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넥슨은 후발 주자에 속한다. 2012년 카카오 게임하기 열풍 이후 많은 개발사에서 모바일에 집중하는 추세였지만, 넥슨은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늦게 시작한 만큼 지난해부터 시작된 넥슨의 행보는 ‘전방위 총력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 개발사 투자, 글로벌 IP확보, 글로벌 원빌드 전략부터 김태곤, 김동건 등 네임드 개발자의 전면전도 나왔다.
‘중국 게임 퍼블리싱’도 그중 하나다. 2014년 조용히 서비스를 시작한 <삼검호>는 ‘대박’을 터뜨리지는 못했지만, 1년 가까이 매출 순위 20~30위를 지키며 꾸준한 모습을 보였다. 올해 4월 출시된 <탑오브탱커 for Kakao> 역시 중위권을 이어 나가고 있다.
“잠시 1등하고 사라지는 게임이 아닌, 온라인게임처럼 꾸준히 사랑받는 게임이었으면 좋겠어요.” <천룡팔부> 사업팀이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이들의 바람처럼(?) 중국 ‘창유’와 한국 ‘넥슨’의 만남으로 시작부터 주목을 받았던 <천룡팔부>가 지난달 29일 비교적 조용히 서비스를 시작했다.
치열한 모바일 시장에서 롱런을 꿈꾸며 어떤 고민을 하며 준비해왔을까? 중국 게임 전문가들이 뭉친 <천룡팔부> 사업팀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디스이즈게임 송예원 기자
■ “중국 전문가만 3명, 유저-개발자 잇는 징검다리”
위 <천룡팔부>의 PM 3인방은 넥슨 내부에서도 귀하게 모셔간다는 ‘중국 전문가’다. 이정아 PM은 <메이플스토리>와 <로스트사가> 중국 서비스를, 권혜진 PM은 <트릭스터>와 <던전앤파이터>의 대만 서비스를 맡았다. 최영진 PM은 넥슨이 중국에서 가져와 꾸준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삼검호>를 운영한 바 있다.
“다른 팀에서 보면 많이 부러워하죠. 한 프로젝트에 비슷한 전문성을 가진 PM이 여럿 붙는 경우는 흔치 않으니까요. 그만큼 내부에서는 기대가 큰 게임이에요.”
해외 게임 서비스에서 가장 큰 난관 중 하나가 바로 국내 운영자와 현지 개발자의 소통이다. 국내 사정을 모르는 개발자에게 운영자의 요구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넥슨의 또 다른 중국 게임 <삼검호>에서도 같은 문제로 업데이트에 어려움을 겪었다. 단순한 중국어 전문가가 아닌, 개발자와 대화가 가능한 인력이 필요했던 것.
특히 창유는 일반적인 해외 서비스와 달리, <천룡팔부>의 한국 서비스에서는 별도의 팀을 꾸리지 않았다. 현지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메인 디렉터가 주축이 되어 대응하는 방식을 택했다. 넥슨은 유저와의 소통만큼이나 유저의 의견을 개발자에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천룡팔부>는 창유에서도 개발 조직만 100여 명이 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3명이나 되는 중국 전문 PM은 넥슨 모바일게임 사업부에서는 이례적인 편제지만, 이들이 실시간으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개발자가 40여 명이 넘는 것을 감안하면 많은 숫자는 아니다.
“<천룡팔부>는 이미 중국에서 반년 넘게 서비스된 게임인 만큼 근본적인 게임 내용을 바꿀 수는 없어요. 그렇기에 유저들이 사소하게 불편하다고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는 빠른 대응이 필요하죠. 고객 한 명 한 명을 관리하고자 하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두 회사 모두 전폭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어요”
지난 6월 22일 넥슨 모바일데이에서 <천룡팔부> 팀은 ‘소통’을 강조했다
■ “한국식 운영으로 콘텐츠 한계 극복해 보이겠다”
물론 넥슨의 요구가 100%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문제가 채팅이 제한적이거나 일종의 길드인 ‘문파’ 생성이 한정된 부분이다. 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하는 국내 시장과는 맞지 않는 구조임에도 론칭까지 수정하지 ‘않은’ 이유는 애초 중국에 맞춰 개발된 초기 시스템의 한계 때문이다. 무리한 변경 시 서버에 과부하를 일으키는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었다.
태생적인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넥슨이 강조하는 부분은 ‘운영의 현지화’다. 우선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만의 이벤트 개발에 힘썼다. 예를 들어 특정 시간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되는 길드간 대전 ‘문파전’을 이벤트로 방식으로 변경했다. 보상을 강화하고, 상위 문파는 모든 유저가 볼 수 있도록 했따. 제한된 채팅으로 커뮤니티 형성이 어렵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넥슨 측에서 개발한 내용이다.
“개발사는 문파전 이벤트에 반대했어요. 이벤트만 노리고 생성되는 문파는 다른 유저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요. 하지만 MMORPG, 특히 국내 게임에서 커뮤니티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고 있기에 장기적으로 문파 활성화를 위해서는 포기할 수 없었죠.”
콘텐츠 속도가 빠른 한국 유저들에 맞춰 업데이트도 박차를 가한다. 오는 8월 레벨 단위로 대전할 수 있는 ‘무림대회’ 추가를 시작으로, 연내까지 125레벨에 해당하는 현재 중국 콘텐츠를 모두 공개하는 게 넥슨의 목표다.
■ “유저가 있는 곳에서 직접 소통하겠다”
한국 유저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사업적인 고민은 콘텐츠 수정이 어려운 환경에서 앞으로 넥슨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이미 비즈니스 모델에서는 페이투윈이 뚜렷한 중국 방식을 배제하기 위해 주요 매출원 중 하나였던 장비 강화 재료 ‘보석’ 판매 비중을 낮췄다. 총 9급까지 모든 보석을 판매하는 중국과 달리 한국 버전에서는 3급과 6급만 판매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수집에 의존하도록 했다.
“<천룡팔부>는 1등 보다는 오래 서비스되는 게임이 목표였어요. 만약 빨리 성과를 내고 싶었다면 ‘소수 헤비 과금러’에 의존하는 중국식 비즈니스 모델을 택했을 거에요. 개발사도 보석 삭제를 이해하지 못했고요. 투자 시간과 노력한 대가를 중시하는 한국 유저들의 정서를 설득했죠”
마케팅은 에너지를 축적해 놓겠다는 전략이다. 이른바 ‘대세 형성’을 위해 지상파부터 옥외까지 도배하는 기존 모바일게임 마케팅에서 벗어나, 넥슨의 풍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타겟팅 광고를 준비하고 있다.
“최근 새벽 시장에서 근무하시는 유저 분이 ‘길고 긴 새벽일에 틈 시간에 즐길 게임’이라며 카페에 소감을 남겨주셨더라고요. 바로 해당 시장에 쫓아가서 광고를 냈어요. 근무하는 동료분들에게 게임을 소개하며 함께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해서죠.”
내외부에서 경쟁작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룡팔부>는 접근성이 높은 TV광고를 택하지 않았다. 대신 30~40대가 이동시간에 많이 접하는 라디오라든지, 수도권을 벗어나 지역 옥외 광고에 힘쓰고 있다.
“중국과 한국은 CS의 초점이 아예 달라요.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은 다수에 대응해야 하는 반면, 한국은 유저 개개인과의 소통이 중요하죠. 게임의 문제를 빠르게 고쳐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객이 있는 곳에서 소통하고 싶었어요. <천룡팔부>는 충분히 가능한 게임이라고 생각하고요. 유저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오래가는 게임이 되도록 만들어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