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불, 바람, 물, 마음. 다섯 가지 힘을 하나로 모으면~’ 우리에게 익숙한 캡틴 플래닛의 주제곡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악당과 싸우는 캡틴 플래닛은 5개의 반지가 모여 태어난다. 만약 하나의 반지라도 부족하면 캡틴 플래닛은 반쪽 짜리 영웅으로 전락한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기획, 원화, 코드, 모션, 모델 5가지가 충족돼야 비로소 제대로 된 게임이 나온다. 그리고 이를 원활히 뭉치게 만드는 게 바로 프로젝트 매니저(PM)의 역할이다.
3년째 <마비노기 영웅전>(이하 영웅전)의 에피소드를 맡고 있는 이규동 PM(오른쪽 사진)이 넥슨 개발자 콘퍼런스(NDC) 2011에서 ‘초보 PM이 갖춰야 할 6가지 항목’에 대해 발표했다.
제목은 무려 ‘땅, 불, 바람, 물, 마음을 캡틴 플래닛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협력을 위해 어떤 노력도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디스이즈게임에서 정리했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① 완성될 모습을 공유해라
모든 작업은 ‘같은 그림’을 그리는 데서 시작한다. 이규동 PM은 동상이몽의 반대말인 ‘이상동몽(異床同夢)’을 내세웠다. 모든 개발자는 장소나 처지가 달라도 같은 생각을 품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곰이 앞발로 원을 그리며 후려치는 공격을 한다고 했을 때 기획자가 말하는 ‘후려치는 동작’과 애니메이터가 생각하는 ‘후려치는 동작’이 같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어떤 사람은 세로로 내려찍는 동작을 떠올릴 수도, 가로로 넓게 휘두르는 동작을 떠올릴 수도 있다. 만약 생각이 같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 결과는 간단하다. 재작업이다.
이런 불상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브리핑’이 필요하다. 다만 여기에도 조건이 있다. 그냥 브리핑이 아니라 직업에 따라 다른 ‘맞춤 브리핑’이 필요하다. 사람은 자신의 전문분야 외에는 관심을 갖기 어려운 탓이다.
같은 콘텐츠라도 원화가와 맵 제작자가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르다. 프로그래머에게는 필요한 시스템을 중심으로 설명해야 하지만 맵 제작자에게는 배경의 느낌을 먼저 전달해야 한다. 이를 반대로 전하거나 일괄적인 브리핑을 반복해서는 자기 분야가 아닌 내용이 나올 때마다 잠이 드는 개발자를 만날 뿐이다.
꾸준함도 중요하다. 잊을 때가 되면 반복하고 기회가 되면 또 반복해서 브리핑한다. 같은 내용을 몇 번이고 설명해도 과하지 않다.
실제로 <영웅전>의 9번째 에피소드 개발에는 총 7번의 공식 브리핑이 진행됐다. 개인적인 브리핑까지 따지면 횟수는 셀 수도 없다. 만약 100번의 설명이 필요하다면 그렇게 할 생각이다. 이렇게 반복을 거듭하는 브리핑은 모든 개발자가 ‘같은 그림’을 공유하게 해주고 (브리핑을 듣는) 당신이 그만큼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는 생각을 심어 준다.
② 협상하라
업무의 중간에 서 있는 PM에 협상은 기본요소다. PM이 협상에 나서야 할 때는 크게 두 가지다. 작업자들이 결과물에 각자의 로망을 담고 싶어할 때, 그리고 시스템에 복합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다.
원칙적으로 기획은 기획자의 몫이다. 하지만 기획자만 의견을 내야 하는 건 아니다. 같은 게임을 개발하는 만큼 다른 개발자도 각자의 생각과 꿈을 갖고 있다. 이를 들어주는 것이 때로는 결과물에 더 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영웅전>의 이비의 디자인을 총괄한 PM은 애니메이터 출신이었다. 보스전만 반복해서 진행하는 보스 랠리는 프로그래머의 발상으로 만든 콘텐츠다.
복합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도 협상은 필요하다. 만약 <영웅전>에서 몬스터가 벽에 갇히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치자. 이때 문제에 관여된 사람인 맵 제작자와 프로그래머가 서로 원인을 미룬다. 맵 제작자는 프로그래머가 몬스터의 인공지능을 고쳐야 한다고 말하고 프로그래머는 몬스터가 갇히지 않도록 맵을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게 협상이다. 참고로 위의 문제에서 이규동 PM이 내놓은 해답은 ‘일단 수정이 급하니 맵부터 고치고 그 다음에는 인공지능을 수정해서 이런 일이 없도록 합시다’였다. 양쪽의 상황을 최대한 반영한 것이다.
③ 문서를 정성 들여 써라
문서는 작업자가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려 주는 소중한 아이템이다. 한마디로 ‘성과를 남기는 도구’인 셈이다. 그만큼 문서 작성은 중요하다.
매번 클라이언트 업데이트 때마다 생기는 버그를 잡던 개발자가 있다. 상사는 그에게 언제나 구두로 부탁했고, 그는 바쁜 시간을 쪼개 가며 버그를 잡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가 ‘무엇을 얼마나 했는지’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PM은 모든 것을 성과로 남겨 내부 팀원들의 성취감을 북돋워야 한다. 구두로 업무 진행을 하더라도 마지막에는 꼭 이렇게 말해야 한다. “지금까지 말씀 드린 거 정리해서 문서로 요청할게요.”
④ 맞춤 소통을 하라
남자는 화성, 여성은 금성에서 왔다는 말이 있는데 게임 개발 직군도 마찬가지다. 기획자가 지구에 있다면 프로그래머는 토성, 미술계 능력자들은 저 멀리 해왕성쯤에서 왔다. 정상적으로 대화가 통할 리 만무하다. 앞서 팀별 브리핑을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같은 직군에서도 개인차가 존재한다. 게임에 대한 이해도와 성격이 사람마다 다른 만큼 설명도 사람마다 다르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영웅전>에 등장하는 블러드 로드의 공격 패턴을 소개할 때 평소 <철권>을 좋아하던 김군에게는 ‘돌진형 공격이고 철권의 잭이 팔 벌려서 공격하는 거, 그걸 조금 더 길게 간다고 생각하면 되요’라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반면 격투게임을 잘 모르고 꼼꼼한 성격의 차양에게는 ‘전진거리는 384인치고 전, 후 딜레이는 90프레임이며 팔을 옆으로 펴고 덮치는 공격’ 등 세세한 부분까지 이야기해야 한다. 액션게임에 약한 흐양에게는… 방법이 없다. 몸으로 라도 설명해야 한다.
아래 영상은 이규동 PM이 흐양을 위해 직접 몸으로 소개한 블러디 로드의 패턴이다. “공통의 관심사부터 몸개그까지 써먹을 수 있는 건 모두 써먹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
⑤ 만만해져라
만만하다는 말은 대개 나쁜 뜻으로 사용된다. 하찮다, 우습다 등이 비슷한 말이다. 하지만 PM은 만만한 사람이 돼야 한다. 완벽주의자여서도 안되고 ‘너무 맑은 물’이어서도 안 된다.
PM이 만만하면 작업자가 모르는 걸 곧바로 물어볼 수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빠르게 전달받을 수 있다. 누군가 실수했을 때 PM이 말하기가 무서운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시간이 가고 그만큼 문제만 커진다. 부담스러운 사람과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는 본능도 한몫한다. 이는 결국 결과물로 이어진다.
⑥ 경청하라
마지막으로 그는 다른 이의 이야기에 ‘경청할 것’을 주문했다.
만만한 PM이 되고 나면 갖가지 이야기와 불만을 다 듣게 된다. 그중에는 이미 해답을 알고 있거나, 자신이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일도 많다. 언뜻 생각하기엔 ‘무의미한’ 이야기다.
하지만 아무도 이유 없이 이야기를 시작하진 않는다. 회사에서 남에게 고민을 말하는 대부분은 이미 해답을 스스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만 답답함에 그것을 나누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에게 불만을 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줄고 업무에 집중이 된다. 남의 불평 듣고 있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반대로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한다는 건 그만큼 신뢰를 얻고 있다는 뜻으로 생각하자.
“대나무 밭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친 모자장수가 대나무가 무언가 해결해 줄 거라 믿고 외친 건 아니잖아요” 이규동 PM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