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4 (김승주 기자)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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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처음 만드는 사람이, 6년 혼자 개발해 '230만 장'을 판 방법

하드코어 생존 RPG '켄시', 개발자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공개

"실패 속에서도 계속 전진하는 것, 그것이 이야기의 본질입니다."

지난 13일, 유명 인디 게임 <켄시>의 개발사 'Lo-Fi 게임즈'의 대표 '크리스 헌트'의 다큐멘터리가 공개됐다. 다큐멘터리는 <켄시>를 개발하며 집중했던 개발 철학과 크리스 헌트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켄시>가 한국에 정식 출시된 만큼 다큐멘터리는 한글 자막을 지원한다.

2013년 얼리 액세스로 첫 출시된 인디 게임 <켄시>는 많은 의미에서 독특하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의 황무지를 배경으로 한 RPG인데, 여러 의미에서 자유도에 집중했다. 플레이어에게 주어진 목표는 없으며, 원하는 대로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육성이 되지 않은 캐릭터는 매우 약하다. <켄시>의 플레이를 담은 초보의 플레이 동영상을 보면 대부분이 좌절로 끝날 정도로 진입 장벽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켄시>는 마니아층을 확보하며 2024년 공식 발표 기준으로 230만 장 이상을 판매했다. 6년 간 크리스 헌트 홀로 개발해 왔고, 현재 약 30명 정도의 인원이 스튜디오에 소속될 만큼 개발 규모가 작으며, 진입 장벽이 높고, 그래픽이 투박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흥행이다. 심지어 크리스 헌트는 <켄시>가 처음 개발한 게임이다. 과연 <켄시>는 어떤 개발 과정과 철학을 통해 탄생했을까? 다큐멘터리 내용을 정리했다.





# <켄시>의 개발 과정

<켄시>을 개발하게 된 하나의 큰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평소 크리스 헌트가 생각하던 것들이 모여 아이디어가 만들어졌으며, 게임 개발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다. 크리스 헌트는 다큐멘터리에서 "평생 비디오 게임을 한 것이 전부다. 다만, 게임을 플레이하고 비평하면서 '이건 내가 더 잘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은 있었다. 이런 생각이 쌓이며 아이디어가 구체화됐다"고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감이 없었다. <켄시>를 개발하던 당시에는 엔진이나 게임 개발에 관한 유튜브도 거의 없었던 때였다. 일단 프로그래밍은 책으로 배울 수 있으니, 프로그래밍 책을 구매해 독학을 시작했다. 그러나 느낀 것은 "게임 그래픽이나 사운드는 어떻게 만들라는 거지? 그런 건 언제 나와? 난 의미 없는 것들만 코드로 짤 줄 아는데"였다.

결국, 독학을 통해 최대한 게임 개발 지식을 쌓는 데 수 년이 걸렸다. 이후 '3D GAMESTUDIO'라는 엔진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켄시>의 초창기에는 칼보단 총 위주의 게임이었는데, 시행착오를 겪다가 결국 개발이 중단됐다. <켄시>를 본격적으로 개발한 것은 현재 사용하는 'OGRE' 엔진으로 넘어간 이후다. 그러나 부상으로 인해 2년 간 개발이 중단되기도 했다.

2008년 첫 공개된 개발 초기 <켄시> (출처: 크리스 헌트 유튜브)

그 이후 약 6년 간 홀로 개발해 만들어진 것이 얼리 액세스 당시의 <켄시>다. 개발 도중 홀로 게임을 만드는 것에 대한 한계를 느껴 여동생 '나탈리 미켈슨'을 재무 담당이자 총괄 이사로 끌어들이기도 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여동생은 게임의 텍스트 작업까지 담당하게 됐다. 참고로 <켄시>는 얼리 액세스 이후 개발진을 계속해서 모아 현재는 30명 정도가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 <켄시>는 어떤 게임인가?


게임을 모를 사람을 위해 보충 설명을 하자면, <켄시>는 독특한 자유도를 가진 인디 RPG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인 만큼 게임 내에 총은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카타나가 등장하는 등의 와패니즘적 요소가 있다. 명확하게 주어진 목표는 없으며, 생존이 곧 투쟁인 황무지에서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하고 나만의 정착지와 분대원을 구성해 원하는 것을 하면 된다.


특히, 난이도가 타협 없이 하드코어하다는 점이 <켄시>의 특징이다. <켄시>는 진입 장벽이 높고, 게임 내에서 여러 것들을 잘 알려주지도 않는다. <켄시>가 게임 커뮤니티에서 유행했을 때 대부분이 사람이 처음으로 하는 질문은 "노예가 됐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였을 정도. 아무리 캐릭터가 강하더라도 일대 다수로 싸우는 것은 어렵기도 하다. 명확한 주인공도 없기에 처음 만든 캐릭터가 죽었다고 해서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영입한 다른 캐릭터로 계속해서 플레이하면 된다.


그만큼 게임에 적응만 한다면 소규모 개발 인디 게임답지 않은 자유로운 플레이와 다채로운 콘텐츠, 유저 창작 모드로 인해 오래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켄시>에 대한 평가다. 한 예로 게임이 공식 한글화되기 전 국내 게임 커뮤니티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켄시> 관련 글은 게임의 세계관과 연계한 캐릭터를 모아 토너먼트를 펼치는 것이었다. 최종 우승은 전혀 엉뚱한 캐릭터가 했지만 말이다.


관련 기사: '켄시', 넘치는 자유도로 채운 척박한 황무지에 발을 들이며



크리스 헌트 역시 <켄시>에 대해 "꾸준히 노력하고, 발전하고, 훈련한다면 어떤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는 철학적 이상을 담은 게임"이라고 언급했다.


크리스 헌트는 "어떤 사람이 <켄시>를 즐겁게 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도 "초보 게이머보다는 오래 게임을 해 본 사람들이 더 좋아할 것"이라며 "애초에 <켄시>는 저 자신을 위한 게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른 게임을 먼저 하면서 감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헌트가 생각하기에 세상에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이 있는데, 어려움에 즐거움을 느끼고 힘든 상황도 재미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 벌을 받는 상황조차 웃음거리로 여기는 유머 감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켄시>는 앞서 언급했듯이 처음 만든 캐릭터가 쓰러졌다고 게임이 끝나지 않는다. 쓰러진 캐릭터가 다시 일어서기도 한다. 팔다리가 잘려도 의수로 갈아끼울 수 있다. 크리스 헌트는 다큐멘터리에서 <켄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핵심은 실패 속에서도 계속 전진하는 거에요. 그게 이야기의 본질이죠. 이야기는 그런 과정을 통해 쓰여져요. '주인공이 아침에 일어나 목표를 세우고 잘 풀려서 끝났다'는 식의 이야기는 쓰이지 않아요. 이야기라는 것은 주인공이 일어나서 뭔가를 목표하지만, 일이 꼬이고, 위기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관객이나 독자는 '이번엔 뭐가 잘못될까?'라고 생각하죠. 뭔가 틀어지는 순간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 그것이 스토리텔링의 기본입니다.


다만, (게임이라는 매체에서) 다른 점이 있다면 이야기의 주인공이 플레이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란 주인공에게 시련을 안겨 주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너무 많은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쉽게 승리를 안겨 줘요. 강해진 주인공이 모두를 쓰러트리며 거침없이 나아가고, 결국 모두 잘 되죠. 개인적으로는 정말 지루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게임에는 문제가 있고 극복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예상 밖의 문제가 계속해서 튀어나와야 해요. 그리고 '이건 또 뭐야?' 싶을 정도로 새로운 문제가 계속해서 생겨나야 하죠. 좋은 이야기는 다 그런 식으로 진행돼요. 


'선택받은 자'와 같은 설정은 정말 질색이에요. 그런 스토리에 대체 누가 공감할 수 있겠어요? 현실에 그런 사람이 있나요? 당연히 한 명도 없죠. 그래서 전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자 합니다. 그냥 보통 사람이 세상과 싸우며 살아가는 이야기, 그런 게 더 끌립니다. 결국 고난이 있어야 좋은 이야기가 쓰여진다고 생각해요. 


너무 강하고 완벽한 주인공으로는 현실적인 고난을 만들기 힘들고, 결국 독자나 플레이어가 공감 못 할 이야기만 남게 돼요. 밥벌이하고 살아남으려 애쓰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단순하지만 정말로 공감되는 이야기죠.


중독적인 게임을 만들려 한 것도 맞습니다. 중독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나쁜 중독은 전형적인 무료 게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게임 디자이너가 유저를 최대 오래 붙잡아 두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돈과 관심을 끌어내는 데 집중합니다. 


제가 말하는 중독은 단순히 시간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유저가 재미와 성취감을 얻으며 도전과 문제를 계속해서 마주하며 빠져드는 겁니다. 게임을 하지 않을 때도 머리에서 진행하던 도전이 머리에 맴도는 것이죠. '그건 어떻게 해결하지?'라는 생각이요. 직장에서도 '노예상에게 납치된 캐릭터를 어떻게 구하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겁니다. 말 그대로 재미있는 도전이죠. 단순히 '아, 다시 도박하고 싶다'와 같은 중독적인 충동과는 다릅니다.


- Lo-Fi Games 대표 '크리스 헌트'




# <켄시 2>는 계속해서 개발 중


2019년 Lo-Fi 게임즈는 <켄시 2>를 개발 중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다큐멘터리에서의 추가적인 정보 공개에 따르면 후속작은 전작으로부터 1천년 전의 이야기를 다루는 만큼 완전히 새로운 진영과 배경이 나올 예정이다. 핵심은 탐험으로, 완전히 낯설고 이국적인 세계를 이해하고 돌아다니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주어진 상황을 헤쳐 나가며 살아남는 것이 게임플레이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케닛 2>는 탐험이 핵심인 만큼 지역마다 완전히 다른 문화와 규칙, 플레이 경험을 선보이는 것이 목표다. 모든 것이 다르기에 이동할 가치가 있고,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내기 위한 동기를 주고자 하고 있다.


공개 이후 지금까지 별다른 소식을 공유하지 않는 이유는 개발의 용이성 때문이다. 크리스 헌트는 "조용히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일하기 수월하다. 과정도 원활하고, 수정하는 것도 자유롭다. 실수해도 괜찮고,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마케팅할 때 좋아 보이게끔 순서를 잡아 개발할 필요도 없다. 지금도 게임의 많은 부분이 블록아웃 상태이고, 텍스쳐도 없는 모델이 대부분이다. 그래야 나중에 유연하게 수정하기 원활하다"고 했다.


플레이어의 탐험에 대한 재미를 위해 스포일러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이유도 있다. 크리스 헌트는 "게임을 전면 공개하는 시점이 오더라도 핵심 콘텐츠 다수는 숨겨 둘 것이다. 발견의 재미를 스포일러로 망치고 싶지 않다. 제가 스포일러라고 생각하는 요소는 일반적인 회사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고 했다.


한편, 다큐멘터리는 공개 1일 만에 10만 조회수를 달성하며 해외 게이머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크리스 헌트의 발언이 실제 게임 안에 개발 철학으로 잘 녹아들어 있다는 반응이다. 한 해외 게이머는 "정말 행동거지부터 <켄시> 개발자같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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