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비욘드: 투 소울즈>의 엘리엇 페이지, <데스 스트랜딩>의 노만 리더스, 레아 세두, 미즈 미켈슨, <언틸 던>의 라미 멜렉, <제다이> 시리즈의 캐머런 모너핸, <고스트리콘 브레이크보인트>의 존 번솔 등은 모두 기존의 유명 배우들이 대형 프로젝트에서 본모습으로 빛을 발한 예시로 꼽을 수 있습니다.

 

<데스 스트랜딩>의 레아 세두

 

 

# 스타가 만능열쇠는 아니다

 

그러나 이른바 ‘스타 파워’만으로 작품이 만사형통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영화계에서 수십 년에 걸쳐 증명되어 온 사실이고, 게임계에서도 똑같이 통하는 진리입니다. 오히려 게임에서 배우가 지니는 비중이 영화에서의 그것보다 훨씬 덜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효과 대비 리스크는 훨씬 더 클지도 모릅니다.

 

일례로 유비소프트의 <파 크라이 6>는 <브레이킹 배드> 시리즈에서 악역으로 좋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 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를 메인 빌런으로 삼으면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판매량 측면에서도 유비소프트가 직접 밝힌 바 2022년 매출에 지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그러나 코어 게임성의 평가에서는 많은 질타를 받아야 했습니다. 에스포지토의 출연이 <파 크라이>시리즈의 고질로 자리잡은 혁신성 부족을 해결해줄 순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스토리텔링과 게임 메카닉에 유저와 평론가 모두 불만을 표시했고, <파 크라이 6>는 평점 종합 사이트 메타크리틱에서 트리플A로서는 낮은 편에 속하는 74점을 기록했습니다.

 

<록케이 시티>는 영화같은 분위기 연출에서 호평받았지만 게임플레이에서 불호를 표하는 유저가 많았다.

 

더 최근 사례로는 신생 개발사 인게임 스튜디오의 코옵 게임 <록케이 시티>를 들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은 마이클 매드슨, 대니 글로버, 킴 베이싱어, 대니 트레호, 마이클 루커, 척 노리스, 바닐라 아이스 등 매력적인 배우/가수들이 출연하며 사전에 관심을 모았습니다.

 

실제로 배우들의 외형을 원형에 가깝게 표현해냈고, 90년대 범죄 영화 분위기를 매력적으로 연출해 낸 데에서는 호평받았습니다. 하지만 로그라이크 요소를 도입했음에도 반복 플레이 가치를 느끼기 힘든 얕은 콘텐츠, 지루한 게임플레이, 잦은 버그 등 코어 경험에서의 문제로 결국 흥행에는 실패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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