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달식. 이 세상을 살아가는 마지막 쿠폰마스터지. 어렸을 적 나를 거둔 사부님께서는 휴대폰 고지서에 놀라 쓰러지며 내게 이런 유언을 남겼어.
“캐시질 좀 작작해라.”
이 말은 아직까지도 나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지. 그리고 4년 후 모바일게임에 빠진 나는 사부님의 유언을 받들기 위해 사부님이 남기신 삿갓을 쓰고 머나먼 부산까지 잠행을 강행했지. 목표는 쿠폰. 이렇게 나의 이야기는 시작돼.
※ 이 정신 나간 기획을 흔쾌히 받아주신 벡스코 및 게임업체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디스이즈게임 편집국에 이 영광을 바칩니다. 내년에 또 할 겁니다.
서장. 나는 더 이상 커피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이러브커피>.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 있는 게임이지만 나에겐 좀 달라. 초창기부터 꾸미기에 가산을 탕진한 나에게 이 게임은 씁쓸한 원두 원액처럼 다가왔지. 꾸미기 점수를 위해 인테리어를 자주 바꾸면서 내 가게는 하루하루 정체를 알 수 없이 달라지고, 급기야 테마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공간으로 변해 갔어.
남은 골드가 바닥을 쳤을 때, 내 손길은 자연스럽게 캐시 결제를 향했어. 출산휴가를 떠난 미술 선생님 대신 교단에 선 체육 선생님이 가르치는 초등학교 미술수업을 25분쯤 받다 뛰쳐나간 아랍부자가 후기 인상파 작풍에 꽂혀 만든 것 같은 내 카페를 구원해줄 수 있는 길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그때 자연스럽게 사부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
그래. 나는 여기서 포기하면 안 됐던 거야. 그렇게 나는 문을 박차고 사부님이 남겨 주신 삿갓과 함께 무작정 부산으로 길을 떠났어. 사흘 밤낮을 달려 부산 벡스코에 도착한 나는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쿠폰을 보며 마음을 굳혔지. ‘그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저 쿠폰이야.’
2장. 그가 나의 이름을 불렀을 때, 나는 그의 쿠폰이 되었다.
본디 세상의 법도를 따르지 않는 쿠폰마스터이지만 삼엄한 경비를 뚫고 벡스코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지. 그 때, 나는 한 막사에 있는 무료 티켓을 발견하게 돼. 보라색의 고급스러운 몸뚱아리 속에서 ‘카와이이하게’ 별 모양으로 갈라진 선분홍빛 속살을 드어낸 고혹적인 티켓의 자태는 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지.
하지만 티켓을 입수하는 것은 쉽지 않았어. 자기 직분에 충실한 안내요원은 이 티켓이 사전 등록자들만을 위한 것임을 몇 번이고 강조했거든. 여기서 포기할 수 없던 난 결국 강력한 항의의 뜻을 가능한 귀여운 포즈에 담아 행동에 옮겼지.
달식: (하늘을 보며) 님, 이래도 안 주실 거임?
안내요원: 일어나셈.
달식: (삿갓으로 얼굴을 가리며) 이래도? 이래도? 이제 여기 사람들 오가기 무~지 불편할 텐데?
안내요원: 저기요~ 안전요원님.
… 내 이름은 쿠폰마스터 달식. 난 물러날 타이밍을 아는 눈치 빠른 남자지.
결국 신사적인 자태로 끌려 일어난 나는 바로 옆 부스의 <테일즈런너>를 습격했어. 짧은 대기열 끝에 나를 기다리던 분홍색 쿠폰! 아무런 제재도 없이 나는 그 모든 것을 손에 움켜쥔 채 막사를 뛰쳐나왔지!
‘이 쿠폰은 한 계정당 1회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 내 이름은 쿠폰마스터 달식. 당장 내일부터 <테일즈런너> 계정 128개를 만들 남자지.
결국 난 마지막 남은 거금 6,000 원을 모아 입장권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어. 하지만 괜찮아. 시대를 풍미하신 우리의 위대한 타짜 ‘도리짓고땡’ 선생께서는 이런 말을 남겼으니까.
“첫 끗발이 개끗발이다.”
그래. 시련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줄 뿐이야. 이렇게 논리적인 사고를 앞세운 난 드디어 벡스코를 향해 위대한 첫 발을 내딛게 돼.
3장. 진상,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Zinsang is nothing)
입장하자마자 나를 반긴 것은 <마비노기 2: 아레나> 부스. 이곳에는 넥슨 부스의 다양한 경품을 받을 수 있는 스크래치 쿠폰을 발행 중이지. 하지만 이미 오후 2시를 넘은 시점. 입장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은 나에게는 쿠폰의 차례가 오지 않았어.
결국 나는 마지막 자존심을 태워 비기 진상을 사용하게 돼.
아, 저기요. 잠깐. 아, 아야! 아, 저 목이 민감해서요. 다른 곳 잡으면 안 될까요? 아야! 아. 잠깐 놓으라니까. 놔주세요. 아, 형! 형님! 선생님! 아빠!
… 내 이름은 쿠폰마스터 달식. 민감한 목을 가진 남자지.
세 번의 실패를 경험한 나는 조금 더 신중해지기로 결정했지. 나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 <아이러브커피> 쿠폰. 욕심을 버리고 태초의 목적으로 돌아가기로 한 나는 이내 쿠폰을 나눠주는 샘 일병 NPC를 만날 수 있었지.
하지만 세상에서 ‘여자친구’만큼이나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공짜인 법. 샘 일병은 나에게 가위바위보를 제안했고, 나는 그의 보자기에 맞서 주먹을 내던지는 치열한 사투 끝에 아깝게 패하고 말았지.
하지만 운동에 적합하지 않은 샘 일병의 2등신 신체에 집중한 나는 화해의 손을 내미는 척하며 쿠폰 강탈에 성공했고, 그 즉시 카페까지 달려가 쿠폰을 내밀고 공짜 커피를 마시게 되지. 후후후~. 역시 공짜로 마시는 커피는 세상 그 어떤 커피보다도 맛있는 법.
… 잠깐. 근데 뭔가 이상한데?
그 때, 다시 한 번 사부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
“네가 원하던 커피가 그 실사 커피더냐! 무릇 사내라면 실사보다는 3D! 3D보다는 2D를 선호해야 하거늘!”
그래. 내 생각이 짧았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카페인 덩어리가 아냐. 0과 1의 아름다운 숫자로 이뤄진, 모니터 속에서 찰랑이는 아름다운 커피라고.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쿠폰이 필요해!
최종장. 모든 쿠폰은 주머니로 통한다.
그렇게 <아이러브커피> 쿠폰을 포기한 나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렸어. 이가 없으면 잇몸, 여자친구가 없으면 집에 가는 길에 용산에 들러 미연시 게임이라도 구입하는 법. 체험만 해도 1,000 캐시를 얻을 수 있는 T스토어부터 집중공략을 시작했지.
쿠폰에 굶주린 나에게 T스토어는 마치 마르지 않는 금광과도 같았어. 무아지경. 세상과의 연을 끊고 (쿠폰을 위한) 체험에만 매달린 나는 한 시간 만에 7,000 원어치의 캐시를 모으는 데 성공했지.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어. 쿠폰에는 더 큰 쿠폰을 노릴 수 있는 토이크레인 이용권이 담겨 있었고, 나는 폐업한 만화방에서 새 책을 골라내는 하이에나의 심정으로 크레인에 도전했지.
…….
‘세상에 믿을 토이크레인 없다’는 말을 이렇게 실감하게 되더라고. 난 나중에 딸을 낳더라도 토이크레인 사위만큼은 꼭 반대할 테야.
악마와도 같은 토이크레인의 마수에 넘어간 지 어언 30분. 이제 폐막 시간이 다가왔어. 다급해진 나는 이성을 찾아 헤매는 여름철 매미마냥 행사장을 들쑤시고 다녔지만, 믿었던 <룰더스카이>마저 이벤트를 종료한 상태였지.
결국 나는 금단의 영역. 시간의 블랙홀. 청소년들의 애증의 집합체 <던전앤파이터> 쿠폰북을 얻기 위해 무한의 줄서기에 도전하게 되지.
기나긴 인내의 시간이 끝나고 내 손에 마지막 남은 쿠폰북이 쥐어졌을 때, 난 눈물을 흘리고 말았어. 그리고 그렇게 첫 쿠폰마스터로서의 일정을 끝마치게 되지. 주머니에는 (쓰지도 않을) 쿠폰북과 (어디 써야 할지도 모르는) T스토어 캐시 쿠폰을 지닌 채.
안녕, 벡스코. 그리고 안녕, 나의 쿠폰이여. 그리고 다시 한 번 안녕, 후기 인상파 작풍을 모방한 듯한 나의 <아이러브커피> 속 카페여….