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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NDC14] 정상원 “택티컬 커맨더스는 왜 역사 속으로 사라졌나”

넥슨 정상원 신규 개발 총괄 부사장의 ‘택티컬 커맨더스, 그 시작과 끝’

김진수(달식) 2014-05-29 17:23:58
RTS에 RPG요소를 결합한 국산 온라인 게임 <택티컬 커맨더스>. 유저 한 명이 한 개 정도의 분대만 조작하고, 여럿이 모여 국가 단위의 전쟁을 펼치는 이 게임은 2001년 인디 게임 페스티벌(IGF)에서 4개 부문을 휩쓸 정도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택티컬 커맨더스> 유저들은 국가별로 끈끈하게 뭉쳐 점령전에 몰두했고, 독특한 게임성은 유저들에게도 호평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서비스 종료 후 기억 속에만 남아있는 게임. <택티컬 커맨더스>는 당시 게임 유저들에게 ‘비운의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게임이 됐다. 

29일, <택티컬 커맨더스>의 초기 개발자였던 넥슨 정상원 신규 개발 총괄 부사장이 NDC14에서 <택티컬 커맨더스>의 개발 과정을 소개하는 강연을 했다. <택티컬 커맨더스>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왜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까? /디스이즈게임 김진수 기자




<택티컬 커맨더스>의 시작과 고난들, “RPG 엔진으로 RTS가 안 되잖아?”


넥슨이 <택티컬 커맨더스>를 개발하기 시작한 건 1997년, <스타크래프트>의 열기가 뜨거운 때였다. 당시에는 <임진록>, <삼국지 천명> <킹덤언더파이어>등 국산 RTS도 시장에 등장하던 시절이었고,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하던 정상원 부사장도 RTS를 개발하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택티컬 커맨더스>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택티컬 커맨더스>는 사내에서 말 그대로 취미로 개발하던 프로젝트였다. 따라서 많은 인력이 투입되지 않았고, 정상원 부사장이 맡은 서버를 비롯해 클라이언트 개발자 1명과 아티스트 1명, 총 3명이 개발하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택티컬 커맨더스> 개발은 시작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바람의나라>등 넥슨의 클래식 RPG를 만드는 데 사용한 엔진인 ‘DOOMVAS’ 엔진 모듈로 개발하려고 했는데, RPG 엔진이다 보니 캐릭터가 많아지면 게임이 느려지는 문제가 있었다. 많은 유닛을 보여줘야 하는 RTS에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결국, 천문학 지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솔라싱크’ 개념을 도입했다. 빛의 도달 속도 때문에 지금 우리가 보는 별은 10년 전의 별인 것처럼, 입력과 입력 시간을 이용해 각 클라이언트에 계산을 맡기면 같은 결괏값을 출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로 출발한 개념이다.

솔라싱크 덕분에 반응 속도를 확보할 수 있었지만, 또 문제가 생겼다. 계산을 각 클라이언트에서 해주다 보니 정확한 동기화가 되지 않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 것이다. 유닛 하나가 죽고 사는 차이가 승패로 이어지는 일도 있었다. 이 때문에 유닛 생산이라는 다른 RTS의 개념을 그대로 넣기 어려웠다.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작은 팀이다 보니 그래픽에 많은 자원을 투입할 수도 없었고, <스타크래프트>의 맵 에디터를 본 개발자들의 좌절도 이어졌다. <스타크래프트>의 ‘캠페인 에디터’는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한 트리거 등이 들어간 맵 에디터인데, 기존 RPG를 만들던 그들에게 맵 에디터는 없었다. 결국 <스타크래프트> 같은 멋진 시나리오 연출도 포기해야 했다.

결국, 이 같은 시련은 노선 변경으로 이어졌다. 어차피 RPG 엔진에서 시작한 것이고, 다른 RTS처럼 ‘공평하게 시작해 실력 차이를 극복할 수 없는’ 대신, 유닛에 레벨을 넣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택티컬 커맨더스>에는 모든 유저가 각자의 아바타를 가지고, 보유한 유닛을 성장시켜 전투에 투입하게 됐다.

또 ‘커스터마이징’ 개념을 넣어 같은 비행 유닛이라도 어떤 유저는 공격력이 강한 유닛을 보유할 수도 있고, 속도가 빠른 유닛을 보유할 수도 있게 했다.




<택티컬 커맨더스>가 잘했던 점, 전우애 넘치는 커뮤니티


개발진은 MMORTS라는 방향을 선택하면서도 확신을 하지 못했다. 과연 ‘RTS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공평한 시작’이라는 틀을 부순 걸 사람들이 받아들여 줄까?’ 라는 의문이었다.

테스트해 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레벨 높은 유닛을 가진 유저와 레벨 낮은 유닛을 가진 유저 사이에 역할 분담이 생긴 것이다. 이들이 함께 전투하면서 레벨 낮은 유저는 정찰 같은 임무를 맡고, 레벨 높은 유저는 팀의 화력을 담당하는 등의 역할 분담이 자연스럽게 생기기 시작했다. 

즉, <스타크래프트>처럼 유저가 혼자 모든 것을 하는 게 아니라 유저들이 모여 자신의 팀을 승리로 이끄는 목적을 가진 게임이 된 것이다. 여기서 유저들이 전략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모습도 자주 나왔다. 지뢰밭 때문에 아군이 전진하지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나서서 빠른 유닛들로 자폭하면서 길을 열어주는 등의 ‘희생’을 하는 양상이 나왔다. 

이런 희생정신을 보인 유저에게는 팀원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모두 다 ‘내가 모든 유닛을 잃어도 우리 팀이 이기면 된다’는 공식이 성립하면서 생겨난 모습이다. 이렇게 <택티컬 커맨더스>는 단순한 유닛의 강함보다는 팀 단위의 전략과 손발을 맞추는 호흡이 중요한 ‘팀 전쟁’ 게임이 됐다.



팀의 승리를 위해 협동하는 게임이 되자 커뮤니티는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전투가 끝난 뒤 서로 모여서 전공을 축하하기도 하고, 뛰어난 판단력을 보여준 유저를 리더로 추대하기도 했다. 정상원 부사장은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아예 정치 체계를 게임 속 시스템으로 녹여냈다.

누구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수 있고, 대통령은 내각을 선정하는 권한을 가지게 했다. 또, 국가의 전략을 해치는 유저를 아군이 공격할 수 있게 만드는 ‘척살령’을 넣어 대통령의 권한을 강화했다. 반대로 대통령이 무능하면 유저들이 탄핵해서 새 지도자를 세울 수 있게 했다.

사람들이 모이자 ‘드라마’가 시작됐다. 오른팔인 줄 알았던 사람이 대통령을 탄핵하고 권력을 차지하는 등의 이야기들이 생겨났다. 이제 사람들은 각 국가에 대한 소개란에 역대 대통령이나 큰 전투 승리 등 역사를 적기 시작했다. 유저가 커뮤니티를 통해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가기 시작한 셈이다.

그다음은 유저가 빈 땅을 차지한 뒤 지지하는 사람 50명이 생기면 나라를 세울 수 있게 했다. 그랬더니 사람들은 ‘골드 러쉬’처럼 빈 땅으로 몰려가 저마다의 나라를 세웠다. 대신 모든 땅을 점령당하면 나라가 사라지도록 했더니 이번에는 유저들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다른 사람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로 오시면 골드를 지원해드려요”같은 식으로 유저들은 국가 존립이나 전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스스로 홍보에 나섰다. 당연히 나라 간의 흥망성쇠라는 서사시를 기록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제 진짜 여러 사람이 모여 플레이하는 전쟁 게임이 됐다.

2001년, 넥슨 USA에서 일하고 있던 정상원 부사장은 전화를 한 통 받았다. 미국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열리는 ‘인디 게임 페스티발’에서 상을 탔다는 전화였다. 그들은 그랑프리, 인기상, 게임 디자인상 등 4개 부문을 휩쓸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북미에서 게임을 서비스하자는 제의도 들어왔다.



<택티컬 커맨더스>가 아쉬웠던 점, R&D팀의 한계와 성급한 유료화


독특한 게임성도 인정받고, 미국 퍼블리싱 계약도 마친 <택티컬 커맨더스>. 하지만 여기서 새로운 문제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상을 타며 게임성을 인정받은 게 독이었다. 별 기대 없이 만들었던 게임이 덜컥 상을 받으면서 부담감이 커졌다.

북미 퍼블리싱도 좋지만은 않았다. 당시 북미 퍼블리싱 계약을 맺은 업체가 패키지 100만 장을 팔 수 있다며 월마트에 패키지를 납품했다. 북미 시장의 관례를 몰랐던 게 화근이었다. 월마트는 관행상 출하해 둔 패키지가 팔리지 않으면 판매금을 대신 물어야 했다. 안 팔린 패키지만큼 손해를 봤다.



튜토리얼을 빼놓은 것도 화근이 됐다. <택티컬 커맨더스>는 PvP 중심의 게임이었고, 튜토리얼이 없어서 새로운 유저가 들어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진행해야 했다. 당연히 처음 들어오는 유저는 전쟁에서 연이어 패배했고, 70~80%의 유저가 초기에 이탈했다. 

높은 초기 이탈률을 잡지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정액제 방식으로 유료화를 했다. 정상원 부사장은 당시를 떠올리며 “판단을 잘못했다”고 술회했다.



취미로 가볍게 시작했던 <택티컬 커맨더스>는 싱가포르와 미국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한국에서는 서비스를 종료했다. 하지만 서비스를 종료하는 그 날까지 한국의 <택티컬 커맨더스> 유저들은 아쉬워했다. 정상원 부사장은 다시 한 번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택티컬 커맨더스2> 개발 계획을 세웠지만, 그가 넥슨을 떠나게 되면서 <택티컬 커맨더스 2> 프로젝트는 중단됐다.

<택티컬 커맨더스>는 끝났지만, 이 게임의 유산은 남았다. 세력과 세력 간의 구도인 RvR이 커다란 규모에서 잘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고, 유저들은 전투에서 피를 나누며 탄탄한 커뮤니티를 유지한다는 점도 발견했다. 또, RTS를 간략화해도 재미있는 게임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증명했다.



“<택티컬 커맨더스 2>를 만들 생각 없나요?” 정상원 부사장과 일문 일답


<택티컬 커맨더스 2>를 만들 생각은 없나?

당연히 있다. 앞으로 <스타크래프트>의 캠페인 에디터 같은 맵 에디터에 접근할 수 있게 되거나 앞으로 연구개발 할 여력이 생기면 시도 할 계획이다.


지금 <택티컬 커맨더스>서비스를 다시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도 택티컬 커맨더스 자료는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서비스를 다시 하려면 <바람의나라>처럼 복원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냥 첫사랑처럼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고, 나중에 <택티컬 커맨더스 2>를 제대로 만들게 되면 그때 즐겨줬으면 좋겠다.


<택티컬 커맨더스> 소스를 공개할 생각이 있나?

당시 소스가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택티컬 커맨더스>개발은 소규모 팀의 순발력 덕분에 나올 수 있었나?

소규모 팀의 순발력도 좋았지만, 회사에서 잉여활동에 대해 인정해 줬기에 나올 수 있었다. 마치 구글처럼 직원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걸 어느 정도는 놔주는 것도 필요하다. 너무 심하면 회사 재정에 좋지 않으니, 적당해야 한다.

<택티컬 커맨더스>를 만들 때 김정주 창업주가 자주 놀리긴 했지만, 절대 그만두라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이런 게임이 나오려면 희한한 시도를 회사에서 인정해줘야 할 것 같다.



<택티컬 커맨더스>가 <이브 온라인>에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나?

<이브 온라인>은 정말 좋은 게임이다. <택티컬 커맨더스>는 척살, 탄핵, 배신, 이적 등을 소규모로 만들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봤던 게임이고, <이브 온라인>은 더 큰 규모다. 이동하는 데 8시간 이상이 걸릴 정도로 오래 걸리는 게임이니, 더 집중하는 것 같다.

<택티컬 커맨더스>의 사례 중 재미있던 건, 한국 사람들이 욕먹는 걸 싫어한다는 점이다. 처음에 전쟁을 내는 걸 꺼리더라. 반대로 미국은 전투가 활발하다. 지역의 차이인 것 같은데, 한국은 억울하면 전화를 해 볼 수도 있는 등 (나라가 작아서 생기는) 한계가 있다. 미국은 시비가 붙어서 “너 누구야?”고 하면 “나 잉글랜드 사람이야”라고 대답하면 전쟁이 벌어지는 식이다.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다른 것 같다.


커뮤니티 게임성은 어떻게 발전할까?

내가 생각하는 핵심은 온라인 게임이건 아니건 개발자가 주는 콘텐츠를 소화하기만 하는 게임은 오래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페리아 연대기>와 <메이플스토리2>도 그런 생각으로 만들고 있는데, 게임은 결국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고, 많은 그림이나 콘텐츠뿐 아니라 유저끼리 재미있게 노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차후 넥슨의 게임들도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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