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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아시아 문화? 사실 하나도 몰랐었다”

아스타 미술 작업을 총괄한 정지원 아트팀장

김승현(다미롱) 2013-10-16 11:00:22

성 안에는 중국 무협 영화에서나 볼법한 날카로운 전각이 솟아있고, 검은 갓과 도포를 걸친 저승사자들이 돌아다닙니다. 고개를 돌려 성 밖을 보면 금줄 두른 서낭당과 앙코르와트에서나 볼법한 신상, 그리고 머리에 뿔이 난 험상궂은 요괴가 유저들을 맞이합니다.

 

16 OBT를 시작하는 <아스타>는 아시아 판타지를 표방한 MMORPG입니다. 다른 게임처럼 철판을 두른 기사나, 준마를 타고 언월도를 휘두르는 장수는 없습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한∙중∙일 3국은 물론 인도부터 동남아시아 등 불교 문화권 전역의 신화와 설화죠.

 

유저는 물론 개발자에게도 생소한 아시아 판타지라는 배경. 폴리곤 게임즈는 어떻게 각국의 상징을 모으고, 또 어떻게 이를 하나의 세계로 녹여 냈을까요? <아스타>의 미술 작업을 총괄한 정지원 아트팀장을 만나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폴리곤 게임즈의 정지원 아트팀장

 

익숙한 동양아는 것이 없었던 동양


아시아 판타지라는 보기 드문 콘셉트를 내세웠습니다. 이전에 경험한 적 없었던 작업이었을 것 같은데 실제로 해보니 어떻던가요?

 

정지원 아트팀장: 이전에 참여했던 게임이 판타지 배경의 MMORPG였어요. 그런데 두 번째 작품으로 아시아 판타지라는 콘셉트를 잡게 되었죠. 당연히 쉬울 리가 없죠. (웃음)

 

아무래도 판타지나 무협같이 많이 접해본 배경은 개발자들의 경험이 많아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아시아 판타지라는 콘셉트는 생소하기도 할뿐더러, 무협이나 삼국지와 같은 동양 배경의 다른 게임과도 차별화도 해야 해서 고민이 많았죠. 덕분에 다른 게임보다 더 자료 수집이나 세계 설정, 세부 묘사 등에 더 신경 써야 했어요.

 

 

판타지와 아시아를 배경으로한 게임을 서로 비교하면 디자인에서 어떻게 다른가요?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세계를 묘사한다는 것은 똑같아요. 다른 점이 있다면 조사해야 할 자료가 그동안 해온 것과 다르다는 점이죠. 솔직히 한국에서 동양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거기에 동남아시아 배경 쪽으로 가면 다뤄본 사람을 찾기가 힘들 지경이죠. 동아시아적인 디자인 자체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아스타> 콘셉트가 결정되고 난 다음에는 관련 자료 찾는 것도 일이었어요한∙중∙일 3국은 물론 동남아시아에 관련된 책까지 다 긁어모았죠. 나중에 정신 차려 보니 책장 하나는 너끈히 채울 양이 나오더군요. (웃음) 뜻밖에 도움이 많이 됐던 것은 현대 건축과 관련된 책이었어요. 요즘엔 옛날 양식과 현대적인 감각을 결합한 건축물도 많거든요. 사실 처음에 세계를 구상할 때는 너무 옛날 느낌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덕분에 현대적인 느낌으로 풀어낼 수 있었어요.

 

개발을 위해 구매한 참고 자료들. 대부분이 동아시아의 문화와 식생, 건축 양식에 관한 서적이다.

 

 

동남아시아 풍의 묘사는 생소하다고 하더라도한∙중∙일 3국은 그나마 익숙한 문화 아닌가요?

 

평소 많이 접하던 것이라 쉽게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더라고요. 보통 동양풍 건물이라고 하면 기와집을 떠올리죠? 하지만 정작 기와집의 담이 어떤 모양이고, 기둥이나 서까래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잖아요. 일본이나 중국의 양식은 물론, 한국까지도요. 잘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충격이었죠.

 

그래서 건축 양식에 대한 사진이나 자료도 기를 쓰고 모았어요. 보통 이런 자료들은 주로 사진이 많은데, 사진이라는 것이 보통 보기 좋은 각도로 찍히는 것이 많아 튼실한 자료를 찾기가 힘들었어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국식 건축물인 경복궁과 민속촌이라는 좋은 참고자료가 있어서 문지방 닳도록 드나들었죠.

 

물론 이런 것을 생략하고 겉모습 위주로 작업할 수도 있었을 거에요. 하지만 그런 것은 개운하지도 않았거니와, 무엇보다 내부 구조에 대한 지식 여부가 결국 원화의 완성도를 좌우하더라고요. 그래서 몇 개월간 배우고 숙제하는 기분으로 작업했죠.

 


 

 

이야기만 들어보면 작업 시간은 몇 개월로도 부족해 보입니다. 동아시아 전체를 콘셉트로 하는 만큼 공부(?)해야 할 것도 많고요.

 

그림 그리는 사람이 어떻게 건축의 모든 것을 알겠어요. 큰 구조 위주로만 파악한 덕분에 몇 개월 정도로 끝났죠. 그래도 이렇게 공부한 덕분에 이후엔 작업이 수월했고, 특히 종족의 콘셉트를 잡는 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게임이 종족별 시작 지점이 다른 탓에 처음에는 종족의 콘셉트를 어떻게 잡느냐도 고민이었어요. 하지만 몇 개월 공부해 조금 아는 것이 생기니 어떻게든 길이 보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아수 진영의 호족 같은 경우는 귀엽고 장난기 많은 종족이라, 건물도 아기자기하고 건물이 그리는 선도 둥글고 편안하게 그렸죠. 이런 특성 때문에 호족의 건물을 그릴 때는 목조 건물이 많은 일본의 건축 양식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그렇다면 호족과 일본의 관계처럼 각 종족마다 아시아 각국의 문화 콘셉트를 매치 시켰다는 뜻인가요?

 

아니요. 오히려 특정 종족과 문화를 매치시키는 것은 지양했어요. 물론 종족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있죠. 예를 들어 무인의 종족인 용족이나 도깨비는 전반적으로 육중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게 디자인되어 있고, 황천 진영 인간 종족의 도시는 전반적으로 날이 바짝 서 있는 모양새죠.

 

그렇다고 특정 국가의 문화를 종족과 연결하진 않았어요. 아시아 판타지를 표방한 작품인데 특정 국가의 문화가 지나치게 드러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한국의 서낭당과 앙코르와트의 신상이 같이 있는 등 각국의 문화를 골고루 배치하려고 애를 썼죠.

 

그런데 지난해 지스타에서 중국과 대만 기자들 반응을 보니 서로 자기 나라 분위기가 난다고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사람들은 자기가 잘 아는 것을 먼저 보게 되나 봐요. (웃음)

 


 

 

세계인이 바라 본 아시아를 그리고 싶었다


종족 별로 시작 지점이 다르다면 그래픽 작업량도 많았겠네요. 가뜩이나 오브젝트도 촘촘하게 배치된 편인데….

 

많죠. 말한 것처럼 초반 지역은 종족마다 시작 지점도 다르고, 맵을 꾸밀 때도 아시아적인 느낌이 살아있어야 했으니까요. 특히 대나무나 소나무와 같은 식물 오브젝트에 공을 들였어요. 보통 해당 문화의 분위기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것은 건물인데, 맵 마다 건물을 세울 순 없잖아요? 그래서 대신 아시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생으로 꾸며보았죠. 지역마다 대표 식생도 설정하고, 그에 따라 오브젝트 만들고.

 

그런데 소나무 같은 것은 쭉 뻗은 다른 침엽수와 달리, 개체마다 선이 다양하더라고요. 결국, 그거 해결하겠다고 디자이너가 일일이 나무를 작업했죠. 그러다 보니 욕심이 커져 대나무도 각기 달리 디자인하고, 심지어 어떤 지역은 잡초까지 설정했던 적도 있어요. 그래서 디자이너들끼리는 우스갯소리로 나무 온라인이라고도 부르기도 했죠. (웃음)

 

이외에도 배경 색감이나 원근 효과 등 만질 것이야 차고 넘쳤죠. <아스타>에 쓰인 크라이엔진 자체가 자유도가 높은 엔진이라 작업해야 할 것도 많았고요. 개인적으론 이전에 작업했던 작품이 엔진 한계 상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제약되다 보니, 이렇게 할 일은 많더라도 한계가 적은 엔진이 마음에 들더군요.

 


 

 

보통 크라이엔진이라 하면 사진과 같은 그래픽으로 유명하잖아요? 그런데 <아스타>의 그래픽은 실사라기 보다는 회화에 가깝지 않나요?

 

그것 때문에 크라이엔진으로 만든 게임이 맞느냐는 이야기도 많이 듣고 있어요. (웃음) 사실 처음 크라이엔진을 선택한 계기는 다양한 색감 때문이었어요. 국내엔 실사풍 그래픽으로 많이 유명하지만, 크라이엔진만큼 다양한 색감을 표현할 수 있는 엔진도 드물거든요. 물론 게임브리오같은 그래픽 전용 엔진도 있긴 하지만, 제대로 다루려면 엔진 자체를 새로 만드는 수준의 작업이 필요해서 크라이엔진을 선택했죠.

 

 

<아스타>가 동양권을 배경으로 한 작품치고는 원색 계통의 색을 많이 사용한 것도 그래픽 콘셉트 때문인가요?

 

보통 동양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연하거나 절제된 색조를 많이 사용하죠? <아스타>는 일반적으로 유저들이 동양이라 생각하는 동북아시아가 아니라, 동아시아를 콘셉트로 하는 만큼 보다 다채로운 색감을 선사하고 싶었어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애니메이션의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쿵푸팬더>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보면 동양적인 선이 살아있으면서도 놀랄 만큼 다양한 색을 사용하고 있잖아요. 그런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더라고요. 그래서 동아시아라고 해서 굳이 세계를 수묵화 같은 담담한 색조에 한정하기보다는, 자유롭고 넓은 시야에서 세계를 그려봤어요. 아시아인이 바라본 아시아라기보다는, 아시아를 여행하는 (서양)사람이 본 아시아라는 느낌이랄까요?

 


 

 

다채로운 색조를 사용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면, 상대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인 황천 진영을 작업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다양한 색조를 사용한다고 해서 꼭 밝고 화사한 분위기만 정답이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일단 게임 미술의 목표는 게임의 분위기를 잘 묘사하는 데 있고, 또 굳이 화려한 색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다양한 묘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죽음의 신이 다스리는 황천 진영이 대표적인 예죠. 전체적인 배경은 어둡고 우울하죠. 하지만 그 때문에 조명이 더 드러나는 진영이기도 해요. 창호지를 뚫고 나오는 불빛이나 화로불빛을 반사한 벚꽃, 땅을 때리는 벼락 등 황천 진영은 오히려 어두운 분위기 덕분에 빛이 더 두드러지는 곳이랍니다. 직접 플레이해보면 칙칙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거예요.

 


 

 

게임 미술의 목표가 효과적인 세계관 전달이라면 이를 위해 특별히 신경 쓴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종족마다 초반 스토리도 다른 만큼, 미술 딴에서도 궁리가 많았을 것 같은데….

 

가장 많이 신경 쓴 것은 분위기였어요. 미술은 특성상 이야기의 큰 얼개를 유저에게 전달할 수 있지만, 이것을 알고 모르고가 결국 게임 전체의 이야기 전달을 판가름하니까요.

 

다행히 <아스타>는 개발 초기부터 종족별 콘셉트가 명확히 정해진 케이스였어요. 덕분에 종족의 묘사도 더 쉽게 할 수 있었죠. 예를 들면 황천 진영 인간 족은 전체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인 분위기에요. 이를 살리기 위해 황천 인간의 건물은 강시 영화에나 나올 법한 뾰족하고 날카로운 이미지의 건물이 주를 이루죠. 필드도 안개에 껴있고 그 너머엔 날을 바짝 세운 바위산이 둘러싸고 있는 식이죠.

 

황천 진영 인간 종족 건물의 콘셉트 아트.

 

 

그렇다면 작업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종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힘들었던 것을 꼽자면 역시 인간이죠. 아무래도 도깨비나 용족 같이 명확한 특징이 없어서 그 세계를 묘사하는데도 머리를 많이 싸맸어요. 더군다나 인간은 아수와 황천 두 진영에 다 같이 있잖아요. 진영별 특색을 살리면서도 인간이라는 종족에게 이질감을 주지 않을 것, 그러면서도 다른 종족 못지않은 개성을 부여해야 했으니 정말 힘들었죠.

 

반대로 호족은 가장 즐겁게 작업한 종족이에요. 호족 자체가 화사한 색감과 통통 튀는 분위기가 콘셉트인 종족이라 디자인하는 사람의 마음도 절로 즐겁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죠. <아스타> 내에서 유일하게 기계 문명을 다룬다는 설정 덕분에 현대 문물을 어떻게 <아스타>의 세계에 맞게 바꿀까 즐거운 고민을 많이 했어요. 디자인하는 입장에서는 잔재미가 많은 종족이었죠.

 

,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랍니다. 6개 종족 모두 우리 손을 거친 아이들인데 어떻게 특정 진영, 특정 종족만 더 애착이 가겠어요. 여섯 종족 모두 개발팀이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한 아이들이니, 16일부터 있는 OBT에는 어떤 종족으로든 즐거운 마음으로 <아스타>의 세계를 여행하셨으면 좋겠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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