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나라>와 <리니지>에 이어 세 번째 MMORPG <X2>(가칭)을 개발하고 있는 XL게임즈의 송재경 대표가 MMORPG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송 대표는 “<WOW>로 대표되는 최근의 MMORPG가 테마파크(놀이동산)와 같은 형태로 발전하면서 개발자에 의해 연출된 재미만을 주고 있다”며 “이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연출된 재미뿐만 아니라, 유저의 창발성이 겹합한 형태로 MMORPG가 진화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최된 KGC 2009에서 'MMORPG 변화하는 세계'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에 나선 송재경 대표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디스이즈게임 고려무사
※ 생생한 내용 전달을 위해 송재경 대표의 발표 내용을 최대한 훼손없이 정리했습니다.
■ 90년대 후반의 MMORPG는 가상세계 구현에 충실
저는 이번 시간에 MMORPG의 현황에 대해 알아보고 앞으로 MMORPG가 어떤 식으로 발전할 지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물론 제가 이야기하는 것들은 개인적인 소견이 많이 포함됐기 때문에 반드시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먼저 1997년 <울티마 온라인>과 <리니지>로 시작된 1세대 MMORPG, <에버퀘스트> <리니지2> <다크에이지 오브 카멜롯>으로 대표되는 2세대 MMORPG 그리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아이온> 등 최근에 나온 게임들을 살펴보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MMORPG의 모델을 만든 <울티마 온라인>은 높은 자유도를 제시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유저들이 ‘이렇게 하는 것도 가능할까”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상당부분 구현됐죠. 게임이지만 가상세계로의 접근이 이뤄지면서 높은 자유도를 선보였습니다. 하지만 최초의 MMORPG이다 보니 무분별한 PK, 매점매석, 매크로(오토 프로그램) 등 부작용이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MMORPG의 대중화를 선도했던 <리니지>도 많은 부작용을 갖고 있었습니다. <울티마 온라인>과 마찬가지로 무분별한 PK가 이뤄졌고 특정 혈맹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해 사냥터를 독점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죠. 또 게임 바깥에서 게임머니나 아이템을 사는 현거래가 이뤄지면서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1세대 MMORPG들은 기존에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부작용을 갖고 있었습니다. 가상세계로의 접근을 지향하면서 자유방임을 추구했지만 그에 따른 문제점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죠.
■ 2세대 게임들, MMORPG의 고질적인 문제들 손보기 시작
이런 문제를 해결하면서 나온 게임이 <에버퀘스트> <리니지2> <다크에이지 오브 카멜롯>과 같은 2세대 게임이었습니다.
최초의 3D MMORPG인 <에버퀘스트>의 경우 수십 명의 유저가 함께 몬스터를 잡는 레이드시스템을 선보였고 유저간의 거래를 제한하는 귀속아이템을 만들었습니다. 진영간의 대규모 전투를 표방하면서 RVR 컨셉을 도입한 <다크에이지 오브 카멜롯>은 PVP에 한정됐던 기존의 전투를 좀더 확장하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엔씨소프트가 화려한 그래픽을 자랑하는 <리니지2>를 선보이면서 큰 사랑을 받기도 했죠.
이후 개발사들이 다양한 방향으로 컨텐츠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아이온>과 같은 게임들이 기존의 MMORPG 요소를 집대성하면서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 주목할 만한 점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와 같은 새로운 게임들이 가상세계로의 접근보다 게임 본연의 재미를 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재미에 대한 접근’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을 해결했습니다.
현금거래 같은 경우 강력한 귀속시스템을 선보이면서 거래 자체를 차단했고, 같은 진영에 대한 PVP를 차단하면서 무분별한 PK를 막았습니다. 인스턴스 던전을 도입해서 사냥터 독점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게임의 재미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그 동안 불편하게 여겼던 것들이 상당부분 해결됐습니다. 하지만 ‘재미’와 ‘편의’를 추구하면서 비논리적인 상황이 무시되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습니다. 좀전에 잡았던 보스 몬스터가 몇 시간 후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인스턴스 던전은 비논리적인 상황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사냥터 독점 같은 문제를 해결하면서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온라인게임의 인스턴스 던전은 일종의 놀이동산과도 같습니다. 몇 명이 모여서 놀이동산의 탈것을 타고 내린 후 다시 다른 탈것을 타는 식이기 때문입니다.
■ 연출의 즐거움을 추구하며 게임의 자유도 떨어져
인스턴스 던전이 활성화되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MMORPG의 거대한 월드가 인스턴스 던전을 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로비로 전락했기 때문입니다.
제 생각에 현재의 MMORPG는 이 같은 놀이동산의 집합체가 됐습니다. <울티마 온라인>의 자유도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죠.
유저들은 점점 수동적인 소비자가 되고 있습니다. 과거 1세대 게임들처럼 높은 자유도를 기반으로 능동적으로 컨텐츠를 수비하는 것이 아니라 개발자가 만들어놓은 공식대로 컨텐츠를 소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고정적인 세계관을 설정해놓았기 때문에 유저들은 더 이상 집을 짓거나 성을 지을 수 없게 됐습니다. 사용자가 월드를 변화시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게 된 것이죠.
요즘의 MMORPG는 이처럼 ‘연출된 즐거움’밖에 주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용자들은 개발자가 꾸며놓은 틀에서 공식에 따라 움직이면서 즐거움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결과적으로 사용자의 자유도는 크게 낮아졌습니다.
■ 향후 나올 게임은 자유도 높은 MMORPG가 되길
저는 앞으로 개발되는 게임이 1세대 게임처럼 자유도를 중시하는 방향 즉 가상세계를 중시하는 쪽으로 바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출된 즐거움’은 MMORPG가 아니더라도 패키지게임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충분히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상세계에 대한 접근은 환경, 관계, UCC 등 많은 부분에서 구현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게임배경의 경우 계절, 기후, 밤낮, 조수간만, 별자리에 따라 환경이 변할 수 있습니다. 또 나무를 심거나 베어내어 그 자리에 집이나 성을 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게임에서 한 유저가 “새로 생긴 이 웅덩이는 뭐야”라고 질문했을 때 “이 웅덩이는 석달 전에 발생한 대규모 공성전에서 메테오 스트라이크를 썼던 자리야”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얼마든지 구현될 수 있습니다.
기존의 MMORPG에 있는 NPC는 물건을 사고 파는 밴딩머신이거나 퀘스트를 주는 창구에 불과했지만 앞으로 나올 게임에서는 NPC를 고용하거나 연애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 NPC와 함께 외교활동을 하거나 정치적인 이슈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가상세계에서 놀이공원 형태로 발전했던 MMORPG의 흐름이 다시 가상세계를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고 있고 그렇게 되길 기대합니다.
MMORPG라는 장르의 특징을 잘 살리기 위해서라도 가상세계에 대한 접근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봅니다. 연출된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것에 대한 즐거움도 추구되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의도하지 않은 즐거움’은 MMORPG의 장르적 특성을 가장 잘 구현한 형태입니다.
과거의 게임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MMORPG의 문제점을 해결해왔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꼭 문제해결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것들은 ‘문제해결’이 아니라 ‘문제회피’를 통해 은근슬쩍 넘어간 부분도 있습니다.
완벽할 수 없지만 제어할 수 있는 장치들이 생긴다면 MMORPG에서 가상세계로의 접근은 필요합니다. 향후 가상세계를 잘 구현한 MMORPG가 나온다면 유저들은 이 안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