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유머 커뮤니티에서는 최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게임을 출시한 한 개발자의 글이 4만에 달하는 조회를 기록하며 화제가 됐었다. 글쓴이는 90년대 명작 국산 액션 게임 <피와기티>를 개발한 1세대 개발자 이정헌 현 피닉스게임즈 이사였다. 이 게임을 기억하는 많은 올드 유저의 공감을 얻었던 것.
<피와기티>, <에올의 모험>부터 <EZ2DJ>, <DJMAX> 등 게이머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명작 제작에 참여한 1세대 개발자 이정헌 이사. 그는 죽마고우인 신봉건 공동 대표와 함께 얼마 전 <명랑스포츠 for Kakao>를 론칭해 유저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그야말로 ‘왕의 귀환’인 셈.
요즘처럼 화려한 3D 그래픽이나 복잡한 시스템 없이도 우리를 울고 웃게 했던 1세대 개발자인 그들은 어떻게 지내왔을까? 그리고 어떤 계기로 모바일 게임 개발에 뛰어들게 됐을까? 게임업계에서 함께 수많은 세월을 동고동락한 1세대 개발자 콤비, 피닉스게임즈의 이정헌 이사와 신봉건 공동 대표를 디스이즈게임에서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디스이즈게임 주재상 기자
피닉스게임즈의 이정헌 이사(왼쪽)와 신봉건 공동 대표(오른쪽)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어릴 적 재미있게 즐겼던 <피와기티>의 개발자를 만나 개인적으로도 영광입니다. 자기소개 부탁할게요.
신봉건 공동 대표: 피닉스게임즈 공동 대표를 맡고 있는 신봉건입니다. <EZ2DJ>, <DJMAX>, <탭소닉>을 개발했고요. 지금은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피닉스게임즈를 설립해서 <명랑스포츠>를 출시하게 됐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정헌 이사: 피닉스게임즈에서 그래픽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이정헌 이사입니다. 디스이즈게임을 통해 만나 뵙게 되어 무척 설레고 반갑습니다.
모 커뮤니티에서 1세대 개발자로서의 이야기를 풀어 많은 관심을 받았고, 최근 론칭한 <명랑스포츠>도 반응이 굉장히 좋습니다. 요즘 기분이 어떠신가요?
이정헌: 이 정도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매우 많은 관심을 보여주셔서 놀랐습니다. 게임 론칭 후 정신이 없어서 실감은 못 하고 있지만, 주변 지인이나 개발자분들이 축하해 주셔서 기뻤습니다.
국내 한 커뮤니티에서 뜨거운 호응을 얻은 이정헌 이사의 글. (원문 링크)
90년대 국산 액션게임의 ‘본좌’ 중 하나인 <피와기티>의 개발에 두 분이 고등학생 신분으로 참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게임에 대한 전반적인 사회 시선이 지금보다 더 안 좋았는데, 학생 신분에 어려움도 따랐을 것 같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요?
신봉건: <피와기티>는 이정헌 이사가 만든 프로젝트고요. 저는 옆에서 합숙하며 다른 게임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당시 게임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지금과는 매우 다르긴 했는데, 학생 신분이어도 특별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대신 학교성적은 바닥이었죠. (웃음)
이정헌: 저는 오히려 학생이었기에 외부의 시선이나 어려움에 무지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는 개발 지식이나 정보가 거의 없던 시절이라 개발 과정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두 분은 어떤 계기로 만나 게임 개발을 결심하게 됐나요?
이정헌: 신봉건 대표와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입니다. 게임과 그림이 공통 관심사였던 게 자연스럽게 게임 개발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신봉건: 네, 이정헌 이사와는 같은 동네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습니다. 함께 게임을 하며 친해졌죠. 그 당시엔 게임을 정말 만들어 보고 싶었고, 엔딩 크래딧에 꼭 이름을 넣어 보는 게 꿈이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쯤인가…. 그림 잘 그리기로 유명했던 이정헌 이사가 갑자기 게임을 만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궁금해서 몇 번 놀러 가고 그랬습니다. 많이 부러웠는데요. 그렇게 쫓아다니면서 게임 개발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던 것 같네요.
초등학생 시절부터 한 회사의 대표가 되기까지 쭉 함께한 두 사람. 그야말로 죽마고우.
학생 신분으로 게임을 개발할 때 기억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이정헌: 20살을 갓 넘었을 때 나름 갑(?)의 신분으로 충무로 인쇄소 분들과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나이를 알고서 대화에 끼워주지 않아서 서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신봉건: 음…. 저도 고생한 기억밖에 없습니다. 1세대 개발자라고 하면 소위 라면만 먹으며 개발했던 원로의 이미지인데요. 실제로 정말 그랬습니다.
당시 게임 개발사가 몇 개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근무환경 자체가 굉장히 열악했거든요. 1년 365일 동안 컵라면만 드셔 보셨나요? 진짜 그랬습니다. 봉지 라면과 따뜻한 밥을 먹는 게 소원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그땐 정말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90년대 패밀리프로덕션 시절에 개발했던 <피와기티> 등은 주로 액션 장르였는데요, 어느 날 리듬 액션 게임 <EZ2DJ>로 돌아오셨더라고요. 리듬 게임 개발에는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셨나요?
신봉건: 저는 패밀리프로덕션에서 <일루전블레이즈>, <인터럽트>, <디지털코드>를 만들고, 병역 특례를 받기 위해 어뮤즈월드에 입사했습니다. 그때 회사에서 음악 게임에 많은 관심이 있었고, 자연스레 <EZ2DJ>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죠.
오락실 좀 다녀본 게이머치고 이 기계를 한 번이라도 못 본 사람이 있을까?
ponGlow(신봉건), Lassoft(이정헌)라는 닉네임이 바로 이들이다.
꽤 잘나가던 패키지 개발을 그만두고 모바일로 전향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신봉건: PSP로 <DJMAX 포터블> 시리즈를 만들던 중 시리즈인 <DJMAX CE>, <DJMAX BS>, <DJMAX 테크니카>를 1년 동안 동시 개발하면서 아픔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중 소셜 게임과 스마트폰 시대가 오면서 ‘이거다!’라는 느낌이 왔습니다. <DJMAX 포터블>이 휴대용 게임으로 인기를 얻는 것을 확인하고, 스마트폰이 확산되면 종국에는 모바일 시대가 올 것임을 직감했죠.
그러면서 <탭소닉>을 개발하게 됐고, 이후 <탭소닉>이 큰 성과를 얻긴 했지만, 회사는 제가 원하는 방향과는 좀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동안 꿈꿔 왔던 게임들을 만들고자 피닉스게임즈를 설립했습니다.
<피와기티>와 <에올의 모험>, EZ2DJ의 마스코트인 DJ TOMATO부터 현재 명랑스포츠의 펫에 이르기까지 이정헌 이사의 작품을 보면 동물 캐릭터가 주를 이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정헌: 초등학교 때부터 캐릭터 그리기를 좋아했고 디즈니의 광팬이었습니다. 동물 캐릭터를 더 많이 봐서 남들이 인체 데생할 때 저는 동물 데생을 더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세계적인 대한민국 캐릭터를 만들자는 꿈도 있었고요. 실력이 안 돼서 관두긴 했지만요.
그동안 본인이 디자인했던 캐릭터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무엇인가요?
이정헌: <원더러쉬>라는 게임의 캐릭터인데 론칭도 못하고 접었습니다. 빛을 보지 못해서 그런지 <피와기티>보다 더 애착이 갑니다.
이정헌 이사가 개발한 (식물도 하나 있지만 어쨌든 움직이는) 동물 캐릭터들.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신봉건: 특별히 어려웠던 부분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모바일 게임 개발은 상대적으로 빠른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다는 점과 터치 디바이스만의 매력에 푹 빠졌습니다. 제가 그동안 패키지, 콘솔, 아케이드를 개발하면서 얻은 경험들을 다양하게 적용해 볼 수 있었으며, 그 과정 또한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명랑스포츠>의 게임성을 살리기 위해 그래픽 요소에서 본인이 중점에 둔 것은 무엇인가요?
이정헌: 스포츠 장르에는 첫 도전이라서 동료들의 아이디어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종목 선택 시 스포츠 중계처럼 게임 로고가 지나간다거나, 게임 배경이 고조되다 불타오르는 등 스포츠 키워드에서 연상되는 연출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신경을 썼습니다.
많은 유저분들이 <명랑스포츠>의 그래픽 요소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십니다. 저를 포함해 <탭소닉>과 <DJMAX 테크니카 2>의 UI 그래픽을 맡으셨던 이은미 디자이너와 <DJMAX> 시리즈부터 닉네임 GIggSan으로 활동해온 김정산 3D 디자이너의 내공이 없었다면 이런 평가를 받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종목마다 특색이 살아 있는 <명랑스포츠>의 인터페이스.
국내 게임 개발 환경이 좋지 않다는 것은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죠. 그럼에도 앞으로 계속 게임을 개발해나갈 생각이신가요?
이정헌: 물론입니다. 개발 환경은 과거 대비 꾸준히 개선됐으며 많은 분의 노력으로 앞으로 더 개선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신봉건: 계속해야죠. 자의든 타의든 회사를 살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음악 게임만 15년 동안 만들고 보니 정작 제가 만들고 싶었던 게임은 못 만들었어요. 지금은 제가 만들고 싶은 것을 제가 결정해서 만들면 되는 환경이라서 느낌이 매우 다른 것 같습니다. 제 버킷리스트의 만들고 싶은 게임 리스트를 모두 만들 때까지 계속 할 겁니다.
두 분의 처녀작인 <피와기티>를 기억하는 팬이 아직 많습니다. 혹시 후속작을 만들 계획은 없으신가요?
이정헌: 추억은 추억으로 남을 때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웃음)
1세대 원로(?) 개발자로서 게임을 개발할 때 본인만의 철학이 있다면?
신봉건: 1분 안에 유저들이 게임의 재미에 빠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발 목표이자 철학입니다.
이정헌: 디테일에 무게를 두고 잡으려고 노력합니다. 작은 재미가 모이면 게임의 맷집이 세진다고 생각합니다.
피닉스게임즈는 FPS, 퍼즐, 스포츠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있다.
이제 게임 개발을 시작하려고 하는, 혹은 론칭을 앞둔 후배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요?
이정헌: 지나치게 많은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한 걸음씩 나아간다는 마음으로 꾸준히 하시기 바랍니다. 게임 바깥의 세상도 많이 보시면 좋겠습니다.
신봉건: 누구에게 조언할 처지는 아닌 것 같고요. 단지, <명랑스포츠>가 밤낮없이 열정과 희망으로 개발하는 많은 독립 개발사에 롤모델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절대 꿈을 포기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본인들의 팬과 명랑스포츠를 플레이할 유저들에게 한마디 부탁합니다.
신봉건: <명랑스포츠>를 사랑해 주신 많은 분께 매우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조만간 1대1 도전 시스템과 많은 분이 기다리시는 축구, 스트레스 완전 파괴 복싱 등 다채로운 종목이 업데이트될 예정이니 많이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정헌: 모 커뮤니티에 제가 올린 게시물에서 아직도 많은 분이 기억해 주고 계시는 것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들의 대표작 중 하나인 <DJMAX 테크니카>. 회사 내에 리듬 게임 기기가 있다니!
여전히 <명랑스포츠>는 앱 차트 상위권을 꾸준히 지키고 있다.
피닉스게임즈의 업무 모습. 남정네가 그득하다.
피닉스게임즈의 테라스 직원 휴식 공간.
사무실 복도를 차지하고 있는 최신작 <명랑스포츠> 입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