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형 아이템이 조작논란에 휩싸인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매년 수 차례씩 연례행사처럼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조작 문제가 불거졌고, 최근 <마비노기 영웅전>의 불조각 사건처럼 개발사에서 실수를 인정한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확률형 아이템은 얼마나 공정하게 운영되고 있을까?
디스이즈게임에서 확률형 아이템이 포함된 게임을 서비스 중인 개발자와 기획자들을 만났다. 많은 개발자들은 ‘확률조작이 실제로 행해지고 있다’고 답했다. 디스이즈게임에서 그 중 익명성이 확실히 보장된 3인의 이야기를 추렸다. 먼저 그들의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디스이즈게임 특별취재팀 안정빈, 김진수 기자
※ 기사의 사례는 어디까지나 일부 개발사의 이야기입니다. 해당 개발자들의 이야기는 업체 전체를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제보의 특성상 모든 개발자와 개발사는 익명으로 처리했습니다.
■ ‘뽑기 확률이 0%라고요?’ 모바일게임 개발자 A씨의 사례 (유료 뽑기)
한 모바일게임사에 입사한 A씨는 최근 자사에서 서비스 중인 게임의 유료 뽑기 확률을 확인해보고 깜짝 놀랐다. 해당 뽑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고급아이템들의 등장 확률이 아예 0%로 조절돼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A씨는 해당 기획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 물었지만 ‘게임 밸런스를 위해 일부러 설정한 것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무신경한 답변만 들었다. 유저들의 의심이 걱정됐던 A씨는 크게 항의했고, 결국 최고등급 아이템을 낮은 확률로라도 게임 내에 다시 넣을 수 있었다.
■ ‘귀찮으니까 아예 안 나오게 하자’ 온라인게임 기획자 B씨의 사례 (유료와 무료 뽑기)
한 온라인게임 개발사에서 일하는 기획자 B씨는 게임 내 최상급 아이템을 내건 무료 이벤트를 기획한 적이 있다. 게임에서 이벤트 포인트를 모은 뒤, 포인트를 소진해 확률적으로 아이템을 주는 이벤트다. 하지만 B씨의 회사가 내 건 상품 중 하나는 확률이 0%였다. 이벤트 기획자인 B씨가 독단적으로 결정한 사안도 아니다. 내부 팀 회의를 거쳐 나온 이벤트 기획이었다.
내부 팀 회의에서 큰 반론 없이 기획이 통과된 이유는 ‘게임 내 수량 제한을 위해서’였다. ‘어차피 무료로 진행되는 이벤트고, 이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경제를 다시 잡기 어려우니, 귀찮은 일을 만들지 말자’는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결론이다.
B씨의 회사에서는 이벤트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하루에 서버 전체에 최상위 아이템이 한 개에서 두 개 정도 나올 때까지 확률이 점점 증가하는 무료 이벤트도 진행했다. 그는 ‘다음에는 0%와 확률이 증가하는 방식을 섞은 이벤트를 구상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참고로 B씨의 회사에서 유료로 판매 중인 확률형 아이템의 최고급 결과물 획득확률은 0.003% 이하다.
■ ‘나 같으면 절대 안 뽑는다’ 모바일게임 운영자 C씨의 사례 (유료 뽑기)
모바일게임 기획 및 운영을 맡은 C씨는 툭하면 주변사람들에게 ‘내가 유저라면 절대 확률형 아이템에 돈을 쓰지 않겠다’고 설득한다. 그가 문제로 삼는 것은 유료 확률형 아이템의 결과물 구성이다. 그의 회사에서는 1% 이내의 낮은 확률을 자랑하는 최고급 아이템을 제외하면 초보자 이외에는 큰 도움도 안되는 물약과 매출에 영향이 가장 적은 조합재료 등으로 90% 이상의 확률을 채운다.
C씨의 회사가 유료 확률형 아이템을 이렇게 만드는 것은 한 번에 몇 백, 몇 천 만원 이상을 사용하는 헤비 과금유저들 때문이다. C씨는 “사실 이 정도 유저라면 확률형 아이템에서 어떤 확률로 아이템이 나오는 지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일부 헤비 과금유저들이 게임을 먹여 살리는 상황에서 게임에 영향도 덜 미치고 최대한 매출을 끌어 올릴 방법을 고민하면 잡다한 아이템을 많이 넣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 현업 온라인/모바일게임 개발자들 ‘확률조작? 당연히 있다’
위의 사례는 어디까지나 일부 개발사의 이야기다. 다만 익명을 전제로 만난 개발자들은 ‘모든 개발사는 아니더라도 일부 개발사에서는 확률조작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주변의 동료 개발자에게 들은 사례는 물론 직접 확률을 조작한 사례를 말해준 개발자도 있었다. 주로 활용되는 방법은 특정아이템의 확률을 0%로 제한하거나, 최대 당첨숫자를 제한하고, 가치가 낮은 아이템의 확률을 대폭 높이는 등의 3가지 방법이다.
특히 소규모 모바일게임 개발사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을 서비스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경우까지 있었다. A씨는 “계산조차 없이 그냥 ‘밸런스에 좋지 않을 것 같아서’ 특정 아이템 확률을 0%로 맞췄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확률을 어느 정도 건드릴 것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로 무식한 방법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 매출과 밸런스. 확률조작은 두 마리의 토끼를 잡기 위한 ‘독이 든 성배’
개발자들은 확률조작의 이유로 밸런스와 경험부족, 확률형 아이템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 등을 이유로 들었다. 앞서 B씨가 개발 중인 온라인게임은 한 이벤트에서 0.003% 이하의 당첨확률을 설정했다. 10만번의 확률형 아이템을 구입해야 3번이 당첨되는 구조인 만큼 개인으로 보면 쉽지 않은 수치다. 참고로 로또 복권의 3등 확률은 35,724분의 1로 해당 아이템의 당첨확률과 비슷하다.
다만 게임 전체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모바일게임은 출시 초기에 약 30만명의 DAU(일일접속자)를 확보해야 안정적인 서비스가 가능하다. 이때 30만명의 유저가 ‘튜토리얼 등을 통해 제공되는 기본적인 뽑기’만 진행하더라도 해당 서버에는 이미 10개의 최고급 아이템이 풀린 셈이 된다.
여기에 모바일게임은 높게는 5% 내외로 최고등급 아이템을 제공하고, 뽑기를 통해 얻는 아이템도 ‘실제 능력치를 올려주는 아이템 위주’로 편성된 만큼 ‘밸런스’가 붕괴되기 더 쉽다. 물론 개발사 입장에서 애당초 밸런스를 고려한 확률형 아이템을 설계했어야 하지만 당장의 매출을 걱정하면 그것도 쉽지 않은 노릇이다.
반대로 특정 아이템이 너무 안 나와서 의혹을 피하기 위해 확률을 일시적으로 높이는 경우도 있었다. 각각 상황은 달랐지만 유저들의 아이템 획득현황을 보고 실시간으로 확률을 바꾼 적이 있다는 것은 취재에 동참한 모든 개발자가 인정했다.
다만 이 모든 방법은 당연히 ‘유저가 전혀 모르게’ 진행된다. 유저 입장에서는 같은 돈을 지불하고 확률형 아이템을 구입하더라도 이미 ‘다른 확률’을 갖게 된다. 많은 유저가 자신도 모르게 확률조작의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이다.
■ 기업윤리의 부재. 단순한 확률조작으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도
확률조작이 단순히 확률조작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모바일게임을 개발 중인 한 개발자는 “솔직히 말해 나오지도 않는 아이템으로 유저를 속일 수 있는 상황에서 다른 문제가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이는 매출에 도움이 된다면 무엇도 할 수 있다는 뜻이다”고 주장했다.
최소한의 기업윤리조차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문제가 터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온라인게임 초기에는 게임운영자에 의한 아이템 복사나 판매, 능력치 에디팅 등의 문제가 왕왕 벌어졌다. 모바일게임 개발사 중에도 확률조작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의혹’을 받고 있는 곳도 있다.
그렇다면 최근 논의되는 자율규제가 있으면 이를 지킬 수 있을까? 개발자들의 답변은 부정적이었다. 강제력 없는 자율규제안이 생기더라도 하루하루 살아남는 게 쉽지 않은 대부분의 게임개발사가 이를 지킬 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개발자들은 업계 대부분이 수긍할 수 있는 현실적인 가이드라인과 이를 지켰을 때의 명확한 비전제시가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업데이트: 기사 상단의 사례 부분에서 유료 아이템과 무료 아이템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아 관련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2015.04.08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