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피 디스켓 12장, 도스 8비트 그래픽, ‘DD.lbx’, 경쾌한 미디 사운드. 모두 <프린세스메이커>를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다. 오는 4월 1990년대 많은 게이머를 ‘딸바보’로 만들었던 추억의 게임 <프린세스메이커 for Kakao>(이하 프린세스메이커)가 모바일로 돌아온다.
지난해 11월 지스타 2013에서 첫선을 보인 엠게임의 <프린세스메이커>. 어떤 이들은 새롭게 해석된 모습에 설레어 했지만, 어떤 이들은 원작의 추억을 훼손했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이들이 분노한 이유는 하나, 원작에 참여했던 아카이 타카미의 그림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초 2013년 말 출시를 목표로 했으나 일정이 밀린다는 소식에 유저들은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지난 2월 공개된 프로모션 영상 속의 <프린세스메이커>는 여전했다. 3D 그래픽을 고집했고, 엠게임만의 그림체도 그대로였다.
엠게임이 새로운 그래픽을 고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또 그들이 만들고자하는 <프린세스메이커>는 어떤 모습일까? 엠게임 고배석 이사를 만나 직접 물었다. /디스이즈게임 송예원 기자
아카이 타카미의 원화는 3D화 할 수 없는 그림체, “나도 아쉽다”
게임의 내용이 공개되자 여러 의미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고배석 이사: 욕 많이 먹었다.(웃음) 게임이 어떻다는 평가보다 그래픽 때문에. 변명을 먼저 해보자면 지금껏 공개된 내용은 스크린샷 위주로 되어 있다. 3D 그래픽은 기본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과 스크린샷이 차이가 크다.
더구나 <프린세스메이커>는 2D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3D 효과를 넣지 않았다. 예를 들면 그림자와 같이 빛에 따른 입체감이 없다든지 질감을 나타내기 위한 번쩍임도 없다. 그러다 보니 정지된 모습이 더 안 예쁘게 나오는 경향이 있었다.
시리즈 원작자 ‘아카이 타카미’의 그림체가 아니다. 이 때문에 원작 팬들의 실망감이 컸다.
미리 밝히지만 나 역시 시리즈별로 수없이 많은 엔딩을 본 <프린세스메이커>의 팬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원작의 그림체를 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거다.
3D로 만들 수 있는 그림체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게 있다. 아카이 타카미의 그림체가 후자에 해당한다. 원작을 3D로 구현해 봤는데 그냥 예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너무 이상하더라. 어쩔 수 없이 엠게임만의 오리지널을 만들기로 했다. 물론 아카이 타카미에게도 허락을 받았고 모든 작업은 그의 검수를 받으며 진행했다.
왜 굳이 3D 그래픽이냐는 불만도 많았다.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 우리가 잘해 왔던 분야이기 때문이다. 개발자 대부분이 PC용 MMORPG를 만들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3D 그래픽으로 구현한 게임을 만드는 데 더 자신이 있었다.
또 다른 이유로, 보다 다양한 표현을 하고 싶었다. 원작에서 캐릭터의 감정 표현은 표정의 변화와 함께 대사나 텍스트로 이루어졌다. 용량에 제한이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제약들이 사라지지 않았나. 향상된 디바이스 환경을 활용해 리액션이나 표정 및 동작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유저들의 더 깊은 감정이입을 유도한 것이다.
편의성은 높이고, 원작의 게임성은 그대로
<프린세스메이커>를 모바일에서 만난다는 사실을 반기는 사람도 있지만,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모바일게임으로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
처음 <프린세스메이커>의 IP(지적재산권)를 확보했을 때부터 엠게임에서는 원작을 그대로 재현할 계획은 아니었다. MMORPG를 만들어 볼까 생각도 했었는데, 도무지 각이 안 잡히더라.(웃음) 가벼운 웹 SNG도 구상해 봤는데 잘 안 나왔다. 장르를 바꾸면 <프린세스메이커>가 아닌 게 되어 버리니까.
그렇게 한참을 플랫폼에 대한 고민이 이어질 무렵 카카오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게임 시대가 열렸는데, 이거다 싶었다. 타이밍이 좋아서 금세 카카오와 연결되기도 했고, 대내외적으로 모바일게임에 대한 수요가 생기면서 모바일을 선택하게 됐다.
그래픽만큼 게임성도 달라지나?
그건 아니다. 외형은 달라졌지만, 게임성만큼은 원작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프린세스메이커>의 개발을 시작하고 난 후 새롭게 안 사실인데, <프린세스메이커>를 아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안다’고 답하지만, 제대로 플레이한 사람은 별로 없더라. 30대 중에서 특히 그랬고, 20대 중에는 게임을 모르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프린세스메이커>를 단순히 딸 키우는 캐주얼게임으로 아는 사람도 많았다.
먹이고, 재우고, 가르치고, 옷 입히고. 단순히 플레이 방법만 보면 참 쉬운 게임이다. 하지만 <프린세스메이커>에서 원하는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하지 않나. 체력, 기품, 도덕심, 키, 체중, 예술, 전투 기술 등 많은 요소가 있는데, 각 엔딩이 요구하는 스탯의 수치는 모두 다르다.
이러한 게임성은 모바일 버전에서도 그대로 살렸다. 하나의 엔딩을 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원작에 비해 짧아졌지만, 엔딩을 보기 위한 그 과정은 절대 단순하지 않을 거다.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대중성을 무시할 수는 없을 텐데?
맞는 말이다. 코어한 게임성은 유지하면서 처음 <프린세스메이커>를 접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많이 고민했다.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인터페이스다. 원작은 20년도 더 된 도스용 게임이다. 당연히 인터페이스가 직관적이지 않고 아르바이트 하나를 시키려고 해도 메뉴에서 한참을 찾아 들어가야 했다. 그래서 요즘 모바일게임의 흐름에 맞춰 누구나 쉽게 조작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시스템 상으로는 ‘장래희망’을 만들어 보다 쉽게 원하는 엔딩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공략집을 아예 공개해버린 셈이다. 그러면 게임의 재미가 반감되는 게 아니냐고 걱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해당 엔딩에 필요한 능력의 수치를 안다고 해도 만들어 가는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먼저 어떤 아르바이트나 공부를 해야 어떤 능력이 올라가는지 반복 플레이를 통해 찾아내야 한다. 또 특정 아르바이트를 통해 매력이 올라가면 기품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나름의 전략이 필요하다.
인터페이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지스타 버전에서는 메인에서 3사이즈를 볼 수 있었는데 새 버전에서는 안 보이더라. 어디로 갔나?
키와 몸무게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정보창 안에 숨겨두었다. 일단은 한눈에 해야 할 일을 보는 게 더 중요했으니까. 신경 쓰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다.(웃음)
원하는 직업을 장래희망으로 둔다면 처음부터 여왕을 노릴 수도 있는 건가?
안타깝지만 불가능하다. 이번 <프린세스메이커>는 가문 시스템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가문의 등급이 일종의 유저 레벨이라고 보면 된다. 각 직업은 등급별로 분류되어 있는데, 가문의 등급이 높아야 상위 직업을 장래희망으로 삼을 수 있다. 가문 시스템이 원작과 게임성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이렇게 되면 강제로 일률적인 플레이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 같지만, 또 직업마다 요구하는 스탯을 얼마나 채웠는가에 따라 1성, 2성, 3성으로 나뉜다. 별이 많을수록 가문 등급이 더 올라가고, 다음 등급의 직업에도 도전할 수 있다.
직업의 종류에 따라 S·A·B·C·D 등급으로 나뉘고, 각 직업은 1성·2성·3성으로 다시 한 번 나뉜다.
원작에서는 원하는 엔딩을 보는 것이 게임의 주된 목적이었다. 이렇게 여러 엔딩을 보게 되어 있다면, 모바일 버전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번 <프린세스메이커>는 가문의 등급을 높이기 위한 콜렉션이 게임의 가장 큰 목적이다. 현재 준비된 엔딩만 200여 개가 넘는다. 원작은 하나의 엔딩을 보고 나면 게임이 끝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엔딩만 보고 게임을 그만두지는 않았었다. 또 다른 엔딩을 보기 위해 몇 번이고 반복하지 않았나.
모바일 버전은 한 엔딩을 보는 데까지 3시간 정도 필요하다. 그래서 엔딩당 플레이 타임을 줄여서 유저들이 보다 다양한 엔딩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의 <프린세스메이커>가
그렇다면,
이후의 <프린세스메이커>는
달라지나?
모아 놓은 딸을 활용해 어떻게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이다. 현재 모든 엔딩은 인터페이스에서 카드 형태로 등장하는데, 카드배틀도 고려 중이다.
“19금 시나리오? 일본에 진출하면 생각해 보겠다”
딸내미의 앙칼진 또는 애교 넘치는 목소리를 듣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는데, 지스타 버전에서는 ‘큐브집사’ 목소리만 나오더라.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딸의 목소리 녹음이 끝났다. 전 연령대의 연기가 가능한 김현지 성우가 함께했다. 지스타 버전처럼 처음에는 NPC에만 입히려고 했었는데, 내부에서 요청이 많았다. 또 지스타 이후 외부에서도 요청이 많았고. 참고로 큐브 집사는 이승원 성우가 맡았다.
지스타 버전에서 3D 그래픽인데 커스터마이징이 없어서 아쉬웠다.
사실 원작에 없던 부분이어서 개인적으로 커스터마이징은 아예 배제하고 있었다. 그런데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한 팀원이 아이에게 게임을 시켜 봤더니 스케줄 진행은 안 하고 종일 옷만 갈아입히고 있었다더라. 어린 친구들이라든지 여성 유저에게는 이런 게 필요하구나 싶어서 그제서야 고민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얼굴의 형태를 바꾸는 건 당장에 구현할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감정 표현을 표정으로 드러내려 하다 보니 현재 나온 외형만으로도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PC게임처럼 눈, 코, 입 다 따로 커스터마이징하면 엄청난 리소스가 필요하므로 개발도 오래 걸린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화장이다. 보통 여자들이 옷이나 머리 스타일에 따라서 화장법도 바꾸지 않나. 아이섀도라든지 속눈썹이나 볼터치, 입술색 등을 꾸밀 수 있게 만들었다. 개발자들이 대부분 남자라서 볼터치를 얼마나 해야 자연스러운지, 눈썹은 어떤 길이가 예쁜 건지 그 적당한 수준을 찾느라 참 애먹었다.(웃음)
새로운 것도 좋은데, 기존에 있던 소소한 재미들이 유지될지 모르겠다. 예를 들면 ‘풍유환’이라든지, ‘DD 파일 삭제’라든지.
보도자료를 통해서도 공개했지만 풍유환(바스트 사이즈를 키워 주는 아이템)은 당연히 넣었다. DD 파일(도스 OS 기반의 원작에서는 ‘DD.lbx’라는 파일을 삭제하면 캐릭터가 홀딱 벗는다)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해줄 수 있는 말은, “안 됩니다!”이다.(웃음) 대신 게임에 등장하는 이벤트들은 최대한 재현하려고 노력했다. 기대해도 좋다.
나도 <프린세스메이커2>를 정말 즐겁게 했던 유저였지만, 시나리오를 보면 ‘도대체 어떻게 발매가 됐을까 ’싶을 만한 내용이 많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시나리오를 그대로 담았으면 좋겠지만 그랬다가는 카카오 통과는커녕 아예 심의 통과도 못 하고 출시도 안 될 거다.
아예 다 빼기는 아쉬워서 사회상규에 위배되는 내용은 살짝 순화했다. 예를 들어 아빠와 딸이 결혼하는 엔딩의 경우 “전 평생 아빠와 살 거예요.” 정도로. 아쉬워하는 원작 팬들이 있다면, 어림짐작해주셨으면 좋겠다. 나중에 일본이나 북미에 진출하게 된다면 원작대로 수정하는 것도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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