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메타버스 체험관'의 개관식이 이루어질 6월, X(옛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에서는 <세계잼버리 메타버스> 어플리케이션이 대대적으로 홍보되기 시작합니다.
홍보의 주체는 '대한민국 정부'와 '여성가족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였습니다. 이들은 비슷한 내용의 홍보 글을 올렸고 유튜브에도 <세계잼버리 메타버스>에 대한 광고가 이루어졌습니다. 수많은 홍보자료들이 전하는 메세지는 한결같았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잼버리를 즐기세요!" 여러분은 언제 어디서나 잼버리를 즐기고 계신가요?
먼저 이 <세계잼버리 메타버스> 어플은 언제 처음 개발되어 대중들에게 공개되었을까요? 공식적인 타임라인부터 살펴봅시다.
지난해 5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어플을 만들기 위해 10억 원의 예산을 측정하고, 한국전파진흥협회를 통해 사업 공고를 냅니다. 여기서 유티플러스 인터랙티브가 <세계잼버리 메타버스> 개발 업체로 선정되었고, 총 1년 여간의 개발기간을 거쳐 지난 6월 서비스를 시작하게 됩니다. 메타버스 업체 유티플러스 인터랙티브는 UGC 메타버스 플랫폼 <디토랜드>를 가진 곳입니다.
디스이즈게임이 취합한 정보를 종합하면, 이번 잼버리에 참가하는 한국 학생들에게는 어플의 이용 안내 매뉴얼과 함께 행사 전에 미리 어플을 다운로드 받아오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합니다. 주최측은 이 어플을 통해서 잼버리에 참가한 학생들이 휴식 시간에 온라인으로 교류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을 겁니다.
본지는 한국인 참가자들에게 나눠졌던 본 매뉴얼을 입수했습니다. 그렇지만 전 세계에서 온 참가자들은 비슷한 안내를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심지어 한국인 참가자들 중에서도 이 앱의 존재를 모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직접 다운받아서 확인해본 10억 원 짜리 <세계잼버리 메타버스>는 황량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TV 애니메이션 <네모바지 스폰지밥>의 메롱시티처럼 말이죠.
어플은 과연 10억의 값어치를 하고 있을까요? '잼버리 메타버스 매뉴얼'에 따라서 <세계잼버리 메타버스>월드를 체험해 보았습니다.
매뉴얼에서는 <세계잼버리 메타버스> 어플은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 대회에 참가하는 150여개국, 4만여명의 참가자들이 온라인에서 교류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에 따라 잼버리의 대표 콘텐츠 11종(국궁, 미로, 숲밧줄놀이, 부시크래프트, 잼트리하우스, 에어바운스 등)과 전북의 문화체험 콘텐츠 7종 (전주 한옥마을, 부안 영상테마파크, 익산 미륵사지석탑, 고창 읍성 등)을 구현했다고 전했습니다.
어플을 실행하면, 구글, 페이스북, 애플 계정으로 로그인을 할 수 있습니다. 이후에는 메인 화면에서 아바타를 만들고 월드에 입장하면 됩니다. 아바타의 모양은 세세하게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35가지의 피부색과 각각 30가지의 눈, 코, 입 모양이 제공되어 조정하면 됩니다. 그러나, 헤어스타일이나 의상, 신발과 같이 디자인 요소가 들어간 꾸미기 아이템은 그다지 다양하지 못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꾸미기 아이템이 부족한 현상이 매뉴얼에도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잼버리를 기념한 특별한 디자인의 꾸미기 기능은 배제된 채 <디토랜드> 기본 제작 프리셋이 그대로 적용된 결과로 추정됩니다. 본지의 추정이 맞다면, 잼버리를 기념한 미니게임과 별도 홍보 등이 이루어졌지만, 결국에는 기본적으로 또다른 이름의 <디토랜드>를 다른 앱으로 떼어서 출시하는 데 10억이나 들어간 것이죠.
이후 유저들은 ‘잼버리 스카우트 월드’와 ‘잼버리 오픈 월드’를 선택하여 입장할 수 있습니다.
잼버리 스카우트 월드는 행사에 참여한 대원들끼리 온라인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든 사이버 공간으로 조직위원회에서 발급받은 코드가 있어야만 입장할 수 있습니다다. 잼버리 오픈 월드는 행사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대원들과 일반 참여자들이 제한없이 입장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기자는 둘 중 어플에서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는 '잼버리 오픈 월드'를 체험해 보았습니다.
월드에 입장하면 구글독스로 작성된 조직위원회 측의 공지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아이들로 북적거리는 대화의 장을 상상했지만 어플에는 행사 참가자는 커녕 일반 유저 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혹시나 맵이 넓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Is anybody here?'하고 외쳐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습니다.
잼버리 체험을 하기 위해 이동했습니다. 그러나 마련된 체험과 미니게임 중 대다수는 최소 2인 이상 참가해야만 콘텐츠를 진행할 수 있어 체험할 수 없었습니다.
디스이즈게임에서 접촉한 자원봉사자는 텅텅 빈 월드에 대해 '당연하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는 "행사 현장에서 대원들은 '조'로 구분되어 각자의 캠프에 자리를 잡고 야영을 하게 된다. 이때, '캠프'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며, 충전소까지의 거리도 상당하여 스마트폰의 배터리를 해당 어플을 이용하는 데에 쓸 수 없다"라고 전했습니다.
따라서 기자는 행사의 참가자와의 대화를 포기하고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구 찬스'에도 불구하고, 11개의 활동 중 실제로 월드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미로', '국궁', '제트스키' 단 세 개 뿐이었습니다. 과도한 튕김 현상과 발열 때문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트스키'는 버그로 인해 체험 도중 대기실로 튕기기를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가장 먼저 '미로탈출'을 진행했습니다. 매뉴얼에 따르면, '미로탈출'은 미로에 있는 보물상자를 찾고, 미니게임을 수행하여 탈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때, 미로를 최종적으로 탈출하기 위해서는 '열쇠' 두개가 필요한데, 이 열쇠는 미니게임에서 이겨야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자가 플레이했을 때는 모종의 이유로 인해 미니게임에서 캐릭터가 움직이지 않았고 미로 속에 갇힌 채로 제한시간이 모두 지나갔습니다.
다음은 국궁입니다. 매뉴얼에 따르면, 활로 과녁의 중심을 보고 적중시키는 게임입니다. 최소 2인에서 최대 16인까지 참여가 가능했습니다. 이후에는 바람과 힘 등을 고려하여 과녁에 활을 맞추면 됩니다. 실제 인게임 화면에서는 풍향과 풍속이 표현되지만 게임 플레이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더불어서 해당 게임이 국궁에서 모티프를 얻었는지도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게임의 곳곳에서는 치명적인 오타마저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게임 속 오타는 공식 매뉴얼에도 그대로 실려 배포되었습니다.
본지는 한참 역사와 문화, 언어를 배우고 익혀야 할 청소년에게 이 앱을 쓰게 하는 것이 오히려 우려스럽다는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왜냐면 전북의 문화유산 일곱 곳을 메타버스 속에 구현한 월드에 치명적인 역사적 오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오류가 발견되었지만, 딱 2개만 꼽아보겠습니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1990년대 정부의 막무가내식 복원으로 잘못 복원된 동탑과, 2019년에야 최종 복원되어 대중에 공개된 서탑을 모두 포함합니다.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미륵사지 석탑도 둘이 '세트'입니다. 그런데 잼버리 참가자들에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려는 목적으로 개발된 이 게임 속에는 잘못 복원된 동탑만 서있습니다. 서탑은 어디 갔는지 빠져있고 말입니다.
<세계잼버리 메타버스>가 구현한 전라북도의 모습은 오류 투성이입니다. 태조의 어진이 모셔진 경기전이 있어야 할 곳에도 전혀 엉뚱한 건물이 들어서있습니다. 한옥마을에서 가장 가치있는 역사 유산을 쏙 빼놓고 한옥집 흉내만 낸 것이지요.
가장 웃픈(웃기면서 슬픈)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10억 짜리 공공 앱의 정체도 모르는 탓에 이 앱의 역사적 오류 또한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닐까 합니다. 행사의 관계자도, 참가자도, 게이머도, 일반 시민들도 관심이 없는 메타버스는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 만들어지는 걸까요? 우리의 세금을 제대로 쓰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