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 세포들에게 ‘손’이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들을 더 빨리 찾아내거나, 더 오래 묶어둘 수 있지 않을까요?
강력한 펀치를 날려주는 것은 물론이고요.
국내 소규모 개발팀인 ‘베이스제로’에서 개발한 <흰피톨>은 이러한 상상으로부터 만들어졌습니다. 게임은 ‘손’을 가지고 있는 T 세포가 인체를 탐험한다는 내용의 액션 퍼즐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주인공 T 세포’가 되어 손을 활용하여 인체와 상호작용하거나 바이러스를 무찌를 수 있습니다.
그저 단순해 보이는 이 게임, 실제로 플레이해보니 첫인상과는 다른 느낌입니다. 킹받지만 귀여운 캐릭터들, 세포의 특징을 반영한 기믹들, 액션과 퍼즐의 적당한 조화가 꽤나 매력적이었습니다.
게임은 바이러스를 발견한 ‘수지상세포’가 손이 있는 ‘주인공 T 세포’를 떠올리며 시작합니다. 한없이 다정한 ‘수지상세포’와 시니컬하고 무뚝뚝한 ‘주인공 T 세포’의 캐릭터는 그냥 보고만 있어도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두 세포가 우리 몸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고 나면 더욱 재미있어집니다.
T 세포는 우리 몸에서 적응 면역계를 담당합니다. 특히 항체 분비 작용을 증진시키거나, 백혈구가 미처 처리하지 못한 감염된 세포들을 죽이는 등의 일을 합니다.
그러나 이 T 세포는 외부물질을 감지하는 기능은 가지고 있지 않은데요. 이때 수지상세포가 T세포에게 물리적 결합을 통해 전달해 줍니다. 실제로 게임의 개발사인 ‘베이스제로’는 이러한 모습에 영감을 받아 ‘하이파이브’하는 세포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다른 세포들과 달리, 주인공 ‘T 세포’와 '수지상세포'는 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직선에 놓인 것을 잡고, 밀고, 당길 수 있습니다. 수지상세포와 ‘하이파이브’하여 스테이지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은 물론이고요.
게임 내내 ‘주인공 T 세포’는 입 한 번 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수지상세포’들은 그 옆에서 계속 재잘거립니다.
수지상세포가 말하는데 하품하는 T세포. 아무래도 둘의 관계성은 MBTI에서 영감을 받은 것 같죠?
이 게임의 매력은 귀여운 캐릭터와 픽셀 디자인 뿐만이 아닙니다. <흰피톨>은 잘만든 퍼즐 게임이기도 합니다. 올해 BIC 어워드에서 레벨디자인이나 독특한 기믹의 게임에게 주어지는 ‘엑설런스 인 게임 디자인’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튜토리얼 형식으로 제작된 1레벨을 마치면 ‘수지상세포’가 등장하여 플레이어가 갈 수 있는 맵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플레이어는 ‘열쇠단백질 지역’과 ‘여과막 지역’ 중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실 선택한다고 다는 아니지만요. 고속도로에서 톨게이트에 진입할 때처럼 퍼즐을 풀다가 잘못 들어가면 다른 곳으로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거든요. 기자의 경우는 ‘열쇠단백질 지역’으로 가고 싶었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여과막 지역'이었습니다.
참고로, 수지상세포는 T 세포에게 ‘신경계’로는 절대 가면 안된다고 경고하는데요. T 세포가 신경계로 갈 경우 자가면역질환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파킨슨 병’이 대표적이죠.
'여과막 지역'은 말 그대로 노폐물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주인공 T세포'가 갈 수 있는 통로와 '블록 세포'를 옮길 수 있는 통로가 색깔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이동에도 '밀고 당기기'가 필요해서 게임의 난이도 자체가 높은 편인데 본격적으로 퍼즐 요소가 도입되니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런데 저 T 세포의 표정이 열 받아서 어떻게든 깨고 싶어지더군요.
여과막 지역의 맵입니다. 우측의 파란색 통로에 T세포가 끼어버렸습니다. T 세포는 일직선으로만 움직일 수 있기에 이런 식으로 배치되면 같은 자리만 빙글빙글 돌게 됩니다. 이럴 때는 Z 버튼을 연타해서 동작 단위로 되돌아가거나, R 버튼을 눌러 퍼즐을 다시 풀 수 있습니다. 공간 지각 능력이 떨어져 주차도 잘 못하는 기자에게는 이런 상황이 꽤 자주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이 게임이 왜 '액션' 게임인지 궁금하실텐데요. 게임에는 다양한 맵이 존재합니다. 특히 자주 등장하는 것은 전형적인 '길찾기 맵'과 '타임어택 맵'입니다.
전자의 경우 머리를 싸매고 어떻게 이동해야 할지 블록 세포를 어떻게 옮겨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후자의 경우 증식하는 세포들을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하고요. 연속된 '길찾기 맵'으로 지루하고 피곤해질 때 즈음 '타임어택 맵'이 등장하여 T 세포의 무쌍을 보여주는데 이 완급조절이 또 끝내줍니다.
그 중에서도 '타임어택 맵'이 좋았습니다. 게임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는 커지거나 증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타임어택 맵'의 경우 세포가 초 단위로 무한 증식하다가 일시에 폭발하여 주변에 있는 '일반 세포'로 전이됩니다. 이럴 경우 T 세포라도 손을 쓸 수 없습니다. 암세포가 동작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T 세포는 긴박한 음악을 배경으로 이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액션을 펼치는데 큰 연출 없이도 엑스맨의 '퀵실버'의 액션씬과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앞서 보여드린 GIF에서 처럼요.
덤으로 곳곳에 이스터 에그로 숨겨진 레트로 게임에 대한 오마주를 보는 맛도 있었습니다.
T 세포는 과연 바이러스로부터 우리 몸을 구할 수 있을까요? 게임은 올해 BIC에서 진행한 베타테스트를 마친 상태입니다. 현재 스팀이나 BIC의 온라인 전시에서 데모버전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으며, 9월 초에는 스팀과 스토브인디에 정식 출시될 예정입니다.
보여드린 바와 같이 <흰피톨>은 게임보이 스타일의 게임입니다. 개발진도 그 사실을 숨길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이 맵을 바로 뒤에는 '게임보이 어드밴스' 형태도 나오거든요.
이 맵을 바로 뒤에는 '게임보이 어드밴스' 형태도 나오거든요.
<흰피톨> 속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맵들.
'T 세포'와 '수지상세포'의 하이파이브. 실제로 두 세포는 물리적 접촉을 통해 외부 물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고 합니다.
무뚝뚝한 'T 세포'이지만 장점도 있습니다. 성격이 꽤나 쿨해서 '수지상세포'의 이런 눈치 없는 위로 쯤은 그냥 넘어가 줄 수 있거든요. 전혀 다른 둘이 실과 바늘과 같은 단짝이 된 이유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